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목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4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세종' 역의 한석규가 "지랄, 젠장, 우라질~"의 욕 3종 세트를 선보이며 큰 화제를 모았다. 'TV 드라마'에서 등장 인물들이 '욕'이나 '속어'를 사용하게 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화'에서처럼 대놓고 욕을 남발하진 않지만, 언젠가부턴 안방 극장용 '드라마'에서도 배우들이 속된 용어를 사용하는 사례들이 심심찮게 발견되곤 한다.

세종이 "지랄~"을 달고 살게 된 사정(젊은 세종의 회상)/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그 중, 2011년 수목극 <뿌리 깊은 나무>에서 욕 세종(한석규)이 하여 화제가 된 "우라질~"은 2003년 드라마 <다모>에서 백부장(이한위)이 단골로 쓰던 말이었으며 "지랄~"은 2004년 드라마 <아일랜드> 속 등장 인물들이 대놓고 쓰던 말이었다. 그 이전 드라마에도 종종 나왔던 말이었는진 모르겠으나, 2004' 드라마 <아일랜드>에 그 대사가 처음 나왔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TV 드라마엔 되도록이면 순화된 말들이 주로 나오는데, 이 드라마 작가는 대놓고 비속어를 쓰네. 되게 신선하다~' 싶었던...

한 때 '아역 탤런트'였다가 현재는 '에로 배우'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시연(김민정)의 동거남으로서 그녀에게 빌붙어 사는 재복(김민준)은 어느 날, 자신의 생일 선물로 '오토바이'를 사 달라고 조른다. 자기가 살테니, 돈을 조금 보태주기라도 하면 좋겠다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건 무척 위험한 일이라 여긴 시연은 안된다고 거절하는데, 그 때 드라마 <아일랜드> 속 재복(김민준)과 시연(김민정)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며 '안방 극장용 지랄 시리즈'를 완성한다.


2004년 드라마 <아일랜드> 속에서 이들이 남발했던 '지랄~'욕은 (듣는 입장에서) 별 위화감이 없는 '귀여운 생활 회화'였다. 그런 류의 설정들 때문에, 개인적으로 '요상한 동거'를 하게 된 재복과 시연의 동반 출연 장면 & 시연의 펭귄 가족이 나오는 장면들이 무척 재미나게 느껴졌다.

애교스런 지랄 멘트를 해대며 오토바이 선물을 조른 재복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나중에 시연과 헤어진 뒤에 결국 본인이 번 돈으로 사게 된다. 한동안 동거 생활을 했던 이 재복(김민준) & 시연(김민정) 커플이 나중엔 중아(이나영)와 국(현빈)이라는 남녀에게 관심 갖게 되면서 이별하는데, 그렇게 '이성 관계'가 깨어진 뒤에도 '인간적인 면'에서 서로를 걱정하는 (극 후반부) 둘의 모습은 묘하게 짠했다.

특히,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된 재복'을 진정 안타까워 했던 시연의 모습은... 재복이 다친 후에 그와 만나게 된 시연은 위험한 오토바이 타고 다니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또 지랄지랄~거렸지만, 실은 재복이 '오토바이'하곤 무관하게 그냥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교통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중아와의 인연이 있는 동전에 집착하다가...) 드라마 속의 그런 내용을 떠나서, 시연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큰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주로 타고 다니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라 생각된다..


컬트적 성격이 강했던 인정옥 작가의 <아일랜드>는 아무리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봐도 '네 주인공들의 성장 & 치유 드라마' 같은 느낌의 TV극인 듯한데, 당시 여주인공 중아(이나영)를 둘러싼 러브 라인 추종자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논란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여타 '삼각 관계' 등장하는 멜로 드라마에서 그러하듯, 이재복(김민준)과 강국(현빈) 팬들 사이에서 '이중아(이나영) 쟁탈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엔 "아으, 구려~" 그러면서 드라마 <아일랜드>를 시청했었는데, 그런 흐름과 달리 난 극 중 '시연(김민정) 캐릭터'를 둘러싼 내용들이 제일 흥미로웠다. 당시로선, 네 주인공들 중 '시연' 역을 연기한 김민정의 '연기'가 제일 볼 만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참을 수 없는 설정의 무거움? '얘네는 항상 심각해~'
/ 드라마 <아일랜드> 속 '이중아 & 강국' 커플

많은 사람들이 버닝했던 중아(이나영)-국(현빈) 부부의 이야기 or 재복(김민준)-중아(이나영)-국(현빈)의 삼각 관계는 너무 정적인데다 시종일관 심각했기에, 그나마 걸죽한 욕에 와글바글한 분위기를 풍겼던 시연(김민정)이 가족 이야기를 통해 특유의 인간미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숫자만 많을 뿐, 극 중 시연의 가족은 소녀 가장 격인 시연(김민정)을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살 수 있게 해준 이들이 아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허했던 시연은 '가진 건 없지만, 건들거리는 찌질함 속에 사람 맘을 따뜻하게 해주는 묘한 재주를 지닌 재복(김민준)'과 동거하게 된다. 둘만의 동거는 아니고, 양아버지에게 깝치다가 쫓겨난 재복이 시연이네에 편입되어 그녀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는 설정이다.

다 함께 TV를~/동거 커플 '재복 & 시연'의 격투전을 문 밖에서 엿듣는 중인 시연이네 펭귄 가족


등장 인물들의 입을 통해 '허세스런 대사'가 꽤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살짝 비난을 받기도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옥 집필의 2004년 수목극 <아일랜드>가 꽤 '진보적이고 매력적인 드라마'라 생각한다. 이 드라마 속엔 은근 '시대를 앞서가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2010년 이후 김수현 작가가 <인생은 아름다워>란 주말극을 통해 '남자 동성애'를 안방 극장에서 대놓고 보여주는 파격을 시도했는데, 훨씬 이전 드라마인 <아일랜드>엔 그런 요소들이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곳곳에 깔려 있고 '가족'의 개념도 기존의 한국 드라마와는 많이 다르다.

'입양아 중아(이나영)의 아일랜드 가족'이나 '재복(김민준) & 재복의 양아버지(김인태) 관계'를 통해, 이 드라마는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가족'이 꼭 '핏줄'로 얽혀 있어야지만 가능한 건 아니라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2004년 드라마 <아일랜드> 전반부를 통해 동거(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재복-시연 커플이 '집에서 살림 하는 남자 & 밖에서 돈 벌어오는 여자'의 구도를 보여준 대목도 무척 흥미로웠다. 현재 방영 중인 <애정 만만세> 같은 드라마에도 '돈 벌어오는 아내(김수미)-살림하는 남편(박인환)' 커플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극에선 '남편이 무능하여 어쩔 수 없이..'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는 반면, <아일랜드>에 나오는 재복(김민준)과 시연(김민정) 커플은 경우가 좀 다르다.

오랜 '가정 주부 라이프'의 장모님보다 더 꼼꼼한 '살림하는 남자 이재복'

인정옥 작가가 쓴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물론 재복이란 인물이 '스펙 부족하고 무능한 것'이 자랑은 아니며 그가 나중엔 경호원 생활을 통해 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런 걸 떠나 '어느 쪽이든 능력 있는 사람이 돈 벌어오면 되고, 남자라도 살림 좋아하고 잘하면 집에서 살림만 할 수도 있다..'라는 기본 마인드가 해당 드라마 안에 깔려져 있는 느낌이다.(이거, 꽤나 획기적이고 진보적인 거다- '남자'도 어떤 면에서 보면, 무한정 세고 능력 있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거나 의외로 약한 존재'일 수 있으니...)

이 드라마는 결국 '재복과 중아가 친남매인가, 아닌가~'를 알려주지 않은 채 끝났는데 '남매' 여부를 떠나 재복이 만일 중아랑 같이 살게 된다 할지라도 '보다 능력이 많은(무려 의사인) 여자 중아'가 바깥 일을 하고 '남자인 재복'은 그 뒤치닥거리를 하거나 여자보다 더 많이 집안 살림을 담당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세상의 모든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다. 또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치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변하기도 한다. '수동적인 여성 or 다소곳한 여성'은 옛날 말이고, 요즘 여성들은 옛 남성들 못지않게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들어선 '요리 하는 남자/피아노 치는 남자/옷 만드는 남자' 등 '예전엔 여성들이 주로 했던 일'을 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섬세한 요즘 남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21세기 남녀 관계? 능력 있는 여자 & 살림 잘하는 남자~
때론, 스트레스 받는 동거녀 마음 위로해 주기


현재는 남자라서 무조건 용맹하고, 적극적이고, 바깥 일을 해야 하고.. 이런 것 자체가 '고정 관념'일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런 시대의 변화 때문인지, 최근에 <아일랜드>란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본인이 케케묵은 편견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자유 영혼에, 사회적인 성취욕 강하고 능력 많은 여성 입장에선 이 드라마 속 재복이(김민준) 같은 남자가 반려자로서 이상적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유능한 여성들이 '결혼' 질문에 대해 "난 (내가 돈을 잘 버니까) 돈 벌어오는 남편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집에서 살림 잘하고 항상 바쁜 나를 잘 챙겨줄 수 있는 아내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그런 여자들에겐 드라마 <아일랜드>에 나오는 재복이처럼 '평생 바깥 일 하는 건 싫어하지만 살림에 취미가 있고, 겉으론 별 볼 일 없어 보여도 스트레스 받은 인간에 대한 오묘한 치유 능력이 있는 근사하게 생기고 가슴팍 넓은 남자'가 배우자로서 딱 어울리는 게 아닐까..?

그 여성이 정말 <꽤 오랫동안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을 사슬처럼 옭아매어 온 고정 관념 & 불합리한 편견, 속된 유형의 인간들이 발사하는 세속적인 시선들>로부터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