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천일의 약속', 잔인한 악덕 속에 탄생한 순애보

타라 2011. 11. 8. 23:17
월화 드라마 '천일의 약속'은 두 남녀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표방한 채 시작된 드라마이지만, 의외로 그 '순애보'의 주인공인 지형(김래원)과 서연(수애)의 사랑이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최초의 원인은 '남녀 간의 이성적 사랑'이 지닌 '배타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친구들끼리 인간적인 교류를 나누는 '우정'의 경우엔 그 '우정을 나누는 대상'이 1~2명에서 20~30명 등 수십 명대까지도 가능하지만, 이성 간의 '사랑'은 그 대상이 1명이어야 한다. 그래서 '한 남자'를 '두 명의 여자'가 사랑하게 되면, 그 중 한 여자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사랑에 있어선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되는데,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사랑에 빠진 세 젊은이들 중 가장 약자는'약혼자에게 철저하게 기만 당하고 버림 받은 향기(정유미)' 캐릭터가 아닐까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 정서 상 당연히 '약자' 캐릭터에 마음이 기울게 마련이다. 그러한 이유로, 다수의 시청자들은 정혼자 '향기'에게 큰 상처를 준 불륜(?) 남녀 지형(김래원)과 서연(수애)을 비난하고 있다.


물론 지형(김래원)과 향기(정유미)가 아직 결혼한 건 아니지만, 온 집안 사람들 & 주변 사람들에게 '곧 결혼하는 것으로 알려진 약혼자 사이'이기에 '약혼자를 만나고 있는 도중, 결혼과 무관하게 만나 잠자리까지 같이 한 또 다른 여성 서연(수애)'은 불륜녀 비슷한 개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천일의 약속>은 TV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런 난해한 설정을 해놓고도 당연히 '두 남녀 주인공'을 미화하는 쪽으로 가겠지만, 이게 만약 드라마가 아니라 포털 '연애 게시판' 같은 데에 올라온 실제 사연이라면 '지형' 같은 양다리남은 더더욱 '천하에 때려죽일 놈'으로 매도될 것이며, (두 불륜 남녀에 대한 뒤의 상황까지 알려진다면) 좀 불쌍은 하지만 알츠하이머병(치매)에 걸린 '서연'은 '다른 여자 눈에 눈물 빼서 본인 눈에 피눈물 흐르는 상황에 처한 천벌 받은 여인네'쯤으로 치부될 것이다.

그래서 '월화극 <천일의 약속>은 불륜 미화극이다~' 식의 불편한 느낌을 갖고 있는 시청자들도 있는 듯하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없고 '사랑'이란 감정은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아니기에,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지형(김래원)이나 서연(수애) 같은 인물도 자기 나름대로의 안타까운 입장에 처해있는 건 사실이다.

사랑할 때 하더라도, '양다리'는 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 or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 차원에서 봤을 때, 그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태생적으로 배타성을 지니고 있는 이성 간의 사랑'에 있어, 제일 잔인하고 치명적인 것이 '사랑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희망 고문'이다.
 
비록 주변 상황 때문에 결혼을 포기했으나 극 중 지형과 서연은 서로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적어도 그 부분에 있어선 정서적인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그런 강자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한 남자를 사랑했던 '사랑의 약자'를 철저하게 기만한 것 & 뒤통수 친 것도 정신적 차원에서의 폭행이 아닐까 한다.

인간이 타인을 때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물리적 충격'을 가하는 것도 폭행이지만, 선량한 타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하여 '정신적으로 상처주는 것'도 명백한 폭행이다.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사랑의 강자 지형(김래원)이 '향기는 서연이보다 가진 게 많으니까.. 부족할 것 없이 풍족한 사람이니까..' 그 핑계를 자꾸 대는데, '실연의 아픔'에서 오는 정신적 충격은 부자든 빈자든 상관없이 '사람'이라면 동일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견디기 힘든 정신적 상처'에 속한다..


남들 보기에 전혀 부족할 게 없는 재벌 자녀도 마음이 여리거나 아픔이 크면, 그 '실연에 의한 상처' 때문에 (경우에 따라) 자살할 수 있다. 그런 '정신적인 아픔'은 '물질적인 풍족함'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특히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향기(정유미)처럼 세상의 풍파를 모르고 곱게 자란 여성이라면, 그동안 쌓여 온 <풍파에 대한 내공>이 적기 때문에 그만큼 더 크게 아파하고 무너질 수 있다. '지형'이라는 그 '양다리남'은 상대에게 그런 정신적 폭력을 가하지 않기 위해 진작에 '솔직'했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그 남자(김래원)가 '본인이 진짜 사랑하는 여자 서연(수애)'을 두고 '그 여자가 멀쩡했을 때'엔 상대방 의견이 그러하다는 걸 이유로 '실컷 연애질은 했지만 결혼은 안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가.. '그 여자가 병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엔 180도 포지션을 뒤집어 '무조건 그 여자와 함께 하겠다~' 식의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 자체가 심히 찌질해 보인다.

세상 어떤 일이든 인간의 삶에선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빈번하고 벌어지곤 하는데, 불륜녀 상황에 따라 '기만적인 결혼' 당했다가 '잔인한 팽' 당했다가 하는 그 약혼녀는 무슨 죄란 말인가- 앞서도 말했듯, 사랑의 약자에게 가해지는 '
(결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 사람에게 여지를 두거나 사랑하는 척 연인으로서 옆에 두는 류의) 희망 고문'이야말로 사랑의 강자가 행하는 제일 치졸하고 잔인한 행동이 아닐까 한다.


또한.. 철저하게 '배타성'을 지닌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 상대를 기만한 <양다리 연애 행각>은 다른 한 쪽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절절하다 해도 '일반적 상식'을 지닌 사람들에게 쉽게 용인되어질 수 없는 행동이다. 이 극에서 양다리남은 지형(김래원)이지만, 그에게 다른 약혼녀가 있다는 걸 알고서도 1년 간이나 만남을 지속해 온 서연(수애)도 상대를 모욕하고 기만한 '공범'에 속한다.

이들의 '사랑'이 잘못 됐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정말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다만, 어차피 이렇게 '큰 일(결혼식 이틀 앞두고 파토내기) 저지를 수 있는 남자' 박지형(김래원)은 그 큰 일을 진작에 저질렀어야 했다는 거다- 집안 어른들 핑계로, 자신을 너무나 좋아해 주는 약혼녀 향기(정유미)를 핑계로 마음에도 없는 여자를 '대외적인 연인'으로 두고 있을 게 아니라, 진작에 향기에게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따로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해서 그 관계를 청산한 뒤, 연애를 하더라도 '한 여자'하고만 했어야 했다.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양다리' 걸칠 게 아니라...

'사랑' 자체는 아름다운 거지만, 남녀 간의 그 '사랑'에 어느 정도의 룰과 도덕성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지형(김래원)과 서연(수애)이 겪게 될 앞으로의 여정이 힘들고, 불쌍하고, 그 사랑이 지고지순하게 그려진다 하여도, '배타성을 지닌 애정 문제'에서 이미 '사랑의 약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른 그들(타인에 대한 정신적 폭행의 공범)의 순애보를 지켜보는 게 참 불편하게 느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