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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스타 배용준에 대한 기억들 : 우정사, 그리고.. 205번 강재호

타라 2008. 4. 29. 19:32
지난 연말에 TV 드라마 시상식을 보게 되었는데, 한류 스타 배용준이 나왔다. 검은 정장에, 목발을 짚고서... (이상하게도, 그가 하고 나오니까 목발까지 럭셔리해 보이는 건 뭔지..) 난 배용준이 대상을 받은 그 드라마는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그 날 우연히 시상식에 나온 배용준을 보구서 갑자기 그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함을 느끼게 되었다. 어쩐지 옛날 생각도 나면서...

난 배용준이란 배우에 대해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표하는, 소위 말하는 그의 팬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날을 떠올려 보면, 간헐적으로나마 (그가 출연한 드라마가 방영된) 특정 시기에 한번 씩 배용준의 매력에 풍덩풍덩 빠지곤 했던 기억이 난다. 배용준의 첫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의 인사>는 본 적이 없고, 내가 그의 존재감을 처음으로 확인하게 된 작품은 조소혜 작가의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였다. 그것두 드라마가 한 중반 쯤 진행되어서야 비로소, 말이다.


<젊은이의 양지>는 스토리가 단조롭지 않고, 비교적 여러 등장 인물의 이야기를 골고루 다뤄서 꽤 흥미진진한 드라마였는데 그 뒤에 나온 같은 작가분의 더더욱 대박 난 드라마<첫사랑>(한국 드라마 전체 시청률 1위)도 있지만, 내가 더 재미있게 본 건 <젊은이의 양지>였다. 사실 드라마 초반엔, 다소 평범해 뵈는 범생이 이미지의 배용준(석주)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 그냥 드라마가 재미있어서 본 거였는데 드라마 중반 쯤엔가.. 그에 대한 관심도가 수직 상승하게 된 계기가 되는 장면이 있었다.

- 영화 감독 배용준(하석주)과 뿔테 안경

사람이 뭔가에 팍 꽂히게 되는 건 순식간인데.. 전혀 관심 밖의 인물이었던 <젊은이의 양지>에서의 전형적인 범생이 이미지의 하석주가 갑자기 내눈에 들어오게 된 지점은 극 중에서 유학 간 그가 아버지 몰래 경영학 공부 대신 자신의 꿈이었던 영화 쪽 공부를 하고 해외에서 상까지 받고 귀국하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유학 간 설정이어서 한동안 뜸했다가 영화 감독이 되어 다시 돌아온 그는 헤어 스타일도 바뀌고, 까칠한 수염도 좀 기르고, 무엇보다 극 초반부랑 이미지 면에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안경테의 차이였던 것 같다. 물론 캐릭터가 멋있어진 것도 있지만 외적으로도 더 멋있어진 그를 보며, 일단 눈이 즐거워지니 캐릭터에 대한 호감도 더 증폭되었다고나 할까?

배용준의 뿔테 안경- 안경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그렇다. 내가 기억하는 한, 배용준이란 배우는 '뿔테 안경'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리고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지, 내가 드라마 중반에 영화 감독이 되어 돌아온 하석주에게 꽂히기 시작했던 그 지점부터 실제로 그 드라마 내에서의 배용준의 인기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자체의 인기는 원래 초반부터 있었고 말이다.) 원래도 재미있었지만, 뿔테 안경 '영화 감독'으로 분한 배용준의 드라마 내에서의 변신으로 인하여 난 그 드라마를 더욱 더 즐겁게 시청할 수 있었다. 그 여세를 몰아, 연말에 있었던 특집 방송에서 전체 출연진 중 석주 역의 배용준이 '인기상' 받았던 것도 기억난다. 그 해 몇 달 동안, 그 드라마를 보며 나름 즐거웠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남과 동시에 석주도, 뿔테 안경의 배용준도 서서히 내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다시 배용준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드라마는 그 다음 해 쯤에 방영되었던 <첫사랑>이었다.

주인공 찬혁(최수종)의 터프한 동생으로 분했던 그가 뭔가 기존의 역할이랑은 다르게 이미지 변신을 하기는 한 것 같았지만 직접적인 러브 라인의 주인공도 아니었고, <첫사랑> 초반 스토리는 내겐 너무 진부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이 역시 초반엔 별 임팩트를 못 느끼다가 드라마 중반이 넘어서서야 다시 탄력받기 시작했더랬다. 그 드라마의 핵심 스토리는 부잣집 딸과 가난한 집 아들, 찬혁(최수종)과 효경(이승연)의 집안 반대를 무릅쓴 전형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식 사랑 이야기였는데 그 스토리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것도, 흥미진진함도 없게 느껴졌었기에..

- 형을 망가뜨린 효경이네 집안, 부숴버릴거야!(남자 심은하~? 찬우-배용준)

그러다가, 그 드라마가 피크를 맞이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뒤늦게 정신 차려 들어간 법대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찬우(배용준)가 효경 집안 사람들이 일으킨 형-찬혁의 사고를 계기로 갑작스럽게 본인의 진로를 변경하고서 '복수의 화신'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던 그 시점이었던 것 같다. 카지노에서 알바하다가 우연히 나한일 사장(?-극 중 이름 생각 안남)의 눈에 띄어 기업 경영에 뛰어들고, 사랑하는 자신의 형 찬혁을 불구로 만들어 버린 효경이네(아버지, 삼촌) 회사를 몰락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극 후반 스토리의 핵심을 담당했던 찬우(배용준) 역할 때문에 초반에 <첫사랑> 스토리를 좀 지루하게 느꼈던 난, 극 중반 이후부터는 완전 몰입하면서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음.. 사람들이 왜 '복수극'에 열광하는지 알겠다. 역시, 복수극은 재미있으니까...

형을 위해 진로를 변경했던 찬우의 복수극 덕분에, 석주 이후 한동안 잊혀졌던 배용준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되었는데, 그 뒤로도 몇몇 드라마가 있었던 것 같지만 별로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극 중 캐릭터로서의 배용준을 내게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드라마가 있었는데.. <거짓말>로 국내 최초 매니아 드라마 동호회를 탄생시킨 노희경 작가의 작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였다.

- 수산 시장 게 경매인, 205번 강/재/호..

강/재/호.. 이 캐릭터는 내게 아주 특별한 인물이었다. 왜냐 하면.. 그 드라마 방영 당시, 그냥 길 가다가도 강재호가 막 생각났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길 가다가 강재호가 왜 생각났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땐 분명 그랬다. 드라마 속의 인물이지만, 왠지 실제로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았던 캐릭터.. 괜히 친근하고, 괜시리 마음 아프고, 신경 쓰이고, 애틋하게 느껴졌던 캐릭터 재호..

난 그 때 당시 드라마 '우/정/사'와 거기 나온 '강재호'를 많이 좋아했다. 수산 시장 '게 경매 장면'을 시작으로 한 첫 장면부터 참 인상적이었더랬다. 경매인 205번 강/재/호..
노희경 작가도 예전에 이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적이 있고, 내가 생각했을 때에도 44부작 장편 드라마였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는 극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고(약간의 '전형성'과 '신파'와 '진부함'이 가미되어 초반의 신선함이 다소 떨어지기도 했던...) 비슷한 시기에 했던 드라마 <거짓말>이 '완성도' 면에선 더 앞선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사'에 나온 '재호'란 인물은 내겐 너무 강렬하다.

그런데 다른 배우가 그 역할을 했으면 (연기에 대한 실력이나 재능과는 무관하게) 또 다른 색깔의 강재호가 나왔을 것 같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난 배용준이 빚어낸 강재호가 참 좋다. 매 회마다 그 드라마 엔딩곡으로 뜨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도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드라마 우/정/사는 극 초반부가 정말 압도적으로 좋았고, 중산층 집안의 딸과 연하의 가난한 집 출신 남자가 집안의 반대 끝에 사랑으로 결혼에 골인하고, 주인공이 불치병 걸려 죽는다는 설정의 중반부 넘어서서는 조금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마지막회 마지막 장면은 너무도 강렬해서.. 드라마 끝나고도 한동안 가슴 먹먹해짐에, 자리를 뜨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당시, 내 주변에도 우정사와 강재호를 좋아했던 이들이 있었는데 그 다음 드라마 <호텔리어>에서 강재호(배용준)가 신분 상승하여 럭셔리하고, 품격 있고 냉철한 재력남, 멋진 미남으로 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에 한동안 적응하기 힘들어 '배용준은 재호였을 때가 더 좋았는데...' 라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에..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밝게 염색한 '바람 머리' 스타일의 민형(준상) 역시, 우리에게 낯설긴 마찬가지였는데...

배용준을 거물급 스타로 성장하게 해준 윤석호 PD의 계절 시리즈 <겨울 연가>.. 그 계절 시리즈가 그닥 내 취향은 아니었으나, 어느 날 우연히 재방으로 첫 회를 보다가 순전히 '류'가 부른 '드라마 주제가'에 낚여서 계속 봤던 것 같다. 주로 재방송으로.. 그 때 당시, 상대 드라마로 이병훈 PD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상도>가 방영되고 있었기에...

KBS <겨울 연가> 방영 당시엔 상대 드라마(SBS-여인천하, MBC-상도)들도 만만찮게 강렬했기에, 그렇게까지 대박 드라마, 국민 드라마까지는 아니었는데 드라마 끝나고 한참 뒤.. 어느 날엔가 그는 대박 스타, 한류 스타가 되어 있었다. 일본에서의 엄청난 인기와.. 욘사마라는 칭호와.. 더욱 큰 경제적 자유와 함께 우리들만의 강재호는(우정사가 그렇게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아니었기에) 어느 순간, 커다란 산이 되어 있었다.

난, 그가 재호로 분한 우정사가 방영된 지도 너무 오래 되고 해서.. '한류 스타-욘사마 배용준'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작년 말 드라마 시상식에 나온 배용준을 보구 나서 새삼 용준심(?) 충만해짐을 느끼며 과거에 내가 '드라마 속에서의 그'에게 열광했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작년 말 시상식에서, 배용준의 조곤조곤한 말투와 시종 환한 미소에 기분이 좋아졌고 그의 그런 모습에 살짝 마음이 설레는 걸 느꼈더랬다. 단순히 전형적으로 잘생긴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그만이 지닌 온화한 그 분위기와 한 템포 쉬어가는 특유의 느릿한 말투가 참 좋다는 걸 느끼며...

- 아련하고 아릿한 풍경..

드라마 촬영 중, 부상으로 인해 목발을 짚고 나온 그를 보면서 과거의 재호(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와 준상(겨울연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의 남성적인 모습도 참 멋지지만 난 이상하게도 아픈 배용준, 청순(?)한 배용준, 설정 상 처절함이 묻어나는 배용준 캐릭터에 대한 묘한 오마주를 느끼게 된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의 강재호, 드라마 후반에 많이 처절했는데.. <겨울 연가>에서도 마지막회에 남자 주인공을 죽이니, 살리니 말이 많았었다..

결국엔 죽이지 않고 살리긴 하는데 '준상'이 눈 멀게 되는 설정으로, 결말에 첫사랑이랑 이뤄지긴 하지만 이것 역시 나름의 처절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배용준은 그런 모습도 그림이 된단 말이지.. 미학적인 관점에서, 배용준은 그런 캐릭터도 상당히 잘 어울려 보인다. 냉철한 배용준, 카리스마 넘치는 배용준도 멋있지만 어떤 작품에서 간간히 보여지는.. 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 또로록 흐르는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참 아련해짐을 느끼게 되는데... 다음 번에 언젠가는 배용준이 아주아주 슬픈 이야기, 처절한 내용의 작품에 한 번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그의 재호가 그리워진다.

재호, 강재호.. <우/정/사>의 '강재호'가 살았던 1999년의 흔적을 다시 한 번 들춰봐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