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빼앗긴 들에도 사랑은 오는가-'여명의 눈동자' 하림의 사랑

타라 2008. 8. 14. 11:30
예전에 MBC에서 방영하여 수많은 화제를 낳았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는 단순 멜로 드라마는 아니지만,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만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때에도 여느 멜로 드라마 못지않게 완성도가 뛰어난 편이다. <여명의 눈동자>에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그녀를 가슴 깊이 사랑하는 두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데... 만일 요즘 같았으면 두 남자 주인공의 지지자(시청자)들 사이에서 피 터지는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두 남자의 사랑 :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드라마 <다모>에서 한 여주인공을 사이에 두고 윤폐-백폐 나뉘고 <발리에서 생긴 일> 같은 드라마에서 인욱파와 재민파가 은근히 서로를 견제했던 것처럼, <여명의 눈동자> 역시 비교적 최근에 방영 되었다면 대치당과 하림당 네티즌 사이에서 첨예한 갈등 구도가 형성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드라마 방영 당시.. 극 초반엔 '철조망 키스씬'과 같은 명장면을 등에 업고 윤여옥(채시라)과 최대치(최재성)의 사랑이 참 강렬하게 다가왔으나, 극 중반 이후론 따뜻하고 자상한 남자 장하림(박상원)에게 많이 끌렸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너무 전형적으로 잘생긴 남자는 어쩐지 부담스럽고.. 원래부터 박상원 같은 수수하면서도 편안한 인상의 남자가 이상형이기도 했기에, 한동안 윤여옥에게 구세주와도 같은 남자였던 장하림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의 첫 만남에서.. 장하림의, 윤여옥에 대한 첫인상은 아마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 싶었을 것이다. 위안부들 검진을 위해 위생병으로 왔던 하림의 눈에 비친 여옥은 '배는 남산만 해 가지고, 다짜고짜 칼 들고 설치며 위생병 하림을 엄청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위생병 역시 '죽기 살기로 지켜온 자신의 뱃 속에 있는 아이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그런 의도인가?' 싶었던 윤여옥(채시라)은 처음 보는 장하림(박상원)을 그렇게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봤던 것이다..


의학도 장하림 : 괴로웠던 과거의 업(業)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다

처음엔 너무 신기한 여자였지만, 원래부터가 휴머니즘적인 성향이 강한 하림은 그런 여옥을 힘 닿는 데까지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그건 여옥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하림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잔인한 생체 실험이 이뤄지던 731 부대에 투입되어, 하마트면 사이판에 있는 수많은 생명을 살생하는 데 일조할 뻔 했고 그로 인해 한동안 참 많이 괴로워했던 하림에게 '살생이 아닌 새 생명의 탄생을 돕는 일'은 그야말로 신 나는 일, 보람 있는 일, 간만에 살 맛 나는 일이 아니었을까 한다. 장하림은 원래, 대학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닌) 사람을 살려내기 위한 공부를 했던 의학도였으므로...

여옥에게 '사이판에서 만나게 된 하림'은 은인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처절한 전쟁터와 잔혹한 일본군 생체 실험의 압박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은 하림 또한 '윤여옥이란 여자와 그의 어린 아들을 지켜주고 도와줄 수 있었던 일'은 오랜만에 삶의 활력을 되찾게 해준 의미 있는 일로, 그의 힘든 하루 하루를 지탱해 주는 보람으로 자리잡는다. 원래 여옥이 낳은 아이의 아빠는 따로 있지만(최대치), 사이판 바닷가의 평화로운 외딴집에서 잦은 부부 모드를 형성하며 나름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그들 장하림과 윤여옥..


보호 받아야 할 대상에서 본격적인 연정의 대상으로~

허나 이 때까지만 해도 장하림이 윤여옥을 딱히 이성으로서, 여자로서 좋아하는 그런 차원은 아니었던 듯하다. 단지 의학 공부를 한 자신의 도움이 닿을 수 있는 존재, 보살펴 줘야 할 대상, 삶의 보람과 일상의 활력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사이판에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여옥은 하림에게 귀가 따갑도록 아이 아빠(최대치) 얘기를 하며 '대치와 꼭 살아서 다시 만나야 된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했을 것이고.. 하림 역시 '일본에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사랑하는 그녀와 다시 재회하고픈 바람'을 여옥에게 이야기한 바 있다. 서로 동병상련의 처지로...

그런 장하림(박상원)이 윤여옥(채시라)에게 본격적인 연정을 느끼게 된 것은 아마 '둘 다 중국에서 첩보원 수업을 마친 뒤, 경성에 돌아와서 다시 재회했던 그 무렵' 쯤이었던 것 같다. 사이판에서의 하림과 여옥은 편안한 가족 & 오누이 같은 느낌이 강했었고, 사이판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을 무렵의 하림은 여옥에게 어린 여동생 대하듯 반말로 얘기했었는데.. 경성 국빈관에서 아무런 예고 없이 여옥과 다시 재회하게 된 하림은 그런 그녀를 다소 어려워하며, 갑자기 존댓말로 여옥을 대한다.



한 남자가 편하게 반말했던 대상에게 갑자기 존댓말 투로 어렵게 대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을 이성으로서, 여자로서 느끼게 되었을 때' 그리 하는 경우가 많다. 하림이 다시 만난 여옥에게 갑작스럽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비록 애를 낳긴 했지만 여린 소녀 같았던 사이판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국빈관에서 본격적으로 꽃단장하고 앉아있는 윤여옥의 모습이 남자 입장에서 봤을 때 너무 아름다워서 본격적으로 확 반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한 때 같은 처지였던 여옥과 하림~ 여옥은 중국에서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졌고, 하림은 일본에서 헤어진 연인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각각 사랑하는 이와 재회하고픈 바람'을 갖고 있었던 사이판에서와는 달리, 경성에 돌아온 하림은 자신의 '옛 연인의 죽음 소식'을 접하게 된다.(본격 커플남에서 싱글남으로 돌아온 장하림~)


나라를 되찾기 위해, 생사를 건 독립 운동의 동반자

중국에서 빡센 스파이 교육을 받은 여옥과 하림 & 하림의 동기는 경성에 돌아와서 함께 '삼인조'를 이뤄 독립 운동가로 활약하게 된다. 생사를 오가는 첩보원 활동을 하며 동고동락하는 가운데, 여옥에 대한 하림의 연정은 더욱 더 깊어만 가고... 급기야는 친일파 박춘금에 대한 도시락 폭탄 사건 때 체포된 여옥을 위해, 자수하여 옥고까지 치르게 된다.

원래부터도 장하림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그 이후에도 이렇게 저렇게 엮이는 여자들이 있었지만, 이 장하림에게 윤여옥이란 여자는 유독 특별하다. 그녀 때문에 번번히 위험해지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걸고 여옥을 지켜내려 했던 하림의 사랑.. 그건 뭐였을까? 장하림에게, 윤여옥이란 여자가 가지는 그 특별함은..?

그녀와 함께 '해방의 날'을 맞이하게 되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내 나라'로 불릴 만한 조국이 없었던 스무 살 남짓한 장하림과 윤여옥에게, 드디어 조국이 생겼다. 1945년 8월 15일.. 지긋지긋한 전쟁에서 드디어 일본이 항복하였으며, 이들의 나라 조선이 독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태어나서, 생애 처음으로 '조국'을 갖게 된 그 날~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 운동의 동반자였던 윤여옥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그 생소하고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된 장하림에게, 그녀는 어느덧 '조국'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