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or 뮤지션 2011.05.30 07:53

가끔은 지인들과 재미 삼아서 'OO는 OO이다' 류의 '정의 내려 보기'를 할 때가 있다. 예전에 '예술'에 관한 소재로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그 때 '예술은 광인(미친 자)들의 자기 만족이다~'란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적어도 '예술' 한다 하는 사람들은 죄다 뭔가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그게 영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얼마 전엔 직업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노래'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개인적으로 그 '노래'란 것은 '영혼과 영혼의 교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엔 그저 음정 잘 맞추고, 목소리 크고, 고음 잘 올라가고, 박자 잘 맞추면 그게 노래 잘하는 거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나이 들어갈수록 '그건 그냥 노래의 기술적인 부분'일 뿐이고, 진짜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그 나름의 스토리를 가진 어떤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그것이 듣는 사람의 영혼을 건드렸을 때 느껴지는 그 무엇'과 연관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일종의.. 기운과 기운 사이의 '소통'인 것이다-


가수 임재범, 2집 시절(의 깜찍함..)

시청률이 그렇게 폭발적으로 높지는 않지만, 어쨌든 요즘 대중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TV 프로그램의 한 코너 '나는 가수다'로 인해 새삼 '데뷔한 지 꽤 오래 된 가수 임재범'의 노래가 각광 받고 있다. 최근 들어, 가는 커뮤니티마다 '여기도 임재범, 저기도 임재범' & '아, 재범님 노래 감동이에요..', '나의 영혼 깊숙한 곳을 울리고 있어요~'류의 평가들이 주를 이뤘으니... 사실 찾아보면 대한 민국 내에 임재범보다 더 현란한 기교와 미칠듯한 고음을 자랑하는 가수도 있을테지만, 그럼에도 그의 노래에 많은 대중들이 감동을 느끼는 것은 그 '소리'에 어떤 '밀도 높은 스토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 사람이 살아온 '나름의 굴곡 있는 인생 여정', 그 안에서 느꼈을 '비교적 빈도수가 높고 진폭이 큰 갖가지 희로애락'이 그가 '대중에게 전달하는 소리(노래하는 목소리)'에 묻어나는 것이다. 최근에 들어 본 임재범의 노래는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노력해 온 장인이 직접, 많은 시행 착오 끝에 온 정성을 다해 잘 빚어낸 질그릇' 같은 느낌을 준다. 흙을 빚어 만든 그것(질그릇)은 기본적으로 '자연'에서 나왔으니, 똑같이 '자연'에서 나온 인간과 교감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그보다 더 매끈하게 잘 지르고 기술적 & 기교적인 부분이 뛰어나도 '연륜 있고 안목 높은 특정한 대중'에게 쉽게 감동이나 영혼의 울림을 주지 못하는 노래가 있는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장인이 온 정성을 다해 진득하게 빚어낸 질그릇'과 '공장에서, 그럴듯한 모양으로 매끈하게만 찍어낸 유리 그릇 or 플라스틱 그릇'을 구분해낼 줄 알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한다. '임재범의 노래'는 살짝 투박하긴 해도, 특정한 삶의 이력을 지닌 그 캐릭터만의 소리가 다수 대중들과의 교감(영혼과 영혼의 소통)에 성공했기 때문에 최근 들어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에 찬사를 보냈던 게 아닐까 한다.

가수 데뷔한 뮤지컬 배우 차지연

그런 임재범의 오랜 노래를 최근 한 뮤지컬 배우가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얼마 전부터 '그간 뮤지컬 무대에 주로 섰던 차지연'이 가수로 데뷔한단 소식이 들려왔으며, 오늘 드디어 그 결과물이 공개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처음엔 좀 시큰둥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왜냐 하면.. TV에 많이 나오는 일반 연예인들에 비해 '뮤지컬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벌이도 시원찮은 편이고, 유명 뮤지컬의 경우 명목상으로 오디션을 치르긴 하지만 (신인도 과감하게 기용하는 몇몇 외국의 사례와는 달리) 우리 나라에선 눈에 띄지도 않는 단역/앙상블 출신의 배우들이 꾸준히 노력해도 좋은 기회를 잡는 게(큰 배역을 따내는 것)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대체로, 맨날 주인공 하는 사람만 하는 한국 뮤지컬계의 '폐쇄된 인력 배치'로 인해서 말이다..

차지연은 그나마 뮤지컬 <드림걸즈>로 주목 받아서 <선덕 여왕> <몬테 크리스토> <서편제> 등의 뮤지컬을 통해 이젠 주연급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수를 한다고 하길래 '그냥 꾸준히 뮤지컬 배우나 계속 할 것이지, 웬 가수~?' 싶었던 게 사실이다. 마침 뮤지컬 쪽에서 꽤 괜찮은 노래 실력과 연기력을 갖춘 배우이기도 해서, 차지연의 그런 갑작스런 투잡 행태가 좀 의아했던 것이다. 뭐.. 그렇게 따지면, 기존에 TV 드라마 연기자나 영화 배우, 대중 가수 하던 사람들도 그 '인지도' 하나 가지고 별다른 경력 없이 너무 쉽게 뮤지컬 시장에 뛰어드니 서로 간에 샘샘이긴 하다. ;;

그럼에도, '음식' 취향에 있어서도 뭘 섞어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 입장에선 '꾸준하게 뮤지컬 하던 사람'은 계속 뮤지컬 배우로만 남아주길 바라는.. 그런 마음이 좀 있었더랬다. 이건 여담이지만, 난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랑 분식점에 갔을 때 '군만두에다가 떡볶이 국물을 얹어 먹는 것'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만두는 순수하게 '만두'여야만 했고(그래서 당연히 간장에 찍어 먹어야 하고), 떡볶이는 순수하게 '떡볶이'여야만 했던 것이다. 그 자체로 '각각의 정체성'을 갖는...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진득하게 한 길만
가는 것도 꽤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기준이 있는 탓에, '연기로 데뷔한 사람은 쭉 연기를 하고.. 가수로 데뷔한 사람은 쭉 가수를 하고.. MC로 데뷔한 사람은 쭉 MC를 하고..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사람은 쭉 영화 감독을 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은 계속 그림만 그리면서, 그 각각의 분야 사람들이 꾸준~히 자기 분야에서 많은 세월을 보내고 진득한 모습을 보여줬을 때'에 온 마음을 다해 인정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곤 한다.

물론 그런 기준을 모든 사람들에게 타이트하게 적용하긴 곤란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 나라 '대중 문화'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엔 '이거 좀 했다, 저거 좀 했다~' '여기 집적, 저기 집적~' 하는 식으로 투 잡 or 쓰리 잡 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실정이니... 한마디로, 장인 정신이 부족한 것이다.
 

 차지연 - 그대는 어디에(임재범 작사/작곡)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처음엔 좀 시큰둥했지만, 오래 전에 나온 '임재범'의 곡 <그대는 어디에>를 리메이크해서 타이틀 곡으로 내건 뮤지컬 배우 출신 신인 가수 '차지연'의 노래를 처음 듣고서 '그럭저럭 괜찮네..'란 생각이 들었다. 차지연이 부른 여자 버전 <그대는 어디에>는 남자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임재범의 오리지널 <그대는 어디에>와는 또 다른 분위기인데, 나름 '호소력 있는 음색'에 '깊이 있는 분위기'로 이 곡의 '애절함'을 꽤 잘 살렸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연륜의 차이가 있어서 '임재범'에 비해선 그 농도 짙은 느낌이 좀 약한 듯 하지만, 첫 데뷔 치고는 꽤 인상적인 모습이다.

차지연이 부른 애절한 느낌의 '그대는 어디에'를 들으며, 오랜만에 그윽한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그 노래의 미덕을 만끽하다가 새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걸 임재범이 작사/작곡했단 말이야~? 이 좋은 걸..?? 재주 많은 양반이네~' 싶은..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다가,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가수 데뷔한 차지연의 노래를 들어 보다가 갑작스레 느끼게 된 '임재범의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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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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