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자야'와의 애틋한 사랑, 미남 시인 '백석'

타라 2012. 9. 11. 00:03
예전엔 국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룬 '시대극'을 꽤 볼 수 있었으나, 최근 들어선 그런 류의 극을 좀처럼 보기 힘든 것 같다. 시인이나 소설가 등 문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극도... 요즘엔 너무 '가벼운 느낌의 애정물'이 주를 이뤄서 그런지, 진지하면서 아련한 느낌으로 윤동주나 이상, 백석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 등이 나오면 좋겠단 생각을 종종 해보곤 한다.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
은 윤동주 못지않은 '얼짱 시인'으로 유명한데, 우리 나라 '시 문학사'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삶 속에 기생 '자야'와의 로맨스도 있고 해서 드라마 주인공으로 아주 적합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연속극' 아닌 '2부작 특집극'이나 '단막극' 소재로도 괜찮을 듯...

한 때 영어 교사로도 재직했던 백석 시인

'진달래꽃'의 저자 김소월 시인의 학교 후배이기도 한 백석(본명 : 백기행)은 19세 때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한 때 일본으로 건너 가 영문학을 공부했던 그는 25세 때 시집을 출판하였으며, 이후 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 무렵.. 백석은 김진향(김영한)이란 기생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결국 처지의 다름으로 인해 부부로 맺어지진 못했다. 기생을 며느리로 받아들이기 꺼려했던 남자 쪽 집안의 강렬한 반대로... 김진향의 애칭인 '자야'는 백석 시인이 지어준 것이다. 이태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기명이 '진향'이었던 김영한은 어쩔 수 없는 집안 사정으로 조선 권번의 기생이 된 여성인데, 한국의 전통 춤과 노래에 능하고 수필도 쓰는 지적인 기생이었다.


백석(백기행)과 김영한(김진향)은 20대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했지만, 백석의 부모님은 아들을 기생 출신의 그녀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여러 차례 '강제 결혼'을 시켰고 백석 시인이 그 때마다 첫날밤도 치르지 않은 채 도망쳐 오곤 했다는 드라마 같은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일제 강점기 당시, 20대 후반의 백석(1912~1995)은 만주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여러 가지 일에 종사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1944년 무렵엔 제국주의 일본의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광산 일을 하면서 숨어 지내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인 정주로 돌아온 그는 6.25 전쟁 이후에도 계속해서 북한에 머물게 된다. 시인 외에도 동화 작가나 번역가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백석 시인은 1960년대 초반까지는 문인으로 활동했으나, 그의 작품이 북한의 이념과 대립된다 하여 북한 문단에서 소외되었고 이후 농장원 생활을 하다가 1995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2년생인 백석 시인의 사진들을 보면, 당시 사람 치고는 '헤어 스타일'이 참 특이하다. 유난히 저런 머리를 즐겨 했던 것 같은데, 요즘 남자가 해도 파격적인 스타일을 그 시기 '시인'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되다니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다. 특정한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종종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작가주의'로 불리듯, 백석 시인의 머리 모양에도 그 나름의 작가주의(?)적 성향이 묻아나는 듯...

백석의 시엔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인이기에 쓸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단어들이 참 많이 나온다. 그의 시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윤동주 같은 시인 뿐 아니라, 현대의 후배 시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 때 백석 시인과 사랑을 나눴던 기생 '김자야(김영한)'도 꽤 인상적인 여인인데, 그녀는 자신이 운영했던 고급 요정 '대원각'을 사찰로 짓도록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곳은 나중에 '길상사'라는 절로 탈바꿈 하였다. 당시 그녀가 시주한 재산 가치는 1천 억원대에 달했다고 하는데, 그런 개인 재산을 사찰을 건립하도록 기부했으니 꽤 그릇이 큰 여인이 아닌가 싶다.


한 때 깊이 사랑했으나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맺어지지 못했던 백석 시인과 김영한 여사는 젊은 시절 헤어진 뒤 우리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20대 후반에 백석이 만주로 가기 전 김영한에게 같이 건너갈 것을 권했지만, 그녀는 거절했고 그것이 그들이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6.25 전쟁 후 북으로 간 백석과 달리 남한에서 지내게 된 김영한(김자야)은 30대의 나이에 중앙대 영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여러 저서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백석 시인 사후인 1997년 김영한은 창작과 비평사에 2억원을 기부하였고, 이로 인해 1999년 <백석 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오래 전에 헤어졌지만, 그녀는 평생동안 그와의 사랑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젊은 날의 사랑을 간직한 채 평생 홀로 살았던 김영한 여사는 매년 백석 시인의 생일날이 되면, 하룻동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으나 나라에서 원하는 사상과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여 핍박 받은 백석 시인의 중년 이후의 삶도 안타깝고, 많은 돈을 모았으나 평생 '20대 시절에 헤어진 옛사랑'을 그리워 하며 살았을 김영한 여사의 삶도 애틋하다. 실존 인물의 삶과 사랑인데, 웬만한 드라마 속 내용보다 더 아련하고 감정 이입이 잘 되는 느낌.. 그녀는 "1천 억원의 재산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남과 북이 갈라놓은 '백석 시인과 자야(김영한)의 사랑'이 너무나 절절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