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토크

어출쌍생이면 철가면 쓰고 감옥행?-한국판 '삼총사'

타라 2009. 7. 29. 21:27
그 옛날 '왕가에 태어난 쌍생아에 얽힌 금기'는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동일하게 존재했던 듯하다. 체코 뮤지컬의 라이센스 버전이지만 우리 나라 연출가가 대본을 새로 쓴 뮤지컬 <삼총사> 역시, 주된 사건의 핵심 키워드는 왕가의 '쌍둥이 형제', '철가면', '왕권 탈환'이었다.


한국판 <삼총사>는 여러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 온 뮤지컬이었는데, 이 쌍둥이 형제에 얽힌 철가면 이야기는 1998년에 나온 영화 <아이언 마스크>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가 '루이 14세'와 그의 쌍둥이 형제 '필립'의 1인 2역으로 출연했었으며, 그 영화에도 왕을 지키는 '삼총사'가 나온다. 그러고 보면, 서양의 시대물(사극) 중에서도 실제 역사와는 다른 '묻지 마, 판타지 사극(?)'이 굉장히 많은 듯하다.

쌍생의 비극 : 훗날 왕이 되는 '형'과 태어나자 마자 지하 감옥으로 버려지는 '아우'


영화 <아이언 마스크(The man in the Iron mask)>가 한창 인기 끌던 당시에도 '역사 왜곡'에 관련한 이런 저런 논란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영화 역시 군데 군데 개그 코드가 깔려 있기도 했던 전형적인 오락물 성격의 영화였다. 이 영화 속 이야기는 <과거의 프랑스 왕실에는 왕의 아들로 '쌍둥이' 형제가 태어나면 한 명은 '왕위를 계승'하고, 또 다른 한명은 '철가면'을 씌워 지하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 법이 있었다..>란 설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얼마 전에 공연한 뮤지컬 <삼총사> 한국어 버전 공연에선 거기서 기본 모티브만 가져오고, 스토리는 약간 달랐다. 이 한국판 <삼총사>에선 리슐리외 추기경(이정열/손광업)이 그 쌍둥이 형제에 해당하는 1인 2역의 '악인'으로 등장하고, 달타냥(엄기준/박건형)과 아토스(신성우/유준상), 아라미스(민영기), 포르토스(김법래)가 정의를 지키는 총사로 등장했었는데.. 스토리를 곰곰히 따져 보니까 이 뮤지컬에서 악인으로 설정된 쌍둥이 동생 '리슐리외 추기경'도 은근히 불쌍한 인물이다.


또한 그 '행적이 묘연한 인물'이기도 하다. 라이센스 버전 뮤지컬 <삼총사>에서 '리슐리외 추기경'은 주인공이 아닌 조연 캐릭터여서 그런지, 지나간 사연에 대해 생략된 부분이 참 많은 것 같은 분위기~(이건, 2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 '뮤지컬'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지도...) 


이 뮤지컬 2막에 나오는 '변신'이란 리슐리외의 솔로곡에서 그는 자신이 현재 왕(루이 13세)의 쌍둥이 형제로 태어났지만 감옥에 버려졌고, 신의 은총으로 다행이 살아났다고 하였다. 그런데, 왕가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 중 <한 쪽은 철가면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혀야 하는 전통>에 따라 옥에 갇힌 그가 어떻게 감옥에서 탈출하여 궁에서 일하는 '추기경'의 자리에까지 올랐는지..? 그 자세한 행적에 대해선 이 뮤지컬에서 전혀 알려주지 않았으니...


'얼굴에 점 찍고 복수~'의 변형 : 머리 염색하고(or 가발 쓰고), 수염 달고 복수?

또한, 이 뮤지컬 안에서 왕(루이 13세)과 똑같이 생긴 그의 쌍둥이 동생(리슐리외 추기경)을 자주 보면서도 왜 궁 안의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왕의 쌍둥이 형제라고 의심하지 않는 것인지.. 다소 의문스러운 대목이었다. 뮤지컬 <삼총사>에선 '리슐리외(추기경)' 역을 맡은 배우(이정열/손광업 더블 캐스트)가 '루이 13세(왕)' 역할로도 등장하는 1인 2역으로 나온다. 그건 곧 이 작품에 나오는 왕의 쌍둥이 형제는 전혀 다르게 생긴 '이란성 쌍둥이'가 아닌, 둘이 똑같이 생긴 '일란성 쌍둥이'란 얘기이다.

그렇게 일란성 쌍생이었기에, 리슐리외 추기경이 나중에 왕으로 변신해서 궁 안의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왕으로 변신하기 전 '추기경'으로 활약했을 때에, 왕(루이 13세)의 부인인 안느 왕비(육세진)조차 자기 남편이랑 똑같이 생긴 리슐리외 추기경을 궁 안에서 자주 보면서도 '그가 왕의 가족이거나 쌍둥이 형제임을 전혀 못 알아본다'는 설정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원래는 철가면 쓰고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어야 할 왕의 쌍둥이 동생이 '머리에 염색을 하고 흰 수염을 다는 노인 분장을 한 뒤 추기경 행세를 하고 있어서 아무도 못 알아보는 설정이었나 보다..' 라고 생각해도,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그 시대 때 머리 하얗게 만들어 주는 '염색약'이나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고품격 '가발' 혹은 '가짜 수염'이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이건 따로 알아봐야 할 부분이지만..) 그런 대목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여겨야 하는 것일까? ;; 어쨌든, 이 뮤지컬 안에선 '어떻게 감옥에서 탈출하여 추기경까지 되었는지..' 그 과거의 행적이 너무도 묘연한 악인 '리슐리외 추기경'의 음모로 인해 모든 사건이 펼쳐진다.


애초에 <'어출쌍생'이면 그 중의 한 명은 프랑스의 '왕'이 되고, 또 다른 한 명은 '철가면 쓰고 지하 감옥'에 갇혀야 하는 왕가의 법도>에 따라 쌍둥이 아들 중 동생으로 태어난 '리슐리외'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왕이 낳은 쌍둥이 중 조금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진 리슐리외는 (이 뮤지컬 안에서 그 사연이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우여곡절 끝에 감옥에서 빠져나와, 궁 내에서 추기경으로 활약하면서 자신을 버린 왕가의 가족들을 향해 '복수'를 꿈꾸게 된다.

태생부터 불쌍한 악인 :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그는 어찌 어찌하여 '추기경'의 자리에 올랐고, 자신의 수하인 이중 첩자 밀라디(배해선, 백민정)를 이용하여 '현재의 왕이자 자신의 쌍둥이 형인 루이 13세'에게 철가면을 씌워서 옥에 가둔 뒤 왕의 생일날 자신이 왕으로 변장해서 프랑스의 국왕이 되고자 하였다. 하지만 달타냥과 삼총사의 활약으로, 철가면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힌 원래 왕(루이 13세=안느 왕비의 남편=리슐리외의 쌍둥이 형)은 구출된다.

자기 아버지를 역적죄로 몰아서 죽인 게 그 왕인 줄 오해해서 리슐리외 추기경의 수족 노릇을 해 왔던 밀라디는 나중에 자기 아버지에 얽힌 사건이 리슐리외의 계략으로 그리 된 걸 알게 되어, 달타냥이 도망가는 리슐리외를 쫓을 때 리슐리외를 처치하는 등 삼총사의 활약에 큰 도움을 주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 이야기 안에선 달타냥이 늘 부르짖던 "정의는 반드시 살아있다~"에서 그 '정의'에 해당하는 무리가 달타냥과 삼총사, 리슐리외의 계략으로 인해 가면 무도회가 펼쳐지던 날 철가면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힌 원래 왕.. 즉 삼총사(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가 원래부터 충성해 왔던 루이 13세(리슐리외의 쌍둥이 형)로 설정되어 있고, 그의 쌍둥이 동생인 '리슐리외 추기경'이 악인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이 극에서의 리슐리외를 완전히 악인으로 보기에도 뭔가 찜찜한 분위기이다.

'한 날 한 시에 같은 뱃속'에서 태어났으나 좀 더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형은 온갖 권세를 누리는 프랑스의 왕이 될 수 있고, 그 쌍둥이 동생인 리슐리외는 왕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자 마자 지하 감옥으로 버려지는 처참한 운명에 직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교훈 하나 : 절대 적을 만들지 말고, 한 때의 아군은 끝까지 챙기자~(?)

아마.. 쌍둥이 형제이지만, 삼총사가 원래 충성하던 그 '왕(쌍둥이 형)'은 능력 있으며 백성을 굽어살필 줄 아는 정의로운 왕으로 설정되었고 '리슐리외(쌍둥이 동생) 추기경'의 경우엔 개인적인 사리 사욕과 권력욕에 불타올라 그 왕좌를 노린 것 쯤으로, 다소 잔인하고 탐욕스런 인물로 설정하여 단순하게 그 둘의 성정으로 '선과 악'을 나눈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뮤지컬 마지막에서 '자신의 쌍둥이 형으로부터 왕좌를 빼앗아 오려는 음모에 실패'하고 삼총사에게 쫓겨 도망가던 리슐리외 추기경이 죽은 것은 그런 선악의 구분을 떠나서, 밀라디와의 개인적인 원한 관계 때문인 것으로 나온다. 그는 (밀라디 말에 의하면) 충신이었다는 밀라디의 아버지에게 역적죄를 뒤집어 씌워 죽였고, 그 딸인 밀라디를 이중 첩자로 실컷 이용해 먹다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아군은 이미 아군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밀라디를 버렸다.

처음엔 자기 아버지 일로 왕을 원망했던 밀라디는 그 일이 결국 리슐리외의 계략이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리슐리외가 자신을 실컷 이용해 먹고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 극의 마지막에 가서 삼총사에게 쫓겨 도망가려던 그를 발견하여 처치하게 된 것이다..

고대와 중세 시절, 왕가에 태어난 쌍생아는 정말 불운을 가져온 존재였을까?

다소 탐욕스럽고 잔인한 인물로 나오는 리슐리외는 그러한 자신의 악행 때문에 몰락한 걸로 나오지만, 따지고 보면 이 뮤지컬에 나오는 리슐리외도 불쌍한 인물이 아닌가- 왕의 쌍둥이 아들로 태어난 것이 자기 잘못은 아닌데, 조금 더 먼저 태어난 형은 프랑스의 왕이 되었고, 자신은 태어나자 마자 감옥에 버려졌으니 말이다. 결국은 한 뱃속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이고 자신도 원래는 왕의 아들이었니, 리슐리외가 왕가에 태어났으나 처참하게 버려진 자신의 처지에 분노하고 개인적인 '복수'에 이를 갈면서 왕좌를 노린다는 것 자체가 한 편으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설정이다.

옛날에는 '쌍둥이'에 얽힌 이런 저런 금기 사항들이 참 많았었다. 쌍생으로 태어난 애를 같이 키우면 안되고.. 쌍둥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되기 때문에 불길하고.. 이런 저런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터부 때문에 원래는 행복을 누렸어야 할 여러 쌍생아들의 인생이 참 불행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게 과연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타당한 금기 사항들이었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