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폴리스

삼라만상의 원리가 담겨 있는 '윷놀이'

타라 2011. 1. 31. 19:45
며칠 있으면,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구정)이다. 간혹 어떤 집에선 '신정'을 쇠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가정에선 음력 1월 1일에 해당하는 '구정'을 더 많이 쇤다. 이 날엔 일가 친척들끼리 모여 '떡국'을 먹고, 조상들께 '차례'를 지내며, 아랫 세대와 윗 세대 사이에서 '세배'와 '덕담'을 나누기도 한다. 우리 고유의 명절에는 각 시기에 걸맞는 전통 놀이가 존재하는데, 설날엔 '널뛰기, 윷놀이, 쥐불 놀이, 연 날리기' 등을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 중 다른 놀이들은 야외에 나가야 즐길 수 있는 것들이지만, '윷놀이'의 경우엔 온 가족이 따뜻한 집안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전통 놀이에 속한다. 이 윷놀이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 되었다. 


윷가락을 던졌을 때 나오는 '도/개/걸/윷/모'는 부여 시대의 관직명에 속하는 4출도를 뜻하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부여는 우리 나라의 고조선(청동기+철기 시대) 다음에 나타난 철기 시대의 국가로, 당시 부여 밑에는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마한/진한/변한) 등의 초기 국가가 존재했다. 그 시기의 지도를 보면, 한반도의 백두산 위쪽에 있는 중국 땅이 우리 나라(부여) 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여엔 왕 외에 마가(馬加), 우가(牛加), 구가(狗加), 저가(猪加) 등의 족장이 존재해서 나라를 다스렸는데, 윷놀이 때 쓰이는 건 여기에다 양가(羊加)를 합한 것이다. <도-돼지(猪) / 개-개(狗) / 걸-양(羊) / 윷-소(牛) / 모-말(馬)>의 원리에 해당한다. 그 시기의 '부여'에서도 즐긴 윷놀이는 그 이전 시대인 '고조선'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굉장히 오래된 놀이에 속한다.

'윷놀이'를 할 때엔 기본적으로 '4개의 (가락)윷판 & 윷말'이 필요하다. 두 편으로 팀을 가른 뒤 번갈아 가면서 4개의 윷을 던지는데, 이 때 높이 던져서 떨어진 네 개의 윷 중 '하나가 뒤집어 지면 , 두 개 뒤집어지면 , 세 개 뒤집어지면 , 모두 뒤집어지면 , 모두 앞쪽을 향하면 '라고 한다.


종이나 천으로 만들어진 윷판에서 '는 1발, 는 2발, 은 3발, 은 4발, 는 5발' 앞으로 갈 수 있으며, 두 편 중 <윷판에서 4개의 윷말이 시작점=종착점까지 빨리 돌아서 도착하는 팀>이 이기게 되어 있다. 던진 윷가락의 양상으로 윷말을 놓을 때 '한 쪽 편이 상대 편이랑 같은 위치에 놓임'으로써 상대편 말을 잡을 수 있으며, '윷'과' 모'가 나오면 한 번 더 던질 수 있다.

또한.. 원래는 큰 테두리를 돌게 되어 있지만, 윷말이 중간에 있는 '큰 점' 지점에 위치하게 되면 '지름길'로 갈 수 있다. 기본적으론 (윷말이) 많이 갈수록 좋지만, 윷놀이엔 '여러 변수'가 작용하기에 무조건 많이 간다고 이기는 건 아니다. 여기에 '윷놀이'의 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방식으로 즐기는 설 명절의 대표 놀이 '윷'은 단순한 놀이에 불과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음양/오행 등의 철학이나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천문 사상, 대우주의 원리가 녹아 있다.


전통 놀이 <윷놀이>가 '윷+윷판+윷말'의 3가지로 구성된 것은 우리 선조들 고유의 '삼신(三神) 사상'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또한 양(陽)의 이치에 해당하는 앞판, 음(陰)의 이치에 해당하는 뒷판을 기본으로 하는 '도개걸윷모'는 음양 오행에서 말하는 '5행(목화토금수)'를 뜻하는 것이다. <도-수(水) / 개-화(火) / 걸-목(木) / 윷-금(金) / 모-토(土)>의 원리에 속한다.

<윷판> 바깥 외곽을 이루는 큰 테두리는 '하늘'을 상징하고, + 모양으로 된 가운데 구역은 동서남북의 방향을 지닌 ''을 가리킨다. 큰 테두리 안에 위치한 '8개의 작은 점'은 '북두칠성이 정중앙에 있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4계절과 4방위를 따라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윷판에 있는 4개의 큰 점과 정중앙 점을 합하여 '오행'의 원리로 보기도 하고, 이것은 '동/서/남/북/중'의 다섯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윷놀이'에 쓰이는 <윷판>엔 29개의 점이 찍혀 있다. 이 중 천원점(天元點)이라 불리는 '정중앙에 있는 점'은 세지 않으며, 나머지 28개 점은 28수에 속하는 별자리를 나타낸다. 이것은 '북두의 일곱 별이 어찌 되면, 어떤 사람의 운명이 이러저러하게 된다..'는 우리 나라의 '칠성(七星) 신앙'과 관련이 있다. 북두칠성이 인간의 운명을 관장한다는 사상을 민족 고유의 놀이인 '윷놀이'에 적용시킨 것이다.


''을 상징하는 윷말이 윷판을 하나씩 지나는 것은 '우리 민족이 임의로 나눠놓은 천문 28수(달의 공전 주기가 27.32일이라, 28 구역으로 나눈 것임)를 지나가는 걸 상징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윷놀이' 할 때 쓰이는 윷 원재료인 박달 나무는 우주의 본체라 할 수 있는 '태극(太極)'이며, 그것을 잘개 쪼개면 '음양(陰陽 : 앞면과 뒷면)'을 지닌 윷가락이 된다. 4개의 윷가락은 '사상(四象)'에 속한다. 윷가락 4개의 앞뒷면을 모두 합치면 '팔괘(八卦)'가 된다. 도/개/걸/윷/모는 '오행(五行)'을 뜻한다.

이러하듯 <윷놀이> 안에 태극/음양/사상/오행/팔괘 등 '우주 만물의 운행 원리'가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또한, 놀이 안에 '서로 잡고 잡히고, 흥했다 망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는 인생사의 이치가 녹아 있다. 그 안에 삼라만상의 원리를 다 포함하고 있는 이 '윷놀이'로 농경 사회 때의 사람들은 농사의 풍흉을 점 치기도 하고, 개개인의 길흉을 알아보는 점술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동양에서 말하는 '오행설'은 우주 만물, 세상 만사에 두루 적용이 가능하다. 음양오행을 알면 사람의 운명도 (일종의 통계로) 미리 예측해 볼 수 있는데, 그러한 음양/오행 사상이 우리가 설날 때 주로 하는 <윷놀이> 안에 다 들어가 있다니, 실로 철학적이고 심오한 놀이가 아닌가 싶다.

<윷놀이>의 묘미는 4개의 윷가락을 던졌을 때 어떤 모양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예측 불가함(우연성)'과 '윷판 위를 왔다갔다 하는 윷말을 운용하는 사람의 지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그 과정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변수에 의해 놀이의 양상이 달라질 때마다, 각 팀의 희로애락이 갈린다~'는 대목이 전반적인 우리들의 인생사와도 무척 닮아 있다. 짜릿한 재미도 있고, 심오한 삼라만상의 원리도 녹아 있는 이 '윷놀이'가 올 구정 때에도 많은 이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