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토크

마테 죽음 & 프리츠 루돌프-그림자는 길어지고

타라 2010. 4. 23. 21:57
독일어로 불리워지는 오스트리아 뮤지컬 <엘리자베트(Elisabeth)> CD를 듣다 보면, 가장 먼저 '이 노랜 참 좋구나~' 느낌으로 귀에 익는 곡이 'Die Schatten Werden Langer/그림자는 길어지고'이다.(사람들마다 좀 다르긴 하겠지만...) 극 중 '죽음(Tod)'과 '루돌프(Rudolf)'가 함께 부르며, 죽음이 루돌프 황태자에게 "이제 때가 되었다. 한 나라의 황태자인 너, 너만의 방식으로 권력을 잡으라. 황제인 너희 아버지께 반항하라, 반항하라~"  하면서 무력한 루돌프를 뒤에서 추동질하는 장면에 나오는 노래이다.

그러다가.. 나중엔 '빼도 박도 못하게 황제 아빠 눈 밖에 난 루돌프 황태자'가 방황하다가 결국 '죽음'의 조종에 의해 자결한다는 스토리~ 이 뮤지컬 안에 나오는 Tod는 Rudof 어린 시절부터 '친구'니 뭐니 하면서 다정하게 굴다가, 궁극에는 젊은 루돌프를 파멸로 이끄는 '옴므 파탈 죽음'인 셈이다.


이 작품 안에 나오는 '죽음' 캐릭터라면 오스트리아 빈 초연(1992년) 때부터 활약했던 우베 크뢰거(Uwe Kroger)가 워낙에 유명하고 포스도 대단하지만, 요즘 들어선 의외로 <엘리자베트> 2005' DVD 버전에 나오는 '마테 카마라스(Mate Kamaras) 죽음 & 프리츠 슈미트(Fritz Schmid) 루돌프 황태자' 조합의 'Die Schatten Werden Langer'도 분위기가 꽤 괜찮아 보인다.

<엘리자베트> 공연의 오리지널 '죽음(Tod-토트)'인 우베 크뢰거(Uwe Kroger)의 경우엔, 그가 젊은 나이에 연기했던 오스트리아 빈 초연에서의 토트는 분위기가 꽤 그럴싸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 독일 쪽에서 했던 공연 모습은 (나잇살 탓인지) 몸도 많이 불었고 어딘지 모르게 '배 나온 중년'의 포스가 느껴지는지라..;; 거물급 배우인 우베 크뢰거가 부르는 '노래' & 그가 원래 지니고 있는 '카리스마적 면모'는 있지만, 최근 버전으로 올수록 배역에 딱 피트되는 <죽음 비주얼>이 그렇게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이미지'에 관해 공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형상화 된 '죽음(Death)'은 절대 후덕하거나 살 찐 이미지가 아니다.(다카라즈카 <엘리자베트> 역대 죽음 중에서, 몸집이나 살집이 좀 있는 '죽음' 배우들에선 내가 별다른 삘을 못 느끼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죽음'이란 키워드 자체가 앙상하거나 삭막하고, 깡마른 이미지에 가깝다. '죽음(Tod)'은 절대 살 붙은 이미지하곤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후덕한 이미지'는 '죽음' 캐릭터가 아니라 '풍요로운 대지(여)신'에나 어울릴 법한 비주얼~

사람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죽음'이라 해서 '(소도 때려잡을 정도의) 기골이 장대하고, 힘세 보이고, 덩치 커 보이는 강인한 남성적인 모습'이 아니라 <몸집이 살곰살곰 가볍고, 건조하고, 섬세하고, 슬림하면서도 탁월한 분위기나 포스가 있어야 되는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엘리자베트> 다카라즈카 버전에서의 2002' 하나구미(하루노 스미레), 2007' 유키구미(미즈 나츠키) 공연에서의 '죽음'은 비주얼적인 차원에서 해당 캐릭터와의 씽크로율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생김새 자체가 중성적이면서, 적당히 슬림한 몸매에 특유의 예민한 죽음 포스가 느껴지니...

독일어권 <엘리자베트>로 돌아와서.. '범접할 수 없는 포스' 면에서라면 초연 때의 우베 죽음이 절대적으로 강렬하지만, 2000년대 버전으로 접어들어선 '해당 캐릭터의 외형적인 측면 & 상대 배우와의 궁합 & 연출' 차원에서 2005' 빈 공연 실황 DVD에 나오는 마테 죽음 & 프리츠 루돌프 조합의 '그림자송(Die Schatten Werden Langer)'이 상대적으로 결코 나쁘지 않은 버전이라 사료된다.(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좋은 버전은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2001' 독일 에쎈 공연 이후의 이 장면 연출은 많이 얌전해졌던데, 2005' 오스트리아 빈 버전에선 여전히 '죽음'이 '루돌프 황태자'를 빡세게 굴리는 편이다.

마테 카마라스(죽음) & 프리츠 슈미트(루돌프) - 그림자는 길어지고..

이 곡 자체가 <'죽음'이 운명의 신인 양 '심약하고 병약한 루돌프'를 막 조종하려 들면서 휘두르는 장면>에 나오는 노래이다. 이런 장면적 특성과 이 때 쓰여지는 안무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이 뮤지컬에 나오는 '루돌프 황태자'는 '죽음' 역의 배우보다 가 작은 배우로 캐스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이 버전에 나오는 '마테 죽음'이 다른 '키 큰 루돌프 역의 배우'랑 저 춤을 추는 걸 봤는데, 루돌프의 기럭지가 너무 기니까 해당 안무의 매력이 전혀 살지 않으면서 뒤에서 그를 휘두르는 절대자 죽음이 너무 버거워 보였음~ ;; 그에 따라, 무시무시한 절대자 역할을 해야 할 '죽음 포스'가 상대적으로 팍 죽어 버렸던...)

뮤지컬 <엘리자베트> 2막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성인 루돌프는 이 작품 속에서 조연에 해당하는 캐릭터이고 '죽음(Tod)'은 남자 주인공 캐릭터이니, '루돌프' 역을 외형적으로 너무 멋지기만 한 배우로 캐스팅하여 상대적으로 '죽음' 포스를 죽게 만들면 곤란하다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2005' 빈 공연 버전의 '죽음-루돌프'는 그럭저럭 무난한 조합에 속한다.

마테 카마라스(Mate Kamaras)가 연기한 이 캐릭터가 비주얼적으로 이상적인 '건조해 보이고 깡마른 죽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시에 젊은 나잇대였던 그가) 살쪄 보이거나 둔한 이미지도 아니어서, 외형적으로 크게 나쁘진 않은 죽음이다. 거기다.. 이 배우의 마스크 자체는 눈에 딱 띄게 좋은 편이어서, '형상화된 이미지에서 이미 치명적인 매력을 보여야 할 죽음' 캐릭터로 영 동떨어지지는 않은 분위기이다. 단, 오스트리아판 죽음은 분장을 너무 안하는 데다가 그럴듯한 조명도 안 받쳐줘서 '죽음'이나 '일반 인간'이나 별 차이 없게 보인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특정한 캐릭터들이 나오는 '뮤지컬'이 '다큐멘터리'는 아니기 때문에 '실존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하여 그 인물과 외형적인 모습을 완전히 똑같이 할 필요는 없고, 해당 인물이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대략적인 특징'만 잘 잡아주면 된다 생각한다. 그리고, 각 캐릭터(배우)들 간의 균형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이 극 안에 나오는 프리츠 슈미트(Fritz Schmid)의 루돌프는 마테 카마라스(Mate Kamaras)의 죽음과 붙여놓기에 나쁘지 않은 루돌프이다.

실제 나이는 프리츠 쪽이 더 많지만, 그가 마테 죽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가 작기 때문에 이 'Die Schatten Werden Langer(그림자..)' 장면에서 제대로 죽음(루돌프를 조종하는 절대자) 포스에 휘둘려 주신다. 해당 캐릭터가 지녀야 될 특징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 프리츠 황태자는 '병약하고, 심약하고, 약간 맛이 간 듯한 불쌍한 이상주의자 루돌프' 이미지로서 그닥 나쁘지 않은 분위기이다.


이 뮤지컬에서 발군의 죽음인 우베가 이 곡을 소화하는 방식과 마테가
소화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 2005' DVD 버전에서 마테 토트가 'Die Schatten Werden Langer'를 부를 때 특정 부분에서의 몇 소절이 꽤 인상적이었는데, 이 대목에 묘한 중독성 있는 듯하다. 앞 소절에서도 이 '그림자송'을 힘 있고 딱딱하게 부르는 '우베 죽음'과는 다르게, '마테 죽음'은
은근히 색기 있게 부르기도 한다.(약간 끈적거리는 분위기..)

이 2005' 빈 버전에서 '어린 루돌프 & 죽음', '성인 루돌프 & 죽음' 등 루돌프 황태자와 죽음 조합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다만.. 실제로 10살 차이 나는 '엘리자베트(Maya Hakvoort) & 죽음(Mate Kamaras)' 조합은 너무나 테러블하다는 것- 초연 때의 '피아 다우스 엘리자베트 & 우베 크뢰거 죽음'은 동갑이기라도 했지, 남자 쪽이 10여 살 연하남인 '마야 하크포트의 엘리자베트 & 마테 카마라스 죽음' 조합은 인간적으로 좀 심하단 생각이...;; 이 작품의 오리지널 국가인 오스트리아 공연에서 캐스팅을 왜 이런 식으로 붙여 놓았는지, 당췌 이해할 수가 없다.(이야기를 '텍스트'로만 전달하는 소설책이 아닌 이상은 '캐릭터에 들어맞는 배우의 비주얼'이나 '상대 배역과의 외형적 궁합'이 참 중요하거늘...)

일단 '흰 바탕에 까만 글씨의 텍스트형 이야기물'을 벗어난 장르에선 '외형적인 부분'도 참 중요한 것 같은데, 캐스팅 디렉터 & 연출자들에겐 그런 류의 미술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극 전반적으로 마테 카마라스가 연기한 죽음이 썩 마음에 드는 '죽음'은 아니지만, 단일곡인 'Die Schatten Werden Langer(그림자는 길어지고..)'에서 '마테의 죽음'과 '프리츠의 루돌프 황태자'가 자아내는 전반적인 느낌은 다른 버전에 비교하여 꽤 양호한 편이라 사료된다. 이 버전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건 '죽음이 루돌프 황태자에게 끈적이는 분위기로 다가가서 유혹하다가, 결국엔 그를 난폭하게(거칠게) 다루면서 다그치는 대목'이다. 둘 사이의 덩치 차이도 적당해서, '죽음(Mate Kamaras)'이 '루돌프(Fritz Schmid)'를 거침없이 휘두르기엔 딱 좋은 조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