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에서

'백조'의 이미지를 흐린 욕망의 '제우스'

타라 2011. 4. 12. 22:52
'갑작스런 습격, 커다란 날개를 여전히 비틀거리는 여인 위에서 퍼덕이며, 검은 물갈퀴로 그녀의 허벅다리를 쓰다듬고, 부리로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 백조는 꼼짝 못하는 여인을 제 가슴에 끌어 안는다..'로 시작되는 예이츠의 <레다와 백조(Leda and the Swan)>라는 시가 있다. 레다(Leda)는 아이톨리아의 왕 테스티오스의 딸로, 스파르타 왕인 틴다레오스의 부인이었다. 천상에서 무료하게 지내던 제우스(Zeus) 신은 어느 날 지상 세계를 구경하다가 강가에서 목욕하고 있던 이 '레다'에게 꽂히게 되고, 그녀가 백조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한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넘쳐나는 바람기를 채우기 위해 수단 방법 안 가리던 올림푸스의 주신(主神) 제우스는 이번엔 '백조'로 변신하여 레다에게 접근했다. 그것이 진짜 백조인 줄 알았던 레다는 평소 때처럼 백조를 끌어안고 쓰다듬어 주었는데, 그 틈을 타 '백조로 변신한 흑심 제우스'가 속전속결로 레다를 덮쳐서 그녀로 하여금 알을 낳게 만들었다.(엄밀하게 말해서, 이 때의 제우스는 무지막지한 '강간범'인 셈이다..)

많은 화가들이 이것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남겼는데, 고대 신들의 세계는 '섬유 산업'이 전혀 발달하지 않은 미개(?) 사회였던 관계로 '신화' 속 인물들은 죄다 헐벗고 훌러덩한 모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너무 벗고 나오는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소재에 관련한 그림은 '레다'가 홀딱 벗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나마 '옷'을 걸치고 나오는 David Jermann의 그림을 살짝 소개해 본다.

David Jermann의 작품 '레다와 백조(Leda and the Swan)'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백조로 변신하여 레다를 범한 제우스' 관련하여 꽤 많은 양의 그림들이 탄생했는데, 너무 야하고 외설스럽기 짝이 없는 그림들도 많은 듯하다. '신화'를 소재로 '예술'을 한다는 건 핑계이고, 여러 화가들이 은근슬쩍 본인들의 숨겨 왔던 변태심을 표출한 듯한 느낌도 든다. ;; 주체가 '제우스'라고는 하지만, 정작 그림 속에서 불순한 행동을 보이는 욕망의 짐승은 죄다 '백조'로 형상화 되었다.

'백조'는 대체로 고상하고 우아한 이미지의 존재였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 소개된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백조를 이용한 제우스 일화'로 인해, 화가들 그림에서 형상화 된 '백조'의 이미지가 상당히 불량스러워진 것 같다. '고고하고 아름다운 백조'의 이미지를 졸지에 '속 검은 흑조 or 강간범'으로 격하시키다니, 여러 면에서 '민폐 제우스'가 아닌가 싶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혼외 정사를 하거나 바람을 피우는 경우가 꽤 많은데, 그 중에서도 1등 바람둥이는 '제우스(Zeus) 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부인인 헤라(Hera)를 놔두고 다른 '여신'이랑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을 뿐 아니라, '요정'이나 지상에서 살아가는 '여인(인간)'들도 자기 마음에 들면 상대방의 나이나 결혼 여부를 상관하지 않고 집적거렸다.

판화가 Enea Vico의 작품 '레다와 백조(Leda and the Swan)'
'신화' 속 이 소재를 다룬 그림들 중, 그나마 상태(외설 수위) 양호한 것


제우스는 '나이 어린 처녀'에 이어 남편 있는 '유부녀'까지 건드려서 가장 파탄을 일으키거나 부부 갈등을 유발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제우스 신'은 자신과 같은 남자인 '소년'을 건드리기도 하고, 부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구름/황소/백조/독수리 등 다양한 방식의 '변신술'을 동원하여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맘껏 바람을 피웠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인 것처럼, 여자도 남자 하기 나름일텐데 '남편'인 제우스가 하도 바람을 피워대니 그의 부인 '헤라'는 졸지에 '질투의 화신'으로 변모하여 본의 아닌 악녀가 되어야만 했다.

원래 제우스(Zeus)의 바람둥이 기질을 잘 알고 있던 헤라(Hera)는 그의 청혼을 거절했으나, 그 때에도 제우스는 가련한 '뻐꾸기'로 변신하여 헤라를 속인 뒤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것이었다. 하지만 제우스의 바람끼는 결혼 이후에도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더 교묘한 방식으로 자기 욕구를 채워 나갔다.

'절대 권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다양한 '변신술'과 '전능'함까지 갖춘 신화 속 제우스의 엽기적인 행각을 들여다 보며, 가끔 그가 '인간 바람둥이'들을 기죽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최고신'이라 하면서, 온갖 부정하고 부적절한 짓을 많이 저지른 제우스의 존재 의미나 이 캐릭터가 주는 교훈이 과연 뭘까 고민하다가 '그래, 바람은 아무나 피우나? 제우스 정도의 위치와 능력을 지닌 신급이 아닌, 평범한 인간 따위(?)는 함부로 바람을 피우지 말라~' 뭐, 이런 의미를 지니는 걸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