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수목 드라마 <추노>를 보면서,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는 왜 이렇게 사람들을 많이 죽이지~? 무슨 살변 사극인가?' 하는... 지난 18회에서도 극 중 천지호(성동일) 캐릭터가 유명을 달리하였는데, <추노>에서 성동일이 연기한 '천지호'는 워낙에 인기 캐릭터였고 그의 너무 이른 그 죽음이 허무하다는 의견이 참 많았었다. 사실, 천지호의 죽음에 관한 설정 자체가 좀 허무하긴 했다.


16회 말미에 나온 17회 예고편에서였나..? 천지호(성동일)가 대길(장혁)이 갇힌 옥에 찾아와
의미심장 눈빛 날리면서 꼭 구해준다고 하길래, 대길이를 구출하기 위한 천지호의 대단한 활약이 있을거라 기대했었는데.. 결과적으로 별 활약 없이, 천지호가 듣보잡 병졸에게 허무하게 화살 맞고 꼴까닥~하는 시추에이션이었으니.. 보는 입장에서 어찌나 허무하던지~

이 드라마 속에서의 천지호(성동일)는 송태하(오지호)가 원손 마마를 모시러 간 '제주 에피소드' 때 황철웅(이종혁)이 자기 부하(동생)을 죽이자 꼭 복수하겠다며, 살떨리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바 있다.("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꼭 갚는 게 이 천지호야. 천지호오-" 이 대사 때..) 그 때 워낙에 살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길래 그 이후의 스토리에서 뭔가 한 건 할 줄 알았는데, 그랬던 천지호가 말로만 대길이를 구해준다고 해 놓구선 '옷 한 벌 해 입는 것' 외에는 대길의 구출 대한 별다른 준비도 안하고 이빨로 밧줄을 물어뜯는 등 계속 삽질만 하다가 허무하게 간 것 같다..

정작 <추노> 18회를 통해 '교수형에 처해져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 결정적 한 방 날려서 대길을 구해준 사람'은 대길을 구해준다고 큰 소리 뻥뻥 쳤던 천지호가 아니라 송태하(오지호)였다. 청나라 용골단 일원이랑 같이 도망가다가 잠시 멈춰 서서, 칼을 던져 대길이 매달려 있던 밧줄을 끊어 내었던... 물론 그 이후에 천지호(성동일)가 의식을 잃은 대길(장혁)에게 심폐 소생술을 실시하여 살려내긴 했지만, '송태하의 그 결정적 한 방' 없이 밧줄 끊어지는 시간이 지연되었더라면 무의미한 행위에 불과하다.

이 쯤에서 내가 궁금한 것은.. 천지호는 위기에 처한 대길을 구해준다는 약속을 해 놓구선, 왜 '그가 사형 당하는 날 그것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는가..?'이다. 천지호(성동일)는 정말, 그 날 옷 한 벌(위장하기 위한 빨간 포졸옷)을 입고 나타난 것 외에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나왔다.


하다못해 대길이 교수형 당하니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휴대용
'이라고 소지하고 있었어야 할텐데.. 그런 사소한 준비도 안하고 온 채, 무식하게 이빨로 대길이 매달려 있던 밧줄을 끊으려는 황당 헤프닝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 날 결과적으로 대길(장혁)을 구하는 데 일조를 한 무리의 사내들은 알고 보니 송태하(오지호)를 구하러 온 청나라 용골대의 부하들이었는데, 천지호는 그들이 등장할지 미리 모르고 있었던 상태였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자기가 키운 애들 중 하나 남은 대길을 구해주겠다 말했던 천지호는 정작 대길을 구할 만한 '실질적인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나선 것이었다. 그 날 청나라 용골대 수하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대길을 구하겠다고 나선 천지호까지 세트로 골로 갔을 가능성 농후하다. 결국 용골대 일당이 나타나서 천지호(성동일)가 무사히 대길(장혁)을 사형장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었지만... 그런데~ 그렇담, 둘 다 살아야 될 것 아닌가..? 자칫 골로 갈 수도 있었던 천지호와 대길이 용골대파의 등장으로 인해 무사히 탈출했으니 말이다. 헌데, 그 바로 다음 장면에서 천지호는 허무하게시리 대길이도 피해 간 '이름 없는 포졸의 화살을 한 방' 맞고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

옷만 한 벌 해 입으면 대길이를 구할 줄 알았던 허술한 지호씨


극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극을 보는 입장에서는 그 설정이 굉장히 허무하게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그리 될 거였으면, 애초에 '천지호 캐릭터가 향후에 굉장히 큰 일을 낼 것 같은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극 초반부터 '살기 어린 눈빛'으로 '똘기 & 광기 충만한 행동'을 선보이며, 그 다음에 이어질 회차들에서 뭔가 단단히 한 건 할 것 같았던 천지호가 막상 다 된 밥에 재 빠트리는 것처럼 무명의 병졸 화살 한 방에 죽어 나가는 장면을 보니 자동적으로 허무감이 밀려왔다. 어쨌든 '천지호' 역의 성동일 연기는 참 대단했다 싶고, 장혁(대길 역할) 하고의 호흡도 무척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수목극 <추노>에서 번번히 조연 캐릭터들을 너무 급작스럽게, 허무하게, 무의미하게 죽여버리는 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아직 분량이 좀 남아있건만, 최근 회에서의 천지호(성동일) 캐릭터도 그렇고 이 드라마는 극 초반부부터 멀쩡히 잘 활동하고 있던 등장 인물을 순식간에 보내 버리는 살인쇼를 자주 선보여 왔다. 어느 지점부턴가 (보는 입장에서) 매 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조금이라도 정 들었던 극 중 등장 인물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해야 하는 사극'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 쯤 되면, 드라마 제목을 <추노>라고 쓰고 <추모>라고 읽어야 할 판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황철웅(이종혁)이란 인물은 '커피 믹스 끝부분으로 설탕 조절'하듯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로도 '얘는 죽일 놈~ 쟤는 살릴 놈~' 식으로 생사를 가를 수 있는 것인지, 황철웅의 그 무지막지한 칼침을 맞고도 왕손이(김지석)와 최장군(한정수)은 죽지 않고 용케 살아났다.


조연 등장 인물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는 추모 사극 <추노>에서, 그나마 대길이 삼총사의 일원이라고 왕손이와 최장군 캐릭터는 '
특별 서비스'로 살려준 것일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18회에서 벌써 하차한 천지호(성동일) 언니의 죽음은 여전히 안타깝고 추모해야 할 일이다.. '시시때때로 추모해야 하는 사극 추노'에서 다음 타자는 과연 누구일까~?

메인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주인공'이니까 극이 끝나는 날까지 당연히 나와야 되겠지만, 혹시 이 드라마 '마지막회'에 가선 주인공 캐릭터도 죄다 죽여 버리는 게 아닐런지...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극의 큰 흐름에 방해될 것 같지 않은 인물을 극 초반부부터 매 회 너무 심하게, 급작스럽게, 스스럼 없이 다 정리하고 죽여 버리는 패턴을 반복해 왔던 것은 드라마 <추노>의 큰 결점이 아닐까 한다. 이 드라마가 앞으론 사람 생명을 좀 중히 여기는 자세를 보여주었음 하는 바람이다..

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