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토크

묘한 의문을 갖게 한 '남자 발레 댄서'의 하의 실종

타라 2012. 4. 30. 13:15
개인적으로 '듣는 것'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는 쪽이어서 '음악회' 형식의 공연을 훨씬 선호하며, 오래 전 공연장에서 직접 본 '무용극'을 통해 지루함을 느낀 경험이 있는지라 '무용'으로만 이뤄진 극에 대해 큰 관심은 없는 편이었다. 종합 예술이라 할 수 있는 '대형 뮤지컬' 안에 다른 요소들과 함께 맞물려 등장하는 '무용(춤)'엔 엄청난 감흥을 느낀 적이 있지만 말이다..

발레(ballet) 역시 그런 '무용극'의 일종인데다 어린 시절 교육 방송에서 종종 봤던 '발레극'에 깊은 인상을 받은 건 아니었기에 '발레 공연'과 영 동떨어진 삶을 살다가 최근 들어 몇 번 발레극을 보러가게 되었다. 건너 건너 건...너 측근이 무용과 교수여서 한 번씩 초대권이 들어오곤 하기에... 그 분야 최고의 프로들이 하는 것처럼 대단한 공연은 아니지만, 직접 관람해 보니 '발레극도 꽤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각 작품들마다 편차는 존재한다.

비교적 최근에 본 건 <신데렐라> 이야기를 소재로 한 아기자기한 느낌의 '발레극'이었다. 거기 무용과 학생들도 단역으로 등장하긴 했으나 대체로 무용과 강사나 부교수, 특정 컴퍼니 소속 단원들이 주요 배역으로 출연하였다. 개인적으로 그 발레극 <신데렐라> 앞부분이 좀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신데렐라' 역을 맡은 여주인공이 너무 예뻐서 '왕자님' 등장하는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막 감정 이입이 되었다.


그 때 '신데렐라' 역을 맡은 발레리나는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키에, 계란형의 작은 얼굴 & 정말 가늘가늘하고 우아한 체형을 지닌 어여쁜 여주인공이었으며 '왕자' 역의 발레리노는 적당한 키에 딱 남자다운 체형 & 멋지게 생긴 얼굴을 하고 있어서 둘 사이의 균형적인 조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외형적인 면에서 이미 '사랑에 빠진 남녀'로서의 최강 어우러짐을 자랑했던 그 둘의 '커플 댄스'는 정말 아름답고 아트적이었으며, 마지막 해피 엔딩도 참 좋았는데.. 그랬는데.. 결과적으로 집에 오면서 일행과 나는 이상한 감상을 쏟아내야 했다. "그런데.. 아까 그 왕자님, 왠지 하의 실종 같아 보였어~"라는...

발레
(ballet)는 꽤 전문적인 분야이며, 발레 댄스를 기반으로 한 '발레극'에선 거기에 요구되는 어떤 기본적인 규칙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 규칙에 의해, 발레리노(남자 발레 댄서)들은 대개 몸에 착 달라붙는 쫄바지 유형의 의상을 입고 나온다. 보편적인 기준에 따르면 남체 보다는 여체가 훨씬 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을 지니고 있다 생각하는데, 안 그래도 살짝 투박한 체형의 남자 댄서들이 몸에 너무 밀착되는 의상을 입고 발레극에 출연하다 보니 가끔은 그 외형적 모습이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특히, 무대에서 가까운 좌석에 앉아서 공연을 감상할수록 더 그러하리라..)


그것이 만일 '아래-위 동등한 강도로 밀착되는 의상'이면 어느 한 쪽이 도드라지게 보이진 않았을텐데, 지난 번에 본 그 '왕자님'의 경우 '상의'는 '중간에 반짝이 장식이 있긴 했어도 일반인들도 일상에서 흔히 입을 법한 그런 옷'에 '하의'는 '남자 발레 댄서들이 입는 전형적인 쫄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러한 탓에 한참 '왕자님의 출현으로 고난에서 벗어나려는 신데렐라 이야기'에 감정 이입했다가 그 멋진 왕자 캐릭터에 시선이 갈 때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저 왕자님.. 위에는 다 갖춰 입고 나왔는데, 마치 집에서 내복 입고 있다가 바지 입는 걸 까먹은 채 외출한 하의 실종 왕자 같으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물론 '발레(Ballet)'란 분야의 전통과 특성 상 '남자 발레 댄서'들이 그런 의상을 입어야 된다는 걸 알지만, 그것 역시 <신데렐라>라는 하나의 이야기를 '극'으로 보여주는 '발레 공연'이었기에 '배우들이 옷을 다 갖춰입고 나오는 타 장르의 극'과 여러 면에서 대비되어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 극에 나온 여주인공(신데렐라)이나 다른 조연 캐릭터를 맡은 발레리나(여성 발레 댄서)들은 대체로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하늘하늘한 스커트'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적어도 하의 실종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멋진 왕자님 역으로 나온 남자 댄서는 '위에만 보통 의상 & 밑에는 다소 민망한 느낌의 속옷삘 쫄바지' 착용 상태였다 보니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지금으로부터 한 두 세기 전에 살았던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이 '발레 공연의 제약'이 짜증난다며 정형화된 발레 동작을 탈피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춤을 개발한 뒤 '현대 무용의 대모' 쯤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21세기의 '발레 공연'도 고정 관념을 벗어나 그런 류의 파격을 시도하면 안되는 것일까..? 발레극을 선보이는 '남자 댄서들의 옷차림'에 있어, 굳이 '해당 캐릭터에 감정 이입 될려다가 확 깨는 쫄쫄이 바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딱히 쫄쫄이 바지를 벗어나지 않더라도, 그 위에다가 뮤지컬 <십계(Les dix)>에 나오는 람세스 의상처럼 '남성용 치마'라도 하나 걸치게 하는 건 어떨런지? '여성 발레 댄서'들이 긴 스커트 입고서도 유려한 발레 동작을 구사할 수 있는 것처럼 '남성 발레 댄서' 역시 마찬가지일테니 말이다. 고정 관념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 '발레극'에 나오는 '멋진 남성 캐릭터들의 하의 실종 탈피'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