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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꽃보다 조연?

타라 2011. 7. 15. 18:55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어떤 극에서든 이야기 중심은 '메인 주인공'에게 있고 '서브 주인공'이나 '조연'들은 그를 빛나게 해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언젠가부턴 그런 류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조연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심지어는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카메오나 단연 배우들이 주인공 보다 더 큰 강렬함을 선사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것이다.

예를 들어 작년 드라마 <추노>에 나왔던 조연 캐릭터 천지호(성동일)는 주연급 배우들 못지 않은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했으며, 재작년에 방영된 수목극 <아이리스>에서의 서브 여주인공 김선화(김소연)는 메인 여주인공이었던 최승희(김태희)보다 훨씬 임팩트 큰 연기로 대중들의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한동안 활동이 지지부진했던 김소연은 그 드라마 출연 이후 메인 주인공급으로 다시 올라서기도 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요즘엔 극 안에서 '주연' 포지션인가 '조연' 포지션인가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분량에 관계 없이 특정한 이야기물 안에서 형상화된 <캐릭터>가 매력 있나 없나가 훨씬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아울러 그 캐릭터를 소화해야 할 배우의 <연기력>도 중요하다.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 새 수목극 '공주의 남자' 주인공(승유, 세령)

향후에 방영될 예정인 국내 드라마들 중에선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수목극 <공주의 남자>가 가장 기대되는 느낌인데, 원래 '사극'이나 '시대물'을 좋아하는 데다가 조선 시대 '실존 인물'을 극의 주요 캐릭터로 설정한 이 극의 여러 요소들이 큰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홍보하기론 이 드라마를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널리 알리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음악'적인 요소가 좋은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인해 그 작품 자체를 꾸준히 좋아하고 있긴 하지만 그 안에서 선호하는 캐릭터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주인공이 아니라 '티볼트'나 '머큐시오' 같은 조연 캐릭터였다.

곧 선보이게 될 '조선 시대판 로미오와 줄리엣' 설정의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도, 미리 접한 예고편이나 하이라이트 영상을 통해 더 끌리는 캐릭터는 주인공 로미오(승유)나 줄리엣(세령)이 아닌 조연 or 서브 여주인공 캐릭터이다. 본격적으로 뚜껑 열린 게 아니기 때문에 아직까지 확신할 순 없지만, 이런 저런 요소를 종합해 봤을 때 메인 주인공이 아닌 '경혜 공주' 캐릭터가 상당히 매력 있게 느껴진다.

'캐릭터' 자체의 매력 뿐 아니라 배우의 '연기력' 면에서도 조선판 줄리엣인 '세령' 역의 문채원 보다는 그동안 사극에서 작은 역으로 꾸준히 내공을 쌓아 온 '경혜 공주' 역의 홍수현 쪽이 훨씬 안정적이다. 아직 몇 장면 소개되지 않았지만, 그 몇 장면에서조차 살짝 국어책 대사를 치고 있는 어설픈 연기의 문채원 보다는 홍수현의 연기가 훨씬 급수가 높아 보이는 것이다.

새 수목극 <공주의 남자> 속 '경혜 공주'


새 수목극 <공주의 남자>에서 홍수현이 연기하게 될 '경혜 공주(敬惠公主)'는 조선 시대 실존 인물로, 실제의 그 삶 자체가 꽤 파란만장했던 인물이다. 조선의 4대 임금인 세종 대왕이 슬하에 자녀를 꽤 많이 두었으며, 그 중 5대 임금인 '문종'과 '수양 대군(=세조)'은 세종의 아들들이다.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이 '경혜 공주'는 문종 임금의 장녀이며, 문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단종'은 경혜 공주의 남동생이다.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른 경혜 공주의 동생 '단종'은 즉위한 지 3년 만에 폐위되면서 숙부인 '수양 대군'에 의해 왕좌를 빼앗긴다. 조선 최초의 반정이라는 이 '세조 반정'에서 한명회, 신숙주 등이 단종파에 있던 신하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수양 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게 되는데,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선 야사에 수양 대군 딸과의 로맨스가 있었다는 '김종서의 손자'를 '김종서의 아들'로 설정하여, 그가 수양 대군(=세조)의 딸 세령과 '로미오와 줄리엣'식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세조 반정' 때 수양 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게 되니, 극 중 김종서 아들인 승유와 수양 대군 딸 세령은 '원수 집안의 아들과 딸'인 셈이다. 여기에 세령(문채원)을 연모하는 신숙주 아들 신면(송종호)이 승유와 삼각 관계를 이루게 되고, 승유(박시후)라는 남자를 두고 세령과 경혜 공주가 또 삼각 관계를 이루는 모양이다. 그런 경혜 공주(홍수현)를 사랑하는 남편 정종(이민우)이 등장하지만, 그는 결국 단종의 편에 서다가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모양이다.(여기서의 '정종'은 조선 2대 왕인 그 '정종'이 아님)

새 수목극 <공주의 남자> 속 정종(문종의 사위) & 경혜 공주


조선 5대 임금 '문종'의 장녀인 '경혜 공주'는 원래 왕의 딸, 즉 '공주' 신분이었고 참판 정충경의 아들인 정종은 '공주의 남편(부마)'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경혜 공주 아우인 '단종'이 폐위되고 숙부 '수양 대군'이 반란을 통해 왕이 된 뒤 정종(경혜 공주의 남편)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결국 사약 받아 죽게 되고, 그 후 정종 사이에서 난 아들과 함께 남게 된 경혜 공주는 재산을 몰수당한 뒤 '공주관비(천민)'의 신분으로 전락하는 비운을 겪게 된다. 비록 남편 정종의 <단종 복위 운동>으로 세조에 의해 천민 신분으로 떨어졌지만, 경혜 공주는 순천 관비 시절에도 왕족의 꼿꼿함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엔 '세조(수양 대군)'가 '경혜 공주'에게 다시 재산과 노비를 하사하고 그녀의 아들도 작은 벼슬에 올랐다는 걸 보면, 그래두 조카라고 세조가 경혜 공주를 영 홀대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단종 복위'의 움직임이 일자 단호하게 '친형의 아들이자 조카인 단종'을 죽여버린 그였으나, 그랬던 세조가 즉위 기간 내내 그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하니 영 비정한 사이코패스 유형의 인간은 아닌 것 같기도... 그놈의 '왕좌에 대한 욕심'이 그로 하여금 '패륜 행위'를 저지르게 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 그동안 '왕'을 주요 인물로 한 사극은 많았으나, 서양 동화에 단골로 나왔던 '공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극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공주'를 주요 인물로 하여 다음 주에 방영될 <공주의 남자>에서 그 주인공 '공주'는 비록 세조 임금(=수양 대군)의 딸인 세령 공주(문채원)이고 그녀가 원수 집안 남자인 승유(박시후)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 주된 내용이지만, 또 다른 임금(문종)의 딸이자 '왕족~천민'의 신분을 두루 겪은 파란만장한 삶의 실존 인물 경혜 공주(홍수현) 이야기도 무척 기대된다.

'주인공' 보다 '조연' 캐릭터가 더 빛난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개인적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는 이제 너무 식상하여, 직접 공연도 보고 비교적 최근까지 공연 실황 DVD도 종종 감상하고 있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를 통해 정작 '비극적인 로맨스'를 보여주는 진부한 사연의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 캐릭터에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 채 오히려 '조연' 캐릭터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국내 드라마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수 있는 신작 사극 <공주의 남자>에서도 왠지 그럴 조짐이 보인다.

물론 '주인공'이니까 주연 캐릭터에게 많은 공을 들이겠지만, 그럼에도 모든 장르의 극에서 '주연 못지 않은 조연' or '주인공을 뛰어넘는 조연 캐릭터'는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기에 '예고편'에서 이미 조연급 배우들이 더 돋보이는 <공주의 남자> 역시 그 흐름을 탈 가능성이 크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여러 면에서 '이제는 일반 대중들에게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는 로미오 & 줄리엣' 캐릭터를 연기하게 될 이 극의 주연 배우들(박시후, 문채원)이 조연 캐릭터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많이 분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