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에서

신화판 '사랑과 전쟁', 비너스와 마르스

타라 2013. 3. 20. 19:43
오래 전, 우리 나라 순정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봤을 때 그 안에 나오는 전쟁의 신 '에일레스(마르스)'에게 큰 매력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막내 '레 샤르휘나'의 운명적 상대로 나온 남자였는데, 둘이 뭔가 언발란스해 보이고 안 어울릴 듯 하면서 묘하게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커플'이었다.

'레 샤르휘나' & 전쟁의 신 '에일레스(마르스)'

본 지 오래 되어서 구체적인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나왔던 '레 샤르휘나'와 '에일레스'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무척 강렬한 캐릭터로 남아 있다. 꽤나 므훗한 덩치 차이 하며, 개성 넘치는 그들의 성격 & 서로 엮이던 여러 일화들은 해당 작품 안에 나온 여느 등장 인물들에 비해, 나로 하여금 큰 매력을 느끼게끔 만들었다.

약간 판타지적인 성격이 있었던 <아르미안의 네 딸들>엔 '정령'이나 '신' 같은 존재도 많이 나왔었는데, 그 만화만 봤을 때에는 '아, 전쟁의 신 마르스(에일레스=아레스) 정말 멋지다! 완전 매력남~' 이런 생각이 들었으나, 정작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은 그리 멋지지 않다.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렸던 서양 화가들의 화폭에 담긴 '마르스(에일레스)' 신은 주로 불륜 상대였던 '비너스(아프로디테)'와 세트로 등장하곤 한다. 당시의 비너스는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와 혼인 관계에 있던 유부녀로, 전쟁의 신 '마르스(아레스)'와는 몰래 만나는 부적절한 사이였다.

Luca Giordano의 그림 '비너스와 마르스'(그 와중에, 엄청 앙증맞고 귀여워 보이는
중앙부 하단에 잠들어 있는 '오동통아기 천사'는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


뭐, 따지고 보면 비너스도 좀 불쌍하다. 미의 여신 '비너스'는 그 어떤 남자라도 반할 만큼 아름답고 연애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었는데, 제우스 신이 그런 그녀를 '추남'에다가 '절름발이'이기까지 한 불 & 대장간의 신 '불카누스'와 짝지워 주었다.(절세 미녀와 추남의 만남~) 불카누스가 뛰어난 발명 능력과 기술을 갖고 있었기에, 그의 재능이 필요했던 올림푸스 신들이 불카누스를 스카웃할 목적으로 '절세 미녀'와 결혼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비너스가 그 결혼의 희생양이 된 셈..

추남이라고 남편감으로 무조건 안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두 '인기도 많고 여신들 중에서 미모 순위 탑 쓰리(Top 3) 안에 드는 비너스'를 인기 없는 추남과 결혼시켜 버린 건 모양새가 좀 그렇다. 게다가, 불카누스는 대장간 일로 너무 바빠서 아내인 비너스에게 크게 신경 써주지 못했다고 한다.

하여, 안 그래도 인물 좋고 끼 많던 '비너스(Venus)'는 전쟁의 신 '마르스(Mars)'와 바람이 났고 그들의 불륜 관계를 눈치 챈 주변신이 비너스 남편인 '불카누스'에게 그 사실을 일러 바쳤다. 열 받은 불카누스(Vulcanus)는 몇날 며칠 고민하다가 가늘게 늘인 청동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을 만들어 낸 뒤 침실에다가 그것을 설치하였다. 그 후 불카누스는 아내 비너스에게 오랫동안 집을 비운다고 뻥을 쳤고, 그 말을 믿은 비너스는 남편과 자신의 침대로 마르스를 불러들여 쾌락을 즐겼다.

Luca Giordano의 그림 '남편에게 딱 걸린 비너스와 정부 마르스'

바로 그 때 불카누스가 들이닥쳤고, 이에 비너스의 정부(情夫) 마르스가 급히 도망가려 했으나 '불카누스가 쳐 놓은 그물'에 걸려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 손재주가 많은 대장장이 신 불카누스(Vulcanus)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로 그 '불륜 현장'을 제대로 덥치게 되었으며, 아내의 배신에 치를 떨던 그는 곧 올림푸스 신들을 불러다가 자기 부인 & 부인의 남자가 저지른 '간통 현장'을 공개해 버렸다.

덕분에 '비너스'와 '마르스'는 신들의 놀림거리가 되었고, 다수의 서양 화가들이 이것을 소재로 한 그림을 남긴 바 있다. 조직의 이득을 위해 '원치 않았던 절름발이 추남'과 결혼해야 했던 '절세 미인 비너스', 그의 '잘생긴 정부(情夫)'와 남편에 얽힌 삼각 관계 & 아내의 불륜 현장을 덮친 '남편의 복수' 등.. 이들의 치정에 얽힌 복잡한 가정사를 보니, 신화판 <사랑과 전쟁>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순정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나오는 '전쟁의 신 마르스(에일레스=마르스)'는 아주 멋지지만, <로마 신화>에 나오는 그는 비너스(Venus)의 남편 불카누스(Vulcanus)에 비해 키도 크고 좀 잘생기긴 했으나 그리 멋진 남자는 아니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은 크게 능력도 없고 단순 무식 & 난폭한 캐릭터에 가깝다. 마르스(Mars)가 워낙에 성질이 더러워서, 신들 사이에서도 은근 왕따였다고 한다.

Jacques-Louis David의 그림 '비너스와 마르스'


하지만, 절름발이 추남인 남편과 같이 살던 '비너스' 입장에선 그런 '마르스'가 못생긴 남편에 비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을지 모른다. 둘이서는 나름 짝짝꿍이 잘 맞았던 모양~ 결국 그 '불륜 관계'가 뽀록나긴 했지만, 비너스(아프로디테)는 '마르스(아레스)'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았으며 정식 결혼한 남편인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 사이에선 자식을 얻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비록 신들의 놀림거리가 되긴 했으나, 미의 여신 비너스(Venus)와 전쟁의 신 마르스(Mars)는 '좋은 외모'를 갖고 태어났으며 마음껏 '사랑'이라도 해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꽤 괜찮은 '능력'을 갖췄으며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신부로 맞이했음에도 부인한테 별로 사랑도 못 받고 '추남'으로 살아가야 했던 불카누스(Vulcanus)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꽤 짠하다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절세 미인'에 최고의 '인기녀'였으나 원치 않은 상대와 결혼해야 했던 비너스(Venus)도 좀 안된 캐릭터이다. 그래두 '불륜은 곤란하다~'는 교훈을 주는 이들인 걸까..? 아님, 인간들이 그러하듯 <고대 신화> 속 신들의 세계에서도 '잘난 이들은 나름 잘난 값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