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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갈망한 유럽의 개미 허리 황후 : 엘리자베트

타라 2010. 9. 16. 22:21

Elisabeth Amalie Eugenie(1837~1898)
 
엘리자베트 아말리에 유제니(Elisabeth Amalie Eugenie)는 당시 유럽의 왕가에선 나름 미녀로 알려진 19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Habsburg) 황가의 황후이다. 오스트리아의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부인(왕비/황후)이었던 엘리자베트(Elisabeth)의 애칭은 씨씨(Sissi) or 시씨로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트(엘리자베스)는 1837년 바이에른 왕국 뮌헨에서 '바이에른 공작인 막시밀리안 & 바이에른 공주인 루도비카'의 딸(차녀)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상류 사회의 예절을 배우면서 자라난 그녀는 상냥하면서도 모험심이 강하고, 사내 아이같은 기질이 있는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였다.
 
제와의 결혼 : 언니를 대신하여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되다

원래 그녀의 어머니는 '엘리자베트의 언니인 헬레나'와 그녀들의 이종 사촌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황가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를 결혼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 날 '언니의 맞선 자리에 따라나온 엘리자베트'를 보고 반한 요제프 황제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언니 대신 그녀를 왕후로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보니, 유럽 '최고 미모'의 황후 치곤
'엘리자베트'의 외모도 다소 평범한 듯...;;

하지만, 1854년 우리 나이로 18세 때 프란츠 요제프 황제(Franz Joseph I)와 결혼하여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된 엘리자베트(Elisabeth)의 황실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엘리자베트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엄격한 궁 생활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를 초월한 고부 간의 갈등? : 시어머니로 인한 황후의 스트레스

감성적이고, 자유스러운 성격의 엘리자베트는 황실의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여 답답하고 지루한 나날 속에 매일 승마를 즐기며 생활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이모'이자 '시어머니'인 소피 대공비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으며, 자녀들에 대한 양육권도 시어머니에게 빼앗겼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딸 소피는 엘리자벳의 부주의로 2살 때 곧 죽어버렸으며, 황위를 이을 아들이라 생각했던 둘째는 아들이 아닌 딸이었다. 1958년 그녀는 셋째인 '장남 루돌프'를 출산하게 되며, 그는 곧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된다.

당시 화가의 뽀샵질로 실물보다 조금 미화되어 나온 엘리자베트의 초상화(그림)

 
엘리자베트의 아이들은 모두 시어머니인 소피 대공비의 손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그녀가 직접 키울수 있었던 건 막내딸인 발레리 뿐이었다. 엘리자베트 황후는 날씬한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 극도의 소식을 하고 각종 요법을 동원하는 등 늘 외모를 가꾸는 일에 몰두하였고, 답답한 황실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걸 좋아했다.

자유를 갈망한 잦은 유럽 여행, '오스트리아' 황후의 '헝가리'에 대한 사랑

엄격한 황실 생활을 견디지 못해 자주 여행을 다녔던 엘리자베트(시씨)는 점점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게 되었고, 자식들에겐 큰 애정을 쏟아붓지 못했다. 그녀는 '헝가리'란 나라를 유난히 좋아해서 오스트리아 빈의 황궁보다는 헝가리에서 더 많은 나날을 보내기도 하였다. 

헝가리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씨씨(엘리자베트) 황후는 헝가리어를 직접 배우고, 헝가리에 관련한 외교 문제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처리하는 등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왕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그 덕분에 씨씨와 요제프 황제는 결국 헝가리의 왕권을 얻어낼 수 있었으며, 그녀는 대체적으로 헝가리 민족들에겐 좋은 평가를 받았다.

초상화 보다는 좀 못하지만, 그래두 '갸름하고 작은 얼굴'에 '개미 허리'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를 지닌 우아한 자연적 훈녀 엘리자베트 황후(사진)


엘리자베트 황후는 '헝가리'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헝가리의 왕위 계승권을 아들인 루돌프 프란츠 칼 요제프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훗날 루돌프(Rudolf) 황태자는 마리 베체라(Maria Vetsera)를 꼬셔서 동반 자살해 버렸다. 크게 상심한 그녀는 막내 딸 발레리와 함께 유럽을 떠돌게 되었다.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의 암살에 의한 엘리자베트 황후의 최후 

루돌프 황태자의 죽음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황위 계승권은 끊기게 되었으며, 결국 '프란츠 황제의 조카'가 합스부르크 황가를 이어 나가게 된다.(나중에 이 사람이 사라예보에서 총 맞고 죽으면서, 세계 제 1차 대전이 발발하기도 하였다.) 엘리자베트가 스위스를 여행할 당시, 러시아의 사회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1898년) 엘리자베트 황후는 안전을 위해 제노바에 머물렀지만, 호텔을 나설 때 마침 '신문을 통해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스위스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된 아나키스트 루케니의 칼에 찔려 사망하게 된다. 원래 루케니(Lucheni)가 암살하려던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원하던 그 사람을 찾지 못하여 결국 '어차피 자기는 일도 전혀 안하면서 나라 재산으로 잘 먹고 잘 사는 황족(잉여 인간)인데, 뭐~' 하면서 그 사람 대신 엘리자베트 황후를 암살했다는 얘기가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엘리자베트 황후는 성형을 안한 천연 미인이었으며, 계속해서 19~20인치 정도를 유지하는 등 유럽 왕실녀들 중에선 허리가 가장 가는 '개미 허리'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녀는 꾸준히 좋은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피부 관리와 날씬한 몸매 유지에 각종 요법을 동원하면서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나이 들어선 '부채'로 주름살을 가렸으며, 외출 시에는 항상 '양산'을 쓰고 다녔다. 

후대의 오스트리아인들에 의해 '키치화' 된 황가의 대표 미인

(오스트리아엔, 유럽의 다른 나라나 우리 나라처럼 '제 한몸 다 바쳐가며 나라를 구했거나 빼어난 업적을 쌓은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 별로 없는지) 오늘날 '엘리자베트' 황후의 초상화가 새겨진 '기념품'들이 오스트리아의 많은 샵에서 판매되고 있을 정도로, 별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것 없이 여행만 자주 다녔던 그녀는 현재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한 인물로 남아 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엘리자베트 황후의 동상을 만들고, 세월이 많이 지난 아직까지도 엘리자베트 관련 사진을 그 나라 기념품에 많이 박아넣는 건 아마 그 '미모'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개인적으로 (눈이 높은 관계로) 그 이후에 나온 오드리 헵번, 비비안 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지나 롤로브리지다, 마릴린 먼로, 그레이스 켈리, 올리비아 핫세, 브룩 쉴즈 등등 '헐리우드 여배우'나 '요즘 미녀'들 중엔 그보다 훨씬 더 예쁘장한 여자들도 많기에 ('초상화' 아닌) 꽤 많이 찍힌 그녀의 '사진'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본 결과, 엘리자베트(Elisabeth)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미인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좀 우아하고, 단정하게 생긴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은 '자연 미인' 치고는 그 나름대로 수려한 외모였던 것 같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인들은 대체적으로 외모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엔 대부분 '근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종자 개량이 안되어서)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했었다. 그렇게,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합스부르크 황가의 여자들 중에서 '가느다랗고 오똑한 코, 얇은 입술에 단정한 입매, 쌍꺼풀 진 눈과 갸름하고 작은 얼굴' 등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에 우아한 분위기'를 지닌 독일 바바리아 출신의 엘리자베트 황후는 (헐리우드의 고전 여배우들처럼, 그렇게 눈에 확 띄게 예쁘진 않더라도) 당시로선 꽤 미인축에 들었나 보다.

화려한 배경 뒤에 숨어 있던 황후의 답답하고 고독한 삶

그렇게.. 나름의 미모로 첫눈에 오스트리아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의 마음을 사로잡아 황후가 된 그녀였지만, 결국 엄격한 황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자유'를 선언하고 남편과 자식을 내팽켜친 채 평생 유럽 전역을 떠돌면서 고독하게 보내는 등 엘리자베트 황후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또한.. 하나 있던 아들인 루돌프 황태자는 자살하고, 여행하던 중에 운 나쁘게 '다른 사람 대타'로 무정부주의자 루케니(Lucheni)의 칼에 찔려 죽는 등 '당시 유럽 황가에서 알아주는 미인'이었다는 시씨=엘리자베트(Elisabeth) 황후는 그 나름대로 꽤나 굴곡 있는 삶을 살았던 여인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