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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제대로 펼쳐지지 못한 듯한 '미실 천명'의 대립

타라 2009. 8. 12. 19:07

월화 드라마 <선덕 여왕>에서 훗날 '선덕 여왕'이 될 덕만(이요원), 그와 대적하는 미실(고현정) 외 김유신(엄태웅), 비담(김남길), 김춘추(유승호)와 더불어 '주요 캐릭터'에 속했던 천명 공주(박예진)가 24회만에 죽는 걸로 처리되어 이 극에서 퇴장했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 속에서 '미실-천명' 라인(러브 라인이 아니라)에 대한 기대가 컸었는데,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나버린 것 같아 이번 주 '천명 공주 캐릭터의 퇴장'에 유난히 큰 아쉬움이 느껴진다.


이 드라마에서 서로 대립하는 궁중 세력은 크게 봤을 때 '진흥왕파 & 미실파'라고 보면 된다. 곧 선덕 여왕이 될 덕만 공주의 증조 할아버지인 진흥왕(이순재)은 원래 덕만의 아버지인 진평왕(조민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었으나, 그 사이 미실(고현정)이 설원랑(전노민)을 포섭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이 극에서 진흥왕이 결국 자연사 하기는 했지만 원래 미실(고현정)은 진흥왕(이순재)을 독살하려고 했고, 자신이 왕후가 될 욕심으로 왕의 유언을 조작하여 진지왕(임호)을 옹립했다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그를 폐하고 다시 진평왕에게 왕좌를 내어 주었다.

다양한 인생사를 경험하면서 변화된 '천명' 캐릭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

하지만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진평왕(조민기)에겐 그 때 당시 아무런 힘도 없었고, 이미 미실파가 궁내 권력을 장악해 버린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진흥왕(이순재)-진평왕(조민기)의 후손에 속하는 천명 공주(박예진)는 당장의 힘은 미약하지만 권력을 독점한 미실(고현정)에 맞서 진흥왕의 유지를 받든 정치를 펼쳐 보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다. 원래 이 극에서 덕만(이요원)의 쌍둥이 언니로 나온 천명 공주는 유약한 인물이었으나, 남편과 사별한 뒤 김춘추를 낳고 여래사 일대에서 쌍둥이 한 쪽을 만나게 되면서 크게 각성하여 '미실과 맞서볼 의지'를 갖게 된 인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 드라마 전개 과정 속에서 몇 번 나온 어린 '천명(신세경)과 미실(고현정)의 대립', 성인이 된 '천명(박예진)과 미실(고현정)의 대립'은 번번히 큰 흥미와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미실 궁주가 심어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가, 각성 후 조금씩 당찬 모습이 부각되는 등 '캐릭터적인 큰 변화'를 보여준 천명 공주는 꽤 매력적인 인물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변화된 '캐릭터적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천명 공주(박예진)에 관한 이야기 자체가 흐지부지 전개되다가 이번 주 방영분에서 허무하게 죽어 버려서 그런 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 미실(고현정)파에 대한 그러한 대립은 덕만(이요원) 공주가 이어나가긴 하겠지만, 무기력한 진평왕(조민기)에 대신하여 덕만에게 '진흥왕'의 유지를 알려주며 정치적인 영향력 끼쳐야 했을 천명 공주(박예진) 캐릭터가 이 극 안에선 다소 무의미하게 소모된 감도 있다.

<선덕 여왕> 요즘 이야기를 보면 '주인공 적대 세력인 미실파'가 주인공 세력이 그렇게 뛰어 넘어야 할 정도로 악독하거나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만일 드라마 초반부터 <천명과 미실의 정치적 대립> 이야기를 좀 부각시켜 가며 극을 진행했다면 상대파인 미실(고현정) 세력에게도 '극복해야 할 악역'으로서의 더 큰 파워를 심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넛-때문이다~'의 <미실-쳔명> 라인은 이걸로 끝인가?

예전에 <장희빈>이라는 사극이 방영될 당시의 일이다. 그 극 안에서 '여성스럽고 가녀린 분위기의 일개 무수리였다가 빈의 자리에까지 오른 최숙빈(박예진)'이 '한 때 중전이었다가 빈의 자리로 강등된 장희빈(김혜수)'에게 내내 당하기만 하다가 같은 '빈'의 위치란 이유로 맞짱 뜨는 장면이 있었는데, 강렬한 적수에게 늘 발리기만 하던 연약한 여자가 갑자기 깡을 발휘하여 상대에게 맞서보는 그런 설정엔 꽤 통쾌한 느낌이 있었다.


<선덕 여왕> 속에서, 가녀린 듯 하지만 이미 미실(고현정)과 맞서보기로 결심했던 천명 공주(박예진)가 미실과 첨예한 정치적 대립으로 맞짱 뜨며 자주 엎치락 뒷치락 하는 모습을 보고싶었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뭄에 콩 나듯 나오던 그런 장면엔 큰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결국 상대파와 제대로 된 대결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병풍처럼 존재하다가 맹독 열연을 보인 채 하차하게 된 천명 공주(박예진)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목석처럼 반응 없는 김유신(엄태웅)은 이제 그만 잊고, 저 세상에서 용수공(박정철)에게 실컷 사랑받기를...


<선덕 여왕> 24회는 천명 공주의 죽음으로 인해 참 슬픈 회였는데, 개인적으로 큰 매력을 느껴왔던 '미실-천명' 라인의 종말이 왔다는 대목에서 더욱 큰 슬픔이 느껴졌던 회였다. 
극 중 미실의 입장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쭉 봐왔던 천명 공주의 부재가 좀 아쉽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 때는 그래두 미실이 비교적 살 만한 때였는데, 수하들이 본의 아니게 잠 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바람에 미실(고현정)은 이제 천명 공주(박예진)보다 몇 십 배는 더 화력이 센 덕만 공주(이요원)를 상대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극 안에서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미실 VS 천명' 라인은 참 아쉽지만, 앞으로 다가올 '선덕파 VS 미실파'의 보다 첨예해진 대립도 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