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 '피라모스와 티스베'

타라 2011. 3. 18. 08:52
얼마 전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관련하여 이런 류의 리뷰를 접할 수 있었고,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줄리엣이 죽은 것처럼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 다음 상황의 로미오 행동을 보며) 그렇다고, 당장 죽어버리는 건 또 뭐냐..? 이 성질 급한 로미오 같으니라고~'와 같은 감상 말이다..

사실, 이 극에서 주인공들과 관련한 '결정적인 비극'은 맨 마지막에 일어난다. 로렌스 신부님과 모의한 줄리엣은 진짜 죽은 게 아니고, 그저 몇 십 시간 동안의 '가사 상태'에 빠진 것 뿐이다. 로미오가 도착했을 당시의 줄리엣은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는데, 그 잠깐 동안을 못 참고 로미오가 자결했기에 그 둘은 서로 엇갈린 채 '모두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된 것이다.

한 편으론 '죽음으로써 사랑을 이뤘다'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두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람 목숨'을 경시하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아직 창창한 나이의 젊은이들이 '사랑'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 건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다.(몬테규 가문의 아들 로미오와 카풀렛 가문의 딸 줄리엣은 알고 보면 '천하의 불효 자식'들~)

엉뚱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줄리엣 / 레오나르 위팅 & 올리비아 핫세 버전

로미오가 너무 빨리 죽어 버리는 바람에, 신부님과 줄리엣의 계획이 틀어짐~

만일 이 이야기에서 '로미오'가 조금만 '행동이 굼뜨는 스타일'이라던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신중한 아이'였다면 줄리엣이 깨어나는 타이밍과 엇갈리지 않은 채 신부님의 '가짜 약물 & 양가 화해 프로젝트'가 나름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죽어버렸으니 그걸로 끝이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결말 부분을 곰곰 생각해 보니, 살아 남아서 '신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자기 때문에 그 애들이 죽었다고 자책하면서 삶을 이어갈 로렌스 신부' 캐릭터가 되게 불쌍하게 느껴진다.

<그리스 신화>에도 <로미오와 줄리엣> 경우처럼 '상대방이 죽었다고 착각해서 자신도 따라 죽는 인물'이 등장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게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나온 <로미오와 줄리엣> 결말 부분의 원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신화에는 '피라모스(Pyramus)'와 '티스베(Thisbe)'라는 남녀가 나오는데, 나중에 <그리스 신화>에 꼽사리 끼긴 했으나 원래는 <바빌로니아 설화>라고 한다.

에드워드 번 존스(Edward Burne Jones)의 그림 '피라모스와 티스베'


옛날 옛날.. 바빌로니아의 한 마을에 '피라모스'라는 잘생긴 청년과 '티스베'라는 아릿따운 처자가 이웃집에 살고 있었다. 서로 사랑에 빠진 둘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지만, 집안끼리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양가 부모들은 심하게 반대를 했다. 사랑에 눈이 먼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결국 가족들 몰래 가출하기로 결심했고, 어느 밤 '마을 근처의 한 왕릉 아래 있는 나무'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베일로 얼굴을 가린 티스베(Thisbe)는 피라모스보다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 앞에 '이미 다른 곳에서 사냥을 하고 와 입에 를 묻히고 있던 사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티스베가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사이 몸에 걸친 '베일'이 떨어졌고, 사자는 그 베일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가 버렸다. 나중에 약속 장소에 도착한 피라모스(Pyramus)는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과 '찢어진 티스베의 베일'만 보구선 그녀가 맹수에게 물려 죽은 것으로 오인했고, 늦게 도착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크게 슬퍼했다.

그렇게 '티스베가 죽은 건 다 나 때문이다!' 자책하던 피라모스는 한 술 더 떠서 '그녀 없는 세상 따위~ 나도 따라 죽으리..' 하면서 지니고 있던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피라모스, 이 성질 급한 남자 같으니라고~ 그녀의 시신을 본인이 직접 확인한 것도 아닌데, 제대로 '진상 조사'도 안 해보고 따라 죽는다고 난리 친 피라모스가 너무 경솔했다는 생각이다..)

니콜라스 푸생(Nicolas Poussin)의 그림 '피라모스와 티스베'


그 후 '이젠 사자가 갔겠지~' 하면서 숲 속 은신처에서 나온 티스베는 싸늘해진 피라모스의 모습을 보고 오열하면서 괴로워 했고, 그의 손에 들려진 '갈가리 찢겨져 (사자가 묻히고 온) 피가 묻어 있는 자신의 베일'을 보구서 피라모스가 자기가 죽은 줄 착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또 그녀대로, 급한 마음에 베일을 떨어뜨린 자신의 행동에 자책하며 피라모스의 칼로 따라 죽게 된다..

그러니까 원래는 죽을 필요 없었는데, 셰익스피어 히트작에 나오는 '로미오(Romeo)'도 그렇고 신화 속 인물인 '피라모스(Pyramus)'도 그렇고 '상대방이 진짜 죽었다고 착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 류의 비극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상황이 공교롭게 돌아가서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모든 전후 사실을 알고 있는 독자 입장에선 굉장히 안타깝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죽음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사랑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이런 류의 로맨스를 두고 '위대한 사랑'이다 뭐다 하면서 칭송하지만, 개인적으로 '졸지에 사랑하는 자식을 잃게 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부모 &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부모'를 생각하니 그런 류의 사랑이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들은 남자 쪽의 '성급함'과 '오해'로 인해 둘 다 죽음을 맞게 되지 않았는가-

피에르 미냐르(Pierre Mignard)의 그림 '피라모스와 티스베'


특히, 로미오의 경우엔 '사랑'도 속전속결이고 '죽음'도 속전속결이다. ;; 머큐시오가 죽고 난 뒤, 티볼트를 찔러 죽일 때에도 '결혼까지 한 줄리엣' 생각은 조금도 안하고 얼마나 성급하게 덤벼 들었는지.. 사색적이고 정적인 청년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면 '로미오'가 은근 성질 급한 남자 같다.

남의 목숨이든, 자기 목숨이든 기본적으로 '생명'은 소중한 것이며,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그 '소중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애 낳을 때 너무나 큰 고생을 한다. 그런 생목숨을 끊을 때엔 최대한 신중하고 주저함이 많아야 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에 나오는 '로미오'나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에 나오는 '피라모스'는 자기 생명을 포기하는 결정을 너무나 급하게 내렸기에 결과적으로 '사랑하는 연인(상대 여성)의 진짜 죽음'까지 초래하게 된 게 아닐까 한다.

그러한 이유로, 때때로 '사랑에 목숨 건 피라모스와 티스베, 로미오와 줄리엣'..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은 위대하다~'의 메시지 보다는 '너무 성질 급한 남자 or 사실 관계를 제대로, 신중하게 파악하지 않은 채 너무 단호한 행동을 보이는 경솔한 남자를 조심하라~' 류의 교훈이 더 와닿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