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된 월화극 '천일의 약속'은 내게 왠지 뻘쭘한 드라마이다. 애초에 '불륜 비슷하게 시작된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치매'란 소재를 잘 다뤘는가가 왠지 의문스럽게 느껴지기에 말이다. 이 드라마 마지막회는 급 '알집' 모드로, 뭔가 많이 압축되고 급작스럽단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천일의 약속>에서의 지형 모자(김해숙 & 김래원)는 '뻘쭘함의 절정'을 이루는 캐릭터들이다. 의외로 치매 환자도 '며느리'로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지형 모(김해숙)를 보면서 '아니! 저렇게 쉽게 허락하는데~ 서연이 치매 걸리기 전엔, 자기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라면서 죽겠다 난리 치면 더 쉽게 허락했겠네?' 싶으면서 '아무리 여자 쪽이 부모 없이 자랐어도, 키워준 친척도 있고 직업도 나쁘지 않은데.. 자식이 열심히 어필하면 충분히 둘 사이 허락해 줄 것을, 지형(김래원)과 서연(수애)은 왜 중간에 엄한 피해자(정유미) 끼워서 그 긴 시간동안 뻘짓을 했을까..?' 하는 허무한 마음이 올라왔다.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라면 조건 안 따지고 아껴주며, 본인의 40년 우정에
금 가를 수도 있는 시어머니(이럴 줄 알았으면, 몰래 만날 필요 없었는데..)

실제론 안 그럴 수도 있지만, 때론 드라마 <천일의 약속>과 관련한 모종의 음모론(?)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천일의 약속> 이전에도 모 드라마 & 영화 관련하여 그 비슷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다.

어떤 '다수의 팬을 거느린 드라마 작가'가 준비하던 TV극이 있었는데, 본인이 결사 반대했던 웬 스타급 여주인공이 거기 캐스팅되었다. 그 (나름의 권력을 가진) 여배우는 극 연출자를 비롯한 주변 인맥을 동원하여 그 드라마 여주 자리를 차지했고, 기존에 '대중들로부터 큰 인정을 받아왔던 그 작가'가 당시 자신의 위상을 더 높여줄 수 있을 거라 나름 기대하는 분위기였었다. 허나, 결과는 참혹했다- 시청률도 많이 낮았고, 그 여배우는 대중들로부터 해당 캐릭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으며, 그런 걸 떠나 '여주인공 캐릭터' 자체가 이상하게 얄밉게 느껴져 나로선 초장부터 그 여주에게 정이 가질 않았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배우로서 지지부진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한 스타가 '이전에 주옥같은 작품만 만들어 낸 감독'이 준비하고 있는 영화 정보를 입수하고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 역할에) 스스로 그 감독에게 적극 대시하여 주인공 역을 따냈는데, 이 역시 결과는 참혹~ 그 영화는 흥행에 처절하게 실패했을 뿐 아니라, 주연 배우의 역량을 떠나 '기존에 훌륭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어 좋은 평가만을 들어왔던 그 감독'의 작품 자체가 이번엔 혹평을 면치 못했다.

많은 이들이 '그 감독의 역량이 거기까지 밖에 안된다'고 말했지만, 난 살짝 다른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감독 입장에서, 갸륵한 정성으로 자길 써달라고 하는 그 배우를 거절은 못하겠고, 애초에 별로 마음에 안들었던 그 배우 데리고는 도저히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좋은 작품을 만들고픈 마음(적극적인 의욕)이 안드니.. 그냥 대충 만들다가 저렇게 된 거 아닌가?' 하는... 아무래도 작가나 감독도 '감정을 지닌 사람'인지라 '자기가 만들어 낸 배역에 딱이다 싶고, 여러 면에서 진짜 마음에 드는 연기자'랑 같이 일할 때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욕이 급상승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드라마 <천일의 약속>은 전자와 경우가 살짝 다르다. 수애는 해당 역할에 잘 어울려 보이고, 청소년 시절부터 연기를 해온 김래원은 기존의 여러 작품들을 통해 '연기 잘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었으니... 하지만 극 초반부 '대본 리딩' 과정에서 두 배우의 연기가 '김수현식 대본'을 잘 소화하지 못했단 논란이 있었고, 작가의 지적이 있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었다.

같은 팀이니 그런 걸로 크게 영향을 받진 않겠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지형(김래원) & 서연(수애)'의 남녀 주인공 사랑이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한데다 김래원은 드라마 시작 전에 물의를 일으킨 것도 있어서, 안 그래도 고령의 나이인 김수현 작가가 '에라, 모르겠다. 대충 쓰자~'하고 쓴 것이 <천일의 약속>이 아닐까? ;; 극의 많은 부분을 창작 대사 대신 '유명 시인의 시'로 도배하거나 '정황이나 이미지 상으로도 충분히 보여지는 것을 구체적으로 해설해 주는 나레이션 방식'을 동원해 가면서 말이다..

우아하게 시 읊어 선방 날리고, 남겨질 내 남자 떠넘기기~ 그리곤, 몇 십 년간
그 남자만 좋아해 온 여자 앞에서 염장 지르기
? (자기는 총각 뺏어서 결혼한 뒤
혹까지 달아 놓고는, 상대 여성(피해자)의
순수한 사랑과 약한 마음을 이용하여
'애 딸린 미래 홀아비'를
미혼 여성에게 떠넘기려 하다니~ 난, 그 결합 반댈세!)

나름 언론 플레이를 통해 자화자찬하기도 하고, 이 드라마 잘 봤다고 말하는 시청자들도 있지만, 그 숫자를 훨씬 능가하는 수준으로 종영된 <천일의 약속> '극 퀄러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많다. 무수한 드라마 게시판 의견과 관련 기사 댓글란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다.

김수현 작가가 그간 쌓아온 커리어를 생각했을 때 '시간에 쫓긴 쪽대본'도 아닌 '무척 시간적 여유가 많은 상태에서 미리 써놓은 <천일의 약속> 극 내용'이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온전히 어필되지 못한 채 퀄러티도 그 정도인 걸 보면, 집필자(한 분야의 대가) 입장에선 살짝 굴욕적인 일이 아닐까 한다.

모든 작가/감독은 자신이 만들어 낸 작품을 통해 나름의 '주제'를 전하는데, 솔직히 <천일의 약속>을 통해 김수현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결말부 내용을 접하고 나서 '그래서~ 그랬는데, 뭐 어쩌라고?' 이런 생각이 들어서 무척 당황스러웠던..;; 실제 '의도한 내용'은 그게 아닐테지만, 기초 공사가 좀 부실하여 극 전반적으로 '치매'가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되는 양 묘사된 감이 없지않아 있다.
여주인공 '캐릭터'도 뭔가 일관성이랄까, 개연성 같은 게 좀 부족한 '(보는 입장에서) 이중적인 성격'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인물인 것 같다. 그래서 온전히 불쌍하게 여기기엔 왠지 불편했던...

치매 걸려도, 가능한 선까진 최대한 도도/우아하게~

'치매'의 증상과 관련한 소소한 에피소드는 있었지만, 기존에 '치매 질환'을 다룬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 <천일의 약속>에서의 치매 걸린 여주인공 서연(수애)은 내내 '우아하게 차려입은 (치매 환자치곤 지나치게) 반듯한 모습'으로 이쁜 척 하면서 '(그 나잇대 서민들 입장에서 봤을 때) 꽤나 화려해 보이는 집'에서 '마치 본인이 주변 사람들(남편, 고모, 사촌 오빠, 사촌 언니, 회사 동료, 남동생 등..)의 상전이라도 되는 양 떽떽거리고 히스테리 부린 모습'이 <주된 이미지>로 부각되어 나오다 보니, 어쩐지 이런 설정에 대한 '진정성'이 좀 떨어져 보이기도 했었다. 어린 시절.. 이웃에 사는 치매 할머니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보여준 치매 환자는 실제로 본 치매 환자랑 많이 달랐다.

항간에 '김수현 작가가 <천일의 약속>을 통해 신종 고급병을 만들어 냈다'는 말이 돌기도 했는데, 아무리 봐도 김래원-수애 주연의 이 드라마 제목으론 왜 '1000일의 약속'인지 모르겠는 <천일의 약속> 보다는 <청담동 치매>나 <한 남자를 사랑한 미구 & 호구>...뭐 이런 게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신고

posted by 타라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