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온에어-한국 드라마는 '짝짓기'를 안하면 성립이 안되는가?

타라 2008. 3. 30. 22:08
어찌어찌 하다가 요즘 새로 하는 드라마 <온 에어>를 보게 되었는데, 꽤 재미있었다. 그래서 계속 시청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간만에 드라마 게시판에도 기웃거려 보았다. 그리고, 다시는 안 가야 되겠단 생각을 한 번 더...

예전에 드라마 시청 게시판에 놀러 갔다가 배우 팬들끼리 언쟁을 벌이며 싸움박질하는 현장을 구경한 뒤론 잘 안 가게 되었는데, 최근 흐름을 보아하니 별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았다. 원래, 드라마를 보고 나서 해당 게시판 찾아가서 글 남기는 시청자는 전체 시청자의 1%도 안된다고 하던데...(해당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한 모든 사람들이 다 게시판 찾아가서 글 남기거나 작가의 창작 활동에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건 아니니~)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드라마 작가는 1%도 안되는 시청자들의 '배 놔라 감 놔라'에 휘둘리지 않고 애초에 본인이 기획한 대로, 촘촘하고 탄탄한 구성과 본인이 처음부터 의도한 개연성 있는 결말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본인이 원래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 망각한 채, 타인들의 제각각 취향과 참견에 갈대처럼 휘둘리는 작가는 어쩐지 줏대 없고 실력 없어 보이기에...(단, 애초에 쓸려고 했던 그 내용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스토리와 인물 간의 관계가 개연성 있고, 보편 타당한 선에서 충분히 공감 가는 내용일 경우에만~)

<온 에어>..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를 살펴보면, 난립했던 천편일률적인 '짝짓기식 한국 드라마'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자기네들은 기존에 그래 왔던 것처럼 '방송 관련 등장 인물들이 방송국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로 끝날 수밖에 없는 그런 드라마 따위는 쓰지 않겠다'는 식으로.. 뭔가, 방송을 중심으로 한 전문 직업인들의 이야기를 기존의 드라마와는 달리 차별화 되게 보여줄 것처럼 거창하게 기획 의도를 잡아 놓았다.

그런데.. 최근 이 드라마에 대한 흐름과 시청 소감을 종합해 보니 그 '기획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기에, 또다시 적잖은 실망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럼, 그렇지.. 기존의 연애극이랑 뭔가 다를 것처럼.. 기획 의도만 거창했지, 전문 방송 드라마는 개뿔~ 그냥 직업이 배우, 작가, PD, 매니저인 주인공들이 자기네들끼리 연애하다 끝나는 그저 그런 <연애극>으로 흘러가게 되는 건 아닌가..?' 싶은 우려가 들었다.


무엇보다, 작가가 그걸 원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이 마구마구 압력을 가하면 드라마 작가도 인간인지라 흔들릴 수밖에 없기에.. 그래서 이 드라마가 애초의 기획 의도와는 달리 결말이 산으로 갈까봐 무척 걱정된다. 개중엔 보다 다양한 거, 발전적인 걸 원하는 시청자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5년 전에 봐 왔고 10년 전에도 봐 왔던.. 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주인공들간의 므훗한 러브 러브 모드, 내가 원하는(원래 좋아했던 배우이거나 어쩌다 특정 장면에서 꽂혀 버린 배우) 라인으로 무사히 그 로맨스가 연결되는 결말이 나길 원하고 그걸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만약 삼각 관계가 되어 버리면 두 동성의 배우 팬들 간에 살벌한 신경전이 오고가고, 결국 어느 한 쪽으로 결말 지어져 버리면 그 반대 쪽 라인을 지지했던 팬들은 대리 만족 대신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
이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 흐름이.. 이경민 PD(박용하)가 극 중에서 다른 두 여성이랑 야릇한 기류를 형성하면서 그를 둘러싼 '이경민-서영은(송윤아)' 지지자와 '이경민-오승아(김하늘)' 지지자들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  드라마 게시판에서 또다시 여인 천하스런(?) 풍경이 한 바탕 벌어지겠구나 싶다.

사람은 감정적 동물이고, 각자 취향이란 게 있으며, 뭔가에 버닝하는 지점도 사람들마다 다 다르기에 이 러브 라인에 대한 지지자가 있으면 반드시 저 라인에 대한 지지자도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한 번 그런 대립각이 형성되고 각자의 취향이 생겨 버리면, 어느 순간 드라마 보는 게 꽤나 피곤하고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인데... 자신이 애초에 버닝했던 라인으로 결말 나면 기분 좋겠지만, 그 반대의 결말이면 드라마 실컷 잘 보고 나서도 결말이 불만족스러워 짜증이 밀려올 가능성이 크다. 비율은 결국 50:50~ 결말은.. 작가 맘이다.


브루투스 너마저도! : 한국 드라마 내에서, 천편일률적인 짝짓기는 이제 그만~

많은 시청자들은 결국.. 그저 그런 연애극이 아닌 '전문 방송 드라마'를 표방한 이 드라마에서조차 상투적인 멜로를 원하고, 자신이 원하는 라인으로 흘러가지 않을 경우 벌써부터 작가를 공격할 태세다.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 내 입장에선 어느 한 쪽 라인 지지자에게 섭섭함을 안겨주거나 기존의 연애극 같은 '상투적인 짝짓기 식 결말'이 아닌.. 네 주인공들이 같이 방송 일을 하면서 끈끈한 동료애가 생기고, 각자 자기 직업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그 정도 선에서 결말 지어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온 에어> 제작진들이 천명한 기획 의도를 안 뻘쭘하게 만드는 결말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극 흐름 상 이경민 PD(박용하)를 둘러싸고 이 쪽 저 쪽 라인 지지자들이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 같던데, 내가 봤을 때 두 쪽 다 별로.. 그다지 현실성도, 개연성도,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 함께 같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와 PD로서 많은 시간을 보낸 '서영은(송윤아)-이경민(박용하)' 커플..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름 좋아하더라만, 아무 이해 관계 없이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내 입장에선, 이상하게도 그 둘이는 그림 상 별로 삘이 안 온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실제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송윤아는 본인의 나이대로 보이고, 실제로도 연하인 박용하는 그보다도 더 어려 보여서(20대 청년이라고 해도 별 무리 없을 정도로) 극 중에서 아무리 둘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므훗한 씬을 연출해도 내 가슴은 전혀 설레지 않고, 그냥 서로 은근히 챙겨주는 (경민 입장에서, 누나 많은 집의) <둘째 누나-막내 남동생> 뻘로밖엔 보이지 않는다는 것-


드라마 주인공, 해당 드라마 작가의 '욕망 실현'에 대한 대리인?

그 라인이 보다 공감 가는 극 중 커플이 될려면 '작가 역'을 송윤아보다 더 어린 배우로 캐스팅하거나, 그게 고정이라면 상대 'PD 역'을 (연하라 할지라도) 보다 듬직한 분위기의 배우로 캐스팅했어야 되지 않을런지..? 스토리 상으론 분명 그 둘 사이에 좋은 에피소드들이 많고, 나름 가슴 설레는 야릇한 분위기의 커플인데.. 다른 드라마에서 같으면 무지 가슴 설레었을 므훗한 장면에서조차 난 왜 화면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런 삘이 안 오는 것인지..? ;;

 드라마 상에서의 서영은이란 '캐릭터' 자체는 참 좋은 것 같다.(좀 산만하고 작가 치고는 너무 오도방정스럽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은근히 헛점 많고, 사랑스럽고, 인간적인 캐릭터 같은데.. 아무래도 극 중 역할이 '작가'이다 보니, <온에어> 작가(김은숙 작가)가 그 캐릭터에게 빙의되어 온갖 인간적이고 좋은 건 다 갖다붙인 것 같은 분위기이다. 

거기다 은근히 '속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무려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더 젊고 싱싱한 예쁘장한 여배우(김하늘)를 놔두고, 학부형 나이의 이혼녀인 30대 중반의 작가(송윤아)가 두 명의 남자로부터 사랑 받는다는 설정은 좀... 처음 의도가 어찌 되었든간에 모양새가 좀 이상한 듯하다. 해당 드라마(온에어) 작가가 극 중 '작가 캐릭터'를 앞세워 평소에 못해본 거 '대리 만족'할려는 시추에이션인가, 이런 의구심이 들면서 말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총 4명이지만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은 죄다 극 중 서작가 주변에 몰려 있다는 것도(서영은 작가랑 친한 설정으로) 좀 불공평한 설정인 것 같다. 이 드라마 속에서 경상도 사투리 쓰는 이대표, 드라마 국장, 개성 넘치는 감초 연기자인 보조 작가, 이대표네 회사 여성 PD, 대사관 직원, 주책스럽지만 푸근한 엄마, 똘망똘망하고 귀여운 아들.. 죄다 서작가 라인의 등장 인물들이다.

그런 설정들이 해당 캐릭터를 인간적으로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확실히 본인이 '작가'이다 보니 이 작품의 집필자가 극 중 '드라마 작가 캐릭터'에 유난히 공을 많이 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의 두 남자 주인공 중 기준(이범수)은 대놓고 과거에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가 서영은이었다며 챙기고, 시청자들이 원하는 러브 라인의 중심에 서 있는 경민(박용하)과 꾸준히 야릇한 에피소드를 쌓아온 것도 서영은 작가~(아무리 이 드라마 집필자의 직업이 '작가'라지만, TV 드라마와 지상파 방송을 '개인적인 로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쓰면 좀 곤란한 거 아닌가..? ;;)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 완치될 수는 있을까?

이 드라마는 기획 의도에선 기존 드라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문 직업인들을 다룬 드라마에서조차 '연애'하다 끝나는 그런 뻔한 스토리는 아닐 것>이라 천명해 놓고, 알고 보면 은근히 기획 의도와는 다른 멜로로 흐르고 있다. 물론 아직 결말이 난 게 아니니 판단은 이르겠지만, 현재 흐름으로 봐선 그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우리 나라 드라마.. 예전부터 쭉 메디컬 드라마라 표명한 드라마에선 직업인 의사를 다루는 게 아닌 '의사들이 연애하다 끝나는 드라마'로 만들고, 전문 법조인 나오는 드라마에서도 '변호사들이 연애하다 끝나는 드라마'로 만들고.. 경찰 드라마에서도, 또 파일럿 드라마에서도, 호텔 드라마, 방송 드라마, 전문 경영인&상업 드라마, 스포츠 드라마, 실제 역사를 다룬 정치 사극에서도 죄다 등장 인물들이 '연애'만 하다가 끝난 드라마가 부지기수였다.

이젠.. 맨 처음 기획 의도를 중간에 살짝 밥 말아먹는 그런 드라마는 더이상 보고 싶지가 않다. 미국에는.. 또 일본에는 실제로 연애 드라마와는 차별화된 전문 드라마들이 참 많던데, 우린 언제까지 그 단조로움을 못 벗어난 채 제자리 걸음을 해야 하는 것일까..?


드라마 <온 에어>..? 재미있다. 4명의 주인공들 연기력도 대체로 괜찮은 편이다. 작가도 스토리를 재미있게 잘 이어나가는 것 같고... 그런데, 젊은 남주인공 경민 PD(박용하)를 둘러 싼 두 여인네(김하늘, 송윤아) 팬들 간의 피터지는 애정 라인 싸움은 절대 사절이다. 피곤하다. 그렇고 그런 '연애 드라마'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기획 의도'는 늘 거창하게 의학 드라마, 경찰 드라마, 학원 드라마, 전문 방송 드라마, 법정 드라마라고 해 놓고는 '결말'은 어느새 직장 내에서 <연애하다 끝나는 드라마>가 되어 버리는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짝짓기'와 '사기 컨셉'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