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에서

그림으로 복수?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

타라 2011. 2. 5. 22:55
이탈리아 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의 딸로 태어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는 성경이나 신화적 소재를 기반으로 한 그림을 주로 그린 여류 화가이다. 그녀는 구약성서 외경인 '유디트서' 속의 인물 <유디트>에 관련한 그림을 즐겨 그렸다. 

 페테르 루벤스의 그림 '유디트'


'유디트' 그림은 아르테미시아 외에도 클림트, 루벤스 등 다수의 서양 화가들이 자주 화폭에 담았던 그림이다. 이 '유디트' 그림은 다음과 같은 사연을 담고 있다.

BC 2세기 경, 앗시리아 왕은 '홀로페르네스(Holofernes)' 장군이 이끄는 대군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침략하도록 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앗시리아군에게 참혹하게 짓밟혔는데, 그 때 유디트라는 여성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술에 취하게 만든 뒤 자기 시녀와 함께 그의 목을 베어 죽여 버렸다.('나라를 위해 적장을 죽음에 이르게 한 유디트'는 이스라엘판 '논개'인 셈이다..)

홀로페르네스 장군의 목을 들고 온 유디트는 그것을 아군에게 보여줌으로써 이스라엘군이 '우두머리를 잃은 앗시리아군'을 물리치는 데 일조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유디트(Judith)는 앗시리아인에게 짓밟히던 이스라엘을 구한 '여자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남성 화가들이 종교에 관련한 그림을 많이 남겼지만, 여성 화가가 종교나 역사화를 그린 건 당시로선 드문 일이었다. 그 때는 '여성'들이 미술에 관한 교육을 받을 수 없었으나, 일찍부터 자기 남동생들보다 그림에 더 큰 재능을 보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3)는 화가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에 의해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르테미스 젠틸레스키의 '자화상'


하지만 그 탁월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미술 학교' 입학거부당했다. 그 때문에 아르테미스의 아버지는 동료 화가로 일하고 있던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를 고용하여 그녀를 가르치게 했다. 그런데, 유부남이자 스승이었던 아고스티노 타시는 17세의 아르테미스에게 흑심을 품고 그녀를 강간하게 된다. 이에 아르테미스 젠틸레스키는 강간남 타시를 고발하게 되었고, 이후 자신에게 죄를 전가하려 했던 타시와의 오랜 재판이 이어졌다.

결국엔 그녀가 재판에서 이기고 아고스티노 타시는 1년형을 선고 받기도 했지만(멀쩡한 처녀를 건드린 강간범에, 고작 1년형이라니..;;) 재판 도중 아르테미시아는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여러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서양 최초의 여류 화가'로 알려진 아르테미스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는 힘든 일을 겪고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당대의 화가들에게 기죽지 않는 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아르테미스의 작품엔 '강인한 여성성'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많으며, 때로 페미니즘 화가로 불리기도 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 아고스티노 타시 : 강간 범죄자의 최후?)


그녀는 평생동안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Judith Slaying Holofernes)'를 포함한 유디트(Judith) 관련 소재의 그림>을 꽤 많이 그렸는데, 항상 그림 안에 나오는 '유디트'를 자신의 얼굴로 & 유디트에게 목 잘리는 '홀로페르네스'의 얼굴은 뻔뻔한 겁탈범이었던 아고스티노 타시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설정이 꽤 재미나다고 느껴졌다.

화가인 아르테미스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가 '여자 영웅 유디트' 소재의 그림을 주로 그리면서 '한 때 자신을 성폭행 했던 남자=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를 그림 안의 '여주인공에 의해 목이 잘려 나가는 남성'으로 묘사하여 나름의 복수를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르테미스 버전의 <유디트>는 다른 화가들이 그린 '유디트'에 비해 묘하게 역동적이고 강인한 느낌이 듦과 동시에, 화가 개인의 파란만장한 사연으로 인해 특유의 통쾌함마저 가져다 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