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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추노'-(2)대길 그리스도의 기이한 행적들

타라 2010. 3. 28. 20:52
개인적으로 '추노' 마지막회(24회)에서 좀 흥미롭게 느껴졌던 인물은 결말부에 대길(장혁)을 통해 큰 변화를 겪게 된 황철웅(이종혁)이다. 철웅이란 인물이 이 극 속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현대적인 잣대를 들이대자면 엄연히 '흉악무도한 범죄자'다. 혹은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해 놓구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못 느끼는 '사이코패스'이거나... 너무 완벽한 사람도 부담스러우나, 잔인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비도덕적인 사람은 더더욱 부담스럽고 난감하기에 이 '황철웅'이란 캐릭터에게 1g의 호감도 느껴지진 않지만, 그래두 관심은 가는 인물이었다.('호감'과 '관심'은 전혀 다른 개념~)

황철웅에게 대대적인 각성과 참회의 기회를 준 이대길

그리고 이 황철웅이란 캐릭터가 극 후반부로 갈수록, 뜻하지 않은 장면에서 은근히 나를 웃겨 주셨다. 그게 어쩌다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지 근엄 & 진지해 보이는 이 철웅 캐릭터에게서 야릇한 개그의 향기가 느껴졌던...

이대길(장혁)과 송태하(오지호)가 둘이 같이 한양으로 가면서 '버디 무비' 찍고 있을 때 그 뒤를 쫓던 황철웅(이종혁)이 보여주었던 몇몇 대목에서의 반응이 꽤 재미있게 느껴졌는데, <추노> 최종회인 24회에서 대길과 대립할 때도 개그 철웅(?)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 때의 상황은 이러했다.

과거에 한 솥밥 먹던 무관이었던 송태하(오지호)에 대한 '2인자 컴플렉스'로 열폭하면서, 좌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그를 추적해 왔던 황철웅(이종혁)은 드디어 송태하와 다시 재회하여 '송태하:철웅 패거리=1:多(다수라고 해봤자 몇 명에 불과~)'의 구도로 맞짱을 뜨고 있었다.

드라마 <추노> 등장 인물의 무력지수는 '그 때 그 때마다 달라요~'의 양상을 보여주었는데, 다소 쇠락한 듯한 1인자 송태하(오지호)가 '칼침' 맞고 있을 때 그를 돕기 위해 구원자 이대길(장혁)이 그 '마지막 격전지'에 날아들어와 같이 싸우게 된다. 그리곤, 그새 치명적인 수준으로 부상을 더 많이 입은 송태하와 언년이 & 원손을 나룻터로 떠민다. 황철웅이는 자기 혼자 상대하겠다고..

이 염치 부부(태하 부부)는 미안은 하지만 그래두 저희들은 살겠다고, 가련한 대길이(장혁)한테만 뒷일을 부탁한 채 그 자리를 뜨고...('내가 만일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하고 생각해 봤는데, 나 같으면 그 상황에서 태하나 언년이의 그것과는 좀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다. 또한, 그 상황으로 오기 이전에 이미 다른 행동을 보였을 것이다.) 본격 황철웅(이종혁)과 1:1 맞짱을 뜨던 이대길(장혁)은 그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철웅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일시에 상대방을 제압하게 된다.


천하무적의 냉혈한 황철웅(이종혁)은 최근에 송태하를 추적하면서 부하들 앞에서 애 같은 모습으로 역정 내는 모습을 몇 번 보여주었는데, 그 '마지막 격전지'에서 대길(장혁)이 태하 부부를 피신시키자 이번에도 역시 투덜거리며 짜증을 낸다. "도대체 (송태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고... 이 때, 황철웅(이종혁)이 그 대사를 내뱉던 순간이 이상하게 웃기게 느껴졌다. '정신적으로 미숙한 한 아이'가 가만 있는 자기 반 애를 괴롭히면서 이기기 일보 직전까지 갔는데, 웬 엉뚱한 옆반 애가 나타나서 깐죽거리며 태클 거니까 '진짜 막 약올라 죽을라고 하면서 징징거리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러자 대길은 "(송태하) 그놈이 내 목숨 한 번 살려줬거든~" 하고 대답했을 뿐인데, 거기에 황철웅이 완전 무너져 버린다. 그 뒤에 '(송태하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고..' 어쩌고의 대사가 있었는데, 그 대사는 어쩐지 무의미한 대사 같다. 전지적 작가스런 입장에서 극을 볼 수 있는 시청자나 이대길(장혁)송태하(오지호)가 '양반-상놈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어쩌고 식으로 혁명을 꿈꾸게 되었으며 보다 큰 차원으로 각성한 걸 알지만, 당시 대길의 저 대사를 들은 황철웅(종혁)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황철웅은 태하 부인이 노비 출신인 것도 모르고, 그의 입장에선 송태하가 그간 어떻게 각성해 왔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 그가 스치듯 '송태하가 세상을 바꾼다더라~'는 말을 들었다면, 극의 논리 안에서 철웅의 입장에선 단순히 '송태하가 원손을 옹립해서 정권을 바꾸려 한다~' 의미의 '세상을 바꾼다' 정도로 밖에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대길이 말한) '송태하가 바꾸는 세상'이 이거든 저거든 '현재 황철웅 본인이 당면한 문제'와는 별로 연관성이 없다.

즉.. 대길이 말한 후자의 대사(송태하 그놈이 세상을 바꾼대잖아~)는 '마지막회에서의 황철웅 깨달음이나 각성'과는 별 연관성이 없는(없을 수밖에 없는) 대사인 것이다. 몇 번 만난 적도 없는 당시의 대길(장혁)과 철웅(이종혁)이 주고 받기엔 너무 '막연'하면서, 붕~하고 비약된 '모호한 멘트'였던...

이러하듯 뒷 대사는 '전후 관계의 논리'를 따져보면 별로 의미 없는 말이었지만, 어쨌든 대길(장혁)의 원래 했던 그 '생명의 은인에 대한 의리 때문이다~' 발언으로 인해 무적 같던 철웅(이종혁)은 한 방에 무너진다. "너까지 날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하면서... 송태하에게 목숨을 빚진 건 마찬가지인데, 철웅이 자신은 '생명의 은인 대한 은혜를 원수로 갚았던 것'에 반해, 앞에 있는 상대방 대길은 '자기를 구해준 이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살신성인~'하니 철웅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자신의 못난 행적들 더 초라해 보인 탓이다.(이런 에피소드는 작년 드라마 <혼>에도 나온 바 있다. 주인공 남자(이서진)의 청소년 시절에 그가 '자기 물건 도둑질한 동급생을 오히려 감싸주는 훌륭한 인품을 보이니, 그 도둑놈 소년은 <상대적>으로 자기 성정의 비루함을 느끼며 그만큼 더 비참한 기분에 빠져들었다는...)

'자 봐봐~ 난 이렇게, 은혜를 은혜x2로 제대로 갚는 굉장한 놈이야. 네가 봐도 정말 멋있지..?' 자뻑까지 하며 여유를 보이는 대길(장혁)의 저 발언으로, '오랜 기간 동안 무의미한 집착을 일삼으며 제대로 삐뚤어진 모습을 보여왔던 철웅(이종혁)'은 상대적인 자신의 찌질함을 뼛속 깊이 느끼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겉보기엔 약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송태하(오지호)든 황철웅(이종혁)이든..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을 가장 크게 교란할 수 있도록 허를 찔러서 제대로 무너뜨리는 대길 선생(장혁)'은 진정한 고수다-

드라마 <추노>의 주인공 이대길은 '예수의 행적'에 대한 오마주로 나온 인물인가?

대길 선생으로부터 '진정한 깨달음'을 얻고,
'참회'의 눈물을 쏟아내는 황철웅 : '이제서야
내가 그간 해온 일이 얼마나 찌질했는지 알겠소~'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네 '닮은꼴' 같은 남편이여-)

대길 선생의 1:1 집중 과외식 가르침을 통해 모든 것이 선명해진 송태하 : '이젠, 제가 열어가야 할 세상이 무엇인지 알겠어요~'

그리하여.. 말로만 세상을 바꾸겠다 하면서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스스로 바꾸고 싶어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에 대한 개념 정리 제대로 안되어 있는 데다가 스스로 '구시대적 사고의 한계'에 부딪혀 '자신에게 닥친 일(내 부인이 알고 보니 노비 출신이었어요~)조차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 내내 방황하던 노비 양반 & 무늬만 어른의 송태하 어린이(오지호)'에게 자진해서 다가가 '1:1 집중 과외'로 의식 개혁 제대로 시켜주고, 진리 말씀으로 '꽤 쓸 만한 인물'로 만들어 준 뒤 위기에 처한 그 가족을 구원하여 주신 대길 선생(장혁)께서 이제는 '오랜 열등감과 삐뚤어진 정서로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었던 황철웅 어린이(이종혁)'에게까지 구원의 손길을 뻗치사,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하시니~


진리의 산상수훈, 대길 선생의 음주 강좌 : '세상은 말이야..'


드라마 <추노>에 나오는 주인공 '이대길(장혁)'을 언년이(이다해), 송태하(오지호), 황철웅(이종혁), 황철웅 부인(하시은), 은실(주다영) 모녀, 설화(김하은), 최장군(한정수), 왕손이(김지석) 등 비탄에 빠져있던 범자들을 구원하러 이 땅에 내려오신 '대길 그리스도~'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극 후반부에 가서 '자신과 가족을 해친 원수에 가까운 미실, 설원 등 그 일당들을 죄다 용서해 주고 넓은 마음으로 포용했던 드라마 <선덕 여왕>의 덕만(이요원)=덕가모니'에 이어, '자기 한몸 희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한 드라마 <추노> 속 대길(장혁)=대길 그리스도 현현'이라니~ 요즘 우리 나라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4대 성인'의 삶을 다룬 위인 전기를 보는 듯하다..;;

노비 소녀 언년이를 결코 천하다 여기지 않으며, 그의 언 손을 녹여주고
업어주기까지 하고, 모든 걸 다 희생하여 그 생명을 지켜주신 대길 선생


그 외에도~ 이 '대길 그리스도(장혁)'께서는 가족을 해하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원수 큰놈이(조재완)를 알고 보면 불쌍한 자다 여기며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연 많은 노비 출신 언년이(이다해)에게 '새 신분'과 '안락 가정'을 허한 뒤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소중한 '생명'까지 선물로 주셨으며..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창녀 출신 설화(김하은)를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봄과 동시에, 오갈 데 없는 그녀에게 일용할 양식과 입을 옷감 & 노잣돈 등을 제공하시고 '음흉한 사당패의 마수로부터 구원'하여 주신 바 있다.

또한.. 가장 낮은 곳까지 몸을 낮추사, 비루한 출신인 천지호(성동일)의 가려운 발가락을 긁어주시고 언 발 정성스럽게 호호 불어주며 외로운 한 영혼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로해 주시고.. '떠돌아 다니던 최장군(한정수)과 왕손이(김지석)'에겐 스스로 '일용할 양식'을 자족할 수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보금자리'를 하사하시어 안돈된 삶을 허락하셨으며, 임금님 휘하의 탐욕스런 정치인 & 무개념 양반님네들의 핍박을 받으며 '도탄'에 빠진 은실(주다영) 모녀 이하 '도망 노비들'을 짝귀랜드로 인도하여 그들에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새 하늘 새 땅'을 열어주셨다.


핸섬한 미모의 구원자 대길 그리스도(장혁)에게 홀라당 빠져서 그를 진심으로 흠모하고, 결국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던 설화(김하은)는 그럼 '막달라 마리아'인가- ;; 이 막달라 설화가 숨진 그를 위해 정성껏 노래 불러주며 돌무덤을 만들어 주었으나, <추노> 24회 본편 스토리 다음에 나오는 '에필로그(epilogue) 장면'은 살아서 파란 하늘과 가운데 거하신 '대길 그리스도'의 눈부신 모습으로 마무리 되었다.(틀림없이, 이 대길 그리스도께서 돌무덤을 뚫고 나와 부활하신 게야..)

막달라 설화의 숨막히는 돌무덤을 뚫고 부활한 대길 그리스도? : 수고하고 짐진 자들이여, 모두 내게로~

그렇다-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수많은 백성들에게 '진리 말씀'을 설파하여 무수한 깨달음을 주시고, 스스로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여 그들을 도탄의 삶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신 대길 그리스도(장혁)의 업적 & 그의 두 제자(오지호, 이종혁)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해 가는 자각 스토리>를 그린 드라마 <추노>의 내용은 알고 봤더니, '만인을 구하러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 짝퉁 대길 그리스도의 기이한 행적'을 쫓아간 '거룩한 희생과 구원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만일 <추노 2>가 나온다면, 대길 그리스도(장혁)에게서 가장 큰 깨달음을 얻어 간 두 제자 송태하(오지호)와 황철웅(이종혁) & 그의 행적들을 옆에서 직접 지켜 본 짝귀(안길강), 언년이(이다해), 천지호(성동일), 최장군(한정수), 왕손이(김지석), 막달라 설화(김하은)와 기타 대길의 여러 제자들이 나와서 이 '대길 그리스도와 겪었던 과거 일 회상'하고 '생전에 이뤘던 그의 빛나는 업적더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온 세상에 '진리와 구원의 대길교'를 더 널리 전파하는.. 뭐, 그런 내용이 펼쳐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