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6회까지 방영된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근래 드라마들 중 보기 드물게 '대본, 연출, 연기, BGM(배경 음악), 드라마 촬영지를 포함한 영상미' 등 전반적인 면에서 만족도가 무척 높은 드라마이다. 물론 세부적인 면에서 논리적으로 좀 안맞는 대목도 눈에 띄지만,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그 모든 걸 상쇄시켜줄 만한 다른 미덕들로 가득차 있으며, 보는 이들을 확확 몰입시키는 힘 또한 뛰어난 극이 아닐까 한다. 이 드라마는 매 회 후반부에 나오는 엔딩 장면도 무척이나 강렬하다.

그 중에서도, 5회 말미에 나온 '4자 대면씬'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구미호 모녀를 결정적인 위험에 빠뜨리는 최종 대마왕 만신(천호진)과 구미호(한은정)가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이었는데, 이 박수무당 '만신'은 극을 보면 볼수록 '그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이 드라마의 중심엔 역시 제목에 나오는 '구미호' 모녀가 있으며, 조용히 살고자 하나 당췌 주변 사람들이 가만 놔두질 않아 많은 수난을 겪는 이들 모녀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오리지널 구미호인 구산댁(한은정)과 반인반수의 리틀 구미호 연이(김유정)는 보은(은혜를 갚는 일)의 미덕을 중시 여기며, 웬만해선 사람들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는 착한 여우들이다.

하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들을 이용하려는 인간과 그 측근들로 인해 구산댁 모녀는 툭 하면 생명의 위협을 받고,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이 극 안에 나온 '구미호(한은정) 최초의 비극'은 <10년을 기다려 본격적인 인간 되기 하루 전날, 남편인 연이 아빠(정은표)가 천기누설을 하는 바람에 그 모든 기다림이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리고 결국 '인간'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녀가 인간인 남편을 처음 만난 날 약속했던 것처럼 '그가 구미호를 만났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하면 안된다~'는 요건을 10년 동안 지켜야 이 구미호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오랜 세월 동안 그녀와 같이 산 남편(정은표)이 '10여 년 전 구미호와 한 그 약속'을 까먹어 버리고, 막판에 입을 함부로 놀리는 바람에 이 여주인공(한은정)의 희망 사항이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 번 쯤은 그런 가정을 해볼 만도 하다. '구미호가 인간이 되는 데에 천기누설을 하면 안된다는 조건이 들어가 있다면, 차라리 말 못하는 벙어리 남자랑 결혼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의도적인 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 드라마 안에도 '벙어리 캐릭터'가 나온다.


이 극에 나오는 벙어리 천우(서준영)는 구산댁 모녀가 머무르는 윤두수(장현성)네에서 그의 '오른팔 노릇을 하는 하인 오서방(김규철)'의 아들이다. 이제껏 세상과 담 쌓고 살았다는 이 벙어리 총각은 '이 집에 흘러 들어온 젊은 애 엄마 구산댁(한은정)'에게 마음을 빼앗겨, 남몰래 그녀를 열렬히 흠모 중이다.

구산댁 모녀가 위기에 처해질 때 온 몸을 던져가며 도와주는 이 벙어리 천우를 볼 때마다 '10여 년 전.. 구미호가 진작에 그 동굴에서 (굳이 천우가 아니더라도) 벙어리 총각을 만나서 결혼했다면, 본인의 바람대로 이미 인간 되고도 남았을텐데~ 그렇담, 굳이 이 마을로 흘러들어와 개고생 하는 일은 없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인간이 되기를 바랐던 구미호가 10년을 무사히 채워야 했던 그 인간 남편이 '말 못하는 벙어리'였다면, 천기누설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을테니 말이다.

물론.. 그랬다면 '현재 진행 중인 구미호 모녀의 수난사'는 이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매 회 이 모녀가 당하는 스펙터클하고 버라이어티한 고난이 하도 안쓰러워서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KBS 월화 드라마 <구미호 : 여우누이뎐>에서 벙어리 총각 '천우' 역으로 나오는 서준영은 작년(2009년)에 방영되었던 MBC 납량 특집극 <혼>에서 이서진(신류 역) 아역으로 나왔던 배우이다. 이 드라마에선 긴 머리 스타일에다 수염을 달고 나와서인지, 그 때랑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구미호 : 여우누이뎐>에선 극 중 천우 캐릭터가 '벙어리' 설정인지라, 이 역을 맡은 서준영의 목소리는 들어볼 수 없고 눈빛과 몸짓 & 분위기로만 연기한다. 어린 학생 같은 분위기를 풍겼던 작년과는 달리 이 드라마에선 뭔가 아련하고 애잔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구미호(한은정)를 연모하는 이 벙어리 천우 총각(서준영)은 연이(김유정)의 정인인 정규 도령(이민호)과 더불어 훈훈함 담당이 아닐까 한다. 갈수록 눈빛이나 분위기가 깊어지는 이들 '아역 출신 연기자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꽤나 반가운 일이다..

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