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에서

불쌍한 버전과 당당한 버전의 '아담과 이브'

타라 2011. 6. 28. 21:55
얼마 전.. 프랑스 뮤지컬 '십계(Les dix)' 작곡가인 파스칼 오비스포(Pascal Obispo)의 신작 뮤지컬 '아담과 이브' 제작 소식을 알게 되면서, 그가 미리 내어놓은 곡 'Rien ne se finit'만 내도록 들은 적이 있다. 어떤 곡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 곡 한 곡만 며칠 내도록 듣는 습성이 있다. 내년에 개막할 뮤지컬 <아담과 이브 : 두 번째 기회(Adam et Eve : La Seconde Chance)>의 남자 주인공 티에리 아미엘(Thierry Amiel) 특유의 음색도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 새삼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떤 목소리 톤을 지녔을지 궁금해졌다. 아울러,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도...

'아담(Adam)'은 하나님이 '최초로 흙으로 빚은 인간'이기에 정말 공 들여서 만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왠지 용모가 수려한 '꽃미남'이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님, 그 반대로 하나님의 '솜씨가 숙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빚어진 인간'이기에 여러 면에서 삐뚤빼뚤하고 흠 많은 '추남'이었을지도...;;

그런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에서도 그러하듯, 신(神)은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고 원조해 주고 하는 게 아닌, 항상 '네가 이걸 지킨다면...' 식의 <조건>을 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조건 없는 사랑'을 해야 진짜 위대하고 숭고한 존재 되는 건데.. 그런 대목에서, 성서나 신화 속에 나오는 신(神)이 그리 위대한 존재는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신이 괜히 최초의 여자 '판도라'에게 이상한 상자를 하나 줘서 "절대 열어보면 안된다~"는 시험을 걸더니, <구약 성서> 속 하나님도 아담과 이브에게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절대 따 먹으면 안된다~"는 시험을 건다.(아니, 절대 '따 먹으면 안되는 나무'면 동산 중앙에 놔 두지를 말든가- 왜 거기다가 떡~하니 '선악과'를 위치하게 했는지..? 사람 궁금하게시리 말이다...)

원래 '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을 모르던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 알몸인 것에 수치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낙원인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뒤로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됨으로써 육체적인 쾌락을 알게 되었는데, 그 대신 노동의 힘듦과 출산 & 죽음의 고통까지 떠맡아야만 했다.(따지고 보면, 이것이 수치심의 기원/남녀 합방(성)의 기원이 아닐까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대체로 하나를 얻을려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데, 성경에 나오는 인간은 '육체적 쾌락'을 알게 된 대신 '삶의 고통과 불행'을 얻게 된 셈이다. 종교의 시대인 '중세'에, 죄없는 여자들을 잡아 족치는 '마녀 사냥'이 유행하게 된 것도 그 기저엔 '여자들은 다 이브의 후손이다. 이브는 순진한 아담을 꼬득여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사악한 여자다..' 이런 류의 가치가 깔려있는 게 아닐까..?

서양의 화가들이 이 <아담과 이브>를 소재로 한 그림을 참 많이 그렸는데, 그중에서도 마사초(Masaccio)와 알브레이트 뒤러(Albrecht Durer)가 그린 '아담과 이브'는 꽤 인상적이었다.

마사초의 그림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마사초(Masaccio)가 그린 <낙원에서 추방 당하는 아담과 이브(Adam and Eve Expelled form Paradise)>는 구약 성서 '창세기전'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형상화 한 프레스코화에 해당한다. 이 그림에선 '추방 당하는 데 대한 슬픔의 감정'을 표출하는 그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잘 묘사되었다. 쫓겨나면서,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아담'과 이제 비로소 알몸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게 된 '이브'가 팔로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가린 채 걷는 모습이 눈에 띈다.

보통.. 그 시대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그 안에 나오는 등장 인물의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마사초(Masaccio)의 이 작품은 '살기 좋은 낙원에서 불모의 땅으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비통한 심정과 후회의 감정이 눈에 확 드러나게끔 그들의 '울부짖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보는 입장에서도 그들의 상황이 팍 와닿는 느낌인데, 이 버전의 <아담과 이브>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서 벌 받는 그들의 모습이 유난히 '불쌍한 느낌'으로 형상화 된 듯하다..

그에 반해, 독일 르네상스 회화 시대의 화가 알브레이트 뒤러(Albrecht Durer)가 그린 <아담과 이브(Adam and Eve)>에 나오는 그들 모습은 다소 무심한 듯한 표정에, 모델 포스의 남녀로 그려졌다. 마사초의 그림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는 살짝 아저씨-아줌마 같은 모습이지만, 이 쪽 아담(Adam)은 꽤나 훈훈한 청년의 모습이다. 보통은 이들이 '원죄'를 저지른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알브레이트 뒤러의 그림에 나오는 이 '인류 최초의 인간'은 '원죄'에서 비껴난 인물들이다.

알브레이트 뒤러의 그림 '아담과 이브'


알브레이트 뒤러(Albrecht Durer)의 <아담과 이브>에 나오는 두 남녀는 별다른 '죄의식'이 없는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형상화 되었는데, 중세 시대의 종교관에서 벗어난 '르네상스' 시대의 이 그림은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르네상스 정신에 충실하여 '원죄를 저지른 아담과 이브'가 아닌 '인류 최초로 벗고 다녔다는 인간(人間) 아담과 이브'를 그냥 담담한 시각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러니까, 뒤러의 그림 속 아담은 '하나님께 죄를 저지른 아담'이 아니라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남자 아담'이고 이브 역시 '원죄를 저지른 사악한 이브'가 아니라 '여체의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 이브'인 셈.. 그래서 이들의 표정 또한 자신감에 차 있고, 8등신 정도 되는 탁월한 기럭지의 남녀로 묘사되었다.

보통은 '선악과'가 죄와 벌의 상징이지만, 르네상스기의 독일 화가 알브레이트 뒤러(Albrecht Durer)의 그림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들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런 류의 죄의식이 없으며, 오히려 '뭐 어때? 내가 먹고 싶으면 먹는 거지~' 식의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같은 <아담과 이브(Adam and Eve)>를 소재로 한 작품이어도, '종교의 시대'가 지나가고 '인간 중심의 사고'가 점점 널리 퍼져가던 시대적 변화에 따라 '회화' 속 주인공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는 점이 참 인상적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