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악처(惡妻)로,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와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와 더불어 가끔 가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가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일생에 관한 각종 자료를 취합해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닌 듯하다.
18세기 오스트리아의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와 그의 아내인 '콘스탄체'
우리 나라 한국의 TV극 경우에도, 언젠가부터 <주몽> <왕과 나> <명성황후> <연개소문> <선덕 여왕> <천추태후> <동이> 등등 '실제의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내용으로 꾸며진 '허구의 픽션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드라마 내용'들로 인해 일부 대중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극 안에 나오는 인물 관계가 실제의 사실과 영판 다르거나, 연대가 안 맞거나, 괜찮은 역사 속 인물을 깎아내리거나, 별 거 아닌 역사적 인물을 미화하는 등등..)
마찬가지로, 특정인의 시각에 맞춰진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창작 희곡 <아마데우스>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로 인해 많은 대중들이 모차르트나 콘스탄체, 살리에리에 대해 '왜곡된 사실'을 마치 사실인 양 받아들이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는 살아 생전에도 많은 사람들의 질시와 태클 속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사후에도, 일부러 모차르트 가족을 깎아내리기 위해 '과장되거나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는 무리들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1762~1842)에 대해서도 천박하다느니, 사치스럽다느니, 변덕스럽다느니.. 등등 각종 모차르트 관련 전기들에선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추측'일 뿐, 딱히 '정확한 근거는 없는 내용'들이었다고 한다. 콘스탄체가 모차르트의 장례식에 참석 못한 일로(그래서 공동 묘지에 묻힌 모차르트가 정확하게 어느 지점에 묻혔는지 밝혀지지 않은 일로) '모차르트 음악 추종자'들로부터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데.. 그 날, 콘스탄체는 모차르트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을 정도로 (원래 병치레가 심했고,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인해) 정말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한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공연된 오스트리아 뮤지컬 <모차르트!>에서도 콘스탄체는 <'모차르트 부인' 보다는 재혼한 '니센 부인'으로 불리길 원하고, 놀기 좋아하며, 막판에 모차르트와 부부 갈등을 겪는(그래서 작곡에만 매진하는 남편을 떠나는) 아내>로 묘사되었는데, 이 역시 사실과는 좀 다른 듯하다.
실제의 모짜르트와 그의 아내 콘스탄체는 부부 금슬이 정말 좋고, 평생을 서로 사랑한 커플이었다. 이는 모차르트(Mozart)가 죽은 해인 1791년에 그가 콘스탄체(Constanze)에게 남긴 많은 편지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모차르트가 가장 왕성한 작곡 활동을 통해 빼어난 작품을 많이 남긴 것도 '콘스탄체와의 결혼 생활을 지속하던 그 시기'였다. 기존의 악의적인 내용들과는 다르게, 근거 있는 자료들에선 콘스탄체에 대한 새로운 내용들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안녕, 여보. 내 하나 뿐인 사랑! 손을 들어 공중을 휘저어 봐요. 내가 당신한테로 날려보낸 2,999 하고도 2분의 1개의 입맞춤이 날아다니면서 잡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요-
욕조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혼자서는 외출하지 말아요. 내가 함께 있다면 하루 정도는 괴로운 치료를 받지 않도록 해줄텐데 말이오. 오늘밤은 누군가 당신과 함께 자 주었으면 좋겠군..........카를 녀석(모차르트의 아들), 분명히 착하게 굴겠지. 내 입맞춤을 전해줘요.
안녕, 가장 사랑하는 어린 아내여! 건강에 유념해요. 당신이 건강하고 나한테 상냥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어디로 굴러가든 아무 상관이 없으니 말이오.
목욕이 겨우내 당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소. 당신 건강이 좋아져야, 나도 당신 있는 바덴으로 달려갈 수 있을 테니까.. 당신이 없으니, 시간이 질질 끌리는 느낌이지 뭐겠소~?
안녕, 내 사랑하는 아내여! 우편 마차가 막 떠나려고 하오. 오늘 당신에게서 몇 줄이라도 소식이 왔으면 좋겠소. 그러리라는 달콤한 기대 속에 '천 번의 키스'를...
그는 아내인 콘스탄체에게 쓰는 편지 말미에 <언제까지나 당신의 모차르트/영원히 사랑하는 당신의 남편/언제나 당신의 소유물인 모차르트..> 등의 문구를 즐겨 쓰곤 했다.
콘스탄체는 첫 남편인 모차르트 사후에 '게오르그 니콜라우스 폰 니센(Georg Nikolaus von Nissen)'이라는 작가 겸 덴마크 외교관인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의 집에 세 들어 살던 니쎈은 '모차르트의 음악과 삶'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다가 콘스탄체와 친해진 게 아닐까 한다.(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우정을 나누는 친구 → 연인 사이로 발전~) 실제로 콘스탄체와 그녀가 재혼한 남편 니센은 모차르트 관련 자료들을 모아서 그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펼치고, 모차르트 전기를 편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무려 18년이 지나서야 니센과 정식으로 결혼했다. (니센과 알고 지낸 건 훨씬 이전이지만, 콘스탄체는 사랑했던 첫 번째 남편이 죽고 얼마 안되어 금세 다른 남자랑 팔락락 재혼해 버리는 그런 의리 없는 여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콘스탄체는 두 번째 남편인 니쎈마저 세상을 떠난 후 한참을 더 살았으며, 말년의 콘스탄체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과부가 된 그녀의 친 자매들과 여생을 함께 보냈다.
콘스탄체는 '두 번째 남편인 니센'의 묘비에다가 '콘스탄체의 남편' 대신 '모차르트 미망인의 남편'이란 문구를 새겨 넣었으며, 니센과 재혼한 뒤에도 '모차르트의 성을 딴 아들 이름'을 바꾸지 않았는데, 그런 걸 보면 그녀는 '첫 번째 남편인 모차르트'를 정말 많이 사랑했던 게 아닐까 한다.
(열심히 작곡 활동을 하기는 했으나) 당시 프리랜서로 일했던 모차르트는 '고정 수입'이 없었으며, 그에 반해 '모차르트+콘스탄체+두 자녀+하녀' 등 5~6명이 되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고, 결혼 후 '허약한 몸으로 잦은 임신을 해서 병치레가 잦았던 콘스탄체의 치료비와 약 구입비'로 많은 지출이 있었기에 죽기 직전의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였다.(둘 사이에 부부 금슬이 얼마나 좋았던지, 모차르트 & 콘스탄체 부부는 총 9년 가까이 되는 결혼 기간 동안 6명의 자식을 낳았다. 하지만 그들이 살던 시기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때였기에, 그 중 2명의 아이만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또한, 상류층을 주로 상대했던 모차르트와 그의 아내 콘스탄체는 옷을 차려 입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등 '품위 유지비'로 많은 돈을 지출한 모양이다. 남한테 퍼주기 좋아하고 인정 많은 모짜르트의 '손님 접대' 비용으로도 많은 돈이 나갔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친구가 아파서 약속한 곡을 쓰지 못하면 대신 써주기도 하고, 자선 음악회에서도 많은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모차르트는 빚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는데.. 남편의 빚을 떠안고 두 자녀와 함께 남겨진 콘스탄체는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연금을 받아내고, 모차르트의 작품을 출판하거나 음악회를 열어 빚도 갚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무사히 두 아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
그(모차르트)는 마음만 먹으면 다른 곳에서 충분히 부를 좇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 곳에서 자주 제의가 들어왔을 때 일찌감치 수락했더라면 자기 가족을 호의호식 시켜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오로지 이곳의 황궁에 봉사함으로써 자신의 명성을 드날리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폐하, 모든 사람은 적이 있사옵니다. 그러나, 단지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저의 남편 만큼 적들로부터 맹렬하면서 끊임없는 공격을 받고 중상모략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남긴 빚은 10배나 과장되었습니다. 저는 제 생명을 걸고 3천 플로린이면 그의 빚 모두를 갚을 수 있음을 보증합니다.
저희는 고정된 수입이 없었고, 아이들이 많은데다, 제가 돈이 많이 드는 심한 병으로 1년 반이나 고생했습니다. 폐하, 자비로운 마음으로 허락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다시 한 번 온몸을 던져, 황궁의 자비심과 곤궁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자애로움에 대고 간청 드립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 자비를 필요로 하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전하께서 저와 철 모르는 두 아들에게 황궁의 보조금을 내려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것만이 제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엎드려 드립니다..
- 사망한 황실 실내악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미망인, 콘스탄체 모차르트 올림
젊어 한 때는 좀 철이 없었을지 몰라도, (기록에 따르면) 콘스탄체는 두 아들들에게 꽤 좋은 어머니였다고 한다. 모차르트 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콘스탄체는 두 아들 중 한 명을 음악가로 길러내기도 했다.
콘스탄체, 나이 들어서의 모습
콘스탄체는 나름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은 교양 있는 숙녀였으며, 무려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언어 능력자이기도 하다. 둘 다 오스트리아 사람이라 당연히 '독일어'를 썼겠지만,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는 간혹 '불어(프랑스어)'로 편지를 주고 받을 때도 있었다. 콘스탄체를 만나 본 사람들의 말을 전하는 기록들에 따르면, 그녀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만, 시아버지에 해당하는 레오폴트는 콘스탄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후대에 남겨진 '콘스탄체가 악처~'란 소문은 애초에 베버 집안과의 결혼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와 그 측근들이 그렇게 몰고 간 측면도 크다.
모차르트 전기를 펴낸 많은 독일어권 학자들 & 근거도 없이 비방하기 좋아하는 무리들의 왜곡된 평가와는 다르게,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는 결코 '악처'가 아니었다.
'모차르트 아빠(레오폴트)'가 영악한 '콘스탄체 엄마(베버 부인)'와 그 가족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듣고서 베버가를 불신하여 며느리인 콘스탄체까지 싫어하였고, 많은 학자들이 '레오폴트의 관점'을 선호하여 콘스탄체에 대한 평가를 박하게 내려서 그렇지, 실제의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는 죽을 때까지 서로 절절하게 사랑했던 '결혼한 부부의 좋은 예~'에 해당하는 커플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나라 한국의 TV극 경우에도, 언젠가부터 <주몽> <왕과 나> <명성황후> <연개소문> <선덕 여왕> <천추태후> <동이> 등등 '실제의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내용으로 꾸며진 '허구의 픽션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드라마 내용'들로 인해 일부 대중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극 안에 나오는 인물 관계가 실제의 사실과 영판 다르거나, 연대가 안 맞거나, 괜찮은 역사 속 인물을 깎아내리거나, 별 거 아닌 역사적 인물을 미화하는 등등..)
마찬가지로, 특정인의 시각에 맞춰진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창작 희곡 <아마데우스>를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로 인해 많은 대중들이 모차르트나 콘스탄체, 살리에리에 대해 '왜곡된 사실'을 마치 사실인 양 받아들이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는 살아 생전에도 많은 사람들의 질시와 태클 속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의 사후에도, 일부러 모차르트 가족을 깎아내리기 위해 '과장되거나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는 무리들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1762~1842)에 대해서도 천박하다느니, 사치스럽다느니, 변덕스럽다느니.. 등등 각종 모차르트 관련 전기들에선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공연된 오스트리아 뮤지컬 <모차르트!>에서도 콘스탄체는 <'모차르트 부인' 보다는 재혼한 '니센 부인'으로 불리길 원하고, 놀기 좋아하며, 막판에 모차르트와 부부 갈등을 겪는(그래서 작곡에만 매진하는 남편을 떠나는) 아내>로 묘사되었는데, 이 역시 사실과는 좀 다른 듯하다.
실제의 모짜르트와 그의 아내 콘스탄체는 부부 금슬이 정말 좋고, 평생을 서로 사랑한 커플이었다. 이는 모차르트(Mozart)가 죽은 해인 1791년에 그가 콘스탄체(Constanze)에게 남긴 많은 편지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모차르트가 가장 왕성한 작곡 활동을 통해 빼어난 작품을 많이 남긴 것도 '콘스탄체와의 결혼 생활을 지속하던 그 시기'였다. 기존의 악의적인 내용들과는 다르게, 근거 있는 자료들에선 콘스탄체에 대한 새로운 내용들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 모차르트가 아내인 콘스탄체에게 보낸 편지 내용 中 ]
안녕, 여보. 내 하나 뿐인 사랑! 손을 들어 공중을 휘저어 봐요. 내가 당신한테로 날려보낸 2,999 하고도 2분의 1개의 입맞춤이 날아다니면서 잡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요-
욕조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혼자서는 외출하지 말아요. 내가 함께 있다면 하루 정도는 괴로운 치료를 받지 않도록 해줄텐데 말이오. 오늘밤은 누군가 당신과 함께 자 주었으면 좋겠군..........카를 녀석(모차르트의 아들), 분명히 착하게 굴겠지. 내 입맞춤을 전해줘요.
안녕, 가장 사랑하는 어린 아내여! 건강에 유념해요. 당신이 건강하고 나한테 상냥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어디로 굴러가든 아무 상관이 없으니 말이오.
목욕이 겨우내 당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소. 당신 건강이 좋아져야, 나도 당신 있는 바덴으로 달려갈 수 있을 테니까.. 당신이 없으니, 시간이 질질 끌리는 느낌이지 뭐겠소~?
안녕, 내 사랑하는 아내여! 우편 마차가 막 떠나려고 하오. 오늘 당신에게서 몇 줄이라도 소식이 왔으면 좋겠소. 그러리라는 달콤한 기대 속에 '천 번의 키스'를...
그는 아내인 콘스탄체에게 쓰는 편지 말미에 <언제까지나 당신의 모차르트/영원히 사랑하는 당신의 남편/언제나 당신의 소유물인 모차르트..> 등의 문구를 즐겨 쓰곤 했다.
콘스탄체는 첫 남편인 모차르트 사후에 '게오르그 니콜라우스 폰 니센(Georg Nikolaus von Nissen)'이라는 작가 겸 덴마크 외교관인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의 집에 세 들어 살던 니쎈은 '모차르트의 음악과 삶'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다가 콘스탄체와 친해진 게 아닐까 한다.(비슷한 관심사를 갖고 우정을 나누는 친구 → 연인 사이로 발전~) 실제로 콘스탄체와 그녀가 재혼한 남편 니센은 모차르트 관련 자료들을 모아서 그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펼치고, 모차르트 전기를 편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무려 18년이 지나서야 니센과 정식으로 결혼했다. (니센과 알고 지낸 건 훨씬 이전이지만, 콘스탄체는 사랑했던 첫 번째 남편이 죽고 얼마 안되어 금세 다른 남자랑 팔락락 재혼해 버리는 그런 의리 없는 여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콘스탄체는 두 번째 남편인 니쎈마저 세상을 떠난 후 한참을 더 살았으며, 말년의 콘스탄체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과부가 된 그녀의 친 자매들과 여생을 함께 보냈다.
콘스탄체는 '두 번째 남편인 니센'의 묘비에다가 '콘스탄체의 남편' 대신 '모차르트 미망인의 남편'이란 문구를 새겨 넣었으며, 니센과 재혼한 뒤에도 '모차르트의 성을 딴 아들 이름'을 바꾸지 않았는데, 그런 걸 보면 그녀는 '첫 번째 남편인 모차르트'를 정말 많이 사랑했던 게 아닐까 한다.
(열심히 작곡 활동을 하기는 했으나) 당시 프리랜서로 일했던 모차르트는 '고정 수입'이 없었으며, 그에 반해 '모차르트+콘스탄체+두 자녀+하녀' 등 5~6명이 되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고, 결혼 후 '허약한 몸으로 잦은 임신을 해서 병치레가 잦았던 콘스탄체의 치료비와 약 구입비'로 많은 지출이 있었기에 죽기 직전의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였다.(둘 사이에 부부 금슬이 얼마나 좋았던지, 모차르트 & 콘스탄체 부부는 총 9년 가까이 되는 결혼 기간 동안 6명의 자식을 낳았다. 하지만 그들이 살던 시기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때였기에, 그 중 2명의 아이만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또한, 상류층을 주로 상대했던 모차르트와 그의 아내 콘스탄체는 옷을 차려 입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등 '품위 유지비'로 많은 돈을 지출한 모양이다. 남한테 퍼주기 좋아하고 인정 많은 모짜르트의 '손님 접대' 비용으로도 많은 돈이 나갔을 것이다. 모차르트는 친구가 아파서 약속한 곡을 쓰지 못하면 대신 써주기도 하고, 자선 음악회에서도 많은 연주를 했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모차르트는 빚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는데.. 남편의 빚을 떠안고 두 자녀와 함께 남겨진 콘스탄체는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연금을 받아내고, 모차르트의 작품을 출판하거나 음악회를 열어 빚도 갚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무사히 두 아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
[ 콘스탄체가 남편 모차르트 사후에 연금을 요청하기 위해 황제에게 보낸 편지 내용 中 ]
그(모차르트)는 마음만 먹으면 다른 곳에서 충분히 부를 좇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 곳에서 자주 제의가 들어왔을 때 일찌감치 수락했더라면 자기 가족을 호의호식 시켜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오로지 이곳의 황궁에 봉사함으로써 자신의 명성을 드날리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폐하, 모든 사람은 적이 있사옵니다. 그러나, 단지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저의 남편 만큼 적들로부터 맹렬하면서 끊임없는 공격을 받고 중상모략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가 남긴 빚은 10배나 과장되었습니다. 저는 제 생명을 걸고 3천 플로린이면 그의 빚 모두를 갚을 수 있음을 보증합니다.
저희는 고정된 수입이 없었고, 아이들이 많은데다, 제가 돈이 많이 드는 심한 병으로 1년 반이나 고생했습니다. 폐하, 자비로운 마음으로 허락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다시 한 번 온몸을 던져, 황궁의 자비심과 곤궁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자애로움에 대고 간청 드립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 자비를 필요로 하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전하께서 저와 철 모르는 두 아들에게 황궁의 보조금을 내려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것만이 제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엎드려 드립니다..
- 사망한 황실 실내악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미망인, 콘스탄체 모차르트 올림
젊어 한 때는 좀 철이 없었을지 몰라도, (기록에 따르면) 콘스탄체는 두 아들들에게 꽤 좋은 어머니였다고 한다. 모차르트 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콘스탄체는 두 아들 중 한 명을 음악가로 길러내기도 했다.
콘스탄체는 나름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은 교양 있는 숙녀였으며, 무려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언어 능력자이기도 하다. 둘 다 오스트리아 사람이라 당연히 '독일어'를 썼겠지만,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는 간혹 '불어(프랑스어)'로 편지를 주고 받을 때도 있었다. 콘스탄체를 만나 본 사람들의 말을 전하는 기록들에 따르면, 그녀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 '니메체크의 책'에 나온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에 대한 묘사 ]
모차르트는 콘스탄체와의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여겼다. 그는 그녀에게서 '선량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콘스탄체는 남편의 모든 기분을 맞춰줄 줄 알았고, 그럼으로써 완전한 신뢰를 얻어서 남편인 모차르트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을 그가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일을 막는 데에만 사용했다..
다만, 시아버지에 해당하는 레오폴트는 콘스탄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후대에 남겨진 '콘스탄체가 악처~'란 소문은 애초에 베버 집안과의 결혼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와 그 측근들이 그렇게 몰고 간 측면도 크다.
모차르트 전기를 펴낸 많은 독일어권 학자들 & 근거도 없이 비방하기 좋아하는 무리들의 왜곡된 평가와는 다르게,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는 결코 '악처'가 아니었다.
'모차르트 아빠(레오폴트)'가 영악한 '콘스탄체 엄마(베버 부인)'와 그 가족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듣고서 베버가를 불신하여 며느리인 콘스탄체까지 싫어하였고, 많은 학자들이 '레오폴트의 관점'을 선호하여 콘스탄체에 대한 평가를 박하게 내려서 그렇지, 실제의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는 죽을 때까지 서로 절절하게 사랑했던 '결혼한 부부의 좋은 예~'에 해당하는 커플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