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화 드라마 '천일의 약속'을 처음 봤을 때 '비교적 심각하고 잔잔한 내용임에도 오랜 시간을 통해 다져진 김수현 작가의 필력이 느껴진다. 특유의 흡인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 '주인공 커플에 대한 설정'은 여전히 불편하다. <천일의 약속> 경우 이 극을 시청하는 대중들의 반응도 꽤 관심 있게 접하고 있는데, 적어도 내가 관찰한 바로는 이 드라마를 보는 80~90%의 사람들이 '박지형(김래원) & 이서연(수애) 커플'에게 묘한 반감을 갖고 있는 듯했다.

온라인 상에서만 그런 반응인 건가 싶어, 최근엔 오프라인에서 만난 '<천일의 약속>을 시청하는 지인'에게 물어 봤더니 역시나 이 드라마 속 남녀 주인공(김래원, 수애)을 보면 '짜증난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더불어, 이 극에서 버림 받은 약혼녀인 향기(정유미) 또한 '좀 이상한 애 같다~'고 말했던...

이제, 뭘 해도 욕 먹는 <천일의 약속> 주인공 커플 & 천일의 호구

기왕이면 '태도'나 '사고 방식'이 건전하거나 멀쩡한 사람이 주인공이면 좋을텐데, 이 극의 주연 캐릭터(지형 & 서연)는 '태도 면에서 뭔가 하자 있는 인물'이기에 '상식적인 기준을 지닌 대다수 사람(시청자)들'이 다소 받아들이기 불편해 하는 것 같다. 물론 불쌍하기는 하지만,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잘못된 건 분명 잘못된 것이니...(때로 인간이 걸리는 '질병'은 질병이고, 그가 저지른 '악덕'은 악덕이다.)

오랫동안 '교제 중이던 약혼녀를 속여온 지형'에게 실제로 혼인 빙자 간음죄가 성립하진 않겠지만(위헌 결정 났으니까), 그래두 '도의'에 어긋나는 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기나긴 역사를 통해 좁은 땅에서 서로 왕래하며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우리 나라 사람들(한국인)에게, 이런 류의 '도의'는 특히 중요하다- 어쩌면 '법'보다도 더... 한 나라에 간통죄가 없다고 해서 <정해진 약혼자(결혼을 약속한 자)나 배우자 외에 다른 이성과 간음을 한 사람의 행동>이 정당한 행동이 되는 건 아닌 것이다-

이 드라마에선 '쟤는 치매니까요~' 하면서 여주인공 불쌍 모드 작동시켜 남녀 주인공 커플이 저지른 '과거의 악덕'에 대해 열심히 공구리를 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빼도 박도 못하게 존재했던 일' 때문에 <천일의 약속> 주인공들은 극이 끝나갈 때까지 우리 나라 시청자들에게 '찍힌 커플'로 기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람(人)'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 아니고, '사랑(愛)'이라 해서 다 똑같은 사랑 아니라 생각한다. 개개인별 행동거지에 따라 사람의 품성에도 '격' 같은 게 존재하며, 그들이 하는 사랑도 주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급'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자신있게 이런 말 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제 3자에게 상처 주거나 피해 입히는 사랑'은 한 적이 없기에 '도의적 차원'에서 나름 꿀릴 게 없다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그건 나 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상식적 수준의 사람들'이 다 그러할 것이다.

한 때.. 이런저런 연애 사건에 휘말렸을 때 '임자 있는 사람은 절대 안 건드린다~'는 나름의 철칙을 세워 놓은 적이 있는데, 난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원래는 너무나 도덕적이고 순수했던 지인'이 어디서 이상한 친구한테 물들어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며? 임자 있는
(공식적으로 교제 중인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도 내가 마음에 들면 뺏고 싶어~' 그런 말해서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만류했던 적이 있는데, 아무리 이리 생각해 보고 저리 생각해 봐도 그건 절대 해선 안되는 일 같다.

내가 마음이 좀 간다고 해서 '이미 다른 여자를 사귀고 있는 남자' 뺏어오면, 원래 그랑 사귀고 있던 여자는 뭐가 되는가- 그건 '엄한 남의 눈에 눈물 빼는 짓'인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런 짓은 안하고 사는 게 본인 인생에도 좋다고 생각한다.(어차피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 살다 보면 내가 그 반대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는 법) 두 남녀가 한 번 사귀기 시작했다고 쭉 가는 건 아니니, 그 남자가 원래 사귀던 여자랑 이런저런 이유로 완전히 끝내고 '싱글 상태'가 되었을 때 한 번 접근해 보는 건 또 몰라도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성 간의 사랑'에 있어 '정당 플레이' 안하고 뒷구멍으로 '더티 플레이' 하는 사람은 욕을 먹게 마련이다. 그래서 <천일의 약속>에서의 '오리지널 약혼녀인 향기(정유미) 기만 남녀=지형(김래원) & 서연(수애) 커플'이 끝까지 대중의 지지를 못 받는 게 아닐까 한다.

베드 위의 배드한 남녀?

게다가, 이 드라마 주인공 커플은 처음부터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는 '선정적인 장면'을 자주 선보였기에 시청자들에게 쉽게 각인될 수 있는 그 이미지 상 '순수한 커플'이라기 보단 뭔가 '욕정에 미친 듯한 짐승 커플'이란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 ;;(여리여리하고 가느다란 선과는 거리가 먼 '선 굵은 이미지를 지닌 김래원'의 현재 마스크 자체가 살짝 느끼해 보이는 감이 있고, 수애는 지난 드라마 <아테나>에 이어 TV극에서 연속적으로 '베드씬'을 선보인 여배우라 더더욱 그래 보이는 듯...)

오래 전.. '국내 최초의 매니아 드라마(or 컬트 드라마)'라 할 수 있는 노희경 작가 집필의 <거짓말>에서 남자 주인공인 준희(이성재)가 부인인 은수(유호정) 말고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성우(배종옥)란 여자를 사랑했기에 그 역시 '정신적인 불륜'이라 할 수있는데, 그래두 이 커플은 한 번도 '동침'한 적이 없었기에 '간음의 과정을 거친 완전한 불륜 커플'은 아니었던 셈이다. 또한, 결말부에 남자가 결국 오리지널 부인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의 혼외 사랑이 나름의 아련함과 애틋함을 자아내었던...

허나 <천일의 약속>에 나오는 지형(김래원)과 서연(수애)은 그것과 경우가 많이 다르고, 지형이 결혼을 안했어도 '온 동네방네 소문난 약혼 or 약혼식'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중요한 약속'이기에, 1년 간 간음해 온 이 커플에겐 대중들이 뭔가 부정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여주인공의 수난?


비슷한 부류의 '남한테 피해 주는 사랑'일지라도, 김수현 작가의 전작 <내 남자의 여자>와 <천일의 약속>은 또 많은 차이점을 지닌다. <내 남자의 여자> 속 화영(김희애)은 적어도 캐릭터 자체로 착한 척 하거나 불쌍한 척을 한 적이 없는, 원래부터가 '나쁜 년' 포스를 폴폴 풍기던 악녀 여주인공이었다.

그에 반해 <천일의 약속> 여주인공인 서연(수애)은 캐릭터 자체로 보면 분명 '불쌍한 비련의 여주인공'이어야 하는데, 그 불쌍해야 할 애가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며 다른 여성에게 피해를 준데다, 표리부동하게시리 겉으론 자꾸 착한 척 & 불쌍한 척 & 조신한 척 & 우아하고 고고한 척 하니까(그것두 주변 캐릭터까지 동원해 가며) 시청자들이 더 재수없어 하는 것이다.

극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똑같이 '나쁜 짓(타인에게 엄한 상처 주는 부도덕한 짓)' 해놓고 솔직하게 "그래, 쟤는 나쁜 년이야~" 하는 캐릭터 보다는 온갖 '자기 합리화'를 다 해가며 "원래 불쌍한 년인데, 너네 왜 자꾸 쟤 욕하는 거야~?" 하는 캐릭터에게 '더 큰 반감' 갖게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천일의 약속>의 서연이랑은 달라..
화영인 착한 척 하지 않는 나쁜 여자임~
'

김수현 작가는 기존의 여러 드라마들을 통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진보적이고 젊은 감각을 선보여 왔던 작가인데, 이번엔 그 젊은 감각(?)이 지나치게 앞서가서 다소 '오버'를 한 것 같다. 마치.. 젊은이들이 자기 사랑에 '솔직'한 게 최고의 미덕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쳤든 일단 두 남녀가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으니 나머진 쿨하게 다 넘어가질 수 있는 것처럼...

허나, 쿨한 걸 미덕으로 여기는 요즘 젊은 사람들도 나름의 '사리 분별력'은 지니고 있다.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엄한 남에게 상처 주거나 피해 주거나 거짓된 언행으로 기만하고 사기 치는 것'은 '쿨한 것'하곤 전혀 관계없는 '부적절하고 나쁜 행동'일 뿐이다.

굳이 '드라마' <천일의 약속> 주인공 커플만 욕 먹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유명 연예인이 저 비슷한 행동을 했을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이 욕하며, 실제로 우리 시대의 한 연예인이 양다리 비슷한 행각을 펼쳤다가 심하게 욕 먹고 거의 매장 당하다시피한 일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쉽게 양 가문 사이의 '약속'을 깨는 신종 민폐? : '결혼 준비'는 이 여자랑, '결혼 생활'은 저 여자랑~

작년 & 재작년 드라마를 통해 아직까지도 여전히 '최고의 드라마 작가'임을 입증했던 김수현 작가가 '계산 착오인 2011년작 <천일의 약속>'을 통해 위기를 맞게 된 건 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젊은이들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옳은 건 옳다 말하고, 그릇된 행동은 잘못되었다' 비난하는 태도를 보이는 걸로 봐서, 아직까진 세상에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한다. 월화극 <천일의 약속>은 한 편으로 씁쓸함을 주면서, 또 한 편으론 안도감을 주는 드라마라고나 할까-

그렇게.. '다소 이기적이어도 나만의 행복이나 내 감정에 충실한 게 최고다~'라고 생각하는 위험한 발상의 사람들 보다는 '엄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사고 방식을 갖고 있거나 '기왕이면 선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기에, 아직까지 세상이 망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런지...

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