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끝났지만, 얼마 전에 종영된 수목 드라마 <혼>을 보면서 전도연,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밀양>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스토리나 각 극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극 중에서 주인공 가족을 죽인 이들을 향한 그들의 분노와 좌절감, 구원과 파멸의 정서 등 은연중에 비슷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있었다.

잔인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킨 피해자와 가해자들

드라마 <혼>에선 주인공 신류(이서진)가 빙의된 하나(임주은)를 이용하여 한 때 자기 가족을 죽인 불량 청소년들에게 (많은 세월이 지나) 나름의 복수를 하는 내용이 펼쳐졌다. 그가 직접 죽이진 않았지만, 그들의 약점이나 공포를 자극하여 스스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것이다. 그 내용이 7회까지 펼쳐졌고, 그 이후로 그 쪽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신류는 점점 살인마로 변해가고, 복수 당시 아들을 잃은 백도식(김갑수)에게 훗날 역복수를 당하는 식으로 스토리가 이어졌다.



영화 <밀양>의 주인공 신애(전도연)는 남편을 잃은 뒤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 내려와 살게 되었는데, 결국 돈을 노린 이웃에 의해 사랑하는 아들마저 유괴 당한 뒤 잃게 되었다. 자신이 불쌍하게 여겨 진심으로 도와주려 했던 '반 친구'에 의해 가족을 잃은 드라마 <혼>의 주인공 류(이서진)의 경우처럼, 영화 <밀양> 속 신애(전도연) 역시 한 때 같이 회식도 하던 '자기 아들의 웅변 학원 원장'에 의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 경우이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 존재하는 '잘 아는 사람'들이 더 무서운 것 같다. 흉악한 범죄는 빈번하게 면식범에 의해 이뤄지기도 하니 말이다.


굳이 영화나 드라마 속 이야기 뿐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종종 '뉴스'를 통해 주변인들에 의해 끔찍한 일을 겪게 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이들의 사연을 접하게 될 때가 많다. 그러했을 때.. 그들은 그 분노와 상실감, 좌절감 같은 것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밀양>은 어쩐지, 그것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는 영화 같았다. 내용 자체가 내내 재미있고 큰 흥미를 가져다 주는 그런 쪽은 아니었지만, 보고 나서 마음에 큰 울림이랄까.. 기나긴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였다. 또한,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던 주인공 신애(전도연)의 행동과 감정의 흐름에 몰입이 잘 되었다. '그래, 인간이라면 저럴 수 있어..' 뭐, 그런 느낌이 들었달까-

허영과 욕망의 인간들, 시험에 빠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이신애(전도연)는 완전무결한 인격적 경지에 이른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그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쉽게 상처 받고, 때론 자제력을 잃은 분노를 표하기도 하며, 약간의 이기심과 허세도 지닌 평범하고도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실제로 땅을 살 만한 여력은 없었던 신애(전도연)의 전화 통화 내용으로 그녀가 땅을 보러 다닌다는 내용을 접한 웅변 학원 원장은 그 아들을 유괴하여 돈을 뜯어내려 했지만 실상 그녀는 가진 돈이 얼마 없다. 땅을 매입한다는 것은 낯선 땅에서 이웃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 나름 있는 척 하려는 신애(전도연)의 허세에 불과했던 것이다. 허나 그 일이 화근이 되어 신애의 아들 준은 많은 빚을 진 웅변 학원 원장에 의해 유괴 당했고, 자기가 원하는 액수의 돈을 구하지 못하자 유괴범은 신애의 아들을 죽여 버린다.

그 범인이 죄값을 치르기 위해 교도소에 갔으나, 그렇다고 해서 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저 세상으로 보낸 뒤 남겨진 신애(전도연)의 상실감이나 분노가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죽지 못해 어떻게든 살아야 했고, 결국엔 이웃의 인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어 그 신앙 생활로 자신의 아픔을 치유 받고자 한다. 종교 생활로 인해 이웃과 열심히 소통하고, 부지런히 노방 전도를 다니며 마음의 안식을 되찾은 그녀는 그 지점에서 또 다른 허세(?)를 부린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 구원의 주체가 원망의 대상으로~

그녀 주변을 맴도는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의 말대로 그냥 마음 속으로 조용히 용서하면 될 것을, 굳이 자기 아들 죽인 범인이 있는 교도소로 찾아가서 '자신이 그를 용서한다'는 말을 전하는 이벤트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녀가 예상했던 풍경은 아마.. '피해자인 나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지만, 하나님을 믿게 된 뒤 구원 받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젠 너를 용서해 주겠다~'라고 말하면 가해자인 그 범인이 감격하면서 자신에게 미안해 하고,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면서 사죄하는.. 뭐 그런 풍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범인을 찾아간 교도소에서 주인공 신애(전도연)는 충격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종교의 힘으로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는 자신이 미처 그 범인에게 '용서해 주겠다~'는 말을 건네기도 전에, 그 아들 죽인 범인이 '나 역시 종교를 믿게 되었고, 회개한 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았다. 그래서 지금 얼마나 마음이 편해졌는지 모르겠다~'는 뻔뻔하고도 허세스런 무매너적 발언을 건넨 것이다. 정작 그 범인으로부터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자신이 그에게 '용서한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이미 그를 용서했다니.. 범인의 발언에 신애(전도연)는 큰 충격을 받고, 신에 대한 분노를 느끼며, 종교에 대한 회의를 품고서 급격하게 삐뚤어지기 시작한다.

교회에 나가게 된 뒤 초반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 생활하던 신애는 그 일 이후로, 자기가 용서하기도 전에 먼저 그 파렴치한 범인을 용서하고 구원해 줬다는 하나님에 대해 마치 맞짱이라도 뜨려는 듯한 도전적인 자세로 살아간다. 그래서 남의 가게에서 CD를 훔쳐 야외 종교 집회에 훼방을 놓고, 이웃 신도들의 기도회가 이뤄지고 있는 가정의 창문을 깨뜨리고, 자신을 전도한 부인의 남편을 유혹해서 야외에서 정사를 벌이고자 하며, 급기야는 하나님을 향해 '자, 봐봐요~' 하면서 신에게 극단적인 도전을 하려는 듯 자살까지 시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삶은 계속해서 지속된다..

하지만 원래부터가 생활력이 강하고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 보였던 그녀는 이웃의 도움을 빌어 다시 살아나고, 얼마 간 정신 병원에서의 치료 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종찬(송강호)이 인도하는 미용실로 머리를 자르러 간 신애(전도연)는 자기 아들 죽인 범인의 딸이 그 미용실 보조가 되어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려 하자, 도저히 그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머리 자르는 도중에 미용실을 박차고 나와 버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밀양에 이사왔을 당시 자신의 조언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이웃집 양품점 아줌마가 마치 이제는 그녀를 온전한 이웃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듯 신애의 조언에 충실히 따른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넨다.


집으로 돌아온 신애(전도연)는 거울을 받쳐주는 종찬(송강호)의 도움으로 자기 집 마당에서 직접 머리를 자르고, 그녀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마당 한 귀퉁이에 비치는 따뜻한 '햇살'을 배경으로 이 영화는 끝이 난다.

구원의 주체를 삼차원으로 한정시키는 것은 인간의 관념인 것일까?

중간에 내용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원래의 결말도 주인공 몰살의 결말이었을 것 같은 드라마 <혼> 보다는 영화 <밀양> 쪽 결말이 보다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 이 영화의 내용이 좀 더 맘에 들었다. 극의 전개 과정 역시, 보다 깔끔하고 주제 집약적이었는데.. 총체적으로 이창동 감독의 있는 그대로의 인간에 대한 잔잔한 시선, 탁월한 통찰 같은 것도 엿보이는 듯했다.


이 영화에 특정 종교가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종교적이라거나 반종교적인 영화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영화 <밀양>은 결과적으로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신(神)이란 존재는 인간의 관점과 상관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거나 (혹은 무신론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없거나 하는 존재이다. 거기에 저 나름대로의 색을 입히고,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들의 관념이다.

만일 신이란 존재가 있다면 그는 하늘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세상 구석구석에 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인간의 마음 속에도 있을 수 있고, 마당 한 귀퉁이에도 머물다 가며, 살랑거리는 미풍에도, 따스한 햇살에도, 이웃들 간의 나눔의 정이나 남 모르게 행한 선한 일 가운데에도 머무를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그는 인간의 관념처럼 그렇게 단순한 차원의 존재가 아닌 듯하다.

세상 속 은밀한 곳,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

이 영화의 주인공 신애(전도연)는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구원 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종교의 힘을 빌리지만, 정작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완전하게 믿는다는 것'에 대해선 다소 한계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눈에는 안 보이는 신'이 일단 있다고 믿고 있지만, 항상 '눈에 보이는 하늘
(자신의 위)'에 신이 있다는 양 행동하고, 거기에다 대고 말을 건네며, 그를 향해 도전한다. 저 나름대로 '이미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 받았다..'고 다소 허영기 있는 발언을 했던 신애 아들 죽인 범인 역시, 그렇게 온전한 깨달음을 얻은 신자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한 인간에게 진정한 구원을 전할 수 있는 신의 은총은 그들의 허영기나 불완전한 믿음 더 깊숙히..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져 있는데, 그 비밀스런 장소가 그렇게 희귀한 장소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일상 속에서 늘 접할 수 있는 그런 곳에 있다>..."라는 것을 이 영화는 알려주는 듯했다.

영화 <밀양> 속에서.. 우여곡절의 사연을 겪은 주인공 신애(전도연)는 죽을려고 했다가 다시 살기로 작정했으며, 좋든 나쁘든 그녀의 일상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그녀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고, 그 주변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한 남자와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여러 이웃들이 존재한다. 숨은 보물 찾기처럼 그녀가 만일 '비밀스럽지만 가까운 곳에 숨겨져 있는 구원의 빛(Secret Sunshine)'을 발견하게 된다면 자신이 원했던 진정한 구원과 마음의 안식,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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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