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에서 2012.05.14 23:27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는 1862년 오스트리아 수도인 비엔나 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8세 때 양친을 따라 비엔나로 이주한 뒤 '동판 조각사'가 되었지만 벌이가 시원찮았으며, 클림트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의 부모는 장남인 클림트를 짐나지움(우리 식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시키지 못하고 졸업 후 공장 노동자나 장인의 직업에 종사하게 되는 뷔르거 슐레(실업계 직업 교육 학교)에 입학시켰다.

Gustav Klimt(1862
~1918)

하지만 평소 클림트의 데생 솜씨를 눈여겨 본 친척의 도움으로, 1876년 비엔나 장식 미술 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인 '미술 교육'을 받게 된 그는 이곳에서 당대 저명한 화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형 클림트의 뒤를 이어 미술계로 입문한 동생 에른스트 & 당시 함께 주목을 받았던 프란츠 마츠와 함께 '동인'을 결성한 클림트는 체코 칼스바트 온천장의 천장화, 교회 창문 디자인, 국립 극장의 천장화 제작 같은 일을 겸하며 학비를 조달하였다.(자수성가형 예술가 클림트~)


비엔나 장식 미술 학교를 졸업할 무렵, 클림트는 이미 화가로서 그 나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동생 에른스트, 프란츠 마츠와 함께 쿤스틀러 콩파니를 설립한 클림트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으며 이 때부터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의 계단 장식, 부쿠레슈티 국립 극장 장식, 피우메의 리예카 국립 극장 장식 등을 도맡아 하며 실력을 쌓아 나갔다.

그리고, 1890년에는 비엔나 구 국립 극장의 실내 장식 장업으로 그 해 처음으로 시행된 '황제 대상'에서의 수상자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클림트는 '예술가'로서 나름대로 유명해졌지만 예술적 동지였던 동생 에른스트와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뒤 남은 가족을 책임져야만 했고,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의 작품 속에 간간히 드러나는 '삶과 죽음' 이미지에 대한 고뇌와 활용은 그러한 영향이 컸을지 모른다.

빈에서의 '아르 누보(Art Nouveau) 운동'에 있어 가장 빼어난 미술가 중 한 명이었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97년엔 아르 누보 계열 특유의 장식을 선호하며 전통 미술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화가 단체 '빈 분리파'를 결성하여, 반 아카데미즘 운동을 벌였다. 또한, 1906년에는 '오스트리아 화가 연맹'을 결성하여 다양한 전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 아르 누보(Art Nouveau)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성행했던 유럽의 한 예술 사조로, 프랑스어로 '새로운 미술'을 뜻하는 말이다. 이 아르누보 예술은 자연물, 특히 식물 덩굴이나 화려한 꽃에서 따온 장식적이고 유연한 곡선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는데, 이 양식은 모리스의 미술 공예 운동과 클림트, 토로프, 블레이크 등의 회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르누보 작가들은 대개 전통으로부터 이탈하여 '새 양식의 창조'를 지향하였으며, 자연 형태에서 모티브를 따와 독특한 표현을 얻고자 했다.

오스트리아의 국민 화가 클림트(Klimt)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나,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수많은 사생아를 낳았고 '빈의 카사노바'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생전에 화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명성을 누리고 많은 사랑을 받았던 클림트는 스페인 독감에 걸려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는 템페라, 금박, 은박, 수채를 함께 사용한 독창적인 기법을 구사하였으며 관능적인 여성의 육체를 주제로 한 작품(그림)을 많이 남겼다. 그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은 뚜렷한 경계 없이 인물과 배경이 한 몸을 이루거나 그림 속에 숨어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으며, 뭔가 이성의 세계를 넘어선 환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한 때 클림트가 빈 대학교 강당의 천장에 남긴 '세 점의 우의적인 벽화'는 선정적인 표현과 특유의 염세적 분위기의 색채로 인해 반감을 불러 일으켜 거절당하기도 하였다. 화려하고 관능적인 스타일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그림들은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였던 고국 '오스트리아' 빈에선 퇴폐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프랑스' 파리에선 클림트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작품들 ]

The Kiss

Judit

Water Serpents I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Fulfilment(Pattern for the Stoclet Frieze)

클림트의 후기 벽화인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와 브뤼셀의 '스토클레 저택의 식당에 그린 벽화'들은 화려한 장식적 양식의 문양과 금박을 대담하게 사용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 조각가인 로댕은 한 때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 프리즈'를 두고서 극찬을 하기도 했었다. 클림트의 대표작으로는 '입맞춤=키스(The Kiss)', '아델 블로흐-바우어 부인의 초상(Portrait of Adele Bloch-Bauer)', '다나에(Danae)', '유디트(Judith)'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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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