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토크

파워풀한 성량 브래드 리틀, 파괴의 악마 하이드

타라 2009. 10. 23. 14:52
얼마 전에 모 TV 드라마에 나오는 어떤 배우가 '연기력' 면에서 엄청나게 칭송 받고 있는 현장을 보구서 뜨악~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못하는 연기도 아니고, 나름 특징 있게는 하지만, 생각보다 '발성'이 영 아니던데.. 그 배우가 극 중에서 버럭거리다가 삑사리 날 뻔 한 걸 2번인가 본 적이 있다. 

연기자에게 버럭~은 기본이건만, 그 배우는 자연스럽게 치고 올라가지를 못했다. 이건 즉, 기본적인 발성이 탄탄하지 않다는 얘기이다. 깊은 연기 내공의 부족이고.. 그런데, 그런 연기력으로도 엄청 잘하는 연기자로 칭송 받다니- 우리 나라는 TV 탤런트 해먹기 참 쉬운 나라 같다. 


다른 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 일반인들이 목소리나 발성이 좋을 필요는 없지만 가수나 배우, 성우처럼 목으로 먹고 사는 이들은 일단 발성이 남다르게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한다.


원래 좋아했던 작품은 아니었지만, 얼마 전에 빵지킬
(브래드 리틀)의 <지킬 앤 하이드> 내한 공연을 보고 온 뒤론 종종 이 작품이 눈에 밟힌다. 그 때는 그저 그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왜 이리 생각나는지.. 나름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라는 브래드 리틀(Brad Little)이 왜 대단한가 하면, 일단 타고난 성량이랄까.. 기본 울림통이 여느 배우들이랑은 차원이 좀 달라 보였다.

이 사람 공연 보기 전에는 우리 나라 '지킬'들도 노래 꽤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브래드 리틀의 그 탁월하게 힘 있고 남아도는 성량을 접하고서부턴 웬만한 건 시시하게 들리기도... 한국 '지킬 앤 하이드' 배우들도 연기 꽤 하고, 가창력도 그럭저럭 좋은 배우들이지만, 기본 목소리 자체가 좀 얄쌍하고 파워가 딸리거나 고음부에서 살짝 뒤집어지는 소리 내는 이들도 있던데.. 브래드 리틀의 경우엔 '동일음'에서 그것보다 훨씬 무게감 있고, 음 지속력이 강하며, 여유 있는 목소리를 낸다.

특히 <지킬 앤 하이드> 1막 후반부에서, 지킬 박사가 약물을 투여한 뒤 괴물 하이드로 변해서 미쳐 날뛰는 장면.. 'The transformation(변신)'과 'Alive(생명)' 후반부에서 이 브래드 리틀이 완전 파워풀한 목소리로 노래해서 엄청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에선 브래드 리틀이 제대로 짐승 목소리, 사악한 괴물, 으르렁 거리는 특이한 '헐크 하이드'의 목소리를 들려 주었다. 우리 나라 지킬들도 나름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기는 하지만, 브래드 리틀처럼 그 정도의 파워는 없었던 걸 생각하면.. 이번에 나름 문화적 충격을 느낀 셈이다.

개인적으로, 이 뮤지컬에서 '지킬 앤 하이드'가 부르는 곡들 중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순간)'과 Lost in the darkness(어둠 속 길 잃고), 'Alive(생명)'을 제일 좋아하는데.. 특히 'Alive' 후반부에 나오는 멜로디는 그 이후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여 첫 살인을 저질렀을 때(1막 마지막 장면)와 2막에서 하이드가 루시를 죽이고 와서 '지킬과 하이드' 두 자아가 대립하던 'Confrontation(나와 나)' 후반부에 똑같은 멜로디가 나온다. 

우리 나라(한국어) 버전에선 1막 후반부에 나오는 'Alive'와 1막 마지막 장면의 'Alive-Reprise'에서 각각의 대사가 다르지만, 영어 버전에선 똑같은 대사 같았다.

And I feel I'll live on forever, with Satan himself by my side~
And I'll show the world that tonight~ and
Forever the name
to remember's the name Edward Hyde~~~!!!

브래드 리틀의 하이드가 파워풀하게 불러주던 이 대목 완전 좋았는데, 지킬 박사가 '선과 악'을 분리하기 위한 약물을 들이마신 후 약물 부작용(?)으로 악마 하이드의 자아가 꿈틀대며 강한 생명력을 느낄 때 부르던 'Alive' 후반부에 이 대목이 나온다. 그리고, 한밤중에 거리로 나선 하이드가 주교에 대한 첫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 이 곡 후반부를 다시 한 번 더 부르면서 1막은 끝이 난다. 이 장면부터 이 작품의 긴장감이 팍 살아난다고 할 수 있는데, <지킬 앤 하이드> 원 버전과 이번에 바뀐 뉴 버전(2009' 내한 공연 버전)의 연출이 조금 다르다.



원래는 하이드가 주교를 살해한 뒤 미친듯이 기름 뿌리고, 불 싸지르고.. 현란한 '불쇼' 후에 1막이 끝나는데, 이번 내한 공연 버전에선 그런 거 없이 그냥 하이드(브래드 리틀)가 다소 점잖게(?) 지팡이만 휘둘러 대다가, 그렇게 주교는 죽었다 치고, 그걸로 1막 끝~이었던...
(이번에 바뀐 연출이 어떤 면에선 좀 심심하다 할 수 있다.) 그 외, 2막에서의 살인 장면들도 대체로 수위가 약한 지팡이 흔들기로 끝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막 마지막 '주교 살해 장면'에서 하이드의 악마성을 부르짖던 브래드 리틀(Brad Little)의 가창력 만큼은 정말 탁월해 주셨다. 그 때 하이드로 변한 빵지킬(브래드 리틀)이 '뒤로 음탕한 짓 하고 돌아다니는 주교'를 향해 "hypocrite(위선자, 위선자, 위선자~)" 하면서 살해한 뒤 너무나 파워풀한 목소리로 "And I feel I'll live on forever, with Satan himself by my side~" 하고 외쳤을 때, 그 강렬하고 탁월한 성량의 노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 나라 버전에선 직역하지 않고 곡 분위기에 맞는 다른 가사로 번안되었는데, <지킬 앤 하이드> 한국어 버전 '가사 번안'은 나름 매력있게 잘된 편이라 생각한다. 한국어 버전에선 하이드가 주교를 살해하는 'Alive-Reprise' 장면에서 이런 식의 가사가 나온다. "그래~ 난 박살낼 테다, 세상의 평화! 타락한 너의 영혼을 칭송할 테다~" 다음에 이렇게 나가는..

난, 악마를 신봉할 테다~ 사탄 편에 설 테다..!
끊임없이 충동할 테다, 파괴를 할 테다~ 그 이름하여 에드워드 하이드~~!!!

젠틀한 지킬 박사의 '억눌러 온 본능(?)'이 제대로 삐뚤게 발산되는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한국어 버전도 '가사'와 '멜로디' 간의 씽크로율이 꽤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선과 악' 중에서 '악'만 집중적으로 추출해 내면 진짜 그렇게 악마가 되는 것일까..? ;; 악마, 사탄.. 본성 자체가 많이 천박하지 않나- 이 뮤지컬의 결말은.. '악이 사랑에 굴복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위대한 사랑의 승리로~


지킬 박사의 '선과 악'을 분리해 내는 실험은 실패로 돌아가고,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갈수록 악마 하이드가 되어 가던 그는 자신의 피앙새 엠마를 해칠까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니 말이다.. 지킬이 괴물 하이드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구서도 그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은 엠마도 마찬가지이지만, 지킬 역시 엠마를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하필이면 사악한 하이드로부터 뜻하지 않은 사랑을 받게 되어 목숨을 잃은 루시는 엄청 불쌍..;;


하이드는 루시가 지킬을 사랑하는 걸 보구서 그런 지킬을 많이 '질투'했거나, 아님 악마인 자신이 어떤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싫었나 보다. 왜 '악'은 항상 음습하고, 괴기스럽고, 부정적이며, 심하게 민폐스러운데다가, 극단적이기 짝이 없는 파괴적인 짓거리를 즐기는 것일까..?

그런 타락한 악의 장면들을 일종의 '놀이로(오락물로써의 극 안에 나오는 파괴적인 비주얼의 강렬함으로써만)' 즐기는 건 상관없지만, 요즘 대중들 중에는 종종 악의 그 본성까지 사랑한다고.. 자신은 극 안에 나오는 선인보다 '악인' 쪽에 더 열광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이들도 꽤 있다. 대략 미친 세상이다- ;; 그건 다분히.. 스스로의 분별력 없음과 철딱서니 없는 무뇌아스러움을 자랑하는 행동 아닐까..? 악한 것을 신봉하는 것은 '약물 부작용'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하이드에게나 어울리는 짓이다. 요즘엔 지킬 박사의 약도 안 먹었는데, 주제 넘게 자기가 사탄의 친구라도 되는 줄 아는 개념 상실한 사람들이 꽤 많은 듯하다..

결과적으로, 사탄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 대척점이 있는 누군가가 악마 보다는 레벨이 더 높은 것 같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사탄이 즐겨 일삼는 '파괴'에는 힘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걸 매순간 하고 있기란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그런 건 어쩐지, 역학의 기본 원리에도 어긋나는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