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뮤지컬

헝가리 뮤지컬, 21C의 '목 매달아 죽는 로미오'

타라 2011. 7. 26. 23:23
'로미오와 줄리엣'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다.(원래 셰익스피어가 그 얘기를 완전히 지어낸 게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알려지기론 셰익스피어의 작품~) 이 유명한 작품은 각종 연극, 영화, 뮤지컬, 발레 공연 등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는데, 2001년엔 프랑스에서 작곡가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이 '뮤지컬'로 무대에 올리게 된다.

제라르가 만든 프랑스 뮤지컬 <Romeo et Juliette : de la Haine a l'amour(로미오와 줄리엣 : 증오에서 사랑까지)> 2001~2002년 초연은 대대적으로 히트치게 되는데..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그 뮤지컬 판권을 사서 자국의 무대에 올렸으며, 2009년엔 한국(우리 나라)에서도 라이센스 버전 <로미오 앤 줄리엣>을 제작하여 무대에 올린 바 있다. 같은 아시아권 내에선 일본에서 그 작품을 '다카라즈카 가극단' 버전으로 공연한 바 있고, 최근엔 '일반 뮤지컬' 버전으로 제작 진행 중이다.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erard Presgurvic) 작사/작곡의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2004년 쯤 헝가리에서 라이센스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으며, 공연 실황 DVD도 제작되었다. 이 헝가리 버전은 프랑스의 원 공연이랑 장면 구성이나 연출 자체가 판이하게 다르다. <로미오와 줄리엣> 기본 스토리와 제라르가 작곡한 '곡'만 가져다 썼을 뿐 안무나 의상, 무대 구성, 전반적인 캐릭터 설정도 좀 다르다.

 
맨 처음 제라르 작곡의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헝가리 버전'을 처음 접했을 때, 품격 있고 점잖은 프랑스판과는 너무도 다른 헝가리판의 그 과도한(?) 설정에 살짝 충격 받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헝가리판 <로미오와 줄리엣>'은 보면 볼수록 은근 흥미진진하게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는 '프랑스 원 버전 and 그 프랑스 버전으로 라이센스 공연을 제작한 한국어 버전의 2막 구성'과는 다르게, 이 헝가리 <로미오와 줄리엣> 2막은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한마디로, 처음부터 끝까지 늘어지는 씬 없이 '극의 전반적인 짜임새'가 좋다는 얘기다.

이 나라 공연의 '로미오 & 줄리엣의 죽음'은 굉장히 특이한 방식을 따른다.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에선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슬퍼하던 로미오가 '준비해 온 독약'으로 죽고, 신부님이 준 약을 먹은 뒤 '가사 상태'로 있다가 로미오의 죽음 직후에 깨어난 줄리엣은 로미오의 허리춤에 있던 '칼'로 자결하는 걸로 알고 있다.(1968년에 만들어진 '레너드 위팅 &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이 비교적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근접하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라르가 만든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초연(2001' 공연 실황 DVD)에선 특이하게 '죽음'이란 개념을 '의인화' 시켰는데, 이 버전에선 '죽음의 여신' 캐릭터가 굉장히 큰 비중으로 등장한다.

프랑스의 초연 버전에선 로미오가 의인화 된 '죽음(La mort)'의 키스를 받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 직후에 깨어난 줄리엣에게 로미오 허리춤에 있던 칼을 건네는 이 역시 '죽음(La mort)'이다.

예술성 짙은 프랑스 뮤지컬답게, 이 작품 초연 때의 '로미오 & 줄리엣의 죽음'은 다소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제라르의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2007년 이후로 세부적인 구성과 연출을 좀 바꿨는데, 이 신(新)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초연 때처럼 '죽음의 여신'이 주인공들의 죽음에 그리 깊게 개입하지 않으며, 옆에서 그냥 '방관자'적인 역할 정도로만 나온다.

프랑스 뮤지컬 '뉴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원작 내용과 비슷하게 '로미오'는 자신이 준비해 온 '독약'을 마신 뒤에 죽고, 뒤이어 깨어난 '줄리엣'은 로미오가 차고 있던 '칼'로 자결하는 걸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초연 때와는 다르게 '줄리엣'이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를 때 뒤에 있던 '붉은 커튼'이 떨어지는 걸로 연출되었는데, 이 대목은 어쩐지 질 마으가 연출한 뮤지컬 <돈 주앙>에서 '돈 주앙의 최후'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개인적으로, 바뀐 연출 보다는 <로미오와 줄리엣> 2001~2002년 초연 때처럼 강렬한 카리스마의 '죽음의 여신' 캐릭터가 이들의 죽음에 관여하는 그런 연출이 좀 더 마음에 든다.)

'각색의 각색'을 거친 헝가리 뮤지컬에서의 파격~ : '목 매달아 죽는 로미오'?

프랑스산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져다가 대대적인 '각색'을 가한 헝가리판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주인공인 '줄리엣과 로미오의 죽음'을 처리하는 대목에 있어,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쓴 원작이나 프랑스 원 버전 뮤지컬 연출과는 또 다른 방식을 취한다. 이 뮤지컬 헝가리 버전에는 의인화 된 '죽음'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모 극단의 K 연출자는 '남의 작품 가져다가 온전한 자기만의 색깔 칠하기'가 주특기인 감독인데, 나름 '연출 능력'은 뛰어난 사람이라 생각된다.

이 감독이 연출한 장면 장면들은 그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거기다, 쓸데없이 늘어지거나 낭비 되는 씬 없이 '극 안에 나오는 모든 장면들'이 유기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굳이 프랑스 오리지널 버전처럼 '죽음' 캐릭터를 등장시키지 않더라도, 이 헝가리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장면>은 충분히 임팩트 있고 개연성 있게 느껴진다.


이 '<로미오와 줄리엣> 헝가리 공연'에선, 로미오가 줄리엣을 들쳐 업고 단상 위로 올라가 '목 매달아서' 죽는다.(이 때.. 로미오의 입장에선 줄리엣이 죽은 줄 알고 있는 상태이며, 목은 로미오 혼자 맨다.)

맨 처음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로미오가 목 매달아서 죽는다~'는 이런 전무 후무(?)한 설정에 다소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꽤나 독창적이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장면의 헝가리판 연출을 보니 오히려 '지루한 노래'의 '밋밋한 연출'로 표현된 프랑스 원 버전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애절해 보이기도 했다.(이 작품에 출연한 헝가리 배우들의 '노래 솜씨'는 오리지널 프랑스 배우들보다 못한 편이지만, '연기력'은 나름 괜찮아 보였다..)


오리지널 프랑스판(2001~2002년 초연 버전+2007~2010년 뉴 버전 공연)에선 '로미오가 죽는 장면'에서 로미오 역의 배우가 <Mort de Romeo(로미오의 죽음)>이라는 다소 지루한 멜로디의 노래를 부르면서 죽어가는데, 헝가리판에선 프랑스의 그 방식을 따르지 않고 로미오가 죽을 때 1막에서 불렀던 '로미오의 대표 솔로곡' <J'ai peur(난 두려워)>와 '같은 멜로디의 노래'를 부르고 죽는다. 그래서 '듣는 감흥'의 차원에서, 로미오가 죽는 그 장면이 프랑스 원 버전에 비해 더 애절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그리고.. 제라르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프랑스판 DVD(2001년 공연 실황)에선 로미오가 죽을 때 그냥 노래만 부르다가 '죽음의 여신' 키스를 받고 바로 죽는데, 헝가리판 DVD(2004년 공연 실황)에선 로미오가 죽음송 부를 때 '과거 줄리엣과의 행복했던 한 때'를 회상하는 장면을 몽타주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더더욱 (극을 감상하는 이가) 극 중 인물의 정서에 몰입하게 되는 효과가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