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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드라마 '파트너'에 깔려있는 형제애와 가족 코드

타라 2009. 8. 15. 19:07

KBS 수목 드라마 <파트너>가 종영되었다. 이 드라마의 주된 장르는 굵직한 형사 사건을 다룬 '법정물'이었지만 그 안에다 가족애, 당대에 직면한 사회적인 문제,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주인공들의 멜로, 동료애 등을 오버스럽지 않게 잘 버무린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였다.


이 극에는 거대 로펌 해윤의 두 아들이자 서로 상반된 이상을 지닌 변호사 이태조(이동욱)와 이영우(최철호)가 '피를 나눈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척을 져야 했다가, 결국엔 화해의 제스추어를 보냈던 형제 이야기도 깔려 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파트너>에 나온 배경 음악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이 '형제의 아픔'이란 연주곡이었는데, 이 드라마의 주된 성격을 잘 드러내 준 곡이기도 하다.

영우 동생 태조 : 해체된 가족, 등 돌린 두 형제들

 '여비서에 대한 살인 교사를 한 정해숙 사건'이 종료된 시점에서 '결국 그 재판은 해윤과 진성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사실이 드러나고, 바람둥이 남편인 진성 회장에게 팽 당한 정해숙(이혜숙)이 자신을 속인 변호사 영우(최철호)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미친 듯이 웃는 장면에서 이 곡이 처음으로 흘러나왔었는데, 그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잘 일깨워 준 정해숙(이혜숙)의 날카로운 독설'을 대한 영우(최철호)는 굳은 표정으로 복도로 걸어 나왔고, 거기엔 아버지와 형의 짜고 치는 판에 놀아난 동생 태조(이동욱)가 분노의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 사나운 표정으로 노려보며 서로 대치하는 두 형제.. 그 위로 깔리던 '형제의 아픔'이란 배경 음악.. 극 초반에 나왔던 이 장면이 어쩐지 기억에 남는다.

맨 처음엔 '저 둘은 엄마 아빠가 동일한 친형제가 아닌가..?'란 생각도 해 보았는데, 알고 보니 이 극의 영우(최철호)와 태조(이동욱)는 친형제가 맞는 듯 했고,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각각 한 쪽 부모를 따라 성장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 형제는 둘 다 '엄마'란 존재에 대해 아픈 기억이 있다. 엄마랑 같이 살고 싶었던 형 영우(최철호)는 엄마가 자기 대신 동생을 선택한 상황을 엿본 뒤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고, 결국 엄마랑 같이 살게 된 동생 태조(이동욱)의 경우엔 이혼 후 우울증에 걸려 어린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엄마에게 또 그 나름대로 상처 받았던 인물이다. 이 대목은 세 번째 사건인 '폭력 남편(김갑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부인(김정난)의 이혼 소송'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밝혀진 내용이다.

엄마에게 버림 받은 데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지닌 영우(최철호)는 그 후 아버지(이정길)의 말에 절대 복종하며, 거대 기업 진성에 기생하여 갖은 비리를 저지른 법률 회사 해윤의 대표인 아버지를 위해 온갖 지저분한 일은 도맡아 하게 된다. 큰 아들 영우(최철호)는 자기 회사의 성공을 위해선 가족도 희생시켜야 하는 아버지 진표(이정길)의 뜻에 따라 사랑하는 여자(이하늬)를 버리고 정략 결혼을 하기도 했다. 그의 동생 태조(이동욱)는 한 때 아버지 회사인 해윤에서 형과 같이 일하기도 했었으나, 진성 PNC 사건 때 그 일을 파헤치던 친구 우식이 죽고 해당 사건을 은폐하려는 '형과 아버지의 비리'를 알게 되면서 자기 가족인 형 영우(최철호)와 아버지 진표(이정길)에게 등을 돌리며 시니컬해진 인물이다.

매력적인 구성 : 각각 따로 존재하던 에피소드가 거대한 물줄기처럼 하나로 합쳐지다

드라마 <파트너>의 구성 중 특이한 점은 각 인물들의 관계와 각각의 법정 사건들이 서로 다른 유형의 사건처럼 이어졌다가, 나중엔 그 각각의 사건이 하나로 맞물리며 마지막 사건이 펼쳐졌다는 점이다. 신참 변호사 강은호(김현주) 남편의 죽음엔 그의 사수인 이태조(이동욱)가 과거에 가족들과 등 돌리게 된 가슴 아픈 사건이 연루되어 있었고, 이 드라마의 두 번째 사건으로 나온 살인 교사죄의 대기업 사모님 정해숙(이혜숙)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며 버린 그 회장은 바로 마지막 사건의 주범인 진성 그룹의 회장이었다.


또한, 떡볶이집 할머니 고명자(김영옥)의 땅을 갈취한 유만성(이희도) 변호사에 얽힌 네 번째 사건도 진성 PNC 사건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사건의 범위를 점점 넓혀갔는데.. 각 에피소드가 그 나름대로 재미나게 펼쳐지면서, 마지막 사건을 향해 하나의 물줄기로 달려가는 이런 식의 구성이 꽤 인상적이라 느껴졌다. 이 극의 마지막 사건은 결국, 첨예한 '형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진성 PNC 건으로 이어져서 마무리 되었다.


관련 공무원과 학자들을 매수하여 '한 마을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페녹신 유출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진성 PNC 관련자 한준수(이성민)는 해윤 이영우(최철호) 변호사 방을 도청하여 이태조(이동욱)가 그 사건의 증거물을 확보한 사실을 알게 된다. 깡패들을 시켜 이태조에게서 증거물을 빼앗은 한준수는 그에게 김우식 살인범으로 누명까지 뒤집어 씌운다. 아마 증거물(친구 김우식이 남긴 진성 PNC 사건 관련 자료)을 확보한 이태조(이동욱)가 이미 그 자료를 보았거나, 향후에 다시 그 사건을 파헤칠 가능성이 있기에 그 가능성을 전면 차단하기 위해 그런 식의 무리수를 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형제? : 동생을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형의 희생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 쓰게 된 이태조(이동욱)는 포커 페이스적인 전략을 펼쳐가며 '동생을 살리기 위해 관련 증거물을 강은호(김현주) 변호사에게 전달'한 이영우(최철호)의 활약으로 누명을 벗게 되고, 진성 PNC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늘 서로 으르렁거렸지만 핏줄인 동생에 대한 애정,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양심 등이 영우(최철호)에게 그런 행동을 하게 했을 것이다. 이영우(최철호) 변호사에게 '동생에 대한 형으로서의 감정'을 일깨우는 데에는 형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는 태조(이동욱)의 발언과 그 사실을 더 크게 인식시켜 준 강은호(김현주)와 가족이 없어서 외로운 캔디 변호사 유만성(이희도)의 자극도 한 몫 했다.

형인 영우(최철호)가 '살인 누명을 쓴 동생 태조(이동욱)를 구명'하려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 비리도 함께 밝혀져 체포되었지만, 결국 그 두 형제의 오랜 기간 동안의 갈등은 어느 정도 종식되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아버지이다.


자기 아들이 절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알고, 해당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기 회사의 이득을 위해 '일단 살인죄를 인정하면 집행 유예로 풀어주겠다'고 아들을 향해 딜을 하는 비정한 아버지, 거대 로펌 해윤의 이진표(이정길) 대표는 언제나 '가족' 보다는 자기 '일'이나 '사회적 성공'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가족인가, 사회적 성공인가 : 그들의 일그러진 아버지

이 극에서 이영우(최철호)-이태조(이동욱), 그 두 형제의 아픔은 바로 그러한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다. 세상의 영예롭고 높은 자리는 그 사람에게 모든 걸 다 허락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굳이 이 드라마에서 뿐 아니라, 오래 전 우리 나라 왕들에 관한 역사나 서양의 역사 & 이야기물을 잘 들춰보면 재산이 무지막지하게 많은 대저택의 사람들이나 절대 권력을 누리던 왕들은 '가족'끼리도 서로 치고 받고 죽이고, 자기 이득을 위해 서로를 희생시키는 그런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형과 아우가, 언니와 여동생이, 삼촌과 조카가 자신의 권력이나 큰 이득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의 유형에 따라 유난히 '권력욕'이나 '사회적 성취욕'이 강한 사람들이 있다. <파트너>는 법정 내에서의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의 싸움'이기도 했지만, 일그러진 한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가족의 중심엔 유난히 사회적 성공에의 열망이 큰 한 아버지가 있다. 그는 각종 비리에 동참하여 결국 자신의 회사를 거대 로펌으로 키웠지만, 그 과정에서 부인과 이혼하여 가족은 해체되었으며 아버지 회사의 이권과 관련된 하나의 거대한 사건으로 인해 두 형제는 서로를 미워하면서 갈등하게 되었고 불행해졌다.

진정한 성공과 가족의 의미는? : 법정 드라마 안에 잔잔하게 깔려져 있던 '가족' 코드
 
이 드라마에 나온 나온 전반적인 '법정 사건'도 다 재미있었지만, 강은호(김현주) 가족에 얽힌 중대 사건으로 인해 틈이 벌어졌던 이영우(최철호)-이태조(이동욱) 형제의 그 대립과 갈등이 봉합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극에 잔잔하게 깔려있는 '가족' 코드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또한, 드라마 <파트너>는 <자기 회사의 이득을 위해선 힘 없는 타인들을 함부로 짓밟아도 되고, 가족 구성원들의 만족이나 행복 따위는 희생 시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대 로펌 해윤의 대표이자 두 형제의 아버지인 이진표(이정길)의 방식>에 대한 어떤 류의 의문 같은 걸 던져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런 의문은 정치적 딜을 위해 가족을 포기했던 권희수(김갑수) 의원에 얽힌 세 번째 법정 사건에서도 느껴졌던 대목이다. 이 드라마 속에서 교수 출신 정치인 권희수(김갑수)는 예전보다 더 큰 사회적 성취를 이뤘지만, 힘든 시절에 같이 고생한 부인(김정난)을 인생의 동반자로서 아껴주기 보다는 뒤틀려진 가정 폭력의 희생양으로 삼고 자신의 야망 성취를 위해 아끼던 자식까지 포기해 버렸다. 늘 자기 회사 해윤의 이익이 우선인 아버지 이진표(이정길)는 무고한 작은 아들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자신의 사회적 성공에 집착했지만, 결국 동생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 진실을 밝혀버린 큰 아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말았다.

남들보다 더 큰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지만 그러한 사회적 성취, 권력, 자신의 일적인 이득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아들의 인생까지 좌지우지하려 했거나 수많은 시간과 추억을 공유한 자기 가족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 아버지.. 그들의 삶은 과연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