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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드라마의 또 하나의 지표 '유리의 성'-신데렐라의 자아 찾기

타라 2009. 3. 3. 14:07
SBS 주말극 <유리의 성>이 종영되었다. 이 드라마는 재벌 2세와 결혼한 '신데렐라~ 결혼 그 이후의 삶'을 다룬 드라마인데, 보면서 예전에 방영되었던 이영애 주연의 드라마 <불꽃> 스토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드라마 <불꽃>에서처럼 <유리의 성>에서도 '평범한 가정의 여주인공이 재벌 2세와 결혼'하지만 그 뒤의 삶이 동화책에 나오는 그것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아닌, 재벌집과 환경의 차이 혹은 가치관이나 정서의 차이로 인해 끊임없이 갈등을 겪다가 결국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그 재벌 2세와 헤어지고(이혼) 자신이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새로운 삶을 찾아 나간다는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 제목인 <유리의 성>은 극 중 준성(이진욱) 집안의 수장인 그의 아버지 두형(박근형)이 이끌어가는 그 재벌집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로 쓰였다. 검사인 큰 아들을 대선에 내보내고 싶어하는 야망을 지닌 유성 그룹의 오너 두형(박근형)은 자신의 목적 달성과 야망을 위해 가족들을 희생시킨다. 고상한 재벌가 사모님인 준성의 어머니(박원숙)는 가족 개개인의 욕구나 만족 보다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삶'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며, 그 무엇보다 체면이나 형식 같은 걸 중시한다. 그 속에서 신음하는 자식들.. 겉보기엔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지만, 늘 남들에게 그럴 듯하게 보여지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이 재벌가의 자식들은 결코 행복하지가 않다.

행복하지 않은 그 궁전 속 사람들 : 쇼 윈도우 속에 갇힌 부부

큰 아들 규성(장현성)과 그의 아내 유란(양정아)은 남들이 보기엔 너무나 모범적인 부부이지만 그 둘 사이에 입양한 아이가 '규성이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자식'이란 걸 눈치 챈 유란과의 갈등의 골이 깊어져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가고, 환경의 차이로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진 뒤 집안이 맺어준 남자와 결혼한 이 집의 딸 준희(유서진)는 결국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견디지 못해 결혼 10년 만에 이혼하고 돌아와 여전히 옛사랑을 그리워한다.

두형(박근형)은 큰 아들 규성(장현성)이 밖에서 낳아온 아이를 입양한 것처럼 꾸미고, 나중에 가족들에게 알려질 경우 큰 아들의 정계 진출에 방해될 것을 우려하여 작은 아들 준성(이진욱)의 아이인 걸로 하자고 준성과 모종의 거래를 하게 되며 그 대가로 준성은 큰 반대 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평범한 집안의 딸 민주(윤소이)'와 결혼하게 되지만, 결국 그간의 여러 갈등과 아이 문제가 불거져 서로간에 애정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준성과 민주는 이혼하게 된다.

이 드라마 결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데,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전형적인 결말은 아닌 것 같아서 맘에 들었다. 그리고 굉장히 현실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 스토리 안에서 결정적 갈등의 키를 쥐고 있던 큰 며느리 유란(양정아)은 재벌가의 체면과 개인적 야망 실현을 위해 가족들까지 기만하는 시아버지 두형(박근형)과 남편 규성(장현성)을 속으로 경멸하며 그 지긋지긋한 쇼 윈도우 부부 생활을 마감하고 '유리의 성'으로부터 탈출하려 했지만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그런 삶에 길들여져 왔고 그 집에서 벗어나도 자기 인생에 있어서 뭔가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생각으로, 결국 정계로 진출하는 규성을 내조하는 그 '재벌가 큰며느리' 자리에 안주하고 그런 삶에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아간다.

성 안에서 풍족하게 살아가는 왕자와 공주가 진정한 '사랑'까지 바라는 건 사치였을까?

과거에 너무나 사랑했지만 부모의 강압적인 반대로 헤어져 각자 따로 결혼한 뒤 지금은 홀아비가 된 옛사랑 석진(김승수)과 재결합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준희(유서진)는 자신의 집 사위로 들어와 막강한 권력의 아버지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게 될 석진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사랑하는 그를 자유롭게 놓아준다. 작은 아들 준성(이진욱) 역시 민주(윤소이)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길들여진 자신과 달리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민주가 더이상 자신의 그 성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보내준다.

가난한 분식집 딸이 대한 민국에서 알아주는 집안의 재벌 2세와 결혼했으니 표면적으로 보면 너무나 부러운 결혼이고 화려한 신데렐라 같지만, 실상 그 재벌집으로 시집 간 민주(윤소이)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체면을 중시하는 시어머니(박원숙)는 배울 만큼 배운데다 '아나운서'란 직업을 가진 민주가 단지 집안 환경이 가난하고 어머니가 두 번 재가했다는 이유만으로 굉장히 못마땅하게 여기며 매사에 민주와 민주네 친정을 대놓고 무시한다. 대단한 집안에서 시집 온 큰 며느리와 사사건건 차별하면서 말이다.

민주 입장에선 남편과 서로 좋아해서 결혼한 것 뿐인데 시어머니 입장에선 그저 '상대도 안되는 집안의 애가 감히 운 좋게 우리 집에 시집오다니~' 정도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드라마에 나오는 시어머니(박원숙)가 <겨울새>에 나왔던 그 엽기적인 시어머니(박원숙)처럼 의도적으로 며느리를 막 괴롭히는 그런 막장 시어머니까지는 아니다. 단지 살아온 환경의 차이가 크고, 인식의 차이나 가치관의 갭이 클 따름이다.

왕자가 살던 궁전에서 탈출한 뒤, 더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는 신데렐라..
 
타인에 대한 체면을 무척 중시하는 '다소 속물적인 시어머니'와의 갈등에도 그럭저럭 견뎌 나가던 민주가 결정적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사실은 규성의 아이이지만 준성의 아이라고 밝혀진 형님네 <아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인데, 여기서 두 집안 구성원 간의 극렬한 '가치관 차이'가 보여졌다. 다른 어떤 조건보다, 그저 남편과 서로 좋아서 결혼하게 된 민주(윤소이)가 그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서로 간의 신뢰'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 유리의 성을 깨뜨리지 않고 계속해서 견고한 성으로 유지해 나감과 동시에 오래 전부터 계획해 온 야망을 실현시켜야 하는 시아버지 두형(박근형)에게 그런 가치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저 돈으로, 자신의 권력으로 현상 유지를 할려고 한다.

그런 '유리의 성' 수장 두형(박근형)에게 종속된 작은 아들 준성(이진욱)은 뭔가 찜찜해 하는 민주(윤소이)에게 확실한 진실을 밝힐 수가 없고,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큰며느리 유란(양정아) 또한 민주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냥 시아버지가 정해놓은 규칙과 질서 안에서의 그 삶을 받아들이고야 만다. 모든 것이 그 가문의 수장인 두형의 뜻대로, 계획대로 돌아가야만 하는 그 거대한 성 안에서 개개인의 욕구나 만족, 가치 따위는 결코 제대로 구현될 수 없다. 비교적 그런 삶에 익숙한 큰며느리는 서서히 거기에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도저히 양립되어지지 않는 '가치관의 차이'를 지닌 둘째 며느리 민주는 당연한 수순처럼, 정해진 운명처럼 결국 그 집을 벗어나게 된다.

시댁에서 마련해 준 좋은 집을 돌려주고서 민주(윤소이)네는 다시 작은 집으로 이사 가고, 민주네 부모님은 생계를 위해 예전처럼 고단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지만 그들은 그 나름대로 행복해 보였다. 가계를 책임지던 알뜰한 여동생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저축하고, 돌아온 싱글이 된 민주는 눈치 봐야 될 시댁의 압박 없이 편안한 자신의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원래 꿈이었던 '아나운서'로서의 성장을 이뤄 나간다. 그리고, 방송사 입사 때부터 자신의 멘토였으며 서로 호감을 갖고 있던 남자 석진(김승수)과 다시 잘될 것 같은 암시를 주며 드라마는 끝이 났다.

원래, 준성(이진욱)과 결혼하기 전에 민주(윤소이)와 석진(김승수)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으나 애초부터 그 싹을 잘라버린 관계이다. 아마 '현실적인 여건' 때문이 아니었을까..?(자식 딸린 '홀아비'인 석진과 석진에 비해 나이가 많이 어린 '미혼'의 민주..) 하지만 석진과 마찬가지로, 한 번 결혼의 경험을 하고 다시 돌아온 민주는 미혼 시절에 비해 석진과의 결합이 더 용이해 보인다. 다소 세속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러하고, 한 번의 결혼 실패를 통해 '어떠한 결혼을 해야 자신이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지' 더 깊이 성찰할 수 있게 된 민주의 짙어진 경험의 관점에서 그러하다.

늘 그랬듯, 그들의 삶은 계속해서 '진행 중'~ : 성 안에서나, 성 밖에서나..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 속에서 가장 안된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떠나 보내야만 했던 그 유리의 성의 왕자와 공주인 '준성(이진욱)-준희(유서진) 남매' 같았다. 원래부터 그렇게 규정 지어진 삶을 살아왔으며 이젠 거기에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그들의 부모(박근형, 박원숙)는 성의 존립과 타인에 대한 체면 치레를 위해 이제껏 해 왔던 그런 방식을 계속해서 고수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아직은 젊어서 사랑의 감성이 남아있는데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유리의 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그들 재벌 2세들은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그 옛사랑의 흔적 때문에 많이 아파 보였다. 서로를 위로하며, 가문의 존립에 해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애써 버텨 나가긴 하겠지만 말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너무나도 그럴듯한 환경의 풍족한 성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해서 다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그런 거창한 환경 속에서 태어났기에,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껏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준성 남매를 보며 '하늘은 역시 공평한 건가..?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 몰아서 주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단순히 두 남녀의 연애 감정이나 사랑의 정서를 넘어서 두 가문의 결합이기도 한 '결혼'이란 것은 역시, 비슷비슷한 환경의 사람들끼리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런 생각-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책이나 대중들이 추구하는 판타지를 자극하기 위해 대놓고 '신데렐라 스토리'임을 표방한 트렌디 드라마 속에선 결말에 '그 둘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이 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판타지일 뿐이고.. 살아가면서 맑은 날 뿐만이 아닌 흐린 날도, 비 오는 날도, 천둥/번개 치는 날도, 다시 개이는 날도 있는 인간들의 다양한 '현실의 삶'은 그런 단순한 판타지하고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유리의 성>은 그런 식의 세밀한 현실에 조금 더 근접한 드라마였는데.. 그들이 살아가는 그 '성 안'에서나 '성 밖'에서나, 결국 그들의 삶은 이제껏 살아왔던 각자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진행 중..'이란 식의 그 결말이 그럭저럭 맘에 들었다.

동화책이나 판타지 드라마처럼 '두 청춘 남녀는 사랑으로 그 모든 걸 극복하고 자알 살았어요~' 식이 아닌 <기만이든, 가식이든 이제껏 쌓아온 견고한 그 성을 새삼 무너뜨릴 수 없는 그 성 안의 사람들은 그 안에서 나름 체념하고 적응하면서 자기네들 방식으로 살아가고.. 성 밖의 사람들은 또, 각자가 지닌 가치관을 소중히 여기면서 스스로가 원하는 행복을 추구하며 그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는 마무리의 '여운'을 주는 결말.. 그것이,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있을 법한' 결말이기도 했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