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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캐릭터와 주제에 관한 교통 정리가 필요하다

타라 2009. 9. 23. 17:21
주중 드라마의 최강자로써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고 있던 <선덕 여왕>이 요즘 들어 조금 주춤하고 있는 상태다.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연장 방송의 영향인지 이 드라마의 최근 회에선 스토리가 늘어지고, 군더더기 장면이 많이 눈에 띄며, 기존의 캐릭터들이 뚜렷한 특징 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 구체적 ]

  • <선덕 여왕> 지지난 주 이야기부터는 풍월주 비재 2번 째 문제 맞추기, 3번 째 무술 비재 등 별다른 스토리 진전 없이 하나의 사건 가지고 한 회, 혹은 여러 회를 질질 끌었다.
  • 시청자들이 '극의 주제를 전달할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최근 들어선 주인공 덕만 공주는 거의 조연 수준으로 나오며 감정 묘사도 세밀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 지난 주부터 주요 인물들 감정 묘사는 소홀히 하면서 죽방 이하 용화향도 무리들의 의미 없는 농담 따먹기 씬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갔으며, 춘추와 미생의 기방 출입과 노름 장면과 같은 군더더기 씬을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자아낼 만큼 지나치게 오래 보여 주었다.
  • 이전부터 쭉 존재해 왔던 주요 캐릭터들 중 미생, 알천 정도 빼고는 '캐릭터의 일관성' 없이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자기 정체성을 잃고 캐릭터의 특성 면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고 있다.


드라마 <선덕 여왕>의 최근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과연 무엇일까? 내가 이거, 왜 보고 있지..?'란 허무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건.. 같은 MBC 사극이었고 선배 사극으로서 좋은 표본이 되었기에 예로 드는 것인데, 오래 전에 방영되었던 <허준> 같은 경우엔 '진심으로 병자들을 사랑하며, 한 평생 그들을 치료하는 일에 헌신한 심의(心醫) 허준의 삶'을 극 전반에 걸쳐 주제 집약적으로 비교적 잘 다룬 사극이라 생각한다.


헌데, <선덕 여왕>에서는 애초에 내건 캐치 프레이건대로 나중에 왕이 될 덕만 공주(이요원)가 과연 천하를 얻기 위해 사람을 잘 얻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그녀가 왕이 될 재목이 맞는지.. 일전에 미실(고현정)과 벌였던 허무맹랑한 탁상공론 말고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백성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타고난 천재인지, 후천적인 노력파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 별로 묘사가 되지 않고 있다.

또한 전반적인 캐릭터들도 널을 뛰듯 왔다 갔다 한다. 물론 각 배우들의 연기적인 개성 때문에 그리 보이는 대목도 있지만, 극을 만들어 가는 입장에서 이 캐릭터의 특징은 이것이니까 일관성 있게 이렇게 가 달라고 요구하면 연기하는 배우들도 헷갈리지 않고 잘 따라와 줄 것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이 극에선 매 스토리 전개에 따라 캐릭터의 본질이 흔들리고 있는 상태이다.

주제 집약적 사극 : 일관된 '캐릭터'의 특징과 정돈된 '인물 관계'


같은 집필자가 쓴 <대장금> 같은 경우를 예로 들자면, 모든 '캐릭터의 특징'이 뚜렷하고 전반적인 '인물 관계' 역시 굉장히 깔끔한 드라마였다.

주인공 장금(이영애)은 기본적으로 차갑거나 딱딱하지 않고 말랑말랑한 인물, 그러면서도 호기심 강하고 매사에 오지랖 넓으면서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 그의 라이벌인 금영(홍리나)은 도도하고 냉철하고 자존심 강한 캐릭터,
한상궁(양미경)은 속마음이 인자하면서도 근엄하고 정도만을 걷는 반듯한 인물, 오겸호(조경환)는 냉정하면서 목적 지향적인 인물, '가늘고 길게~'를 외치던 민상궁(김소이)-창이(최자혜)는 소시민적이고 소박한 인물 등등 대체로 모든 인물들이 일관된 자기만의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주인공 장금(이영애)에 반하는 악인으로 등장했지만 최상궁(견미리)이 그런 인물로 변화 되기까지 <집안 어른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계기와 <최상궁 평생 삶의 소명이자 목적이었던 '가문의 이득'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뚜렷한 명분이 제시되었으며, 그 후론 극 내내 최상궁(견미리)과 그 오빠(이희도), 오겸호(조경환) 등은 자신의 사익과 그 거창한 명분에 흔들림 없이 충실한 악역으로서의 냉철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들 악역의 '캐릭터'나 '언행'에 별다른 흔들림이 없었기에, 그에 맞서는 주인공 장금(이영애)의 행동에도 강한 설득력이 부여될 수 있었으며 시청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주제'도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체불명의 모호한 사극 : 행위에 대한 뚜렷한 명분과 캐릭터의 일관성이 없다?

그에 반해 <선덕 여왕>에 나오는 인물들은 뚜렷한 극적 캐릭터의 특징 없이, 그 때 그 때 달라지는 양상을 선보인다. 그 때문에 극의 전체적인 줄기나 본질도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이다.


덕만(이요원)은 유약한 언니 천명(박예진)과는 달리 굉장히 당차고 또릿또릿하고 강하면서도 사고하는 스케일이 크고 포용력 있는 인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 3자 입장에서 봤을 때) 별 것도 아닌 일로 벌벌 떨거나 자포자기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고, 생각보다 포용력이나 주변 인물 친화적인 면모도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느 구석에서 이 인물이 타고난 왕재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모습처럼, 좀 더 강단있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생각된다.

미실(고현정)은 주인공이 뛰어 넘어야 할 거대한 산과 같은 카리스마적이고 지략이 뛰어나면서 냉철하고 깔끔한 성격의 쿨한 인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핫한 부분이 많고 실없는 농담도 잘하며 가끔은 필요 이상의 인간미를 선보이거나 허술한 부분을 노출하기도 하는 등 강하고 무서운 인물이라기 보다는 귀엽고 재미난 인물이라는 느낌을 줄 때가 더 많다.(여러 면에서, 이 인물이 주인공 덕만이 힘겹게 뛰어 넘어야 할 정도의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첫 악행을 저지르기까지 그것이 자신의 숙명이라 주입시켰던 집안 어른의 어쩔 수 없는 강요가 있었고 최고 상궁 가문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따라야 하는 '가문의 이득'과 같은 뚜렷한 명분이 있었던 <대장금>의 최상궁(견미리)과 달리, <선덕 여왕> 속에서 미실(고현정)이 저질렀던 악행은 '개인적인 탐욕'과 '타고난 천성' 때문에 그리 된 것이라는 다소 단조로운 명분(?)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그 이후 냉철하게 한 길만 보고 달려갔던 <대장금>의 주인공(장금) 반대파 무리들과 달리, <선덕 여왕>의 미실파 쪽 사람들은 별로 주인공(덕만)에게 강렬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 같지도 않다. 그에 따라 극의 '주제'도 느슨해지고, 덕만 공주파가 굳이 미실파에 대적해야 하는 이유도, 그들을 넘어서야 할 타당함 시청자들에겐 너무나 모호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들어선 극 초반부터 시청자들에게 주제 전달을 위해 필요한 인물인 것처럼 거창하게 묘사되었던 문노(정호빈) 캐릭터도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으며, 김유신(엄태웅)도 의외의 장면에서 왔다 갔다 할 때가 많았다. 이 극에서의 진평왕(조민기)은 뚜렷한 특징도, 존재의 의미 자체도 모르겠는 무생물적 캐릭터이며, 나름 매력 있는 캐릭터인 비담(김남길) 역시 자연스러운 '타이밍 조절' 없이 너무 짧은 시간 내에 깨방정과 진중함 사이를 부자연스럽게 넘나들게끔 연출되고 있다.

교통 정리가 필요한 <선덕 여왕> : 이 극이 궁극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물론 인간은 기본적으로 그 내면 속에 여러 가지 면을 갖고 있지만, 그것과 '극 안에서 표출되는 캐릭터의 주된 특징'은 그 차원이 조금 다르다. 또한, 현실에서의 인간도 아무리 그 안에 여러 면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만의 뚜렷한 성향'은 갖고 있게 마련이다. 일단 한 번 형성된 그러한 성향은 성인이 된 이후론 웬만해선 잘 안 바뀌며,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들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성격 차이로 인해 헤어지기도 하는 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드라마 <선덕 여왕>에 나오는 인물들은 워낙에 짧은 시간 안에도 캐릭터가 다양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서 이 극의 절반 넘게 시청해 왔음에도 각 인물들의 진짜 주된 특징은 뭐였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나마 처음부터 한결같이, 살짝 비겁하고 비열한 듯 하면서도 깨방정 떨어주는 미생(정웅인).. 근엄하고, 의기로움으로 일관하는 알천(이승효) 정도가 일관성 있는 캐릭터로 느껴진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등장한 지 얼마 안된 춘추(유승호) 역시 자신만의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확실한 자기 개성으로 매력을 발산하기 좋은 '잘 구축되어진 캐릭터'라 생각된다.

<선덕 여왕>이 그 때 그 때 등장하는 인물이나 에피소드에 치중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에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나 주제는 과연 어떤 것인지.. 각 인물들의 원래 성격이나 특징은 어떠했는지.. 그것에 대해 한 번 짚어보고, 꼼꼼하게 점검한 뒤에 다음 스토리를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