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영국의 바람둥이 왕 '헨리 8세'와 여섯 왕비 이야기

타라 2013. 5. 27. 23:27

잉글랜드(영국) 튜더 왕조 헨리 7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헨리 8세(Henry VIII)는 형이 일찍 죽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 받았다. 르네상스 군주로서 절대 왕정을 강화하고 종교 개혁을 단행한 왕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사생활 면에선 천하의 바람둥이 왕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Henry VIII(1491~1547)

헨리 8세의 첫번 째 부인 : 아라곤의 캐서린
20년 결혼 생활 동안 왕위를 이을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고, 이혼 안하려고 버티다가 '강제 이혼' 당함

아라곤의 캐서린은 헨리 8세의 형과 결혼했으나, 그가 죽은 뒤 '시아버지인 헨리 7세와 자기 아버지와의 목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시동생인 헨리 8세와 재혼했다. 그 사이에서 6명의 자녀가 태어났지만, 자주 사산되어 결국 1명의 딸(메리 공주)만이 살아남게 된다.
 

 
처음엔 캐서린 왕비를 사랑했던 헨리 8세는 자식들이 유산되거나 사산되자, 큰 고뇌에 빠진다. 그 후,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8세는 왕비의 시녀이자 자기 정부(情婦)인 메리 불린의 여동생 '앤 불린'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캐더린 왕비가 나이 먹어서 더 이상 왕자를 생산할 가능성이 없어지자, 헨리 8세는 왕비와 이혼한 뒤 (아들을 얻기 위해) 앤 볼린과 결혼할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캐서린 왕비(Cahterine of Aragon)를 존경하는 백성들과 왕비의 친정인 스페인 왕실 & 로마 교황청이 이를 반대하자, 헨리 8세는 카톨릭 교회와 결별하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여 종교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이 과정에서 수많은 카톨릭 교도들이 죽음을 당했음~) 헨리 8세가 카톨릭과 교황의 세력에서 분리된 영국만의 국교를 만들어 자신을 그 국교의 수장으로 선포하는 '수장령'을 발표한 것이다.

그리곤, 첫번 째 부인이었던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강제로 쫓아내고) 앤 불린을 왕비로 맞아들였다. 앤 볼린의 친정에서도 자기 딸을 왕비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까지 않았다.(그 후, 억울하게 내쫓긴 캐서린 왕비는 딸마저 빼앗긴 채 비참하게 죽어갔다..)

헨리 8세의 두번 째 부인 : 앤 불린
본처인 첫번 째 부인을 몰아내고 왕비가 되었으나,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고 '간통죄'로 목 잘려 죽음

본처를 몰아내고 헨리 8세의 두번 째 왕비가 된 앤 볼린은 이전 왕비인 캐서린의 딸 메리 공주에게 시녀처럼 온갖 궂은 일을 시키며 핍박했는데, 그러한 자신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는 못했다. 헨리 8세와 결혼한 앤 불린이 여러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아들은 사산되어 결국 그에게 왕위를 이을 후계를 안겨주지 못했다.(앤 불린이 낳은 첫째 딸이 바로, 나중에 영국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이다.)

또한 '순종적이고 정숙한 여인이었던 캐서린 왕비'와 달리 '드센 성격을 지닌 앤 불린'에게 헨리 8세는 싫증을 느끼게 되었으며, '기품 있는 첫번 째 왕비를 몰아낸 마녀' 쯤으로 앤 볼린에 대한 전반적인 여론도 좋지 않았다. 결국 천일(1000일) 동안 왕에게 '후계를 이을 왕자(아들)'를 안겨주지 못했던 '앤 불린(Anne Boleyn)'은 이혼을 거부하고 버티다가, 왕비가 된 지 3년 만에 자신의 정적들과 헨리 8세에 의해 근친상간 & 간통죄로 몰려 참수 당하고야 만다.

헨리 8세의 세번 째 부인 : 제인 시모어
왕이 원하는 아들을 낳아줘서 가장 인정 받는 왕비로 남았으나, 결국 애 낳고 나서 '병'으로 사망함

제인 시모어(Jane Seymour)는 헨리 8세의 첫번 째 부인이었던 캐서린 왕비의 시녀 출신으로, 캐서린의 '정숙하고 기품 있는 면모'에 반하여 그녀와 비슷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던 중 '두번 째 왕비인 앤 불린'의 드센 성격에 질린 헨리 8세의 눈에 띄게 된다. [ 왕비의 시녀 주제에 본처(첫번 째 왕비 캐서린)를 몰아내고 두번 째 왕비가 된 '앤 불린'이 훗날, 부메랑처럼 또 다른 시녀 출신인 '제인 시모어'에게 자기가 과거에 한 그대로 당하게 된 시추에이션~ ]
 

헨리 8세의 두번 째 왕비인 앤 불린의 반대 세력 & 첫번 째 왕비 캐서린의 친정인 스페인 왕실의 원조를 받아 제인 시무어는 앤을 몰아내고 왕의 세번 째 부인이 된다.(전처 캐서린 왕비의 딸 메리를 학대했던 앤 불린과 달리, 제인 시모어는 메리를 공주로서 정중히 대해 주었다고 한다.)

앤 불린이 죽자마자 헨리 8세가 결혼한 제인 시모어가 '왕자'를 출산하긴 했으나, 그 해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훗날 '제인 시모어가 낳은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국왕이 되었지만, '헨리 8세가 성병 걸린 와중'에 임신되어 허약했던 이 아이는 17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문란한 아비를 만난 죄로~ ;;)

생전의 '헨리 8세의 의지'로, 죽은 헨리왕은 나중에 '세 번째 부인인 제인 시모어'와 나란히 묻혔다. 아들을 낳아 준 세번 째 부인 '제인 시모어'는 헨리 8세가 가장 인정한 왕비였다-

헨리 8세의 네번 째 부인 : 클레브의 앤
초상화 그림과는 달리, 안생겼다는 이유로 동침 한 번 못해보고 6개월 만에 왕과 '합의 이혼' 함

미인을 좋아했던 헨리 8세는 화가 한스 홀베인(한스 홀바인)이 그려온 독일 클레브의 공주 앤의 '그림'을 보고 한 눈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지만, 정작 초상화와는 너무도 다른 그녀의 '실물'을 보고 실망하게 된다. 그 후 그 결혼을 깨려고 노력했으나, 여의치가 않아서 50세가 다 된 나이에 '클레브의 앤(안나 폰 클레페)'과 재혼한 헨리 8세는 그녀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여겨서 얼마 안가 이혼해 버렸다.

화가 한스 홀바인이 엄청나게 미화하여서 그린 헨리 8세의 네번 째 부인 클레브의 앤 초상화(실물은 영 아니었다고 함)
헨리 8세는 이 네 번째 부인 클레브의 앤(Anne of Cleves)과 단 한 번도 동침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근거로 '결혼 무효'를 주장한 것이다. 클레브의 앤(안나 폰 클레페)은 영토 & 두둑한 위자료를 받고 영국에 계속 머무르는 조건으로 헨리 8세의 이혼 제안을 받아들였으며, 이혼 후에도 '왕의 친구' 자격으로 자유롭게 궁정 출입을 하며 비교적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둘의 결혼을 진행했던 토머스 크롬웰은 국왕인 헨리 8세로부터 사형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중매 한 번 잘못 섰다가...;;)

헨리 8세의 다섯번 째 부인 : 캐서린 하워드
한참 연상인 왕의 사랑을 받았으나, 다른 남자들이랑 놀아나다가 왕의 분노를 사 '참수' 당함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의 외사촌 여동생이자, 네번 째 왕비 클레브의 앤(안나 폰 클레페)의 시녀로 생활했던 '캐더린 하워드'는 어느 날 우연히 왕의 눈에 띄어 헨리 8세와 결혼하게 된다.(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30세 정도였으니, 헨리 8세는 진정 '도둑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헨리 8세의 부인들 중 가장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성이었다.
 
늙은 헨리 8세는 이 젊은 부인에게 아낌 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하지만 (도저히 늙은 남편에게만 올인하며 살 수는 없었던지) 미혼 시절 뿐 아니라 '결혼 이후에도 시종 & 음악 교사(악사) 등 여러 남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캐서린 하워드(Catherine Howard)'에 대한 간통 증거들이 발견되어, 그녀는 결국 열 받은 헨리 8세에 의해 '참수형'을 선고 받고 처형 당하게 된다.

헨리 8세의 여섯번 째 부인 : 캐서린 파
'병든 왕'을 잘 간호해 주고 '전처 애들'을 살뜰하게 챙겼지만, 왕이 사망하자 다른 남자와 재혼함

왕의 5번 째 부인이었던 캐서린 하워드가 처형 당한 다음 해에 (우리 나이로) 53세가 된 헨리 8세는 두 번의 결혼 경력이 있는 미망인 '캐서린 파'와 재혼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헨리왕의 마지막 결혼이었다. 헨리 8세의 마지막 부인인 캐서린 파(Catherine Parr)는 남편 뿐 아니라 '전처들의 자식'에게도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는 등 따뜻하게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4년 뒤에 헨리 8세는 사망하고, 그가 죽자 캐서린 파(Catherine Parr)는 헨리 8세와 결혼하기 이전부터 연모하고 있었던 토머스 시모어를 네 번 째 남편으로 맞이했다.(토머스 시모어는 헨리 8세의 세번 째 왕비인 제인 시모어의 남동생이었다.) 하지만 재혼한 지 얼마 안된 캐더린 파는 토머스의 아이를 출산한 뒤, 건강이 나빠져 세상을 떠났다.
 
호색한 왕으로 알려진 헨리 8세
16세기 영국(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국왕 '헨리 8세(Henry VIII)'는 그 난잡한 사생활로 평생 '성병'을 달고 다니며 부인들을 감염시켰으며, 말년엔 매독과 관절염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그가 비록 다재다능하고 교양이 풍부하며 정치적으론 나름 뛰어난 왕이었을지 몰라도, 뻑하면 부인의 목을 자르거나 쫓아내거나 했던 걸 보면 (그 사생활 면에서) 자기 부인들에겐 꽤나 잔혹하고 비정한 남편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