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엘리자베트' 2막 첫 장면은 이 작품 작사가인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의 '화자=루케니'의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화자로 나온 '그랭구아르'가 그 작품의 작사가 뤽 플라몽동(Luc Plamondon)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변해 준 캐릭터였다면,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베트>에선 '루케니'가 그런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다.

19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가의 황후였던 실존 인물 '엘리자베트(프란츠 요제프 1세의 아내)'는 실질적으로 그럴듯한 업적을 쌓은 위인이 아님에도, 오스트리아 내에선 꽤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다. 그녀가 죽은 지 꽤 오래 지난 지금도 엘리자베트의 동상, 그녀의 이름을 딴 건물, 생활 소품, 악세사리, 그림, 기념품, 관광 상품 등이 오스트리아 군데군데 포진되어 있을 정도로...


그래서 쿤체의 뮤지컬 <엘리자베트
(Elisabeth)> 2막 첫 장면에서 화자 루케니(Serkan Kaya)가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키치(Kitsch)'라는 넘버가 등장하는 장면인데, 이 'Kitsch'는 영어 제목으로 해도 똑같이 'Kitsch'란 단어를 사용한다. 헌데.. 뮤지컬 <엘리자베트> 안에 나오는 'Kitsch'의 사전적인 의미를 알아보면 '인기는 있지만, 질 낮은 예술품'이라 소개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어쩐지, '실존 인물 엘리자벳 황후'에 대한 작사가 쿤체씨의 <비판 의식>이 엿보이는 듯하다. '당시 백성들의 삶을 위해 별로 기여한 것도 없고, 사생활 면에서도 자기 가족을 전혀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 역마살 낀 이기적인 황후' 따위가 뭐라고 작금의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그런 엘리자베트를 찬양하면서 그녀 관련 물품들이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관광 상품이 되었는지 한심(?)하다. 그래봤자, 그 엘리자벳 기념품들은 <질 낮은 예술품>에 불과한 것이 아니던가- 식으로.. 이 뮤지컬 2막 첫 장면인 'Kitsch'는 이런 류의 비판 의식 깔려있는 듯한 장면 같다.

기념품 판매상으로 변신한 루케니(당시 엘리자베트 암살자였던 아나키스트)가 객석으로 나가 실존 인물 엘리자벳 관련 상품들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그러면서 엘리자베트(Elisabeth)와 그녀에게 열광하는 이들을 살짝 비꼬는 멘트를 한다. '엘리자베트가 역사 속에서 한 게 뭐가 있다고 대중들은 그녀에게 그렇게 열광하나요..? 진실 따위, 참 우습죠잉~' 뭐 이런 뉘앙스다.

극작가를 대신하여 '후대인들이 칭송할 정도로 훌륭한 업적은 결코 남긴 적 없는 엘리자베트'에 대해 이 뮤지컬 화자 루케니는 "사실은 말이죠.. 시씨(엘리자베트) 황후는 자신의 해방에만 온 관심이 쏠려있는 지독한 이기주의자였어요~ 시어머니께 힘 자랑할려고 자기 아이를 두고 딜을 하긴 했는데, 그 힘 자랑에서 승리하고 나선 결국 애를 무관심 속에 방치해 두었지요~ 충분히 백성들의 삶을 위해 좋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그리 하지 않고, 자기 개인적 이득 위해서만 산 여자인데.. 이래도 그녀가 좋나요~?" 식으로, 온 나라(오스트리아 제국)의 불쌍한 백성들이 힘들게 살던 그 시기에 세금을 축내가며 해외 여행만 다녔던 당대 최고의 잉여 인간 '엘리자벳 황후'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2막 두 번째 장면에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하고 프란츠 요제프 황제(Andre Bauer)와 엘리자베트(Maya Hakvoort)가 헝가리의 왕과 왕비로 즉위하는 대관식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것은 두 국가가 각각 독립된 정치를 행하되, 오스트리아 '황제'가 헝가리 '왕'도 겸하는 연합 제국인 셈이다.

마누라 덕후인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배려로 '시어머니(조피 대공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식들에 대한 양육권을 되찾아 오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 제국의 왕비로서 대관식을 치른 엘리자베트(씨씨 황후)'는 자신의 승리에 취해 의기양양해 하고, 그런 그녀 앞에 또 다시 죽음(Tod)이 나타난다.

그리고 엘리자베트와 죽음이 '내가 춤추길 원할 때'를 함께 부르는데, 이 곡은 뮤지컬 <엘리자베트> 초연(1992년) 버전엔 없었다가 2000년대 공연 이후로 추가되어 들어간 노래이다.


엘리자베트(Maya Hakvoort)는 자신이 '애처가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 황제'를 협박해서 얻어낸 결과물에 대해 '난 드디어 적들(?)을 물리쳤다. 이 얼마나 위대한 승리인가?' 하면서 자뻑하고, 이에 죽음(Mate Kamaras)은 그녀의 말에 살짝 동조해 주면서도 '그치만 결국 네가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려면 내가 필요할 거야~' 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한다.

이제 겨우 시어머니 조피를 무력화시키고, 황실 내에서 황후로서의 힘이 세진 엘리자베트는 '난 혼자서도 잘 헤쳐나갈 수 있어. 이젠 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죽음 네가 필요없다~'고 주장하지만, 죽음은 '허나, 넌 곧 그 삶을 끔찍하게 여기게 될 거야. 넌 결국 내게로 오게 되어 있는 걸..!' 하며 맞선다.(여기서 엘리자벳이 '죽음'에게로 오게 된다는 말은 그녀가 결국 이승에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삶'을 살아갈수록 '죽음의 세계'를 갈구하게 된다는.. 알고 보면 약간 무섭고 암울한 내용이다.)


'내가 춤추길 원할 때(
Wenn ich tanzen will)' 장면을 통해 '드디어 시어머니 조피(Else Ludwig)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되어 승리감에 취한 엘리자베트'와 '끊임없이 그녀의 곁을 맴돌며 유혹하던 죽음' 둘이서 첨예하게 맞짱 뜨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은 결국 '죽음(Tod/토트)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다. 계속 그를 거부하던 엘리자베트가 마지막엔 죽음의 품에 안겨 진정한 안식 얻게 되니 말이다..

살아있을 땐 느껴보지 못했던 진정한 안식과 자유를 죽고 나서야 제대로 느끼게 되다니.. 이 엘리자베트(씨씨) 황후 이야기를 접할 때면 종종 영화 제목 <죽어야 사는 여자>가 떠오르곤 한다..



어느새 엘리자베트의 외아들(셋째)루돌프 황태자는 갓난쟁이를 벗어나 어린이가 되었고, 엄마가 그립지만 그녀는 늘 바쁘고 자신을 잘 만나주지 않아서 외롭다는 노래를 부른다.

군인으로 성장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무척 보수적인 황제로, 자신의 '어머니'인 조피와 '부인'인 엘리자베트한테나 약하지 '아들' 루돌프에게 그리 다정다감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엘리자베트 황후 역시, 일전에 '조피 대공비가 고용한 루돌프 황태자의 훈련 교관을 덜 빡센 사람으로 바꿔준 일' 외에는 아들 루돌프한테 별로 해준 것 없이 그 이후론 쭉 자기 삶만 챙기던 이기적인 엄마였다. 한마디로, 이 황제 부부의 외아들인 루돌프는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자란 불쌍한 황태자..?

 


그리하여, 타고나기를 예민하고
유약한 성정의 이 어린이 루돌프는 밤마다 두려움에 떨며 따뜻한 '부모 사랑'에 목말라 하는데.. 엘리자벳 부부가 애를 잘 돌보지 않는 틈을 타서 죽음(Tod)이 또 슬금슬금 그 꼬맹이 루돌프에게 다가와서 "난 네 친구야. 네가 필요할 땐 언제든지 네 곁에 있을거야~" 하며 그를 꼬득인다.

꼬맹이 시절의 루돌프(Johann Ebert)는 자신이 무척 외로워할 때 잘생긴 죽음 아저씨(Mate Kamaras)가 다가와서 다정다감하게 위로해 주니 당연히 마음이 혹하고.. 이 뮤지컬 안에서 삽질 대마왕인 '죽음'은 엘리자베트를 어떻게 하는 게 제뜻대로 안되니 그 어린 아들(루돌프)에게 접근하여 친분 쌓아놓은 뒤, 나중에 루돌프 황태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를 잡아 먹는다. ;;

이 뮤지컬에서 '옴므파탈 & 나쁜 남자' 캐릭터인 죽음(토드)이 엘리자벳 황후의 큰 딸도 죽음의 세계로 데려가고 외아들마저 추동질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그건 이 극 안에서 '죽음'이란 추상 명사'를 <의인화 한 캐릭터>로 등장시키다 보니 그런 내용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고, 실제론 그들의 정해진 수명이 거기까지여서 한 명은 병 들어 죽고 또 한 명은 이런저런 일로 괴로워 하다가 자결한 것이다. 엘리자벳 황후 역시, 되어서 암살 당한 것이고...

그것을 '죽음'이란 무형의 존재와 연결시켜서 극을 진행하는 건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베트(Elisabeth)>의 큰 특징이자 장점인데, 출연 배우와 연출자가 그 내용을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에 따라서 '걸작졸작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테 카마라스(Mate Kamaras)가 표현한 '죽음' 캐릭터는 이 뮤지컬 초연 배우인 우베 크뢰거(Uwe Kroger)가 연기한 '죽음'에 비해 카리스마도 많이 딸리고 캐릭터 해석도 별로 맘에 들지 않는데, 그럼에도 이 버전을 소개하는 건 그 쪽 국가에서 유일하게 DVD로 나온 판본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정식 발매된 DVD(공연 실황) 버전이란 <기준>이 있어야, 같은 작품 안에서 다른 판본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해 볼 수 있기에 말이다.
 


평소에 아들에게 무관심한 엄마였던 엘리자베트(Elisabeth) 황후는 루돌프 황태자가 죽고 나서야 땅을 치며 후회하고, 심히 슬퍼하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그러게, 어렸을 때부터 그 아들에게 좀 살갑게 대해주고 잘해줬으면 좀 좋아~?'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녀이다.

부모(황제 부부)가 자기 자식한테 무관심하니까 이상한 유괴범 아저씨(죽음)도 꼬이고, 의지할 데 없는 애(루돌프)는 자기 가족 대신 그 낯선 아저씨한테 의지하는 시추에이션이라니..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베트> 2막을 보고 나면 이런 류의 교훈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절대적인 관심사랑이 필요하다. 부모들은 제발..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있을 때 잘하자~" 라는...

To be continued.. 

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