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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웃기는 사극 '추노'-의외의 개그 코드

타라 2010. 2. 13. 07:02
수목극 <추노>는 극 진행에 따라 초반의 기대치에 비해 좀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지만, 아직 절반 이상의 분량이 남아있기 때문에 앞으로라도 뭔가 보여주길 바라는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에 관련하여 이상하게 이런 저런 '논란거리'성 리뷰들만 넘쳐나는데, 해가 바뀌고 나니 드라마를 피곤하게 보기 싫어졌고 그런 데 휩쓸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든다.(이런 태도가 언제 또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추노> 6회와 10회를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그 회에선 시청률도 큰 폭으로 상승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심각한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빵 터질 때가 있다. 그것이 의도된 개그 코드인지, 아님 어쩌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상황을 몇 번 체험하다 보니 어느새 드라마 <추노>는 본격 '주인공들 벗기는 사극 일 뿐 아니라 '은근히 웃기는 사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지난 주에 방영된 <추노> 10회에서도, 의외의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막 박장대소했던 장면이 있었다.

그들이 나눈 극 중 대사 : 태하 "무고한가..?", 한섬 "무고해 보이십니까~?"
(한섬의 속마음? : '니 눈엔 이게 무고해 보이냐, x끼야~ 너 시력 얼마야..?')


이 드라마 속에서 무척 점잖은 인물로 나오는 송태하(오지호)가 한 번씩 무심한 듯 던지는 대사가 굉장히 웃기게 느껴질 때가 많다. 지난 10회에서 애기(원손 마마) 안고 혼자 철웅(이종혁)을 상대하느라 부상을 입은 한섬(조진웅)이의 상태가 딱 보기에도 안 멀쩡한데, 무척 시크하게 "무고한가..?"라고 물어보는 태하의 대사에서도 미칠듯한 허무 개그삘을 느낀 바 있다. '저들이 보여준 상황과 주고 받는 대사들이 은근히 웃기잖아~ 이건, 시청자들 웃으라고 의도적으로 만든 대사??'라고 생각하면서...

11회에선, 드라마 <추노>를 통해 뭘 하기만 하면 논란이 되는 불쌍한 캐릭터 언년이(이다해)의 장면에서 야릇한 애환을 느끼기도 했다. 더 이상 민폐 끼친단 소리 듣기 싫어서 노가다 뛰는 여주인공이라니..

태하 "연이은 산길에 무거울텐데...", 언년이(혜원) "나으리 하시는 일에,
하나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그러고선, 힘센 남자 장정들을 제치고
연악한 여자의 몸으로 홀로 애기를 안고 험한 산길을 걸어가는 언년이~)


산길엔 인적이 드물고, 자연스럽게 '여자'가 애를 안고 가든 부자연스럽게 '남자'가 안고 가든 별로 볼 사람도 없기 때문에, 굳이 힘센 남정네들을 제치고 연약한 여자가 애를 안고 산을 넘을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알고 보면 그녀의 잘못만은 아님에도) 한 번 미운 놈은 끝까지 주는 것 없이 미운지, '민폐 여주'로 낙인 찍힌 언년이(이다해)는 상대적으로 팔뚝 힘이 더 센 남자들 놔두고, 무겁게시리 어느 정도 큰 애를 안고 산을 넘어야만 했다. 아무리 성인 여자라 해도, 그만한 애를 계속 안고 산길을 걷기엔 힘들텐데.. 얼마나 무거울까나~?(민폐 캐릭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용 쓰는, 안쓰럽기 짝이 없는 언년이여- ;;)

한 편.. 대길(장혁)의 패거리에는 대놓고 웃기는 캐릭터들이 있다. 서로 성향이나 코드가 비슷한 탓에, 둘이 붙여 놓기만 하면 잠시를 못 참고 티격태격 하는 왕손이(김지석)와 설화(김하은)가 바로 그들이다. <추노> 11회에서도 형님들(장군, 대길) 근엄하게 길 가시는데, 뒤에서 서로 때리고 발 걸어서 넘어뜨리려고 하면서 투닥 투닥거리던 설화와 왕손이~ 정말 귀여운 애들이 아닌가..?

서로 장난 치다가, 발 걸어서 넘어 뜨리려고 하던
왕손에게 '죽을래~?'의 모션을 취하고 있는 설화..

극 중에서 설화(김하은)가 연모하고 있는 건 대길(장혁) 오라버니이지만, 막상 붙여 놓으면 왕손이(지석) 쪽이랑 죽이 더 잘 맞는 듯하다.. 간밤에 다른 여자랑 실컷 삐리리~해 놓구서도 막상 만나면 또 반가워 하면서 동기간처럼 격 없이 지내는 그들의 사이가 좀 부럽기도 하다..

송태하(오지호) 쪽 사람들은 소현 세자 아들인 원손 마마부터 시작해서 '서로 위-아래 따져가며 삼가는 분위기'가 강하다면, 이대길(장혁) 패거리들은 '서로 수평적인 관계로 무척 가축적인 분위기'이다. 이 쪽 팀원들 중에 가장 점잖은 인물이 최장군(한정수)인데, 이 캐릭터 역시 가끔 가다 한 개그한다.

그 절정을 이룬 장면이 <추노> 6회 후반부에서 '태하 스승님을 살해한 철웅(이종혁)'과 '뒤늦게 합류한 장군(한정수)'이 한 판 붙던 장면이었다.(당시, 철웅과 한창 싸우던 대길은 '언년이의 호각 소리를 듣고 그 쪽으로 달려가는 태하'를 쫓아가던 중이었음~) 무심하게 그들이 펼쳐 보이는 액션씬을 구경하고 있다가, 으쓱거리며 세트로 옷자락 까는 그들을 보고 빵 터졌던 대목...

철웅 : '내 앞에서 까불면 큰 코 다칠텐데..'

철웅 : '봤지..?', 장군 : "(그 정도 쯤은 내게도..) 뭐, 이런 거~?"

철웅(이종혁)과 장군(한정수).. 이 극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기본 캐릭터도 그렇고, 생긴 건 정말 근엄하게 생겨 가지고, 정말 깜찍한 남정네들이 아닌가-(그 시대 때, '마패 위조' 따위는 껌이었어요~)

최근 회를 통해 친 동기간이나 다름 없는 소중한 수하를 잃고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한 천지호(성동일) 역시 <추노> 6회 때까지만 해도 깐죽거림 & 비굴 포스 작렬하는 깜찍발랄한 언니였었다.

철웅 : (비싸게 굴며 튕기는 추노꾼 대장 천지호에게 돈다발 던져주며) 500냥~ 콜..?
지호 : "(처음엔 거만하게 굴다가, 500냥에 이내 비굴 모드로) 애들아, 인사 드려라~"


철웅에 의해 동료를 잃고서 분노 연기 폭발한 "나~ 천지호야, 천지호오-"의 지호(성동일) 언니도 좋지만, 저 때의 변덕잔망스런 천지호도 어쩐지 그리워진다. 최근엔 그의 일상에 너무 큰 생의 고뇌가 드리워진 느낌.. 이 드라마 속에서 저 혼자만의 열등감에 쩔어 악당 역을 자처하는 철웅(이종혁)은 태하(오지호)나 장군(한정수)과 비슷한 과인데, 무표정하고 근엄한 분위기로 일관하던 이들이 한 번씩 보여주는 엉뚱한 대사나 행동은 그 '의외성' 때문에 웃기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 드라마 속에서의 황철웅(이종혁)이 한 때 장군이었던 송태하(오지호)에게 열폭하는 이유는 그가 항상 '자신을 발 아래로 보고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극을 지켜보는 제 3자 입장에서 조심스레 의견을 덧붙이자면 무관으로서의 철웅은 고수인 태하가 발 아래로 볼 만했다는 생각이다. ;; 

철웅 : "송태하가 항상 날 자기보다 한 수 아래로 여기고 명령하려 해서
기분 나쁜 나는 삐뚤어질 것임. 그것이 내가 송태하를 죽이려는 이유~"
시청자 : '철웅이시여~ 송태하가 납득할 만한 (칼) 실력부터 쌓으시라..'

철웅은 지난 10회에서 '무려, 한 손엔 4~5살 정도 된 무게 나가는 아이(원손-석견)를 안고서 한 손으로만 싸우는 한섬(조진웅)'을 금세 제압하지 못하고 꽤 오랫동안 버벅거리는 황당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그 정도 칼 실력이라면 내가 송태하라도 그런 그를 고수로 여기며 떠받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한 팔에 아이를 안고 싸우는 한섬'을 '자유의 몸으로 대적하면서도 쉽게 무찌르지 못한 이 극 속의 황철웅'을 보면, 그가 송태하에 이어 2인자인지도 좀 의심스러운 상황~ 지난 '한섬-철웅, 철웅-태하'의 제주도 결투씬만을 따져 보니 괜히 2인자 축에도 못 드는 이(철웅)가 저 혼자 오버스럽게 열폭하면서 1인자를 질투하는 양상인데, 이건 지난 번에 조자룡 포스의 한섬이 너무 잘 싸워서 그런 것일까..?

불편한 자세로도, 꽤 오랫동안 철웅과 맞짱 뜰 수 있는
귀염둥이 한섬이 혹시 태하 장군에 이어 숨은 2인자..?

그것이 새로운 작가주의(?)적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드라마 <추노>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언행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뜻밖의 것들'이 튀어나올 때가 많다. 진지할 줄 알았던 인물은 의외로 웃기고, 어른스러울 것 같은 인물이 이상한 지점에 집착하면서 땡깡을 부리기도 하며, 모든 캐릭터들이 한 번씩 개그스런 장면을 선사한다.


좌상 대감 : "(철웅을 향해) 버지라 부르시게. 거, 사위도 자식이거늘~"

심지어는 극단적으로 무섭고 위협적인 인물일 것 같은 좌상 대감(김응수)까지 웃겨 주신다. 평소에 처리하는 일들은 공포 영화가 따로 없건만, 철웅(이종혁)에게 송태하(오지호)와 석견을 제거하란 명령을 내린 뒤 그에게 '아버지라 부르라~'고 한 대목에서의 좌상 대감 표정이 장난 아니게 코믹하고 앙증맞은 것이었다.
(배우의 개인기인지는 몰라도...)


이래 저래.. 수목 드라마 <추노>는 내게, 뜻하지 않은 장면에서 큰 웃음 주시는 '웃기는 사극'이다. 모름지기 'TV 드라마'는 즐기는 자세로 재미있게 시청해야 된다는 탐락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남은 회차들을 통해 '심각한 상황들 포진되어 있는 진지한 소재의 이 드라마'가 어떤 뜻하지 않은 장면에서 또 신선한 웃음을 선사해 줄 것인지.. 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