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그사세가 고전하고, 에덴의 동쪽이 시청률 잘 나오는 이유는~

타라 2008. 12. 10. 17:55
<에덴의 동쪽>은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 중에선 비교적 시청률이 잘 나오는 편에 속하는 드라마이다. 진짜 화려한 시청률을 자랑했던 드라마들에 비하면 좀 약하긴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드라마들 시청률이 다 고만고만한 관계로, 주중 드라마 중에선 비교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람들은 '이 드라마가 왜 시청률이 안 나오지?' '왜 저런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은건지 이해할 수 없다'란 말을 종종 한다..

허나 기존에 흥행성이 높았던 드라마 패턴을 분석해 보면,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들은 나름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안방 극장용 TV 드라마를 소비하는 주 타깃층은 특정 연령대, 특정 직업군의 사람이 아니라 대한 민국 내에서 다채로운 신분을 지닌 '남녀노소 모두'를 포함하기에 시청률이 잘 나오려면 당연히 다양한 연령층의 눈높이를 맞춰줘야 한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클래식 음악이나 톨스토이 작품같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자기집 거실이나 방 안에서 보는 TV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일 뿐이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온 가족과 함께 밥 먹으면서, 혹은 잡담하면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장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에서 모짜르트 음악같은 유려함과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의 문학 작품같은 그런 고난이도 퀄러티를 요구하진 않는다. 대중들은 TV 드라마에서 모짜르트의 클래식 음악을 원하는 게 아니라 송대관의 뽕짝, 신승훈의 발라드, 원더걸스의 댄스 음악같은 만만하고 편안한 선율을 원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오늘은 뭐, 재미있는 거 없나~?'와 같은 자세로 TV를 켜는 것이고 다분히 오락적인 목적, 즉 재미를 위해서 TV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이지, 그 안에서 심오하게 자기 삶을 성찰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드러나지 않은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기 위해 사색하고.. 뭐, 그러기 위해서 드라마를 시청하는 건 아니란 거다.

안방 극장용 드라마는 철저하게 드라마다워야 하고, 일정한 스토리가 있으며 인물들 간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있고 기/승/전/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확실해야지만 사람들이 그 이야기 안에 쉽게 몰입할 수 있고 보는 입장에서 별다른 수고를 하지 않고도 손쉽게 극의 흐름을 탈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의 경우는 그런 보편적인 드라마적 문법을 약간 벗어난 드라마이다. 첫 회부터 끝까지 주요 인물과 대립 인물이 갈등하며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기승전결이 있는 드라마가 아니라, 한 회 안에서 한 챕터의 이야기가 끝나는 방식이다.

그리고 등장 인물의 심리 상태, 내면, 그들의 섬세한 관계가 부각되는 드라마이다. 그래서.. 통속극적인 재미는 별로 없는 편이다.

말 그대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들이 사는 세상' 속의 등장 인물들


게다가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드라마의 전반적인 성격과는 달리, 의외로 그 안에 속해있는 인물에 대한 설정은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다. 흔히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루는 현 시점에서, 꽤나 젊은 나이에 벌써 (조연출도 아닌) 유능한 PD가 되어 전 스텦들, 스타급 연기자들을 총괄하며 맹활약하고 있는 지오, 그리고 또 PD로 나오는 준영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시청자 시각에서 바라볼 때 그저 환상 속의 그대처럼 느껴질 것이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사회 속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여 시름하고 있는 가정이 많은 현 세태에서, 가뜩이나 <그들이 사는 세상> 속 주인공들은 생경하게 느껴지는데.. 거기 더하여 두 주인공들 액면가도 현저하게 어려 보여서, 왠지 새파랗게 어린 애들이 어른 놀이 하는 듯한 '이질감'은 더더욱 배가된다. 이 드라마 속 주요 인물 기본 설정 자체가 전 시청자들로부터 보편타당한 공감대를 자아내기 힘든 구성인 것이다.

안 그래도 경기도 어려운 요즘같은 시대에 대한 민국에서 울대 나와 방송사 입사하고, 20대 젊은 나이에 벌써 본격적인 PD로 활약하면서 으리번쩍하는 화려한 집에 사는 주준영(송혜교)같은 젊은이가 과연 그리 많을까..? 꽤나 독특한 설정인 주준영의 엄마(나영희) 캐릭터 역시 대한 민국의 보편적인 엄마 스타일과는 굉장히 동떨어진 특이한 유형의 엄마 캐릭에 속하며, 그들의 가정사는 별로 짜릿한 재미를 주거나 유쾌하지 않고, 보편적인 공감대를 자아내기엔 다소 한계가 있는 설정이다. 


그/사/세 : 상생 작용에 있어, 작가나 주연 배우들이 왠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은..


<그들이 사는 세상>은 다양한 방송국 사람들 이야기도 나오지만, 기본 줄거리는 지오(현빈)-준영(송혜교)의 연애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람에 따라선 그들의 연애사나 그 과정에서 등장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꼭 내 얘기 같다..'라며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숫자 이상으로 공감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사람들의 연애 방식이나 패턴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숫자 만큼이나 그 사연도 다양하고, 공감 지점도 천차만별이기에 딱히 극 중 인물의 상황과 비슷한 경우에 처해졌던 시청자가 아니라면, 특이한 설정을 해놓은 단순 멜로.. 그들의 몇 년에 걸친 개인 연애사에 모든 이들이 보편타당하게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건 아니기에 말이다.

차라리 젊은 연기자인 현빈과 송혜교가 이런 유형의 드라마가 아닌, 대놓고 '판타지스런 멜로'를 그려내는 로코물에서 한껏 예쁜 모습으로 치장하고 나와 상큼발랄한 로맨스를 펼쳤다면 반응은 더 좋았을지 모른다. 그런 유형의 드라마는 일단 '판타지'라는 걸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인지하고서 시청하며.. 그에 따라 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오락의 한 요소로써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에, 시청률 면에서도 기본은 찍는 경우가 많다.


대중들은 운명의 여신이 주인공 삶을 혹사시키는 걸 보며 오락 게임같은 희열을 느낀다


<에덴의 동쪽>같은 드라마가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드라마는 명품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고, 구성이나 전후 스토리 혹은 세부적인 에피소드들이 결코 훌륭한 드라마가 아니다. 여러 면에서 허술한 부분도 많고, 최근 들어선 메인 주인공 캐릭터도 많이 무너져 내린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많은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는 이유는 대중들이 편하게 통속극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고, 향후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요소가 이 드라마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처음 기획 단계에서 총 50부작으로 기획된 뒤 벌써 스토리 전개가 중반을 넘어선지 꽤 되었고, 이제 32부까지 방영되었음에도 계속 (수도권 아닌) 전국 시청률 30%의 고지를 넘지 못하고 평균 시청률 20% 중반대를 전전하던 <에덴의 동쪽>이 어제 방송분에서 주인공들 운명을 바꿔버린 레베카(신은정)가 명훈(박해진)의 출생에 관해 언급하는 장면에서의 '순간 시청률'이 37%에 육박했다는 사실은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후 주인공들의 반응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하루 일과를 마친 대중들이.. 밥 먹고 그냥 잠자리에 들기 허전할 때 뭔가 재미난 요소를 찾으며 채널을 고정시키는 드라마도 일종의 오락이요, 게임의 속성이 강하다. 그들은 운명의 여신이 주인공들의 삶을 어떻게 버무리고, 거대한 비밀이 밝혀졌을 때 등장 인물들이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며..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강렬한 액션을 취하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극 중 캐릭터들을 마치 오락기 속에서 피 터지게 싸우는 게임기용 캐릭터 바라보듯 하면서, 그 상황을 지켜보는 것에 짜릿한 희열을 느끼며 즐기는 것이다.


통속극 선택의 주 요인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깊은 호기심을 지닌 존재


보통.. 살벌한 분위기라는 걸 알면서도 동네 싸움 나면 많은 사람들은 '호기심'에, 몰려가서 싸움 구경을 한다. 통속극적인 재미를 가진 '드라마'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겪는 등장 인물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심리 또한 이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드라마 <에덴의 동쪽> 속에서, 그렇게나 고고하고 대쪽같던 양춘희 여사(이미숙)는 원수 아들인 줄 알고 으르렁거렸던 신명훈(박해진)이 자기 친아들인 걸 알게 되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원래 친동생인 명훈을 향해 그동안 "내가 왜 니 형이냐~?" 했던 동철(송승헌)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친 부자지간인지도 모르고, 그동안 가장 강렬하게 대립했던 신태환(조민기)과 이동욱(연정훈)은.. 또, 동욱의 친모(나현희)는 어떻게 나올까..? 주인공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화해하며.. 악인 신태환의 최후는 어떻게 될 것인지.. 일반 대중들은 그것이 너무 궁금한 거다. <에덴의 동쪽> 같은 드라마는 극 초반에 깔아놓은 기본 밑밥이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꽤나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기에, 그 중간 스토리가 지지부진-다소 허접한 걸 알면서도 많은 시청자들이 '이 때 쯤이면 저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한 번씩 궁금해 하며 다시금 들여다 보게 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이런 류의 통속극은 시청률이 괜찮게 나올 수밖에 없다. 스토리 연결 허술해도.. 아무리 진부하다 욕해도 언젠가는 밝혀질 출생의 비밀, 주인공과 악인의 싸움, 복수.. 뭐 이런 소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깊은 호기심을 지닌 인간이란 존재에게 '결국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엄청난 비밀이 밝혀진 후 그 다음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극의 소재이기에 식상해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고, 일단 나오기만 하면 어느 정도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비록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는다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