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토크

'모차르트!' 한국 음반, 민영기 대주교 '어떻게 이런 일이'

타라 2010. 7. 2. 15:02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 발전 내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경험치에 의해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존재이다. 요즘 뮤지컬 '모차르트' 관련 음반(CD)을 듣고 있기 때문에 이 인물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데, 의외로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 &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 콤비의 오스트리아 뮤지컬 <모차르트(Mozart)!>에 나온 주인공은 실존 인물 '모차르트'와는 다른 대목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인간 모차르트는 과연, 자신의 천재성과 음악적 재능을 부담스러워 했을까?


개인적으로 미하엘 쿤체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역사 속의 인물인 모차르트만 생각하면 '나의 모차르트는 이렇지 않아~'를 외치게 되는... 이 오스트리아의 쿤체 & 르베이 콤비는 유명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를 의식하면서 그 내용을 비켜가려다, 실제의 모짜르트와는 너무나 다른 '왜곡된 모차르트 이야기'를 만들어 버린 게 아닐까 한다.(물론 영화 <아마데우스>에도 허구적인 픽션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뮤지컬 <모차르트!>는 또 다른 픽션물에 해당하는...) 

최근 들어선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 락 오페라(Mozart l'Opera Rock)> 음악도 같이 듣고 있는데, 내가 최근에 읽었던 모차르트 관련 책 내용과 조금이라도 근접한 건 오히려 이 프랑스판 모차르트 쪽이다.(여기서 '근접하다' 함은 실존 인물 모차르트의 풍기는 분위기라든가, 캐릭터 특징을 이야기하는 것..)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 록 오페라>는 그걸 애써 의식하면서 피하려 하지 않고,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이야기를 '재가공'해서 자기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소화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에선 아무래도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진 '살리에리'의 포스가 강할 수밖에 없으나,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 록 오페라>에선 그러면서도 주인공 '모차르트'의 존재감이 그리 약해 보이지 않았다.(거기엔, 이 쪽 주연 배우인 '미켈란젤로'의 영향도 좀 있는 것 같다.)


작사가로서 꽤 유능한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의 독일어권 뮤지컬들을 가만 보면, 번번히 메인 주인공보다 '조연 캐릭터'에게 더 매력 느끼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쿤체씨의 뮤지컬 <엘리자베트(Elisabeth)>에선(2005' 공연 실황) 조연 '루케니' 캐릭터가 기억에 남고, <레베카(Rebecca)>에서도 조연 캐릭터인 "댄버스 부인 짱~"을 외치게 되고, <모차르트(Mozart)!>에서도 주인공 '모차르트' 보다는 '콜로레도 대주교' 같은 비중 낮은 조연 캐릭터가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떼창은 별로, 대주교와 남작 부인 솔로곡이 강세를 보이는 '모차르트!' 한국어 버전 음반


최근에 라이센스 공연으로 올라간 한국판 <모차르트!>와 관련하여 두 종류의 음반이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한국어 버전 <모차르트!> 음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민영기(콜로레도 대주교)가 녹음한 '어떻게 이런 일이'와 신영숙(발트슈테텐 남작 부인)이 녹음한 '황금별'이다. <모차르트> 한국판에 나오는 다른 곡들은 내겐 그리 큰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다른 판본 중에 훨씬 훌륭한 버전이 있는 관계로~)

게다가 이 뮤지컬에 나오는 곡들 중 가장 좋아하는 '모차르트, 모차르트!' 같은 넘버의 경우엔, 한국판이 좀 별로인 듯하다. 오스트리아의 오리지널 독일어 음반에 나오는 'Mozart, Mozart!'는 정말 웅장하고 깊이가 있는 명품 넘버였는데, 한국판 음반에선 그 '원곡 깊이'의 발끝도 못 따라갈 정도로 다소 경박해 보이고 무게감 별로 없는 시시한 곡으로 전락해 버린...

무엇보다, 이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아시아권 언어(일본어/한국어)와는 별로 씽크로율이 좋지 못한 곡인 듯하다. '모차르트, 모차르트!'란 곡의 독일어 버전은 정말 훌륭하고, 헝가리 버전도 그럭저럭 들어줄 만한데, 일본판이나 한국판으로 넘어오면 왠지 깊이가 얕고 저렴해 보이는 느낌으로 바뀐다고나 할까-(각 사람들이 중간에 한 소절씩 부르는 대목은 왠지 모르게 손발 오글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던..;;) 곡 자체의 매력도가 워낙에 높아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오리지널(독일어 음반) 'Mozart, Mozart!'에 너무 큰 감흥을 받았던 관계로 다소 '가벼운 느낌'인 한국판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음반 버전 뿐 아니라 라이브에서도 좀 별로로 느껴졌다.

특정한 캐릭터 구현엔 '목소리 씽크로율'도 중요하다? : 민영기 대주교의 '어떻게 이런 일이'

이 뮤지컬 관련곡들 중 '한국어 버전'이어서 좋았던 곡은 콜로레도 대주교가 부르는 '어떻게 이런 일이(Wie Kann Es Moeglich Sein)'와 같은 노래이다. 거기엔 이 역할을 맡은 민영기의 영향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판 <모차르트!>에서 같이 대주교 역을 맡은 윤형렬 버전의 '어떻게 이런 일이'는 민영기 버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밋밋한 감이 있어서, 듣다 보면 많이 심심하다. 배우가 가진 음색의 특징이나 이미지 자체도 역할에 안 어울리고... 윤형렬은 '콜로레도 대주교' 보다는 '모차르트 친구' 역에나 딱 어울릴 법한 젊은 나이의 배우인 것이다. 또한.. 윤형렬 특유의 음색은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 하고나 좋은 씽크로율을 자랑하지, <모차르트!>의 '대주교' 역에 어울리는 음색은 아닌 듯하다.



'연배'나 '음색의 특징'으로 봐서, 민영기 쪽이 '콜로레도 대주교' 역에 훨씬 잘 어울린다. 특히 그가 부른 '어떻게 이런 일이'는 오히려 오리지널 독일어 버전 'Wie Kann Es Moeglich Sein'보다 더 좋게 들렸다. <모차르트!> 공연의 오리지널 '대주교'는 무려 독일어권 뮤지컬의 대표 스타인 우베 크뢰거
(Uwe Kroger)였음에도 말이다.. '우베 대주교'의 연기는 참 좋았지만, 그의 타고난 음색 자체가 '근엄하고 권위 있어 보이는 목소리'가 아니라 약간 '까끌하고 가볍게 붕 뜬 목소리'인 관계로, 해당 캐릭터에 대한 '목소리 씽크로율'은 한국판의 '민영기 대주교' 쪽이 더 나아 보였다.

오스트리아 뮤지컬 <모차르트(Mozart)!> 한국 공연에선 배우들 솔로곡 중 발트슈테텐 남작 부인(신영숙)의 '황금별(Gold Von Den Sternen)'이 가장 흥했지만, 개인적으로 '격정적인 감정이 담겨 있거나 드라마틱한 느낌의 곡'을 좋아하는지라 이 극 안에서 콜로레도 대주교가 부르는 '어떻게 이런 일이(Wie Kann Es Moeglich Sein)' 쪽에 보다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특히 한국판 콜로레도인 민영기는 '권위적인 대주교' 역과 100% 씽크로율을 자랑하는 '근엄해 뵈는 성악 창법'에, 유난히 '울림이 큰 목소리'를 지녀서 이 곡의 드라마틱함을 최대한 살려준다. 거기다, 명확하게 콕콕 짚어주는 맛도 있어서 듣는 재미가 크다. 민영기가 이제까지 불렀던 뮤지컬 넘버들 중에서도,  <삼총사> 때 불렀던 '오페라(목숨인가, 사랑인가)'와 <모차르트!> 안에 나오는 '어떻게 이런 일이'와 같은 노래가 '보컬의 특징'과 잘 어우러지면서 가장 듣기 좋은 것 같다.

막무가내로 버릇 없게 느껴지는 주인공 '모차르트'와 마음 가는 조연 '콜로레도 대주교'


뮤지컬 <모차르트!> 안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Wie Kann Es Moeglich Sein)'는 고용인 주제에 감히 대주교에게 건방지게 깝치는 모차르트에게 '버릇 없고 재수없는 놈'이라 욕하던 콜로레도 대주교가 그의 악보를 본 뒤 '완벽에 가까운 그 음악'에 자존심 상해 하면서 GG 치는(항복하는) 장면에 나오는 노래이다.

구시대 정신의 상징인 이 권위적인 대주교가 나름 '지식인'에다 '문화적 소양'이 있어서 그 탁월함을 알아보게 된 것인데.. 한 편으론 '신이 뭐 저 따위 인간
(모차르트)에게 그런 천재성을 허락하셨을까?!' 한탄함과 동시에, 자신이 모시는 신(神)이 그에게 내린 재능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콜로레도 대주교'의 고뇌가 담겨 있는 곡이다.

개인적으로 뮤지컬 <모차르트!> 안에 나오는 주인공 '모차르트'는 어떤 면에서 보면 '아빠가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철딱서니 없는 초딩' 내지는 '(불합리한 권위에 대한 '한 혁명가적인 기질을 지닌 음악가'의 그럴듯한 '저항 정신의 발현'이 아니라) 돈 받고 일하는 월급쟁이 주제에 감히 사장(대주교)한테 밑도 끝도 없이 개기며 버릇 없게 구는 얄미운 애'처럼 느껴지기에, 오히려 비중 낮은 조연 캐릭터인 '콜로레도 대주교'의 입장에 좀 더 마음이 깄다.

이렇게 느껴지는 데에는 <실제론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자부심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했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이 극 안에선 굳이 <인간 볼프강과 천재 아마데를 분리하여, 볼프강이 자신의 천재성을 떨치고 싶어하고 오히려 평범한 삶을 더 갈구한다~>는 식으로, 실제와는 다른 무리한 설정을 했기에 그런 게 아닐까 한다. 

공감 안가는 주인공 & 극을 관통하는 '갈등 구도'가 불명확한 극은 지루함을 낳고..

이 캐릭터가 만일, 그 자체로 <자기 삶에서의 그 어떤 요소보다 '작곡가로서의 가치'를 더 높게 여기는 사명감 있는 음악가>로 그려졌다면 '후세에 길이 남을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지닌 자신을 무시하는 대주교에게 맞서, 자기가 지닌 가치(문화적 가치)가 훨씬 우위에 있다 여기는 건방진 모차르트'에게도 충분히 감정 이입 되었을 것이다. 


허나, 애석하게도 이 뮤지컬 안에 나오는 모차르트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많이 부담스러워 하고, 여인의 살결 & 아빠 사랑과 친구들과의 노세 노세~스러운 삶을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 캐릭터>인지라 콜로레도 대주교한테 대드는 모차르트 입장에 그리 공감이 가지 않았고, 그저 '어른한테 버릇 없게 굴면서 세상 모르고 날뛰는 철없는 애어른'처럼 비춰진 감이 있는 것이다.

어차피 한국판에선 '인간 볼프강'과 '천재 아마데'의 맞짱 스토리는 제대로 부각이 안된 거.. 만일 이 작품이 주인공 '모차르트'를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고, 현재로선 너무 비중 낮은 조연인 '콜로레도 대주교'의 비중을 대폭 늘려서 <모차르트와 콜로레도 대주교의 대격돌 스토리>로 갔다면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다. 


모차르트와 레오폴트(모차르트의 아버지)와의 갈등이 있긴 하지만, 그래봤자 '가족'은 궁극적으로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집착 아버지-철없는 아들' 구도에선 쫄깃한 내용을 뽑아내기에 한계가 있다. 이 쪽 설정을 부각시키는 건 '극적인 재미'에 큰 도움이 안되는...

모든 극의 핵심은 어차피 '인물들 간의 갈등'인 것인데, 웬만해선 '갈등 구도'가 불명확한 극이 탁월하게 재미 있기란 힘들다. 뮤지컬 <모차르트!>가 수많은 관객들로부터 '산만하고 지루하다~'란 평을 듣게 된 것은 다른 요인들에 더하여, 그 안에 나오는 이야기 자체가 여타 재미난 극들에 비해 그러한 '극 전체를 관통하는 (인물 간의) 뚜렷한 갈등 구도'가 무척이나 희미한 극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