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뮤지컬 NDP의 원작인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소설을 다시 보고 있는데, 가끔은 음악을 틀어놓고 읽을 때도 있다. 대상 소설이 <노트르담 드 파리>이다 보니 당연히 <노트르담 드 파리> 음악(프랑스 뮤지컬 넘버들)을 주로 듣게 되고, 때론 다른 뮤지션들이 부르거나 연주한 NDP 음악을 듣기도 한다.


소설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콰지모도, 프롤로, 에스메랄다 등등..)은 뮤지컬이나 영화 버전에 나온 캐릭터들이랑 그 느낌이 다르다. 같은 작품임에도 이렇게 캐릭터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참 신기하다. 개인적으로 '프롤로-에스메랄다' 간의 관계가 가장 흥미롭게 느껴진 건 '영화'도, '뮤지컬'도 아닌 '소설' 버전이었다. 영화나 뮤지컬은 2시간 안에 모든 걸 다 담으려 하다 보니, 방대한 양의 소설에 비해 아무래도 인물들 '관계 묘사'에 있어 좀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예전엔 소설 안에 나오는 '입 삐쭉거리기 좋아하고, 철 없고, 프롤로에게 막말하는 에스메랄다'란 여주인공이 살짝 얄밉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그래두 나이도 어린 애가 그렇게 억울하게 누명 쓰고 처형 당하게 된 게 참 안됐단 생각이 든다. 사실, 이 극 안에 나오는 에스메랄다는 '예쁜 죄' 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녀가 외적으로 매력적이고 너무너무 예쁘기 때문에 프롤로가 반한 것이고, 당시 막강 권력을 자랑하던 프롤로 부주교가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버리겠어~' 모드로 삐뚤어진 사랑을 표출했던 게 아닌가-

이건 그냥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19세기에 발표한 '꾸며진 내용'의 소설일 뿐인데, 현대에도 은근히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특정한 대상(이성)에게 집착하던 어떤 권력 있는 이가 '자신이 관심 갖는 대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파멸시켜 버리거나, 다른 사고로 위장하여 죽여 버리는 사례들 말이다. 때론, 지나친 집착이 악(惡)을 낳기도 하는 모양이다..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선 여주인공 에스메랄다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극 중 세 남자가 부르는 'Belle(아름답다/벨)'이란 노래로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극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는 1막 중후반부 무렵에 나오는 'Belle'은 리카르도 코치안테(Riccardo Cocciante)가 작곡한 이 뮤지컬 넘버들 중, 제목 만큼이나 '가장 멜로디 라인이 아름다운 노래'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처음 들었을 때 강렬한 임팩트를 발휘하는 건 극 중 그랭구아르가 부르는 '대성당의 시대(Le Temps Des Cathedrales)'이지만,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음악을 자꾸 듣다 보면 '벨(Belle)'이야말로 정말 보석 같은 노래란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라이센스 공연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도 콰지모도 & 프롤로 & 페뷔스가 '벨(Belle)'을 부르는 그 장면이 제일 좋았다.

Sergei Trofanov(세르게이 트로파노프) - Belle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작품 안에 나온 'Belle'이란 노래엔 유려하면서도 뭔가 거창한 분위기가 있는데, 세르게이 트로파노프(Sergei Trofanov)의 앨범에 실려있는 바이올린 연주곡 버전 'Belle'을 들으면 이 곡의 멜로디가 정말 서정적이고 애잔한 분위기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라이센스 공연을 올리며 'Belle'이란 노래가 한국판으로도 나와서 그런지, '연주곡' 버전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인류의 십자가가 놓여있는 듯.." 등등 프롤로 파트의 한국어 '벨(Belle)' 노랫가사를 흥얼거리게 될 때가 있다. 뮤지컬 안에선 에스메랄다가 나름 세 남자의 흠모를 받으며 잘 나갈 때 이 노래가 흐르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거대 권력에 희생 당하는 비운의 집시 여성'이다. 그런 결말 내용을 염두에 두고서 이 'Belle'을 들으면, 마음이 참 짠해지는 느낌이 든다.

바이올리니스트 세르게이 트로파노프(Sergei Trofanov)가 연주한 'Belle'은 특히 더 구슬프고 짠하다. 그는 한국에도 몇 번 왔다 간 뮤지션이며 '집시 아티스트'라고도 불린다. 집시의 역사 자체가 '무한 박해와 억압의 역사'인데, 세르게이의 연주곡을 듣다 보면 그런 '집시의 애환'이 고스란이 느껴지는 것 같다.


집시 음악의 대가인 세르게이 트로파노프(Sergei Trofanov)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남성 팝 듀오인 스매쉬(Smash)도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표 넘버인 'Belle'을 리메이크해서 부른 적이 있다. 예전에 우리 나라에도 내한한 적 있는 이 잘생긴 청년들(Sergey Lazarev, Vlad Topalov)이 오래 전에 나온 자신들의 1집 앨범 'Freeway'에 프랑스 뮤지컬 음악인 이 노래를 실었다.

러시아 그룹인 스매쉬(Smash)가 부른 'Belle'은 뮤지컬 공연 안에서 콰지모도/프롤로/페뷔스가 부르는 삼중창 'Belle(벨)'과는 편곡도 다르고 노래 분위기도 사뭇 다른 느낌인데, 멜로디 라인 자체가 워낙에 아름답기 때문에 이들이 부른 감성적인 느낌의 'Belle'도 듣기엔 참 좋다는 생각이다. 이 노래 마지막에, 여러 남정네들이 탄식하며 부르는 듯한 "에스메랄다~" 이 대목에도 묘한 매력이 있는 듯하다..
 
Smash(스매쉬) - Belle/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대표 넘버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원작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도 좋았지만, 뤽 플라몽동(Luc Plamondon)이 각색한 뮤지컬 버전 <노트르담 드 파리>도 내겐 참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원작에 나오는 '에스메랄다'는 자신의 경솔함 때문에 or 특정한 한 개인과의 갈등으로 인해 죽은 것 같지만,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안에 나오는 '에스메랄다'는 당시 천대 받고 억압 당하던 '집시 무리의 대표'로, 절대 권력에 저항하다 쫓겨난 '이방인 무리의 상징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기에 말이다.

원작자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는 그것대로 훌륭하지만, 뤽 플라몽동이 각색한 뮤지컬 버전 <노트르담 드 파리>는 원작과는 또 다른 작품 해석을 선보이며 나름의 미덕을 보여준다. 간혹 국내 무대에 올려지는 공연들 중엔 별도로 존재하는 '원작의 미덕'을 완전 훼손하며 해당 뮤지컬을 '졸작'으로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례들을 볼 때마다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천재 작사가'로 불렸던 뤽 플라몽동(Luc Plamondon)의 경우처럼, 자기만의 미덕 넘치는 해석까진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남의 작품 가져와서 국내 공연을 올리는 뮤지컬 제작자나 스텝들이 원작(오리지널 소설 or 해외의 오리지널 뮤지컬)의 미덕을 망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원작 못지않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DVD'를 보고 '원작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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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