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남역 '햄릿'을 연기한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타라 2012. 5. 1. 07:27
1844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한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의 본명은 마리 앙리에트 베르나르(Marie Henriette Bernardt)이며, 파리의 한 고급 매춘부의 딸로 태어났다. 유모에 의해 길러진 그녀는 결국 수녀원으로 보내지게 되었고 한 때는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기도 했지만, 생모의 정부였던 모르니 공작의 후원을 받아 국립 연극 학교인 콩세르바투아르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Sarah Bernhardt(1844~1923)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는 콩세르바투아르를 졸업한 뒤 1863년 '코메디 프랑세즈'를 통해 배우로서 데뷔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나온 그녀는 민간 극장을 돌아다니며 활동했고, 1866년 무렵부터 조금씩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목소리와 살로메를 연상시키는 요염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던 사라 베르나르는 1870년대에 빅토르 위고의 작품 <뤼 블라스(Ruy Blas)>에 출연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 후, 사라는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쌓은 뒤 미국으로까지 진출하였다.


대표작으로 <페드르> <토스카> <햄릿> <춘희> 등이 있는데, 사라 베르나르는 여배우임에도 불구하고 <햄릿>에선 '남자 역'인 '햄릿'을 연기하기도 했다.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단, 우리 나라의 여성 국극에서도 남자가 여자 역할을 하거나 여자가 남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연극에서 배우의 역할 성별이 반대되는 경우'를 '앙 트라베스티'라고 하며 프랑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서양에서도 17세기 후반 이전엔 남자들이 '극 중 여성 역할'을 맡기도 했던 모양이다. 당시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고, 연극 무대에 여자가 출연하는 걸 꺼려했던 풍토 때문이다. 17세기 후반 이후론, 영어 연극에서 여배우가 '여자' 역할과 '남자' 역할을 모두 연기하는 방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러 연극 작품들을 통해 유럽 및 아메리카 대륙에서 왕성한 활약을 펼쳤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는 당시의 프랑스에선 극단 창단 이후 '최고의 명배우'란 찬사를 받았던 여배우이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황후인 알렉산드라 여왕의 경우엔, 그녀를 향해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사라 베르나르는 연기하는 도중 '감정이 격해지는 부분'에서 너무 몰입한 나머지 기절해 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노년에 접어들어서까지 '연기 생활'을 지속했던 그녀는 1905년 무렵 공연 중간에 다리에 큰 부상을 입게 되었으며 결국 한 쪽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일이 생겨났지만, 그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해서 연극 무대에 올랐다. 그녀의 연기 열정에 반한 극작가들이 '앉아서도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을 써 준 덕분이다.


유럽 연극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1914년 레지옹 도뇌르 상까지 수상했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는 1923년 영화 촬영을 하던 중 쓰러져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환갑의 나이가 넘어서까지, 평생을 연극 무대에서 연기 열정을 불태웠던 사라 베르나르는 실제로 '연기의 기초부터 탄탄히 밟고 올라온 무척 성실한 배우'였으며, 연기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여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는 "어떤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잘 연기하기 위해선 그 이야기와 관련된 배경이나 역사, 극을 집필한 작가의 의도를 꼼꼼하게 연구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등 후대의 배우들에게까지 귀감이 될 만한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