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 2009년 내한 앵콜 공연 후기(프랑스 뮤지컬)

타라 2009. 2. 2. 12:17
만남, 기다림, 그리고... 재회

2년 전(2007년) 첫 내한 공연에 이어, 금년 초(2009년)에 또다시 프랑스 팀이 내한한 제라르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Romeo & Juliette)> 앵콜 공연을 보고 왔다. 근 2년을 기다려 온 <로미오 앤 줄리엣> 이번 공연(2009년 버전)에 대한 한 줄 감상은..........."너무너무너무 좋았다~"는 것-

요즘 경기도 안 좋은데, 들여오는 기획사 입장에서도 고환율 문제 등 여러 사정이 안 좋은지 지난 번보다 더더욱 후덜덜해진 티켓 가격의 압박이 있어서 볼까 말까 많이 망설였고, 지난 번 공연에서 다소 극악스런 부분이 있었던 터라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지난 번 공연보다 훨씬 더 다듬어지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2009 버전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 줄리엣>을 보면서 그런 걱정들이 기우였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번 공연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터라 전혀 돈 아깝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말끔하게 해소시켜 줄 만큼 재미나고 행복했던 3시간이었는데, 굉장히 뿌듯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섰고, 그 이후 오늘까지 쭉 롬앤줄의 세계에서 헤롱거리고 있다. 이번 공연이 끝나는 2월 말까진 아마 계속해서 이러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아직까진 공연 초반이고, 최근 들어선 전반적인 경기도 너무 안 좋아졌으며, 이번엔 2년 전과 달리 홍보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분위기라 객석이 조금 썰렁한 감은 있었지만, 그 날 객석 분위기 자체는 해당 공연에 대해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즐겁게 봤다는 관객도 있었고,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아, 너무 재미있다~"라며 큰 소리로 외치는 관객도 있었으니...

인생이란, 때론 돌발 변수가 작용하기도 하는 예측 불가의 것

원래, 프랑스 뮤지컬의 여러 작품들 중 내 마음의 에이스는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였다. 비록 몇 년 전에 내한한 프랑스 팀과 재작년에 결성된 한국 라이센스 팀 공연이 DVD에서 본 오리지널 메인 멤버들의 공연에 비해 기본 퀄러티가 좀 떨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트르담 드 파리>가 가져다 주는 '작품 자체에서 오는 힘'이 워낙에 컸기에 말이다.(원작자 '빅토르 위고'의 힘+작품의 의미를 잘 살려낸 각색자 '뤽 플라몽동'의 영향력이 결부된..)

2007년 초에 본격적으로 한국에 상륙한 내한 뮤지컬 <로미오 & 줄리엣>은 공연 내/외적으로 여러 문제들이 있었고, 배역이나 넘버의 구성 자체가 바뀌어 버린 2007년 버전은 2001년 프랑스 오리지널 버전(DVD ver.)과 비교해서도 못마땅한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다 최근엔 뮤지컬 <태양왕(Le Roi Soleil)>에도 마음을 많이 주고 있기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프랑스 뮤지컬 중 한 서열 넘버 3 정도에 불과했었는데, 이번 2009년 앵콜 공연을 계기로 단숨에 '내가 사랑하는 최고의 프랑스 뮤지컬 제 1위'로 등극하게 되었다. 2007년 내한 공연 때 그렇게나 못마땅하게 여겼던 공연이었는데, 내가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새로운 버전을 칭찬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이 작품은 지난 공연에서도 대체적으로 배우들의 가창력, 연기력, 댄서들의 춤, 원작과 다르게 재해석된 캐릭터, 스토리, 무대 활용 등 작품 자체의 퀄러티가 '기본' 이상은 찍어주는 편이었지만, 이 뮤지컬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이 작곡한 각각의 넘버들에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 나오는 넘버들도 물론 훌륭하고 전반적인 '작품성' 자체는 그 쪽이 굉장히 뛰어나긴 하지만, 사실 음악적인 측면에서 보다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 건 제라르의 곡이 들어간 <로미오와 줄리엣> 쪽인 듯하다.

귀에 착착 감기는 대중적이고 편안한 선율에 특유의 품격까지 갖춘 명품 음악

<노트르담 드 파리> 작곡가인 이탈리아 출신 리카르도 코치안테의 다른 작품에서의 곡을 들어봤는데, 그다지 귀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없었다. 그가 작곡한 <노트르담 드 파리>의 몇몇 넘버들은 정말 뛰어나지만 전반적인 곡 구성에서, 또 편곡에서, 새로운 곡을 만들어 내는 능력 면에서 프랑스 뮤지컬계의 가장 탁월한 작곡가는 아무래도 제라르 프레스귀르빅 쪽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제라르가 이번 <로미오 앤 줄리엣> 2009년 공연을 위해 새로 만들어 넣은 곡도 굉장히 좋던데, 비록 여러 가지 면에서 애증(?)의 제라르이긴 하지만 작곡 능력 하나는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이 뮤지컬의 대략적인 기준선이라 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표준 음반 <Romeo et Juliette - de la Haine a l'Amour(이 작품의 원년 멤버들이 녹음한 2000년 스튜디오판)> CD를 처음 듣고서 굉장히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뮤지컬 음악이 이렇게 고급스럽고 유려할 수가 있다니..!'란 생각에 한동안 그 음악적 충격에 기분 좋게 풍덩 빠져 지냈던 일이 생각난다.

기존에 들어왔던 브로드웨이 쪽 뮤지컬 음악은 다소 시끄러우면서 요란뻑적지근한 세속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거나 대놓고 너무 굉장한 척, 있어 보이는 척(?) 하는 넘버들이 많았었기에 그렇게까지 듣기 좋다는 느낌은 없었는데(듣기 좋기론, 브로드웨이 쪽 뮤지컬 음악 보다는 그냥 한국의 드라마 ost 쪽을 파 보면 이 쪽이 훨씬 주옥같은 곡들이 많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처음 접한 제라르의 곡들은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귀에 착착 감길 정도로 대중적이고 편안한 선율에, 특유의 품격까지 느껴져 그 첫 느낌이 굉장히 좋았었다.

■ 오랜 세월이 지나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쭉~ 그 음반을 몇 년 째 듣고 있는데, 싫증이 나기는 커녕 기존에 안 좋아했던 다른 넘버들까지 들으면 들을수록 완소곡으로 새로이 등극할 만큼 전 넘버들의 훌륭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새록새록 다가오니, 이런 게 진짜 명품인 듯 싶다. 그것(곡 자체)이 지닌 본래의 가치가 세월이 지날수록 빛을 바래는 게 아니라, 더더욱 선명한 빛을 드러내며 오랜 시간이 흘러도 결코 해묵지 않을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제라르가 작곡한 이 뮤지컬의 넘버들은 앞으로 10년이 또 지나서 다시 듣게 되더라도 여전히 반짝거리는 그 느낌이 퇴색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사실, 2001~2002년 프랑스 초연 후 한동안 긴 공백기를 가졌다가 재작년에 오리지널 주인공 로미오(다미앙 사르그)을 제외하곤 초연 때와 전혀 다른 새로운 팀을 결성하고서 극 구성과 편곡에서 많은 변화를 시도한 2007년 아시아 투어 뉴 버전에선 이런 저런 불만스런 대목이 있었고, <로미오 & 줄리엣>의 한 축인 뉴 버전 줄리엣-조이 에스뗄의 가창력이 너무 아니었던 터라 결코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2009년 내한 앵콜 공연에선 멤버 구성에서 원조 로미오 다미앙 사르그(Damien Sargue)에 이어 톰 로스(Tom Ross), 프레데릭 샤르테(Frederic Charter)까지 원년 멤버 구성이 대폭 늘어났고, 2년 전엔 다소 헤매던 뉴 버전 멤버들도 그동안 한국 공연(서울, 부산)과 대만 공연을 통해 나름 무르익은 분위기가 있는데다, 2년 간의 공백기 동안 프랑스에서 준비를 많이 했는지 이번 공연에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전반적으로..

원조 티볼트인 톰 로스는 역시 오리지널 배역다운 포스를 과시했고, 오리지널 영주인 프레데릭은 이번엔 영주가 아닌 신부 역으로 돌아왔는데, 신부의 넘버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보컬과 음역대인 듯해서 예전의 그 배역이 아쉽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작품의 원년 멤버들에게선 특유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뭔가 여유로운 모습과 든든한 분위기로 작품을 받쳐주는 듯한 느낌이랄까- 2년 전 내한 공연에선 베테랑 로미오인 다미앙 사르그만이 유일한 원년 멤버였었는데, 이번엔 원년 멤버 구성이 1명에서 3명으로 늘어나니 그것만으로도 작품이 지녀온 역사의 깊이를 더해주는 듯한 느낌이 분명 있는 듯했다.

■ 기존의 취향과 기호에 대한 서열을 바꿔버린 아주 의미 있는 공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약간의 불만은 남아 있지만, 그래두 2년 전에 비해선 극 구성이 훨씬 매끄러워졌으며, 무엇보다 첫 내한 공연에서 너무나 극악스런 가창력을 선보여 '언더로 온 줄리엣이 훨씬 더 낫다~'는 평가를 들으며, 관객들이 메인 여주인공을 거부하고 언더 배우를 더 선호하는 기현상을 만들어 낸 장본인인 '줄리엣' 역의 조이 에스뗄(Joy Esther)의 가창력이 2년 전의 그것보다는 한 단계 발전한 모습으로 다가와서 반가웠다. 재작년에 너무나 들어주기 난감한 실력으로 작품의 수준을 2단계 정도 격하시켰던 것에 비해, 올해의 조이는 그럭저럭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와 주기는 했던 것 같다.(조이 에스뗄은 무대 밖에서의 특정 사건으로 인해 나에게 강렬하게 찍히긴 했지만, 어쨌든 공연은 공연이니까..)

프랑스 제작진들도 그런 허접한 퀄러티로는 더이상 한국 관객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인지.. 지난 2년 동안 조이에게 무슨 스파르타식 음악 교육이나 보컬 하드 트레이닝이라도 시킨 것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2년 전에 비해선 조이-줄리엣의 가창력이 확실히 더 매끄러워지고 고음 처리를 예전에 비해서 훨씬 자신감 있게 한다는 느낌은 들었다. 그래봤자 타고난 이미지나 특유의 꺽꺽거리는 허스키한 음색, 음역대의 한계로 조이 줄리엣의 그것은 50점에서 이제 겨우 72점 정도의 수준으로 올라선 정도일 뿐이지만, 어쨌든 이번 경우엔 들어주기 난감한 지경까지는 아니었으며 그녀가 지닌 한계 내에선 나름 최선의 모습을 보여 주었단 생각이 든다. 딱히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극 안에 그럭저럭 잘 녹아든 분위기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본 <로미오와 줄리엣> 앵콜 공연은 (적어도 내가 관람한 날은) 전반적으로 크게 거슬리는 것 없이 꽤나 훌륭한 공연이었단 생각이 든다. 난 원래 이 작품의 오리지널(2001년 DVD) 버전의 지지자인데, 뉴 버전 팀의 이번 공연을 보면서는 새로운 버전에도 부쩍 애정이 샘솟는 기분이다. 2년 전에 비해 전반적인 때깔도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나름 화려했던 2001년 버전에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로 <로미오 앤 줄리엣> 이번 공연의 때깔이 부쩍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예전에 세종 문화 회관의 그 비슷한 좌석에서 나의 완소 뮤지컬이었던 <노트르담 드 파리>를 관람한 적이 있는데, 그 때와 비교해서 이번 <로미오 앤 줄리엣> 공연이 훨씬 좋았다는 느낌이 들면서 단숨에 나만의 프랑스 뮤지컬 에이스(1인자)로 급 등극하게 된 영광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 사랑스런 공연과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티켓가의 사이

도대체 제라르와 배우들이 <로미오 앤 줄리엣> 이번 앵콜 공연 버전에다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2년 전만 해도 그렇게나 못마땅한 것 투성이인 작품이었건만, 이번 경우엔 사소하게 거슬리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인 공연의 질을 해칠 수준은 아니었고 세트 활용이나 전체적인 무대 때깔, 배우들의 가창력이나 연기, 그럭저럭 극에 잘 흡수되었던 안무, 보다 매끄러워진 극 구성 등 총체적으로 이 공연이 너무나 멋지게 다가왔다. 예전에도 그랬듯 귀에 쉽게 흡수되면서도 고급스런 느낌을 주는 넘버의 매력은 여전했으며, 2007년 버전에서 선보였던 몇 곡이 빠지고 이번에 보강된 몇몇 곡(4곡 정도?) 또한 너무나 마음에 드는 분위기인지라, 전반적으로 크게 흠 잡을 데는 없었던 아주 만족스런 공연이었다.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골수 오리지널(2001 버전) 지지자였던 내가 전혀 다른 구성으로 바뀌어 버린 뉴 버전 공연을 칭찬하게 될 날이 다 오다니..! 내년에 2001~2002년 초연 이후론 처음인 프랑스 '파리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새삼 이 팀이 바짝 긴장이라도 한 것일까..? 어쨌든,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도 며칠 전에 보여줬던 그 퀄러티 그대로만 간다면 이번 내한 앵콜 공연은 꽤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 같다. 예전에 비해 너무도 달라진 모습에 꽤 충격은 충격이지만, 이번 경우는 너무나 기분 좋은 충격이다.

하지만 요즘같은 불경기에 그 정도 고가의 티켓가는 이 공연에 대한 관심을 아예 끊게 만들거나 관람을 망설이게 만드는 주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투자 비용 대비 수익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애초에 가격을 훨씬 더 낮게 책정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더 많은 수익을 거둬들였을지도 모른단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공연 자체는 정말 좋은데, 티켓 가격이 너무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덜거리게 만드는 수준이라.. 개인적으로도 아주 큰 맘 먹고 관람한 공연에 속하며, 이 좋은 걸 어디 가서 마음껏 권하지도 못하겠는 이 괴로운 심정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