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폴리스

어필 천하, 역대 조선 시대 왕들의 글씨체~

타라 2011. 1. 6. 21:45
왕조 시대의 왕들이 쓴 글씨를 어필(御筆)이라 한다. 우리 나라 '조선 시대 왕들'은 정사를 돌보면서도 하루에 3번 씩(아침-점심-저녁)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로부터 강의를 들었을 뿐 아니라, 글씨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당시 임금들의 필체를 보면 죄다 한석봉 부럽지 않은 명필(名筆)이던데, 비록 하나같이 정치를 잘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학문적 소양과 왕으로서의 교양을 갖추려고 많이 노력'했던 걸 보니 권좌의 자리를 날로 차지하여 앉아있던 왕들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사람들도 '배움엔 끝이 없다~'고들 하는데, 옛날 왕들은 특히 '열공 모드'였던... 즉, 그 시대 왕들은 무식하면 안되었던 것이다.

혹시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조선 왕' 순서를 외우기 쉽게끔 앞부분 글자만 따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광인효현 숙경영, 정순헌철 고순~

학교 다닐 때, '일정한 리듬'을 타며 이런 식으로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 밑에는 보통 '조' 아니면 '종'이 붙고, 중간에 폐위된 왕들은 연산군, 광해군.. 이런 식으로 불렸다.

1대 태조 어필

조선의 시조인 태조(이성계)의 필체를 보면 뭔가 남성적이고 시원스러우면서도 호방한 기상이 느껴지는데, 태조와 태종(이방원) 시절엔, 왕이 문서를 남길 때에 '고려식 안진경체(顔眞卿體)'를 주로 구사했다고 한다. 크게 멋부리지 않고, 단정하면서도 꽤나 강직하고 근엄해 보이는 글씨체이다.

4대 세종 어필

5대 문종 어필

3대 태종(이방원) 다음 왕인 세종 때부턴 '우아하고 유려한 분위기를 풍기는 조맹부의 송설체'를 계승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 시기에 '조선의 4대 명필' 중 한 사람인 안평대군(세종대왕의 셋째 아들)과 조맹부체(송설체)의 대가들이 활약했다.


세종대의 영향을 받은 문종 역시 섬세하고 화려한 느낌의 송설체를 구사했다. 하지만 세조가 왕권을 빼앗으면서 몇몇 학자들과 안평대군이 죽임을 당했고, 조맹부체의 유풍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7대 세조 어필


무력으로 왕위를 차지한 세조(수양대군)는 태조와 태종이 썼던 '다소 딱딱하고 보수적인 느낌'을 주는 고려식 안진경체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고, 당시의 신하들 또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 걸 보면, 그 시대에는 왕들이 주로 사용하거나 장려했던 글씨체도 어쩐지 정치적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9대 성종 어필


그 후 9대 임금인 성종이 즉위하면서 세종대의 치국 이념을 계승하여 다시 '송설체(松雪體)'를 부활시켰으며, 왕희지체를 장려하면서 '부드럽고 정갈하면서 우아한 느낌의 새로운 조선식 송설체'로 발전시켜 나갔다. 개인적으로, 예술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성종 임금의 글씨체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성종 임금이 여자 관계가 좀 복잡해서 그렇지, 정치는 나름 잘한 왕으로 알고 있다..)

14대 선조 어필

16대 인조 어필

조선 시대 왕들 중, 왜란과 호란의 큰 난리통을 겪은 선조와 인조는 여러 면에서 후대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는 왕들이다. 선조의 글씨체는 일견 유연한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를 성깔(?)이 느껴지는 듯한 분위기이다. 인조의 경우엔, 최근 들어 여러 사극 드라마들의 한 캐릭터로 등장하여 많은 욕을 얻어 먹었는데(<일지매>랄까.. <추노>랄까~), 찌질하다고 평가 받고 있는 인조의 글씨체는 의외로 꽤 멀쩡한 듯하다.(은연중에, 위축됨과 꽉 막힘의 정서가 살짝 엿보이기는 하지만...)


19대 숙종 어필

우리 나라 TV 사극의 단골 소재인 '장희빈 스토리'에 주로 등장했던 숙종 임금의 어필은 큰 개성 없이 그냥 전형적인 엄친아 or 명문가 자제의 글씨 같다. 사약 받고 죽은 비운의 장옥정(장희빈) 아들이면서 짧은 치세 기간을 거친 경종의 필체도 특별한 건 없어 보인다.

20대 경종 어필

그에 반해,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아들을 왕으로까지 만든 최숙빈의 소생 영조의 그것은 정조와 더불어 '역대 조선의 왕들 중 가장 개성 넘치는 어필'이 아니었나 싶다. 짧은 보위 기간을 누린 경종(장희빈 아들)과 달리, 영조(최숙빈 아들)는 그 10배가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던 질긴 왕이다.

21대 영조 어필

나름 컴플렉스도 좀 있었던 영조가, 그래두 왕권 강화에 힘쓰면서 이런저런 개혁 정치를 통해 조선 왕조의 국력과 문화적 수준을 향상시켰다고 알려져 있는데(사도 세자를 생각하면 좀 슬프긴 하지만..), 조선 초기의 세종-성종대 이후로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이끈 영조와 정조는 그 어필도 유난히 인상적이다.


22대 정조 어필

'숙종의 송설체를 계승한 뒤 필획의 변화가 크고 시원스런 자기만의 서체를 구사한 영조의 어필'이 독특하고 개성 있지만 살짝꿍 괴팍함이랄까 성깔도 엿보이는 것에 비해, 정조의 어필에선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진다. 


조선 후기 문예 부흥을 이끌었던 정조 임금은 양란 이후 변질된 글씨체를 바로잡고자 했다. 그는 문학이나 글씨체에 있어선 고문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서체반정(書體反正)'을 일으켜 순수하고 올바르지 못한 당대의 서풍을 '조선 초/중기 때의 안평대군이나 한석봉' 기준 삼은 서체로 바꾸려 하였다.

22대 정조 어필(연습 시절의 필체 부지런히 갈고 닦은 필체)

다른 왕들도 그랬겠지만, 정조 임금이 처음부터 글씨를 훌륭하게 잘 썼던 건 아니다. 어린 정조의 '연습 시절' 글씨를 보면 괴발개발~ 엉성한 솜씨였으나, 열심히 노력하면서 실력을 갈고 닦은 끝에 자기만의 멋스러운 서풍이 확립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역대 조선 시대 왕들의 글씨체' 중 9대 성종과 22대 정조, 다음에 소개할 26대 고종 임금의 필체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24대 헌종 어필

26대 고종 어필

(비록 단명했지만) '조선 최고의 꽃미남 왕'으로 알려져 있기에 '잘생긴 24대 헌종 임금의 어필'도 살짝 소개해 보는데, 20대 초반에 요절한 탓에 필체를 더 갈고 닦을 기회가 없어서인지 그냥저냥 평범한 느낌이고, 26대 고종 임금의 어필(御筆)은 꽤 멋지단 생각이다.

이렇게 쭉 나열해 보니, 크고 작은 차이점은 있지만 그래두 '조선의 왕'들은 다들 '서예의 대가'들 같다. 천재도 아니건만 글씨를 못 쓰는 내 입장에선 '글씨 잘 쓰는 사람들'의 훌륭한 솜씨를 볼 때마다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그나마 요즘엔, 웬만한 문서는 (직접 손글씨로 쓰지 않고) 컴퓨터 자판을 이용한 워드로 다 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명필가(名筆家)들이 친히 쓴 문장을 통해 '사람이 쓴 글씨예술이 될 수 있구나~'를 느껴보는 기분도 꽤 감동스러운 것 같다..