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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 커플, '로미오와 줄리엣'과 다르다!

타라 2011. 10. 1. 23:12
얼마 전, 24부작 K사 수목극(사극) '공주의 남자'에 관련하여 뜬금없는 기사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마치 이 드라마가 대박이라도 친 듯이 기사가 났는데, 보통 극이 끝나갈 때까지 '시청률 20% 초반'대에 머무르는 드라마를 두고 '대박'으로 분류하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다. 그냥 '중박' 정도로 표현하면 모를까..

사실 <공주의 남자>는 (기획 의도나 시놉시스 같은) 사전에 공개된 일부 내용만 읽어 보구서도 수많은 대중들이 큰 기대감을 내비쳤을 만큼 '기획' 자체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드라마였었다. 그런 드라마가, 경쟁작도 그리 세지 않은 상태에서 20% 초반대 시청률에 그쳤던 건 결코 큰 성공이라 볼 수 없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대박??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좋은 예~

참고로, 작년에 방영된 24부작 K사 수목극(사극) <추노>는 평일 드라마였음에도 시청률 35~36%대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대박'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공주의 남자>는 그보다 훨씬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추노>에 훨씬 못미치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그나마 그 정도 성적도 <공주의 남자> 조연진들이 워낙에 빵빵했기에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김종서, 수양대군, 정종 역 배우 등을 비롯하여 최근의 사육신 & 기타 조연들까지...)

출연 분량은 적었으나 나름 선굵은 연기로 '짧지만 강렬한 효과'를 남긴 '정종(이민우)의 최후'가 방영된 뒤로 수목극 <수양 대군>, 아니 <(경혜) 공주의 남자>를 자체 종영해 버렸는데, 다음 주부턴 수양의 애비 '세종 대왕(한석규)'이 나오는 <뿌리 깊은 나무>를 볼 예정이다.

의연한 미소를 남긴 채 '(경혜) 공주의 남자' 종이는 갔습니다~ ㅠ

개인적으로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승유(박시후)와 세령(문채원)의 '로맨스'가 그리 와닿지 않는 느낌이다. 결국 비극으로 끝날 것 같긴 한데, 둘의 '해피 엔딩'을 바라는 시청자들도 많아서 결과적으로 어찌 될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둘의 사랑을 이루기엔 여러 면에서 껄끄럽게 느껴지는 대목이 많다.

애초에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홍보하긴 했으나,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주인공 커플은 범 대중적인 통속극 <로미오와 줄리엣>과 현저하게 다른 점이 있다. 몬테규가의 '로미오'와 카풀렛가의 '줄리엣'은 이뤄질 수도 있는 사이 /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와 수양대군의 딸 '이세령'은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사이 or 이뤄지기엔 너무 어색한 구석이 많은 사이인 것이다.

'부모 죽인 원수'는 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원수 중에서도 급수가 참 높다고 생각한다. 피해 집안 입장에선 찢어 죽이고 말려 죽여도 시원찮은 '철천지 원수'인 셈이다. 수목 드라마 <공주의 남자>란 극 안에서, 세령(문채원)의 아버지인 수양대군(김영철)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여 멀쩡했던 김승유(박시후)의 아버지 김종서(이순재)를 잔인하게 죽여버린 인물이다.

화해하면 너무 이상한 사이 : 아아, 잊으랴~ 어찌 승유 이 날을!
자기 아버지와 형을 이렇게 죽여버린 자의 딸과 '사랑'이라니...


아비가 존재함으로써 이 세상에 태어난 그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잔혹하게 죽인 사람의 딸'과 알콩달콩 로맨스라니..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선 '이 결합 반댈세~'를 외치고 싶어지는 관계이다. 그렇게 따치면 '로미오'와 '줄리엣'도 원수 집안 애들 아니냐고? 허나, 이 둘은 경우가 많이 다르다-

그간 갖가지 영화, 연극, 발레, 드라마, 뮤지컬 소재로 쓰여 온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에선 '막연하게 조상 대부터 로미오네 집안(몬테규 가문)과 줄리엣네 집안이(카풀렛 가문) 원수 or 앙숙 관계'로 설정되었지만, 로미오 부모와 줄리엣 부모가 직접적으로 원한 진 건 없다.

로미오가 가면 쓰고 몰래 참여했던 '카풀렛가 무도회'에서 줄리엣을 짝사랑하는 그녀의 친척 티볼트가 그(몬테규가의 로미오)를 알아보고 난리쳤을 때에도, 줄리엣 아버지인 카풀렛경은 오히려 '비록 원수 몬테규 집안 사람이어도, 로미오는 점젆은 청년이니 괜시리 소란 피우지 마라~'는 식으로 티볼트를 타이른다. 즉.. 애초에 카풀렛경이 점찍어 놓은 사윗감(파리스 백작)이 따로 있고 서로 사이 나쁜 가문이어서 그렇지, 로미오와 줄리엣 아빠가 실질적으로 원한이 있거나 서로를 싫어하는 사이는 아닌 것이다.

화해할 수도 있는 사이 : '로미오 엄마 & 줄리엣 엄마'
(이웃에 사는 우린, 첨부터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히트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 몬테규 부인과 카풀렛 부인이 극 초반부터 '양 가문이 사이가 나쁜 현실을 무척 안타까워 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이러하듯 '로미오 엄마'와 '줄리엣 엄마' 역시 <서로를 직접적으로 미워할 이유는 없는 사이>인 걸로 나온다. 단순히 오래 전부터 두 집안의 사이가 안 좋았고 그게 누적되어 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서로 경계하고 원수처럼 지내왔을 뿐...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극(하나의 개연성 있는 이야기 구조를 지닌 꾸며진 창작물) 속에서 '양 가문의 사이가 나빠지게 된 어떤 계기'가 있다 할지라도, 그건 윗대 조상들의 사정일 뿐 '로미오의 부모'와 '줄리엣의 부모'는 전혀 서로를 원수로 여길 만한 짓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이 극에서의 몬테규가와 카풀렛가는 둘을 이어주려 했던 로렌스 신부의 바람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합이 계기가 되어 양 가문이 화해할 수도 있는 사이'라 할 수 있다.(실제로, 극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두 가문이 화해하기도 하고...)

하지만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김종서 집안과 수양대군 집안은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사이이다. 사람 목숨은 한 번 죽으면 되돌릴 수 없는 건데,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그 아들(김승유의 아버지와 형)을 살해했고 그 가문을 몰락시켰다. 이후, 김승유(박시후)는 집안의 몰락으로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죄없는 자신을 몰락시킨 가해자들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았던 소설 <몬테 크리스토>의 에드몽 단테스나 드라마 <아내의 유혹> 구은재(장서희)의 행동 or 아버지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랫동안 무예를 익히고 신분을 속여 가며 목적 있는 삶을 살아 온 드라마 <일지매> 속 일지매(이준기)의 행동이 상당히 개연성 있다고 생각했고, 비교적 그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쉬웠다.

'아버지 죽인 원수' 하루도 잊은 적 없는 일지매(이준기)

그에 반해, (그것이 아무리 애틋하고 비극적인 사랑이라 할지라도) 죽어서도 끊어질 수 없는 천륜 & 자신의 친 핏줄을 무참히 살해한 '원수 수양 대군의 딸 세령(문채원)'과 사랑 놀음을 하고 있는 김승유(박시후)의 설정은 '안타깝기는 하나, 별로 감정 이입은 안하고 싶은 러브 스토리'에 속한다.

'한 다리가 천 리~'라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먼 조상 아닌) 바로 윗대인 그들의 친부모'끼린 전혀 원한 산 일이 없으니 나중에 양 집안이 화해할 수도 있고 두 남녀가 죽어서라도 사랑을 이룰 수 있지만, 승유와 세령의 경우엔 양 쪽 집안 사람들 다 죽어서도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결합' 아닌가..?

육신이 사라져 혼령이 되어서도, 자기 아버지와 형을 무참히 살해한 원수놈을 두고 '(그 딸과 사랑하게 되었으니) 당신은 이제 내 장인~' 이런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설사 수양 대군이 늙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이미 벌어졌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

우리.. 둘이 같이 도망가서 살아요~ / 그럼, 남자 주인공인 내 '캐릭터' 많이 이상해지는데..?
(우린 '로미오와 줄리엣'과 달라- 걔넨 적어도, 부모끼리 죽고 죽이거나 원한 산 일은 없거든~)

같은 원수 집안이어도 '로미오네와 줄리엣 집안' 정도 선의 원수면 훗날 서로 화해하고 결합도 가능하지만, 김종서네와 수양 대군네는 두 자녀의 결합으로도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사이이다. 그런 이유로, 수목극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승유(박시후)와 세령(문채원)의 사랑 이야기가 살짝 불편하게 느껴진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란 노랫가사가 있듯 <이성 간의 사랑으로 얽힌 두 남녀>는 한 때 미칠듯이 사랑하고 난리쳐도 정작 시간 흐르고 헤어지면 잊혀지고 아무 사이 아닌 '남' 되게 마련이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륜>으로 맺어진 관계로, 절대 인위적으로 뗄 수 있는 인연이 아니다.

(세상의 반이 여자이건만) 하고 많은 여자들 중 하필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잔인하게 죽여버린 사람의 딸'과 사랑에 빠진 승유(박시후), 남자 하나에 미쳐 가지고 자신의 '친핏줄인 아버지'와 인연도 끊겠다 그러고 '자신의 온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일'에 동참하겠단 자세를 보이는 세령(문채원), 그들의 사랑.. 저러한 이유로,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을 뿐더러 감정 이입하기 좀 껄끄럽다.

'나쁜 놈'의 첫번 째 법칙 : 남은 괴롭혀도, 내 사람들한텐 잘한다~
내, 딸인 너를 우쭈쭈~하며 키웠거늘.. /
신체발부 수지부모 따위!

예전에, 우리 주변에 있는 실존 인물들의 사연을 다룬 TV 프로를 통해 그런 내용을 본 기억이 있다. 노모를 괴롭히는 '개망나니 나쁜 아들'이 이웃 사람들에 의해 발각되었는데, 괴롭힘을 당하던 노모는 그래두 자기 '아들'이라고 그가 처벌 받길 원하지 않는다며 패륜 아들을 감싸는 것이었다. 별로 합리적이진 않지만, 그것이 <부모-자식 관계>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나쁜 부모도, 아무리 나쁜 자식도, 다른 사람은 다 손가락질하고 욕해도 친핏줄인 부모와 자식끼린 그런 상대방을 측은하게 여기며 감쌀 수밖에 없는...

같은 '가족'이고 '핏줄'이고 '부모-자식'지간이건만.. 남들이 다 욕하는 그 나쁜 아비(김영철)에게 친딸인 자신도 같이 척을 지며 사랑(남자)에 미쳐 돌아 다니는 드라마 <공주의 남자> 속 딸 세령(문채원)은 그리 되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사랑은 <내리 사랑(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표현)>이란 말이 맞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