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볼리오-시릴 니콜라이 |
머큐시오-존 아이젠 (John Eyzen) |
티볼트-톰 로스 |
Benvolio(벤볼리오)-시릴 니콜라이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Romeo et Juliette)> 2001년 공연 실황을 담은 DVD 속에 나오는 오리지널 캐스트의 벤볼리오(그레고리 바케)가 냉냉냉냉~거리는 경쾌발랄 분위기의 벤볼리오였다면, 2007년부터 바뀐 이 시릴 니콜라이의 벤볼리오는 분위기 자체가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성숙하고 학구적인 분위기이다. 하지만 2007년 내한 공연 이후 여러 단계의 공연을 거치면서 쌓아온 연륜이 있어서인지, 이번 2009년 공연에서 그럭저럭 극에 잘 녹아들며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 주었다.
시릴 니콜라이(Cyril Niccolai)도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의 다른 뮤지컬에 출연한 적이 있는 제라르 라인의 배우인데, 제라르가 이 배우를 아주 아끼는지 이번에 이 뮤지컬에서 시릴의 유일한 솔로곡인 'Comment lui dire(어떻게 말하지)'에 새로운 편곡을 가하여 아주 듣기 좋게 바꾸어 놓았다. 원래 이 뮤지컬에서 벤볼리오가 부르는 'Comment lui dire(어떻게 말하지)'는 내가 그다지 좋아하는 곡은 아니었다. 허나 이번 내한 공연에서 시릴의 벤볼리오가 부르는 이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고 이번 'Comment lui dire'가 유독 듣기 좋았는데, 2001년과 2007년 버전에 비해 이 노래 편곡이 조금 바뀌었다.
이 곡 후반부에 시릴-벤볼리오의 후렴부 노래에 이어 'Comment lui dire(코망 뤼 디ㅎ)~, Comment lui dire(코망 뤼 디ㅎ)~' 식의 빽코러스가 들어가고 마지막에 시릴이 허밍음으로 노래할 때 아주 감미로운 선율의 기타 반주가 들어가는데, 이건 2001년 버전과 2007년 버전의 'Comment lui dire(어떻게 말하지)'에는 없던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번에 바뀐 새로운 편곡의 'Comment lui dire' 후반부가 시릴 니콜라이(Cyril Niccolai) 개인이 지닌 음색과 아주 잘 어우러지면서 멋진 분위기를 자아내던데, 시릴이 이 곡을 부른 2007년 음반엔 이 편곡으로 담겨있지 않아서 많이 아쉽다.
이 뮤지컬에서 전반적인 '벤볼리오'의 '이미지'나 '분위기'는 오리지널 캐스트인 그레고리 바케(Gregori Baquet)가 연출해 내는 장난꾸러기 벤볼리오가 좋지만, 'Comment lui dire(어떻게 말하지)'를 소화해 내는 '가창력' 면에선 시릴 니콜라이 쪽이 듣기가 더 좋다. 시릴의 벤볼리오가 이 곡을 부를 때 마지막에 여운을 남기며 길게 잡아빼는 그 허밍음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 이번에 바뀐 편곡에선 시릴의 그 멋진 허밍음에다 그 분위기와 아주 찰떡 궁합인 감미로운 기타 선율까지 어우러지며 'Comment lui dire(어떻게 말하지)' 후반부가 아주 듣기 좋게 바뀌었다. 너무나 멋지게 바뀌어 버린 그 분위기, 그 새로운 편곡의 'Comment lui dire(어떻게 말하지)'가 진작에 기 발매된 이 뮤지컬 음반에도 실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Mercutio(머큐시오)-존 아이젠
이 뮤지컬을 보고 온 관객들은 보통 존 머큐시오가 부르는 '광기(La Folie)' 장면을 인상적인 장면으로 많이들 꼽는데, 이번에 내가 본 존의 '광기(La Folie)' 장면은.. 그냥 그랬다. 오히려 음반으로 들을 땐 그저 그랬던 벤볼리오의 '어떻게 말하지(Comment lui dire)' 쪽이 듣는 즐거움은 훨씬 컸는데, 이 뮤지컬에 나오는 '광기(La Folie)'의 멜로디 라인은 심플한 분위기에,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는 머큐시오 단독송 보다는 좀 더 거창한 분위기의 단체송으로 편곡했으면 더 듣기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같은 뮤지컬이지만, 전반적인 구성 자체를 다르게 해서 무대에 올린 <로미오 & 줄리엣> 헝가리 버전에선 머큐시오가 부르는 '광기(La Folie)'란 곡을 카풀렛가 전체가 부르는 단체송으로 바꿔 부르는데, 그 쪽이 듣는 즐거움은 더 크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뮤지컬에서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이 작곡한 각각의 넘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연을 보러 가서 '해당 곡이 얼마나 잘 살았나..?', '출연 배우에 의해 불리워지는 곡이 얼마나 듣기 좋은가~'를 중점적으로 보게 된다.
이 공연에서 존의 머큐시오가 괜찮게 생각되는 부분은 극 중에서 그와 가장 격정적으로 대립하는 상대 집안 티볼트 앞에서 깐죽거리는 분위기, 서로 자존심을 내세우며 잘난 척하는 그 분위기의 연기가 좋다는 점이다. 2007년 내한 공연 때 왔던 티볼트는 키가 굉장히 커서(그냥 봐도 190cm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분위기~) 존 머큐시오와의 키 차이 때문에 뭔가 좀 언발란스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에 온 오리지널 캐스트 때의 톰 로스-티볼트는 존-머큐시오와 키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일단 배역들 간의 외적인 조화도가 좋았고, 그 둘이 뿜어내는 시너지 효과 또한 대단했다.
존 아이젠(John Eyzen)은 춤사위가 굉장히 좋은 편이고, 이 작품의 남자 출연진 중 나이가 제일 어려서인지 몸놀림 자체가 굉장히 가벼워 보였는데, 무대 위에서의 동작 하나하나가 다 매력적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티볼트와 본격적으로 대치하기 전 1막에서 존의 머큐시오가 톰의 티볼트와 사사건건 부딪히며 자존심을 내세우는 그 장면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다른 배우들이 하면 밋밋한 동작들도 존이 하니까 굉장히 다이나믹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이 뮤지컬에선 배우들도 종종 춤을 출 때가 있지만, 프랑스 뮤지컬에선 춤만 추는 댄서가 따로 존재하기에 연기하는 배우가 춤 추는 씬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존 아이젠(John Eyzen)의 경우, 춤 추는 장면이 많이 들어가는 보다 역동적인 뮤지컬에 출연한다면 본인의 엄청난 끼와 잠재된 재능을 더 많이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귀여운 존(John)의 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그런 작품도 꼭 만날 수 있었으면...
Tybalt(티볼트)-톰 로스 : * 2001' 원년 멤버 *
이번 내한 공연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톰 로스(Tom Ross)의 티볼트를 볼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톰 로스는 2007년 아시아 투어 때 한국엔 오지 않고, 한국 공연 직후의 대만 공연에는 출연했는데, 그 때 한국에 온 티볼트 역의 배우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두 작품의 팬 입장에선 DVD를 통해 오랫동안 봐왔던 오리지널 배우들이 내한하면 반갑다. 그리고, 이번에 내한한 톰 로스는 역시나 '티볼트 하면 내가 원조지~' 하는 분위기로, 대단한 연기 내공의 티볼트를 보여 주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2001년 초연 때 그 아름다운 금발 머리 휘날리며 영 미워할 수만은 없는 티볼트로, 모성 본능 자극하며 한 떨기 꽃으로 빛나 주셨던 톰의 티볼트가 이번엔 휑한 분위기의 반삭 헤어 스타일로 출연~ 그러한 탓에, 공연 보면서 댄서들 무리 속에 섞여있는 티볼트(톰 로스)의 모습을 한 번에 찾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번 내한 공연 때 1막 첫 곡인 '베로나(Verone)' 장면을 감상하던 중 '아 참, 이 장면엔 티볼트도 나오지~?'란 생각에 한참을 찾았으나, 긴 코트 자락 휘날리며 무대 위를 누비던 시릴의 벤볼리오와 존의 머큐시오는 쉽게 눈에 뛰었음에 반해 톰의 티볼트가 당췌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초연 DVD에선 댄서들과 차별화되는 그 긴 금발 머리로 대번에 눈에 띄었으나, 이번 내한 공연에선 가뜩이나 키도 별로 안 크고 덩치가 작은 톰의 티볼트가 머리 짧은 남자 댄서들과 마찬가지로 짧은 헤어 스타일로 출연하니, 도무지 한 눈에 들어오지가 않아서 한동안 나의 눈은 무대 구석구석을 누비며 '톰 찾아 삼 만리~'를 해야 했던 것이었다.(가뜩이나 등치도 작은 양반이, 남자 댄서들과 의상 색깔도 똑같은데다 헤어 스타일까지 차별화 안되게 같이 짧은 머리로 출연하면 어쩌자는 것인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난 예전의 긴 머리 톰 로스(티볼트)가 그리웠고, 그 10여 년 세월 동안 DVD에 출연했을 때의 모습보다 좀 늙은 것 같은 톰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두 그 특유의 목소리만은 그대로여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1막 초반에 카풀렛가 사람들이 부르는 'La demande en mariage(구혼)' 장면에 티볼트의 노래도 잠깐 들어가는데 2007년 윌리앙-티볼트에게선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톰-티볼트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그 음색 특유의 감미로움이 있다. 그걸 라이브로 들으니 얼마나 좋던지-
그리고, 티볼트가 로미오 죽이겠다고 설쳐대는 2막 초반의 'C'est le jour(그 날이 왔다)'는 DVD와 음반을 통해 자주 듣던 곡인데, 외모는 변했어도 특유의 목소리만은 그대로인 톰 로스의 음색으로 그 노랠 들으니 감개무량했다. 굳이 티볼트 씬 뿐만이 아니라, 이 뮤지컬의 원조 티볼트인 톰이 합류하니 존의 머큐시오도 같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는데, <로미오 앤 줄리엣> 2007년 내한 공연 때 비해 이번 2009년 버전의 큰 장점은 이 뮤지컬의 서브 플롯이라고도 할 수 있는 '티볼트-머큐시오' 라인이 확 살아났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 2막 첫 장면에 들어간 영주의 'Le pouvoir(권력)' 장면은 좀 생뚱맞긴 했지만... <로미오 앤 줄리엣> 2009년 공연의 구성은 2007년 버전에 비해 많이 정리된 분위기이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버 2, 넘버 3 배역인 '벤볼리오'와 '머큐시오'의 솔로곡도 각각 1곡 밖에 없는 이 뮤지컬에서 주조연도 아니고 조연 중에 조연에 해당하는 '영주'가 왜 솔로곡을 무려 3곡이나 불러야 되는지는 도저히 이해 안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1막 끝 장면이 로미오 & 줄리엣의 비밀 결혼식 장면(Aimer)'이니 2막 첫 장면은 초연 때처럼 거리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On dit dans la rue(거리의 소문/사람들이 수군대지)' 장면으로 시작하면 되고, 그것이 극의 흐름을 훨씬 매끄럽게 해줄 수 있을텐데, 난데없이 2막 첫 장면에 베론 영주의 'Le pouvoir(권력)'이 왜 들어가는 것인지...?
이 뮤지컬에서 시간이 남아돌면야 베로나를 통치하는 영주의 고뇌도 실감 나게 그려주고, 자신의 개인적 야망을 위해 딸자식을 돈 많은 파리스 백작에게 팔아먹는(?) 줄리엣 아빠의 짠한 마음도 그려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런 형편이 아니지 않은가..? 제라르는 이 뮤지컬에서 조연 배우의 사연 하나하나에 너무 신경쓰다가 가장 중요한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을 더 세밀하게 살려내는 것을 소홀히 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그들의 안타깝고 비극적인 사랑이 살아야 하는데, 이 작품의 작가는 그것을 다소 희석시키는 분위기로 곁가지를 너무 많이 쳤다. 또한, 이 뮤지컬에서 '벤볼리오'는 로미오-줄리엣에 이은 제 3의 배역임에도 극 중에서 벤볼리오가 부르는 곡이나 전반적인 비중이 너무 적은 편이다. 어디 그 뿐인가..? 벤볼리오 다음으로 중요한 배역인 '머큐시오'는 인물 소개에 '로미오와 가장 친한 친구'라고 되어 있는데, 그건 '인물 소개'에만 나와있을 뿐 막상 극 안에선 머큐시오가 어떻게 로미오와 가장 친한 친구인지 전혀 설명이 안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나 곡 자체야 워낙에 훌륭하지만) 2막 초반에 머큐시오가 로미오의 명예를 찾아주기 위해 티볼트를 위협하는 장면이나 티볼트에게 죽임을 당한 머큐시오를 보구서 이성을 잃어버린 로미오가 머큐시오의 복수를 위해 티볼트를 찔러 죽이는 장면이 너무 생뚱맞게 느껴진다는 거다. 로미오와 머큐시오가 그러한 행동을 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라면 극 안에서, 뒷장면의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1막 정도에서 그들의 그 특별한 관계를 (몬테규 3인방의 '우리 우정 영원히'송이 아닌 별개의 장면으로써) 충분한 비중을 두고 설명해 줘야 될 것 아닌가-
극 중 '티볼트'의 비중은 그만하면 괜찮은 것 같은데, 이 뮤지컬은 2001년 초연 때나 2009년으로 넘어온 지금이나 넘버 3, 넘버 4 배역인 '벤볼리오'와 '머큐시오'의 비중이 너무 적은 감이 있다.(<노트르담 드 파리>를 쓴 뤽 플라몽동(Luc Plamondon)같은 경우엔 진짜 중요한 '극의 주인공'이 누군지, 극 전반적으로 살려내야 할 '주제'가 무엇인지, '조연'들의 비중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정확하게 구분해서 극을 구성했다. 비록 '곡' 자체는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이 참여한 <로미오 앤 줄리엣> 쪽이 훨씬 좋지만, '극의 구성'은 전문 작가가 쓴 <노트르담 드 파리> 쪽이 훨씬 탁월하다.)
2009년 공연에서 생뚱맞게 2막 첫 장면으로 들어간 영주의 'Le pouvoir(권력)' 장면처럼 이번에 다시 부활한 줄리엣과 줄리엣 친구인 시인이 함께 부르는 'Le poete(시인)' 장면 역시 극의 흐름과는 크게 상관 없는 사족 장면이긴 마찬가지였다. 2007년에 새로 들어가, 아직까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곡 'A la vie, A la mort(영원히)' 역시 'Les rois du monde(세상의 왕들)'의 부연 설명에 불과한 사족 장면인데, 그런 쓸데없는 사족 장면 넣을 시간에 넘버 3 배역인 '벤볼리오'의 비중을 좀 늘려준다거나 '머큐시오'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거나, 그와 로미오가 서로 목숨도 걸 만큼 돈독한 사이라는 걸 설명하는 데에 장면 할애를 했다면 극의 주제가 더 살아나거나 2막 초반의 장면들이 훨씬 더 개연성 있어졌을 것이다.
이 뮤지컬의 작곡가이자 대본을 구성한 극작가이기도 한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이 (2007년 버전에서 새로이 등장했다가 지금은 삭제된) 쓸데없는 사족 장면인 유모와 카풀렛 경의 'Grosse(뚱뚱해)'나 주인공인 줄리엣 캐릭터를 다소 뻘쭘하게 만들고 극의 주제를 흐려 버리는 카풀렛 경의 딸 바보송 'Avoir une fille(딸이 있다는 건)', 혹은 '베로나(Verone)'를 무려 2번에 걸쳐서 부르고, 거기에다 극의 흐름을 살짝 벗어나는 'Le pouvoir(권력)' 장면을 통해 베로나를 통치하는 영주로서의 고뇌까지 들려주는 (주조연 라인에도 끼지 못하는) 조연들 캐릭터에 신경쓸 시간에 차라리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더 촘촘하게 만드는 장면을 삽입하거나 이 뮤지컬 '서브 플롯' 사건의 핵심 인물에 해당하는 '로미오-머큐시오'의 '관계 구성'에 좀 더 공을 들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완성도 높은 훌륭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