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Romeo et Juliette)'은 초연 당시 유럽에서 빅히트 쳤으며, 그 후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국어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이 뮤지컬의 경우엔 판본이 굉장히 많고, 그만큼 '불어권 뮤지컬' 치고는 (특정 국가 내에서가 아닌) 세계적인 인지도가 좀 높은 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 작사/작곡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2001년 & 2010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오리지널 프랑스판 두 DVD 외에, 다른 나라권에선 헝가리(2004년 부다페스트) 공연 실황 DVD가 정식으로 발매되었다. 기타, 최근 들어선 일본 다카라즈카 가극단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 DVD도 출시된 바 있다.

2010년 이후에 나온 일본 버전과 헝가리 버전 <로미오 앤 줄리엣>은 제라르씨의 만 가져다 쓰고 '프랑스의 오리지널 공연'과는 다르게 안무, 의상, 무대, 반주 편곡, 연출, 캐릭터 특징, 곡 순서 & 세부적인 스토리를 대폭 갈아치운 버전이다. 맨 처음에 이 뮤지컬 '헝가리 버전'을 보구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오히려 전반적인 스토리 라인이나 짜임새(극 구성), 캐릭터의 강렬함은 프랑스 원판 <로미오 & 줄리엣>보다 이 헝가리판이 더 나아 보였다. 헝가리 롬앤줄의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기괴하고, 음산하고, 드라마틱하면서, 비극적이고, 격정적인 뮤지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헝가리' 공연 무대

여기에 참여한 이들이 헝가리 뮤지컬계 전체를 대표하는 이들은 아니고, 헝가리 내 '특정 극단' 소속의 연출자와 배우들이다. 프랑스의 원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름 격조 높은 분위기였는지라 '너무 막 나가는 듯 보이는 헝가리판'을 보구서 처음엔 적응 안됐었는데, 극을 잘 관찰해 보니 그래두 이 헝가리 감독은 '드라마'를 제대로 아는 연출자 같단 생각이 든다. 셰익스피어 원작이나 제라르의 각색 뮤지컬과는 또 다른 '설득력 있고 개성 넘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어 낸 분위기~ 이 헝가리 버전 <로미오 & 줄리엣>은 프랑스 원판보다 훨씬 더 이야기의 쫄깃함이 살아 있다.

그런데.. 나름 아트적인 분위기의 프랑스 원판과 달리, 이 헝가리판 <로미오와 줄리엣>에 별로 품격 같은 건 없다. 단적인 예로, 극 안에서 로미오 엄마(마담 몬테규)와 줄리엣 엄마(마담 카풀렛)가 같이 부르는 '증오(La haine)'만 비교해 보더라도 프랑스 원판과 헝가리판은 그 분위기가 영판 다르다.

이 곡 제목이 <증오>라고 해서 양가 엄마들이 서로 미워하면서 부르는 곡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데, 정작 '노래 가사'를 살펴보면 프랑스의 오리지널 버전 <증오>는 전혀 그런 뉘앙스의 곡이 아니며, 이 프랑스판 마님(로미오 엄마 & 줄리엣 엄마)들은 대놓고 서로를 헐뜯거나 미워하는 그런 엄마들 아니다. 이 뮤지컬 오리지널 '프랑스 엄마'들은 로미오나 로랑 신부처럼 '몬테규와 카풀렛, 양 가문 사람들이 이제 소모적인 패싸움과 증오는 멈추고 잘 좀 지내보길 원하는 평화주의자~'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오리지널 프랑스판 '증오(La haine)' / 제라르 작곡 <로미오와 줄리엣>

프랑스 원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1막 두번 째 곡으로 나오는 <증오(La haine)>는 몬테규 부인과 카풀렛 부인이 '날만 새면 으르렁거리며 싸워대는 몬테규가와 카풀렛가 젊은이들의 고질적인 증오를 안타까워 하면서 부르는 노래'인 것이다. 양 가문 사람들이 품은 그런 류의 미움과 다툼은 서로를 줄 뿐이라고 탄식하면서... 이 프랑스판 몬테규 부인과 카풀렛 부인은 나름 교양 있고 사려 깊은 엄마들이다. 개인적으로, 이 곡 앞부분에서 '쿵 딱딱 딱~' 하며 반복되는 리듬과 '양가의 고질적인 증오(추상적 개념의 단어)를 댄서들의 몸동작으로 표현한 레다의 격정적인 안무'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원래 프랑스 초연 버전에선 영주가 "이 곳 베로나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하오~"를 노래하는 <베로나(Verone)>를 부른 다음에 티볼트머큐시오 등 양가 애들이 나와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난투극'을 벌이고, 이에 영주가 나와서 양 가문의 젊은이들을 혼낸다. 그리고 나서 '평화주의자인 몬테규 부인(로미오 엄마)카풀렛 부인(줄리엣 엄마)'이 "우린 양 가문의 고질적인 증오가 정말 싫어요~ 언제까지 이 소모적싸움을 계속해야 할까요..?" 뉘앙스의 <증오(La haine)>를 부르며, 두 가문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헝가리판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증오(Gyulolet)>는 프랑스 원판과는 그 '해석'을 달리한다. 극 안에서 해당 곡이 나오는 '순서'도 다르다.

원 버전을 각색한 헝가리판 '증오(Gyulolet)' / 제라르 작곡 <로미오와 줄리엣>

사려 깊은 평화주의자인 프랑스 엄마들의 경우와 달리, 헝가리판 <증오>는 말 그대로 두 엄마(로미오 엄마 & 줄리엣 엄마)들이 서로에게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증오하면서 부르는 노래 같다. '저 재수탱이 여편네! 완전 재수없어~' 이런 뉘앙스로 말이다. 헝가리 버전 <증오(Gyulolet)>는 집에서 꽃단장 하고 있던 양가 엄마들(로미오 엄마의 경우엔, 손에 빗을 들고 나온 걸로 보아 머리 빗고 있던 중이었나 봄) 뭔 수상쩍은 소문(?)을 듣고 뛰쳐나와 서로 으르렁~거리며 맞짱 뜨는 노래인 것이다.

제라르 프레스귀르빅 작곡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프랑스 원 버전에서의 '증오'는 '베로나' 다음인 1막 <앞에서 2번 째 곡>으로 나오는 반면, 헝가리 버전의 '증오'는 1막 <끝에서 2번 째 곡>으로 나온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밀 결혼식 장면인 '사랑한다는 건' 바로 앞에 배치된 노래..

원래 프랑스판에선 '몬테규가의 로미오를 만나러 가서 줄리엣의 전갈을 전해준 유모'가 '딸 같은 우리 줄리엣이 드디어 다 커서 사랑에 빠졌다~'며 회한에 잠겨드는 유모 솔로곡 '그녀가 사랑에 졌네'를 부른 뒤 성당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식(사랑한다는 건)' 장면이 이어지면서 1막이 끝난다.

헝가리 공연에서의 '로미오(Dolhai Attila)'와 '줄리엣(Szinetar Dora)'

하지만 헝가리판에선 1막 후반부에서 유모의 '그녀가 사랑에 빠졌네' 다음에 '사랑한다는 건'이 아닌 '거리의 소문 1(프랑스판에선 2막이 되어서야 나오는 노래)'이 양가 무리들에 의해 불리워진다. 그 때 티볼트 나오고, '줄리엣 엄마'인 카풀렛 부인 나오고, 저 쪽 집에선 '로미오 엄마'인 몬테규 부인이 나와서 자식들 이름 거론하며 뭐라뭐라 그러더니 양가 사람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1차 맞짱 뜨고.. 그 다음 장면에선 이 '증오'송이 불리워지며 양가 엄마들의 본격적인 2차 맞짱(?)이 이어진다는 설정이다.

차림새로 봐선 헝가리 버전 '로미오 & 줄리엣의 엄마들'도 굉장히 관리가 잘된 '귀족 부인'이다. 평소에 외모에 열심히 신경 쓰는지, 장성한 자식을 둔 엄마 치고는 몸매도 무척 날씬하고 젊어 보인다. 무엇보다 <로미오 앤 줄리엣> 헝가리판 양가 엄마(배우)들은 둘 다 꽤 미인인 듯.. 그런데, 이 쪽 엄마들의 하는 짓은 별로 품위 없어 보인다. 프랑스판 엄마들이 나름 '사려 깊고 교양 있는 귀족 부인'이었던 것에 반해, 이 헝가리엄마들은 조금만 더 흥분하면 서로 머리채 쥐어 뜯어가며 싸울 기세다- ;;

제라르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프랑스 오리지널 버전 엄마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헝가리 버전 엄마들(몬테규 부인 & 카풀렛 부인)~


하지만 난 헝가리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런 몸 사리지 않는 격정적임과 화끈함기괴한 센스가 은근히 마음에 든다. '같은 작품, 전혀 다른 느낌~'일 정도로 극 안에서 불리워지는 '노래 멜로디'만 같다 뿐 이 뮤지컬 <프랑스 원 버전>과 각색된 <헝가리 버전>은 캐릭터 특징이나 스토리 자체가 많이 다른데, 헝가리판은 그 안에서 나름 '개연성 있는 장면 연결'을 펼쳐 보인다. 또한 '2막에 가선 극이 필요 이상으로 늘어지는 프랑스 원 버전'과 다르게 헝가리판 <로미오와 줄리엣>은 '2막에서도 여전히 쫄깃하고 드라마틱구성'을 펼쳐 보이며, 이야기가 점점 '상승 곡선'을 타는 방식으로 을 전개해 나간다.

비록 아트적이고 품위 있는 프랑스 원 버전에 비해 품격은 좀 떨어지지만, 프랑스판 보다 훨씬 효과적인 장면 연결들로 '극 구성' 자체를 달리 해 가며 '인물들 간의 갈등격앙된 분위기를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가 비극적이고 장렬하게 대미를 장식해 가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헝가리 버전'이 스토리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오리지널 프랑스 버전보다 '극적인 재미'는 더 있는 편이다..


posted by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