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창작자들의 '실존 인물 및 역사 왜곡', 이대로 괜찮은가

타라 2012. 4. 3. 22:23
언젠가부터 한국 TV 드라마 속에 나오는 '사극' 중에 <퓨전 사극>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퓨전 사극'은 <다모>처럼 배우가 와이어 달고 붕붕 날라다니는 이런 것만 포함되는 게 아니라, 등장 인물 말투가 실제 그 시대에 쓰던 '사극체'가 아닌 '현대어체'의 말투로 진행되었던 <대장금>, 또 사료에 충실하지 않고 역사책에 나오는 여러 사건이나 등장 인물에 관련한 세부적인 요소들을 작가적 상상으로 대폭 바꿔치기해서 철저한 픽션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판타지물로 만들어 버린 <왕과 나>, <연개소문>, <주몽>, <태왕사신기>, <천추태후>, <선덕 여왕> <동이> 유형의 사극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 외 영화나 연극, 뮤지컬 등에서도 '실존 인물'을 대놓고 왜곡해서 그려내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대표적인 케이스 : 피터 쉐퍼 극본의 영화 <아마데우스>, <아이언 마스크>, <왕의 남자>, <청연>, <쌍화점> 등)

한국 TV 사극 드라마의 변천사 : '교육물'에서 '오락물'로~

내가 어릴 적엔 부모가 나름 '교육 열의'가 있는 집안 애들 중에, 집에서 부모님들이 한창 공부할 나이의 학생인 자녀에게 다른 TV 프로그램은 못 보게 해도 <역사 다큐멘터리>나 <사극 드라마>는 꼭 보게 하는 집이 있었다. 그게(사극 드라마를 시청하는 일) 다 '역사 지식에 관련한 교육'에 해당된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경우엔, 정말 교육에 열의가 있거나 자식의 국사(역사) 과목 성적을 걱정하는 부모라면 아예 TV 사극을 못 보게 하는 것이 자녀 교육에 훨씬 더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요즘의 TV 사극 드라마 중엔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관련 지식과 너무 동떨어진 '왜곡된 설정'을 집어넣어 철저한 픽션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극이 대부분이니까... 그런 TV 사극은 그냥 '오락물'로써 기능할 뿐, 작금의 한국 사극 드라마에 더 이상의 <교육적 기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사료에 충실하지 않고 오락물로 만들어진 드라마에다 대고 사사건건 '이건 이래서 맞지 않고, 저건 저래서 현존하는 역사 지식에 맞지 않고..' 운운하는 것도 과잉 반응이긴 하지만, '그렇게 역사 따질 것 같으면 다큐멘터리나 보고, 이 드라마는 더 이상 보지 마라~' 하는 것도 근시안적이고 우매한 반응이긴 마찬가지다.

역사 왜곡 지뢰밭인 TV 사극물에 대처하는 방법 : 대중들이 스스로 더 똑똑해져야 한다

오늘날, 'TV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적인 매체가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모든 걸 다 초월해서 드라마를 보거나, 역사 왜곡을 감안하고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겐 별 상관이 없겠지만 아직 사리 분별력이나 인격이 완성되지 않은 자라나는 새싹들,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에겐 드라마 속 작은 설정 하나도 은연중에 개개인의 역사 지식이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왜곡된 설정'이 들어간 사극이 한 두 편이 아니어서 일일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말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긴 한데, 이러한 환경에선 혹시나 '잘못된 역사 상식' 혹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을 갖게 되지 않으려면 각 시청자 스스로가 더욱 더 똑똑해지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조상들의 지나간 역사, 과거의 일을 통해서 현재의 삶을 통찰하고 미래의 나아갈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엔 대중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오락물'.. 그것두 '인지도가 꽤 있는 역사 속의 인물'을 캐릭터화 하여 '흥행되는 오락물'을 만들어 내고자 애쓰는 사극물이 대부분이고, 그런 유형의 사극 드라마는 지나간 실존 인물에 대한 '진실에 근접한 역사적 평가'나 '정확한 사료에 대한 통찰' 없이 가볍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런 데 대한 안타까움이 참 크다.

어느 때, 모 장소, 아무개씨 등장.. : 작가들이여, 차라리 '완전 창작'을 하라~ 

어차피 사료에 나온 것들도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안 그래도 그렇게 100% 정확하지 않은 사료를 더더욱 '사실'에서 멀어지도록 잦은 왜곡 설정을 일삼는 사극 드라마는 그 문제점을 더 크게 만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극'이란 장르의 드라마를 만들어야겠다면.. 명백한 사실 왜곡이 보이는 '실존했던 역사 속 인물'을 끄집어 내어 주인공으로 만들 게 아니라, 아예 정확한 시기와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고 시대 배경만 '삼국 시대, 고려, 조선..' 이런 식으로 설정해서 <등장 인물부터 인물의 배경, 스토리 모두에서 작가가 완전 창작한 스토리>로 사극 드라마를 만들면 어떨까..?

지금처럼, 해당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은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인데 그 안에서 펼쳐지는 '스토리'는 그 인물의 실제 역사하고는 별 관련 없는 <작가적 창작이 가미된 완벽한 픽션>이 크로스된 '퓨전 사극물'의 범람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하고, 여러 면에서 염려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그 자체로 많이 어정쩡하다. '창작'을 할려면 하고 말려면 말 것이지.. 개개인의 상상력과는 무관한 '실존 인물'을 주인공 삼아 실제했던 극의 배경을 만들어 낸 뒤, 정작 펼쳐지는 이야기는 철저한 픽션으로 나아가는 식의 <완전 창작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창작물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의 극이라니-


요즘 들어서 부쩍, 대한 민국 사극 드라마계의 거장 신봉승 선생(드라마 <조선 왕조 500년> 시리즈 작가)의 '정통 사극'이 그리워진다. 물론 그 분의 사극도 100% 완벽하진 않았을지 모르겠으나, 요즘 주로 나오는 '전문성 결여된 역사 왜곡 작렬 어정쩡한 분위기의 퓨전 사극'에 비교한다면 신봉승표 사극 드라마는 그런 류의 사극들과는 엄청나게 질적인 차이가 나는 고품격 사극이었으므로..

그 외에도 예전엔 MBC의 정통 사극, 민중 사극 중에 깊이 있는 사극물이 꽤 있었고 KBS의 대하 사극 중에도 꽤 묵직한 분위기의 볼 만한 작품들이 많았었는데 최근엔 점점 그런 류의 오리지널 사극이 사라지고, 갈수록 TV 사극물의 깊이가 가벼워지고 있으며, 대중들을 이끌어 가는 작가들의 역사 인식도 점점 옅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향후엔 단순히 일시적으로 눈길을 잡아끄는 1회용 볼거리에만 안주하지 않는, '진정 역사물다운 정통 사극 드라마'가 다시 부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