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남사당패 최초의 여성 리더 된 조선의 스타 : 바우덕이

타라 2010. 10. 22. 23:37
바우덕이(1848~1870)는 우리 나라에선 최초로 남사당패 '여성' 우두머리가 된 천재 예인이자, 당대 최고의 인기인이었다. 그녀는 1848년 한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암덕(金巖德)-


6세 때부터 안성 남사당패에 들어가 무동, 줄타기, 풍물 등 남사동 놀이를 익히게 된 바우덕이는 뛰어난 미모와 실력으로 매 공연 때마다 구경꾼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렇게 재능을 인정 받던 바우덕이는 15세 되던 해에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다수결로 정해지는 대장 선출에서 몰표를 받아 '꼭두쇠(남사당패 단원들을 이끌어 가는 최고 우두머리)'로 선출되었다. 


silhouette by hojusaram


남사당패는 여러 곳을 다니며 춤과 노래, 줄타기 등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그 시대의 연예인 집단이었다.(남사당패 공연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끈 <왕의 남자> 같은 영화에도 나온다.) 대체로 40~50명 정도로 구성이 되는데, 그런 규모의 집단에 '15세의 어린 나이'와 '여자의 몸'으로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었다니 바우덕이의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처녀 대장 바우덕이가 이끈 남사당패는 전국적으로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며, 1865년엔 궁에까지 불려가 공연을 열게 되었다.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노역자를 위해 준비한 놀이 마당에서 그들은 좋은 공연을 보여주었고, 그것에 탄복한 대원군과 고종 임금은 천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바우덕이와 그 무리들에게 정 3품 이상의 벼슬아치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옥관자를 하사했다. 당시로선 굉장히 큰 이슈가 될 만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더더욱 유명해진 안성 남사당패는 '바우덕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조선 팔도에서 크게 이름을 날렸다. 요즘의 웬만한 아이돌 스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바우덕이가 이끄는 무리들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바우덕이가 리더인 그 그룹이 전국적으로 엄청난 팬덤을 형성한 것이다..)



그렇게 바우덕이는 전국 각지를 돌면서 남사당패 놀이를 대중적인 공연으로 발전시키는데 공헌했지만,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게 된다. 스물 한 살 때 폐병에 걸린 그녀는 다른 단원들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청룡사에 머무르며 한 단원의 보살핌을 받았으나, 1870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그녀는 갔지만, 아직까지도 그녀를 기리는 '바우덕이 축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 요즘에야 조선 시대 때 비해 각각의 직업에 대한 위상도 달라지고 사람들 인식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 시대의 남사당패와 바우덕이는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던 천민 신분이었다. 그렇게 천한 신분의 바우덕이가 한 나라의 임금까지 감탄하여 자발적으로 큰 벼슬을 내릴 정도면 그 기량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평소에 잘 접할 일은 없지만, 학교 다닐 때 풍물패의 공연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 그 때 말도 못하게 신명나고 '굉장하다~'란 느낌을 받았더랬다. 너무 감탄스러워서 입이 떡 벌어졌던... 19세기 때 조선의 임금이 감탄한 바우덕이와 남사당패의 공연도 아마 그런 느낌(혹은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공연을 가는 곳마다 '남사당패가 왔다~'가 아닌 '바우덕이가 왔다~'란 말을 들을 정도로 19세기 조선에서 그녀의 존재는 참 각별했는데, 15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 최초의 '여자 꼭두쇠(우두머리)'가 되었으며 당대 민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렸던 바우덕이는 우리 나라의 원조 아이돌 스타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