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시작되면서, 주말에 새 드라마들이 첫 선을 보였다. 원래 <보석 비빔밥>을 보던 자리라 M사의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이거 영 몰입이 안된다. 스토리가 재미 있고 없고를 떠나서 화면 쳐다보고 있는 것 자체가 땡기지 않고 적응이 안되었던 탓에 K사의 <거상 김만덕> 쪽으로 틀었는데, 이 드라마 역시 지루하게 느껴지긴 마찬가지- 앞으로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그래두 첫 회면 나름 임팩트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에.. 앞으로 계속 볼지 말지 좀 망설여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S사의 <천만번 사랑해>는 갑자기 난데없이 '불치병' 이야기가 나오고부턴 왠지 보기가 싫어졌다. 개인적으로, 불치병 스토리 or 잘 나가다가 주인공이 갑자기 큰 병 걸리는 스토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는 2시간 만에 끝나지만, 기본이 16부에서 길게는 몇 십~백 회까지도 넘어가는 '연속극' 형식으로 진행되는 드라마를 매주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 자체가 너무 고역인지라 주말 8시대 드라마까지 챙겨보지는 않는데, 원래 챙겨 보던 밤 시간대 주말 드라마가 갑자기 허공에 붕 뜬 느낌이다.


M사에서 새로 하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기존의 9시 45분대 드라마와 맥락을 같이 하긴 하지만, 그 바로 직전에 터를 닦아놓은 것이 홈 드라마 형식의 <보석 비빔밥>이었으니 그것과 비슷한 성격의 드라마를 후속작으로 배치해야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그 방송사의 그 시간대에 훈훈하고 접근하기 쉬운 가족극 성격의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180도 성격이 다른 드라마 같은 시간대에 휙 등장해 버리니 뭔가 적응 안되는 느낌이다. 후반부 스토리가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두 전반적으로 재미나게 시청했던 <보석 비빔밥>이 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안 보고 욕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 자체에 편견을 갖고 있는 시청자들도 있는 듯 하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임성한 작가는 그래두 TV 드라마를 꽤 재미나게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특히 일상이 무료한 어르신들(노년층)께는 임성한표 드라마가 나름 어필하는 구석이 있다.('비슷한 성격의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의 어르신들은 상대작인 <그대 웃어요>는 별로 재미없다고 하심..;;) 스토리 진행 과정에 따라 '연장해도 되는 드라마'가 있고, '연장 안 해도 되는 드라마'가 있는데 <보석 비빔밥> 경우엔 너무 심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약간은 연장해도 되는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다. 극 진행 과정을 보면 그런 걸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완급 조절을 해온 것 같은데, 막판의 <보석 비빔밥>은 너무 급 마무리 듯한 느낌이 있기에 말이다..

임성한표 드라마 중 <보고 또 보고>나 <인어 아가씨>의 경우엔 굳이 연장하기 보다는 여주인공이 결혼하는 이야기에서 딱 멈추는 게 적당하고, <하늘이시여>나 <보석 비빔밥> 경우엔 연장을 해도 비교적 무난한 스토리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최근에 종영된 <보석 비빔밥>은 '아직 덜 풀린 듯한 이야기'가 많았음에도 너무 급작스럽게 끝난 분위기이다. 덕분에 루비(소이현), 끝순(최아진) 캐릭터가 좀 이상하게 변질되어서 마무리된 감이 있고, 막판에 찬밥 된 듯한 카일(마이클 블렁크) 이야기는 두고 두고 아쉽다.

이미 끝나 버렸지만, 기존의 <보석 비빔밥>이 만일 이런 이야기로 흘러갔다면 더 훈훈했을 것 같다.. (뒤늦게 들어온 태자는 빼고) 주인공 가정의 4남매 중 첫째 딸 비취(고나은)가 이미 백마 탄 왕자같은 완벽남 영국(이태곤)과 결혼하여 신데렐라가 되어 버렸으니, 굳이 둘째 딸 루비(소이현)까지 그런 신데렐라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그러면 드라마 성격이 너무 가벼워지고 허무맹랑해지니..)

루비를 막판에 '본인이 애초에 재력직업 보구서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의사 병훈(윤종화)'과 결혼시키는 게 아닌, 출가 직전의 카일(마이클)과 연결시키되 이 카일의 집안 배경을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 그냥 '미국의 중산층 가정 or 평범한 집' 아들 정도로 설정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맨 처음에 엄청난
속물이었던 루비(소이현)는 카일(마이클)과의 사이에서 서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든가, 진짜 사랑을 추구하다가 좋은 남편을 얻은 언니 비취(고나은)의 일로 깨달음을 얻어서 '조건을 넘어선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카일은 출가를 포기한 뒤 한국에서 직업을 얻고 자리 잡아서 루비네 부모님을 모시고 나름 열심히, 훈훈하게 사는 그 정도 스토리가 딱 적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평생 고고한 독신으로 살아 온 70세 재력가 사장(서우림)을 굳이 어울리지도 않게(?) 16세나 연하남인 재력 없는 모창 가수 설황도(설운도)와 늦은 나이에 연결시키기 보다는 그 돈으로 사회 사업을 하면서(무려 보수적인 조선 시대 때에도 평생 독신으로 산 거상 김만덕의 경우처럼) 계속 고고하고 우아한 독신으로 남았으면 더 멋졌을 것 같다. 그러면서, 가끔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카일과 루비'를 도와주기도 하고 서로가 계속 왕래하면서 같이 재미나게 지내는 설정으로...

특히 <보석 비빔밥>에서 카일(마이클) 캐릭터는 루비네 할머니들(김영옥, 정혜선)과도 죽이 잘 맞았는데 그런 걸 더 효과적으로 끄집어 냈다면 극이 보다 재미있어졌을 것 같다. 이미 한 번 결혼식장에서 망신살 뻗친 적이 있는 의사 병훈(윤종화)은 두 번째 결혼식까지 그런 식으로 파토내는 것 보다는(동일한 한 사람에게 두 번 씩이나 그런 일이 발생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 ;;) 나중에라도 서로 조건이 맞는 집안의 괜찮은 처자 만나서 잘될 것 같은 암시를 주면서 끝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두 번 씩이나 다른 여자와 결혼할 마음을 먹은 유병훈(윤종화)'을 굳이 루비(소이현)와 결혼시키기 보다는...


지금 스토리에서의 루비는 자신을 2번 씩이나 배신한 의사 병훈을 받아주고 결혼해 버렸기에, 이 드라마 종영 이후
루비 캐릭터에 대해 이런저런 논란이 많이 있었다.
드라마를 조금 연장해서라도 막판에 '카일과 루비의 이야기'를 제대로 그려주고, 루비를 병훈이 아닌 카일과 연결시키는 결말로 갔다면 스토리가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또한, 극 초반에 나와서 한바탕 눈물샘을 자극한 카일(마이클 블렁크) 양어머니(오미희)는 카일의 양모이기도 하지만 영국의 모친인 이태리(홍유진)와 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니 한 번쯤은 더 등장했었어야 했는데.. 결국 그걸로 땡~이어서 제대로 끝내지 못한 듯한 미진한 감이 있었다.
(그 부잣집 사모님이 비행기값이 없어서 한국에 다시 못 나온 건 아니었을테니 말이다..)

<보석 비빔밥> 마지막에 특유의 눈물 열연으로 인해 주역으로 급부상하긴 했지만, 가장 망가지기도 한 게 끝순이(최아진) 캐릭터인데, 이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극 중 끝순이가 자기 엄마 이태리 여사(홍유진)의 치매 사실을 알고 비취(고나은)와 영국(이태곤)의 결혼에 협조할 즈음, 그녀는 분명 호박(이일민)이에게 "오늘부터 너와 난 (연인 사이가 아닌) 베스트 프렌드이자, 사돈일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그 때 이 드라마를 보던 내 주변 시청자들은 '끝순이가 드디어 정신 차리고, 철 들었다'고 했었다.)

헌데.. 그랬던 끝순이를 막판에 '이태리의 죽음 사건'에 이용(?) 할려고 졸지에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끝까지 철 안나는 이상한 애'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 "너와 난 오늘부터 친구 사이이다~"라 했던 그 말을 호박이가 한 게 아니라 끝순이가 한 거였다면, 본인이 한 그 말을 끝까지 번복하지 않고 지켰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 들어갔다고 애가 갑자기 홱 바뀌어 가지고, 본인이 한 그 말을 뒤집고 다시 호박이에게 들이대는.. 그런 설정은 어쩐지 끝순이 캐릭터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드라마 속의 끝순(최아진)과 호박(이일민)은 아직 혼기가 꽉 찬 나이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요즘엔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결혼 적령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는 추세다-) 아직 어린 나잇대 캐릭터였으니.. 굳이 그 둘이 오버스럽게 '결혼 헤프닝'까지 가기 보다는 그냥 계속 친구처럼 잘 지내다가 '나중에 잘될 수도, 혹은 안될 수도 있는 열린 결말' 정도로 마무리 했어도 충분했을 것 같다.

치매 결린 끝순이 엄마 역시, 마지막회에서 그리 허무하게 죽일 필요는 없었다. '드라마 작가'는 비취가 더 나이 들어서 다시 하면 되는 것이고.. 극 중 비취(고나은)가 결혼한 남자는 그냥 '돈 좀 잘 버는 직업'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부잣집 아들'이어서 그 가정의 경우엔 외벌이를 해도 충분한 상황이니, 드라마 쓰는 일은 '그 일을 생계형으로 하는 다른 재능 있는 작가들'에게 양보하고.. 한동안 비취가 가정 주부로 들어앉아 시어머니를 더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이태리 여사(홍유진)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계속 서로를 아끼며 잘 살 것 같은 암시 or 아픈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며 끝내는 결말이 훨씬 깔끔했을 것 같다..

그런 류의 훈훈한 마무리였다면, 난 드라마 <보석 비빔밥>을 더 많이 사랑했을 것 같다. 중반까지의 이야기는 딱 좋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아끼던 비취(고나은) 캐릭터는 더 이상 감정 이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별다른 '삶의 고뇌'도, '자잘한 갈등'도 없는 만사형통의 거리감 느껴지는 인물 되어 버리고.. 나름 철 들었을 것 같았던 쿨한 자세의 끝순이(최아진)는 막판에 다시 호박이(이일민)에게 질척거리다가 엄마 일과 관련하여 한바탕 신파를 찍고 있고...

비취네 부모님(궁상식, 피혜자)보다 더 자식에게 헌신하며 살아온 이태리 여사(홍유진)는 죽을 병 걸린 것도 아닌데, 막판에 허무하게 죽어 버리고.. 루비(소이현)도 막판에 이상한 애 되어 버리고.. 루비와의 스토리가 더 남아있을 것 같았던 카일(마이클 블렁크)은 마지막에 찬밥 되면서, 뭔가 마무리가 제대로 안된 듯한 느낌을 주고... 식으로, 후반부의 <보석 비빔밥> 스토리는 여러 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큰 재미를 주었던 결명자-궁상식 콤비(영옥 할매의 은근한 깜찍함?)

하지만 막상 그 드라마가 끝나고, 당췌 몰입 안되는 다른 드라마들이 시작되니까 은연중에 <보석 비빔밥>이 많이 그리워진다.. 중견 연기자들을 비롯하여, 외국인 카일(마이클 블렁크)과 막내인 끝순이(최아진)까지 선전하는 등 배우들 연기도 꽤 재미있었고 자잘한 재미도 있었던 <보석 비빔밥>이야말로 충분히 연장했어도 되는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는 왜 연장 안해도 되는 드라마는 주구창장 연장했으면서(메인 스토리 다 지나가고 나서도 무의미한 이야기로 극을 질질 끌었던 <보고 또 보고> <인어 아가씨> 같은 드라마), 정작 연장을 해야 스토리가 훨씬 자연스러운 <보석 비빔밥> 같은 드라마는 단 한 회도 연장을 안한 것일까..?

3월에 새로 시작한 밤 시간대 주말 연속극 중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를 보고 있다 보면 어쩐지 전(前) 드라마 <보석 비빔밥>이 그립고, <거상 김만덕>을 보고 있으면 같은 '상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병훈-최완규 콤비의 <상도>가 그리워지니... 한 때는 주말에 볼 거 많다고 즐거워 하던 때가 있었는데, 올 봄의 주말 밤 TV 브라운관엔 이곳 저곳 들여다 봐도 통 마음 둘 곳이 없어서 많이 허전한 느낌이다..


posted by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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