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방영했던 <젊은이의 양지>라는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 차희(하희라)의 동생 역으로 나온 종희(전도연)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마 난 이 시를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극 중에서 작가 지망생 '종희' 역을 맡은 전도연은 저 시를 약간 '혀 짧은 듯한, 맹맹거리는 목소리'로 읊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희가 김수영 시인의 '풀'..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그 시를 읊는 대목이 참 인상적으로 느껴졌었다.

(..전략/중략..)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젊은이의 양지> 방영 당시, 이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하던 내 지인은 그나마 그 드라마 속 캐릭터 중 '종희 캐릭터'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었다. 극 중 종희는 '너무 물러터져서 제 실속 못 차리는 언니 차희(하희라)'와는 다르게 '자기 인생 자기가 찬찬히 잘 개척해 나가는 야무지고 다부진 캐릭터'였는데, 결국 소설가로 성공하고 신인 영화 감독인 석주(배용준)와 함께 자기 언니 얘기를 쓴 소설 <광부의 딸>을 영화로 만들기로 한다.

조소혜 작가가 쓴 <젊은이의 양지>는 드라마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똑같은 수미상관 구조를 취하고 있다. 서울대에 합격한 인범(이종원)이 학교 운동장에서 합격자 명단을 보는 장면이 1부 초반에 나왔었고, 드라마 마지막 대목에서도 역시 그 장면이 펼쳐진다. 종희(전도연)가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 감독 석주(배용준)가 첫 장면을 찍는데, 그 첫 장면이 바로 <광부의 딸> 남자 주인공이 서울대에서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는 장면- 차희와도, 석란과도 헤어지고 고향으로 내려갔던 인범(이종원)이 서울에 올라와 석주가 그 장면을 영화로 찍는 모습을 일각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아마 그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다면...

1995년에 방영된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것들이 참 많은데, 드라마 타이틀 화면으로 쓰였던 마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과 차희(하희라)의 테마로 나왔던 시크릿 가든의 곡 'Song from a secret garden'과 풋풋한 여고생 종희(전도연)와 석주(배용준)의 스쳐가는 첫 만남 씬에서 나왔던 걸로 기억되는 팝송 The Cranberries의 'Ode to my family', 그리고.. 작가 지망생인 여고생 종희, 전도연이 읊었던 김수영의 시 '풀'이 떠오른다. 오늘따라 특히- 날이.. 참 흐리다...


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