체코 뮤지컬 <삼총사>를 라이센스 공연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내용 자체가 확 달라져 버린 한국판 <삼총사>를 보며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인물이 바로 '복수를 위해 삶을 불사르는 여간첩 밀라디'였는데, 이 캐릭터에 관한 내용을 계속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벼르고 벼르다가.. 오늘에서야 드디어 '밀라디' 관련 포스팅을 해 본다. 공연장에서 내가 본 밀라디는 백민정의 밀라디였다. 백민정 밀라디의 앙칼진 목소리와 시원스런 창법의 노래 스타일은 이 캐릭터와 굉장히 높은 씽크로율을 자랑하는 듯했다.

이 극에서 연인 사이로 나온 이들은 '달타냥(엄기준)과 콘스탄스(김소현)', '아토스(신성우)와 밀라디(백민정)'.. 그 두 커플이었는데, 이제 갓 만나서 내내 쪽쪽거리며 포르토스(김법래)와 아라미스(민영기)의 빈축을 샀던 달타냥 커플이 '귀엽고 풋풋한 느낌'이라면 아토스 커플은 좀 더 '어른스러운 사랑'을 하는 커플이다. 한국판 <삼총사>에선 아토스와 밀라디가 실질적인 멜로 라인의 주인공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판 <삼총사>에선 밀라디란 인물이 '아토스의 과거의 연인'이자 이 뮤지컬에서 '달타냥과 삼총사가 무찔러야(?) 할 악역 리슐리외'의 오른팔 역을 하던 악녀 캐릭터로 나오는데, 굳이 이 인물을 '악녀'라 규정한다면 <삼총사> 라이센스 공연에 나오는 이 밀라디 캐릭터야말로 그럴 듯한 사연을 지니고 있으면서 강인한 포스를 마구 흘리고 다니는 '진정으로 매력적인 악녀'가 아닌가 싶다. 따지고 보면, 이 뮤지컬에서 '밀라디'란 캐릭터는 굳이 악하다기 보다는 (표면적으로 봤을 때) 사랑하는 이로부터 두 번이나 배신 당한.. 이 극의 주요 인물들 중 가장 불쌍한 인물이기도 하다.

리슐리외의 첩자, 오직 복수만을 위해 삶을 불사르는 여인 '밀라디'


장르 불문하고 모든 극에서 '악녀'로 나오는 배우는 일단 목소리에서부터 특유의 표독스런 포스가 느껴지거나 맥아리 있어주는 게 좋은데, <삼총사> 공연을 통해 백민정의 밀라디를 보면서 '아~ 이 목소리야말로 내가 원하던 악녀의 느낌이다' 싶어서 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밀라디는 이 뮤지컬 첫 장면인 '가면 무도회'장에서, 왕권을 노리는 리슐리외의 지령을 받아 리슐리외의 쌍둥이 형이자 원래 왕(루이 13세)에게 뇌쇄적 분위기의 노래를 부르며 철가면을 씌우게 되는데, 그 첫 곡에서부터 시작해서 백민정의 밀라디가 부르는 노래는 전부 귀에 팍팍 꽂히는 느낌이었다.



프랑스의 왕이 '역적죄로 몰린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한 때 사랑했던 아토스가 그런 왕에게 충성하느라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해서 '복수심'에 불타 오르는 대목에서의 밀라디(백민정)의 대사나 노래에는 표독스런 기운이 다분한 '카랑카랑하고 앙칼진 느낌'이 넘치지만, 과거 회상 장면을 통해 한 때 아토스와 사랑을 나눴던 젊은 시절('당신은 나의 기사' 장면)을 연기할 때에는 이 백민정의 밀라디가 급 달달하고 부드러운 소녀같은 느낌의 앳된 목소리로 노래 부른다. 


당신은 나의 기사 :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밀라디와 아토스

개인적으로 이 뮤지컬을 보고 와서 가장 인상적으로 꽂힌 멜로디의 곡이 바로 그 아토스와 밀라디의 이중창곡 '당신은 나의 기사'였는데, 목소리에서 왕을 지키는 남자 특유의 '남성적이고 거친 느낌'에 더하여 '기사다운 진중한 분위기'를 낼 줄 아는 신성우의 아토스 & 이 때 만큼은 '여성스런 느낌의 달달 솜사탕 삘'인 백민정의 밀라디가 함께 부르는 '당신은 나의 기사'란 노래는 꽤 듣기 좋았다. 그 둘이 어우러지는 이중창 느낌이 생각보다 괜찮았으며, (우리 나라 뮤지컬 배우들의 '그 목소리가 그 목소리같은 비슷비슷한 느낌의 음색'과 '한결같이 기름지기만 한 노래 스타일'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지라) 이들의 목소리에 자기만의 '개성'이랄까,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 되는 '독창성'이 있다는 대목도 마음에 들었다.


그 멜로디의 곡은 오리지널 체코판 <삼총사(Tri musketyri)>에도 나오는 곡이다. 원 버전에선 '아토스와 밀라디의 달달 러브 송'이 아니라, '콘스탄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밀라디가 붙잡혀서 사형 당하는 장면'에서 불리워지는 곡인 듯하다. 어차피 오리지널 체코 뮤지컬 <삼총사>와 한국어 버전 <삼총사>는 스토리도 다르고, 곡이 사용되는 해당 장면이 다르니 그에 따른 가사도 다르고, 편곡 면에서 곡 분위기도 영판 다른데, 이 곡에서 만큼은 축축 늘어지는 체코 원 버전의 'Cas na lasku mit' 보다는 밀라디와 아토스의 달콤한 사랑 노래로 둔갑한 한국어 버전의 '당신은 나의 기사'가 듣기엔 더 좋다.

이 뮤지컬에서의 몇몇 곡은 체코의 오리지널 버전에 비해 한국어 버전 편곡도 꽤 괜찮은 것 같은데, 특히 이중창 느낌이 좋은 신성우의 아토스 & 백민정 밀라디의 듀엣곡 '당신은 나의 기사'가 담긴 한국판 <삼총사>의 '하이라이트 곡 음반'이라도 출시되었음 하는 바람이다. 유난히 가창력이 돋보이는 백민정의 '버림 받은 나도', 김소현의 '어둠이 내리면', 민영기의 '오페라' 등의 노래도 꼭 넣어서 말이다.(그렇게 된다면, 해당 CD에 대한 구매 의사 100%인데...)

연인들의 시련 : 역적 죄인의 딸과 그들을 체포하러 온 왕의 충성스런 기사

한국어 버전 <삼총사>에서의 이 곡은 나름 충신이었다는 밀라디의 아버지가 역적죄로 몰리기 전(과거 시점), 다정한 연인 사이였던 아토스와 밀라디가 어느 축제에서 서로에 대한 '변치 않을 사랑'을 노래하는 장면에서 쓰였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달콤한 밀어를 나누며 행복한 한 때를 보냈던 그 둘에게 곧이어 시련이 닥쳐오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왕을 지키는 그 멋진 남자 아토스'가 영원히 자신도 지켜줄 줄 알았던 밀라디에게, 그는 졸지에 '배신남'으로 자리잡게 된다. 


아버지가 역모죄로 몰려 사형 당한 밀라디의 어깨엔 반역 죄인의 낙인이 찍하게 되고, 그 후 그녀는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찜 당해 그의 첩자로 활약하게 된다. 나중엔 자기 아버지를 역적죄로 몰고간 것은 왕이 아니라 리슐리외 추기경의 음모였다는 사실을 밀라디도 알게 되지만, 그 이전까지 그녀는 '왕'과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아토스', 그리고 비정한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복수심을 품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이 극의 아토스가 과거에 밀라디를 진짜 배신한 것은 아니다. 밀라디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는 아버지에겐 죄가 없다며 자신과 아버지를 도망 가게 놓아달라는 밀라디에게 "죄가 없다면 곧 풀려날 것이다~"란 순진한 믿음과 신념으로 왕의 임무를 정직하게 수행하던 충성스런 총사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아토스의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밀라디의 아버지는 사형이란 무시무시한 형벌에 처해졌으며, 그녀는 위기에 빠졌고, 왕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사랑했던 밀라디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아토스는 그녀로부터 배신남으로 낙인 찍힌 채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두 번이나 버림 받은 밀라디의 아픔

저러한 과거의 사연으로부터 이 커플의 비극이 시작되었는데, 한국판 <삼총사>에서 '아토스와 밀라디'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꽤 매력적이다. 리슐리외의 소모품으로 이용되다가 결국 버림 받아서 생마르그리뜨 지하 감옥에 갇힌 밀라디.. 그 때 마침 달타냥과 삼총사가 그 옥에 갇혀 있던 철가면(원래의 왕)과 콘스탄스를 구하러 온다. 아토스가 '애초에 리슐리외의 지령으로 그 철가면왕과 콘스탄스를 납치해서 옥에 가둔 장본인이자, 결국 그 옆에 함께 갇히게 된 밀라디'도 구해내려 했으나 지하 감옥이 붕괴되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이들에 의해 아토스는 급하게 그 곳을 빠져나가고, 밀라디는 또 다시 버림 받게 된다.

이 뮤지컬에서의 밀라디는 한 때 리슐리외의 첩자로서 원래의 왕에게 철가면을 씌웠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악녀로 알려져 있었지만, 알고 보면 이 '밀라디'야말로 가장 불쌍한 인물이었다. 그 이후, 감옥이 완전 붕괴되어서 용케 지하 감옥을 탈출한 밀라디는 가짜 왕이라고 정체가 드러난 리슐리외가 달타냥에게 쫓겨서 배를 탈려고 할 때 결정적으로 그를 처치한 인물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 극에서 진짜 왕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활약을 한 이는 '달타냥과 삼총사'가 아니라 리슐리외에게 복수심을 품은 '밀라디'라고도 할 수 있다. 여러 계략을 써서 왕권을 노리다 '정체가 발각되어 도망가려던 리슐리외'를 처치한 밀라디는 달타냥을 향해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아토스에게 전해 달라고 하면서 배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


아토스의 끝나지 않은 사랑 : 지켜주지 못했던 여인, 밀라디를 찾아서~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왕가의 쌍둥이 형제임에도 '쌍생의 저주'로 인해 태어나자 마자 버려진 뒤 결국 복수를 꿈꾸며 왕권을 노린 동생 리슐리외를 '악인'으로 설정하고 그 형인 원래의 왕을 '정의의 왕'으로 설정한 게 좀 찜찜하긴 하지만(이건 '형제의 비극'이 아닌가-), 어쨌든 마지막에 다시 왕권을 되찾은 쌍둥이 형이 "백성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니 원래 왕좌에 있던 그 왕(리슐리외의 형)은 그냥 좋은 왕인가 보다 생각을...;;

원작 이야기에서 대폭 각색된 한국판 <삼총사>는 주인공들의 행복한 결말을 암시하면서 마무리 되었다. 원 버전에선 여성 캐릭터인 콘스탄스와 밀라디 모두 죽는 것 같던데, 우리 나라 <삼총사>에서의 콘스탄스는 감옥에서 무사히 구출되어 달타냥과 끝까지 닭살 모드의 애정 행각을 선보인다. 두 번씩이나 사랑하는 여자 밀라디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서 내내 자책하던 아토스는 '철가면을 쓰고 갇힌 왕'이 다시 복귀하자, 휴직계(?)를 써서 '지켜줘야 될 여자를 찾아 나서겠다'는 허락을 왕에게 받는다.

총사가 되기 위해 상경했던 달타냥은 아토스의 빈 자리를 메꿔서 '삼총사'에 합류하고, 이야기 안에서 그 내용까지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토스는 결국 밀라디를 되찾아서 그 둘이 다시 러브 러브~할 것 같은 뉘앙스를 주며 이 극은 끝난다.(결과적으로.. 밀라디의 남아있는 '복수'란 것은 아토스가 똥줄 타게 자기를 찾아 다니게 하고, 공처가로 변신한 아토스에게 바가지 긁어가며 평생 잡고 사는 게 아닐까..?)

수줍은 연인에서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여간첩으로~ : 파란만장, 매력적인 캐릭터 밀라디

이 뮤지컬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견을 남겼듯, 한국어 버전 <삼총사> 스토리에서 의외로 큰 매력이 느껴지는 캐릭터는 '밀라디'이다.(요염한 자태로 왕에게 철가면을 씌우던 첫 등장부터 시작해서, 다시 홀로 버림 받아 복수를 꿈꾸며 배 타고 퇴장하던 마지막 장면까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스토리' 면에서 대대적인 각색을 가한 라이센스 뮤지컬 <삼총사>는 별로 새로울 건 없는 내용에 각종 영화, 만화, 소설, 원작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들에서 이것 저것 끌어다 쓴 설정들이 많지만, 그 여러 가지 것들을 비교적 맛깔나게 잘 버무린 극이라 생각된다. '초발랄 코믹 버전 퓨전 사극 삼총사'답게 한국어 버전의 <삼총사>에선 총사들을 둘러싼 여성 캐릭터들을 죽이지 않고 끝까지 너무 무겁지 않은 분위기의 '해피 엔딩'으로 갔는데, 심각한 거 싫어하고 주연급 배우들이 제공하는 가벼운 개그 코드에 동화되고 싶은 이들에겐 꽤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뮤지컬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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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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