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에서

그림 실력으로 온 유럽을 누빈 여성 화가, 비제 르브룅

타라 2014. 3. 12. 20:17
이제껏 중세나 근세 시대의 화가들에 대해 많은 포스팅을 했지만, 대부분이 남자 화가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에 여성 화가가 없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찾아보면 유능한 여성 화가들도 분명 존재하는데, 시대적인 제약에 의해 남자들처럼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힘들었을 따름이다.

(픽션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 원작의) 국내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도 주인공 신윤복(문근영)은 해당 관청이나 교육 기관에 여자는 받아주지 않기에 일부러 남자로 위장해서 살지 않았는가-(but, 신윤복이 '여자'로 나오는 건 소설 & 드라마적인 상상력에 의한 것이고, 실제론 '남자'였을 가능성 농후함)

여류 화가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르 브룅


서양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시집 가서 '출산 활동'하기 바빠 '예술적 창작 활동'에 몰두하는 미술가로서의 길이 쉽게 열리지는 않는 편이었다. 그 와중에, 성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름을 날린 여성 화가들도 몇 있었다. 17~18세기에 활동했던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화가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르 브룅(Elisabeth Louise Vigee-Le Brun)'도 그 중 한 명이다.

화가인 아버지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은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르 브룅(1755~1842)은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어머니가 부유한 보석상과 재혼한 뒤로 그림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으며 15세 때부터 직업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화가 치고는 미모도 상당한데, 사람들에게 호감 주는 미모와 특유의 사교적인 성격으로 초상화를 의뢰했던 당시 귀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 브룅의 자화상

렇게 명성을 쌓아가던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브룅(Elisabeth Louise Vigee-Le Brun)은 24세 때 베르사유 궁전에 초대되었고,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왕비의 총애를 받던 그녀는 왕실 화가로서 꾸준히 여왕과 왕실 자녀들, 그 친족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비제-르 브룅'과 '마리 앙뚜와네뜨 왕비'는 같은 1755년생으로, 동갑내기 여성들이었다. 그 둘 사이엔 왕비의 얼굴을 감히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신분 차이'가 존재했지만, 비제 르브룅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 마리 앙뚜아네뜨 왕비와 그녀는 곧 사적인 얘기도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비제 르 브룅이 그린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1783년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브룅은 다른 여성 화가와 함께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Academie Royale de Peinture et de Sculpture)의 회원이 되었는데, 당시 이 아카데미의 회원은 모두 남성이었고 2명의 여성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맨 처음엔 아카데미 측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지만, 마리 앙뚜아네뜨 왕비의 입김으로 무사히 회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그 때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는 처형되었다. 당시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의 총애를 받던 궁정 화가 비제 르브룅은 프랑스에서 도망쳐 헝가리, 러시아, 이탈리아 등지를 돌며 화가로서 지속적인 활동을 펼쳤다.

[ 여성 화가 '비제 르 브룅'이 그린 초상화들 ]




비제 르브룅(Vigee Le Brun)러시아에서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이탈리아의 로마에서도 화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세계 각국의 유명인들을 그린 600여 점의 초상화와 200여 점의 풍경화를 그렸는데, 당시엔 최고로 성공한 '여성 화가'가 아니었나 싶다. 비제 르브룅은 나폴레옹의 집권 시기에 다시 조국인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고, 프랑스 외에도 유럽 여러 나라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말년엔 자신의 '회고록'을 출판하기도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39세의 나이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비제 르 브룅은 그렇게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하며 무려 88세까지 살았다. 더 영예로운 신분으로 태어난 건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이지만, 두 동갑내기 중 보다 영양가 있는 삶을 살다 간 것은 당시의 '왕비' 보다 상대적으로 비천한 신분이었던 '화가' 비제 르 브룅(Vigee-Le Brun) 쪽이었다. 그런 걸 보면, 신분제 사회에서조차 '신분의 높고 낮음'과 '삶의 질' 사이엔 별다른 상관 관계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